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3장. 빈집털이. -03
반호진의 뒤로 선우방과 서조운, 모용척, 정이륭이 따라갔다.
네 사람 다 경신술을 극성으로 펼치며 반호진을 뒤따랐던 것이다.
“여기다!”
“적이 나타났다!”
“남쪽으로 모두 집결해!”
삐이익!
반호진의 등장에 우왕좌왕하던 이들이 일제히 살기를 발산하며 달려들었다.
몇몇은 위치를 알려 주려는 듯이 특이하게 생긴 피리를 입에 물고 불었다.
“여기가 어디라고!”
“뭐야? 다섯 명이 전부야?”
위치가 드러나기 무섭게 반호진의 앞으로 수백 명이 모여들었다.
그런데 옷차림이 산골 마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하나같이 흑의무복이나 야행복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자, 잠깐만! 저기 저놈……!”
“면상이 익숙한데?”
“흐어어업!”
난데없는 습격에 살기등등한 기세로 달려들던 살방의 살수들이 멈칫거렸다.
흥분했던 머리가 선두에 선 청년을 보는 순간 싸늘하게 식어서였다.
그뿐만 아니라 살기 역시 햇살에 닿은 안개처럼 순식간에 증발했다.
“바, 반호진?”
“소림검신이 어, 어떻게 이곳에?”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충격과 공포가 삽시간에 사방으로 번져 갔다.
그 정도로 반호진의 등장에 대경실색한 것이었다.
우우우웅!
하지만 반호진은 살수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에 복수가 목표였기에 대화를 나눌 생각도 없었고.
그래서 그냥 뒷짐을 진 채로 공력을 일으켜 강환을 생성했다.
이윽고 반호진의 앞으로 눈부신 금광을 토해 내는 강환 열 개가 떠올랐다.
“피, 피해!”
“으아아앗!”
영롱한 빛깔의 주먹만 한 강환이 생성되자 살수들이 기겁했다.
그러더니 이내 전부 다 몸을 돌렸다.
어느 누구도 반호진에게 달려들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살방의 핵심 전력들은 이미 진즉에 천사맹의 총타에 가 있는 상황이었기에 살수들은 고민하지 않았다.
달려들어 봤자 개죽음이 분명한데 싸우는 건 미련한 짓이었다.
한데 문제는 그들에게 결정권이 없다는 점이었다.
퍼퍼퍼펑!
모여들었던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몸을 돌려서 도망치던 살수들의 몸이 터져 나갔다.
반호진의 의지가 담긴 열 개의 강환이 전방 곳곳으로 퍼져 나가서였다.
닿는 것은 육신이든 병기든 가리지 않고 꿰뚫어 버렸기에 강환의 궤적에 있던 이들은 순식간에 육편으로 화했다.
“끄아아악!”
“사, 살려 줘! 나 좀 데리고 가……!”
쿠콰콰쾅!
운 좋게 팔다리 하나로 끝난 살수들의 비명과 고함이 굉음에 묻혔다.
강환이 일으킨 폭발에 모두 다 집어삼켜졌던 것이다.
“이거, 우리가 할 일이 없겠는데?”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는데 조금 싱겁기는 하네요.”
“사실 형님께서 검강만 쫙쫙 뿌려도 다 끝날 일이기는 하지.”
강환으로 산골 마을을 초토화시킨 반호진의 무력에 선우방과 서조운, 모용척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암월교에서 된통 당한 게 있기에 이번에는 모두가 오감을 바짝 세운 상태였다.
상처 하나 없이 완벽하게 살수들을 쓸어버리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반호진은 그들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듯이 단 두 번의 공격으로 살방의 본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기에 일행들은 순간 진이 빠졌다.
“아직 전투 안 끝났다. 긴장 풀지 마.”
그런 일행들을 향해 반호진이 입을 열었다.
허탈해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생각해서였다.
기선제압을 확실하게 했을 뿐 아직 싸움은 끝난 게 아니었다.
아직도 많은 적들이 남아 있었기에 반호진은 바로 그 점을 주지시켰다.
서걱!
“호진이 말대로야. 아직 숨어 있는 녀석들이 있어. 목적은 뭐, 뻔하지.”
선우방의 검 끝이 등 뒤에서 덮쳐 오던 살수의 턱 밑을 꿰뚫었다.
보지도 않고 귀신같이 처치한 것이었다.
“이 새끼들이.”
등 뒤에서 덮친 살수의 모습에 모용척의 눈동자가 번들거렸다.
선우방의 말대로 살수들이 무엇을 노리는지 단박에 알아차려서였다.
그건 서조운과 정이륭도 마찬가지였기에 눈이 희번덕였다.
“핵심 전력이 빠졌다고 만만하게 보지 마. 단 한 번의 방심으로 황천길을 가는 거니까.”
단 한순간, 찰나에 표적의 목숨을 빼앗는 게 살수들이었다.
때문에 살수들의 방식은 무인과 완전히 달랐다.
중요한 건 오로지 목표의 죽음뿐이었기에 잠깐이라도 긴장을 푸는 순간 끝이었다.
“명심하겠습니다.”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 사실을 동생들이라고 해서 모르지 않았다.
암월교 때 처절하게 느껴 보기도 했기에 서조운, 모용척, 정이륭의 표정이 달라졌다.
몇 마디 말에 기합이 바짝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그 기세는 결과로 이어졌다.
퍼펑! 퍼어억!
어느새 흩어진 일행들은 눈에 보이는 족족 살방의 살수들을 처치했다.
드러나 있든 숨어 있든 가리지 않고 살초를 뿌렸다.
그런데 네 사람의 방식이 상당히 비슷했다.
마치 살수들처럼 간결하게 움직이며 살수들을 상대했다.
‘역시 뛰어나다니까.’
뒷짐을 지고서 마을 중앙의 가장 큰 건물이 자리 잡은 곳으로 이동하던 반호진이 옅게 웃었다.
어째서 일행들이 움직임을 최소화하는지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어서였다.
살수들의 공격이 파고들 틈을 아예 주지 않기 위해 큰 동작을 자제하는 모습에 반호진은 흡족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스으윽!
그런 반호진을 향해 사방에서 은밀한 소성이 들려왔다.
일급살수 수준의 살수들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해 기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절묘하게 사각으로 파고드는 협공에도 반호진의 뒷짐은 풀어지지 않았다.
대신 찬란한 금광을 흩뿌리는 호신강기가 솟아나서 반호진을 휘감았다.
터터터텅!
“컥!”
“그륵!”
정확히 필요한 순간에 일어난 호신강기가 살수들의 공격을 튕겨 냈다.
단순히 막아 내는 걸 넘어 튕겨 버렸던 것이다.
그로 인해 살수들이 입에서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극강의 반탄지력에 내부가 진탕된 것이었다.
“무엇을 위해서 시간을 벌려는 걸까나.”
일급살수가 특급살수에 비해 떨어진다고 하나 그렇다고 흔한 전력은 아니었다.
특급살수가 희귀해서 그렇지 일급살수 역시 어엿한 실력자들이었다.
하나 반호진의 상대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더욱이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도 아니고 역으로 공격당한 상태였기에 반호진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살방의 간부들도 알고 있을 텐데 살수들을 계속 보내고 있었다.
부나방처럼 죽어 나갈 걸 알고 있을 텐데도 말이다.
터엉! 터터텅!
일급살수들이 안 된다면 인해전술이라도 펼치겠다는 듯이 이급살수, 삼급살수들도 모조리 반호진에게 달려들었다.
자신들이 죽을 걸 알면서도 명령을 거역할 수 없기에 살수들은 스스로 달려들어 죽었다.
턱.
그러는 사이 반호진은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기어검으로 붕괴시켰던 건물 앞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무너진 건물 안에서 소천검이 기다렸다는 듯이 모습을 드러내며 얌전히 검집 안으로 들어갔다.
채챙! 채애앵!
“비켜! 비키라고!”
“저리 꺼지란 말이다!”
달려드는 족족 죽여서 그런지 어느새 반호진의 주변은 조용했다.
더 이상 살수들이 공격해 오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에 마을의 외곽 쪽은 시끄러웠다.
비천대가 구축하고 있는 포위망을 뚫기 위해 살방의 살수들이 날뛰고 있어서였다.
휘이익!
상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기에 입을 열지 않았던 살수들과 달리 비천대와 치고받는 이들은 쉴 새 없이 악을 썼다.
온갖 욕설과 난생 처음 듣는 말들을 쏟아부었던 것이다.
그 모습에 반호진은 가볍게 땅을 박찼다.
말을 하지 않는 살수들과 달리 마음대로 입을 놀린다는 건 적어도 간부급 이상이라는 걸 뜻해서였다.
“무상문주님!”
“히이익!”
살벌한 기세로 비천대를 몰아붙이던 살방의 살수들이 부대주의 외침에 기겁했다.
무상문주라는 네 글자에 보지도 않고 대경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살수들의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반호진이 나타났다는 사실에 잔뜩 겁먹은 것이었다.
“부하들을 사지로 밀어 넣고 너희들만 살려고 하면 안 되지.”
“우아아아!”
무미건조한 반호진의 목소리에 어떻게든 포위망을 뚫으려고 하던 살수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반호진의 등장에 이쪽 방향은 글렀다고 생각하고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반호진은 순순히 보내 줄 마음이 없었다.
스르륵.
여전히 뒷짐을 진 채로 반호진이 진기를 움직였다.
군데군데 떨어져 있던 병장기들을 무형지기로 들어 올리고는 등을 보인 채 도망치는 이들을 향해 날렸다.
“컥!”
“끄억!”
이기어검이라기보다는 허공섭물로 던진 것에 가깝지만 중요한 건 반호진의 공격이 제대로 먹혔다는 것이었다.
벼락같이 쇄도한 일격에 살수들이 일제히 고꾸라졌다.
“제압해!”
“거칠게 반항하면 죽여도 좋다!”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살방 살수들의 모습에 비천대의 부대주와 조장들이 지시를 내렸다.
일격에 죽일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은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이렇게까지,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느냐!”
“시부랄 놈!”
비천대원들에 의해 제압당하는 와중에 몇몇 살수들이 울부짖었다.
점혈을 당했음에도 반호진을 향해 피를 토하듯이 절규했다.
하지만 울분이 섞인 절절한 포효에도 반호진은 콧방귀를 뀌었다.
“어처구니가 없네. 네놈들이 암습하는 건 정당하고 내가 습격하는 건 부당한 건가?”
“네놈이 그때 뒈졌으면 모두가 행복했을 텐데!”
복면도 하지 않은 중년인이 반호진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소리쳤다.
살기를 넘어 광기가 서린 눈빛에 반호진은 기가 찼다.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게 어이없어서였다.
“닥쳐라!”
그런 생각이 드는 건 반호진만이 아닌 모양인지 부대주가 격분하며 중년인의 뒤통수를 검파로 갈겼다.
더 이상은 들어 줄 수가 없어서였다.
“읍! 으으읍!”
그뿐만 아니라 부대주는 직접 아혈을 점혈하고는 그대로 매질을 가했다.
존경하는 반호진에게 개소리를 하는 게 그로서는 용납이 되지 않아서였다.
퍼퍼퍼퍽!
그리고 그건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부대주가 거칠어지자 비천대원들도 덩달아 손속이 과해졌다.
“죽이지만 않으면 된다.”
“죽으면 어쩔 수 없고.”
두들겨 패면서도 비천대원들은 반호진을 힐끔거렸다.
만약 반호진이 거슬려 한다면 당장이라도 매질을 멈추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반호진은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이곳에서의 볼일이 끝났다는 듯이 다른 곳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무상문주님!”
“남쪽은 정리된 겁니까?”
“예. 문주님께서 직접 길을 열어 주신 덕분에 가장 먼저 끝났습니다. 동, 서, 북쪽도 거의 정리되어 가는 중이라고 합니다. 네 분께서 제대로 흔들어 주신 덕분에 예상보다 빠르게 끝낼 수 있을 듯합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문주님께서 이기어검으로 기습의 묘를 제대로 살려 주신 덕분이지만요.”
비천대주의 아부 아닌 아부에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은근히 말하는 게 나쁘지 않아서였다.
또 매번 이러는 게 아니라 아주 가끔씩 이랬기에 반호진으로서도 뭐라고 하기가 애매했다.
쾅! 콰앙!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비천대주와 비천대원들을 이끌고 반호진이 걸음을 옮겼다.
곳곳에서 연막탄이 터지고 독연이 치솟았으나 반호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이에 대한 대비가 완벽하게 되어 있어서였다.
더욱이 승기가 완전히 기울었기에 반호진은 거침없이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형님!”
“상처가 많다?”
“생채기입니다, 생채기! 몇 개 긁힌 거예요!”
반호진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서조운의 몸을 빠르게 훑었다.
핏자국은 차치하더라도 옷이 찢어진 곳들이 꽤나 많아서였다.
그 사실을 서조운도 알고 있는지 황급히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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