소설리스트

검신재림-317화 (317/468)

제 105장. 의심의 싹. -02

회의실로 사용하는 거대한 천막에는 많은 사람들이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다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침음만 연신 흘렸다.

그로 인해 침묵이 더더욱 무거워졌다.

‘으음!’

그리고 그건 담현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누구보다 안면에 경직되어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법무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어서였다.

‘아미타불.’

담현은 두 눈을 감은 채로 연신 마음속으로 불호를 외웠다.

그래야지만 가슴속에서 들끓는 화기가 가라앉을 것 같아서였다.

차라리 적들과 싸워서 다쳤다면 이렇게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림사의 제자에게 당했기에 담현은 화가 나면서도 슬펐다.

“분위기가 가관이군.”

“팽가주님.”

“내가 뭐 틀린 말 했나? 다들 똑같은 생각 아니야?”

장내의 침묵을 가르며 팽만철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두고 보기만 하다가는 분위기만 점점 더 침울해질 것 같아서였다.

게다가 회의실에 모인 건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지 서로의 죽상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모인 게 아니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말씀이 조금 과한 것 같습니다.”

“내가 이런 말도 못 해?”

자꾸만 자신을 만류하는 제갈문곡을 팽만철이 퉁방울만 한 눈으로 쳐다봤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물론이고 정천맹의 핵심 인사들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으나 발언권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팽만철은 오대세가 중 한 곳인 하북팽가의 수장이자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이었기에 누구도 불만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건 아닙니다만, 굳이 분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분란은 배신자들이 일으켰고. 내가 이런 분위기를 만든 건 아니잖아?”

“후우.”

거칠기는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믿었던 이들의 배신으로 인해 서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게 현재의 상황이었다.

당장 제갈세가만 하더라도 직계 중에서 배신자가 나왔기에 제갈문곡은 더 이상 말리지 못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 가지고서 회의는 제대로 하겠어?”

“그래도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나. 각자의 상황도 파악을 해야 하고. 배신자가 한 번 나왔는데 두 번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고.”

남궁호의 말에 몇몇 이들이 움찔거렸다.

안 그래도 다들 걱정하는 게 이 부분이었다.

배신자가 혹시나 더 있지는 않을까 싶어 많은 이들이 속을 앓고 있었다.

스윽.

그 모습을 개방의 방주 대리로 회의에 참석한 오중건이 불안한 눈으로 훔쳐보고 있었다.

좌불안석도 이런 좌불안석이 없었기에 오중건은 식은땀이 절로 나왔다.

배신자의 등장이 그의 책임은 아니지만 말이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였기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죽겠네, 진짜.’

특히 오중건은 담현을 차마 보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곳들의 피해도 상당하지만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누가 뭐래도 소림사였다.

때문에 오중건은 안절부절못하며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이보게 오 소협. 아니, 방주 대리.”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당가주님. 호칭이 무에 중요하겠습니까.”

담현을 힐끔거리던 오중건이 퍼뜩 놀라며 당우혁을 바라봤다.

갑자기 자신을 부르자 당황한 것이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혹 알아낸 것이 있나?”

“저희도 열심히 알아보고는 있는데 심증만 있을 뿐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역시 그런가.”

당우혁이 입맛을 다셨다.

심증은 모두가 가지고 있어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과거 당서곤의 배신으로 인해 내부 단속을 철저히 했기에 다른 곳들과 달리 사천당가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아무리 본방이라도 각 파의 내부 사정을 전부 아는 건 아니니까요. 알려고 해서도 안 되고요.”

“그렇긴 하지.”

당우혁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막말로 개방에서 사천당가를 조사하겠다고 하면 그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당우혁은 난감해하는 오중건이 이해가 되었다.

“천사맹과 마도련의 상황은 어떤가?”

“나쁘지 않습니다.”

당우혁이 입을 다무니 이번에는 남궁호가 물었다.

하지만 오중건은 있는 그대로 말해 줄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분위기가 침체되어 있는데 솔직하게 알려 주면 더욱 가라앉을 게 분명해서였다.

굳이 그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얼추 알고 있기도 했고.

“나쁘지 않기는. 승리를 자축하고 난리도 아니구만.”

“저희로서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방심을 할 가능성이 크니까요.”

“난 그게 더 싫은데. 방심을 기대해야 한다는 게. 자고로 정천맹이라는 이름하에 뭉쳤으면 정정당당하게 초전박살을 내야지. 이런 꼴이 아니라.”

“끄으응!”

“커험!”

팽만철의 말에 여기저기에서 불편한 듯한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차마 그에게 따지지는 못하고 헛기침으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팽만철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찾듯이 둘러보자 이내 입술을 오므렸다.

“사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기세를 잡은 만큼 천사맹과 마도련은 지금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나도 알지. 근데 지금 상태로 천사맹, 마도련과 제대로 싸울 수 있겠어?”

제갈문곡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는 듯이 말했으나 팽만철은 회의적이었다.

각각의 세력이 서로를 믿지 않는 건 역사적으로 늘 그래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동문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전투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런 때일수록 더더욱 힘을 모아야 합니다.”

“흐음.”

비장한 제갈문곡의 목소리에도 팽만철은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모두가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야 한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으나 중요한 건 그럴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지금은 물러나야 할 것 같으니. 각자 내부 정리가 필요할 듯해.”

“하오나 장문인. 가뜩이나 기세등등한 상태인데 저희가 물러나면 더 기고만장할 것입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운상 진인.”

지금껏 잠자코 있던 무당파의 운상이 입을 열었다.

개왕은 없고, 담현 역시 회의에 집중하지 못했기에 그가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말에 점창파와 종남파의 장문인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꺼냈다.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물러나는 건 도망치는 꼴이었기에 향후 전쟁의 주도권을 생각해서라도 어떻게든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둘은 생각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이오? 두 장문인은 이대로 싸우자는 것이오?”

“극도로 서로를 불신하는 이 상황에서 말이오?”

“만약 배신자가 더 남아 있어 이번보다 더 큰 피해가 생기면 두 분이 책임질 거요?”

종남파와 점창파의 장문인이 운상의 의견에 반대한 것처럼 다른 방파의 수장들이 날 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무 대책 없이 무작정 자리만 지키고 있자는 말로만 들려서였다.

물론 두 장문인의 말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대책이었다.

이 전제 조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피해만 커질 뿐이었다.

그래서 수장들은 대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두 장문인을 노려봤다.

“크음!”

“험!”

하나 제갈문곡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두 사람이 해낼 리 만무했다.

나름 고민을 하긴 했으나 현 상황을 타개할 방책은 없었기에 은근슬쩍 집중되는 시선을 피했다.

“오늘은 이만 자리를 파하겠습니다.”

악화일로로 치닫는 분위기에 제갈문곡이 회의를 끝냈다.

더 이어나가 봤자 싸우기만 할 것 같아서였다.

또 각자가 내부 단속을 할 시간도 필요했기에 제갈문곡은 이쯤에서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그게 낫겠어.”

“다들 할 일도 있을 테니.”

제갈문곡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팽만철과 당우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보기에도 난장판이어서였다.

더 있어 봤자 못 볼 꼴만 볼 것 같았기에 두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천막을 나갔다.

그러자 그 뒤를 따라 수장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방장.”

눈치를 보거나 혹은 흥분해서 씩씩거리며 나갈 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담현의 곁으로 일대제자 한 명이 다가왔다.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건지 빠른 걸음으로 담현에게 다가간 일대제자는 곧바로 귓가에 입을 가져가서는 무언가를 보고했다.

“정말이더냐?”

“그렇습니다.”

담현과 마찬가지로 자리를 지키고서 천막을 나가는 이들을 지켜보던 제갈문곡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 석상처럼 묵묵히 자리를 지키던 담현이 깜짝 놀란 반응을 보이자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담현은 그가 물어볼 새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천막을 나갔다.

“무슨 일이지?”

“그러게.”

“아직 안 나갔어?”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까. 그나저나 오 소협은 아는 게 있소이까?”

제갈문곡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던 남궁호의 시선이 마찬가지로 앉아 있던 오중건에게로 향했다.

개방의 방주 대리인 오중건이라면 담현이 저렇게 서둘러 나간 이유를 알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소이까.”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오중건 역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자 남궁호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오중건이 모른다면 그가 직접 알아보는 수밖에 없어서였다.

“저도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천사맹과 마도련의 움직임을 주시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특이사항이 있으면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궁금한 건 오중건도 마찬가지인 듯 서둘러 나가는 모습에 보며 제갈문곡은 주변을 둘러봤다.

어느새 천막 안에는 그와 남궁호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호진아!”

천막을 넘기며 담현이 밝은 목소리와 함께 들어왔다.

방금 전 회의장에서와는 전혀 다른 표정과 목소리였다.

“사부님.”

“여기는 어쩐 일이더냐.”

“대사형이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개방에서 알려 주었더냐?”

“아닙니다.”

개방이 아니라는 말에 담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오중건이 아니라면 하오문이 유력해서였다.

내분이 일어났다고 하나 천사맹에 협력한 건 사실이었기에 아무래도 정천맹에서 하오문을 바라보는 시선은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직 함께 머물고 있느냐?”

“예. 사부님께서 소식을 들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살방의 본거지를 터는 데 하오문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털었다고?”

“빈집이나 마찬가지인 곳을 공격했으니 턴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파괴했습니다.”

반호진의 표현이 재미있었던 모양인지 담현이 실소를 흘렸다.

하지만 그 표정은 얼마 가지 못했다.

“네가 직접 움직였으니 어련히 잘했을까. 근데 나는 걱정이 되는구나. 너무 믿는 건 아닌지.”

“과신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장원에는 상 문주님이 계시기도 하고요.”

“상 문주님이면 믿을 수 있지.”

담현이 복잡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묘하게 씁쓸한 표정과 눈빛에 반호진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멀쩡한 척을 해도 속은 뭉그러져 있을 게 분명해서였다.

“믿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이번 일도 그렇고.”

“맞아. 그래서 다들 난리도 아니다. 심적으로 충격을 받은 이들도 많고.”

“분위기를 보니 그런 것 같더라고요.”

“말도 마라. 가뜩이나 결속력이 약한데 이번 일로 더욱더 불신이 팽배해졌어.”

깊은 한숨과 함께 담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면서 그는 대기하듯 기다리고 있는 선우방, 모용척, 정이륭, 서조운, 사마의성과 눈인사를 했다.

반호진이 너무 반가운 나머지 뒤늦게 인사를 나누지 않았음을 깨달아서였다.

“그럴 만하죠.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꼴인데.”

“더 심하지. 죽은 이들이 수두룩한데. 더 문제는 이들이 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고. 그래서 너를 의심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거야.”

“그렇겠죠.”

“……안 놀라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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