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11화 (311/468)

제 103장. 빈집털이. -02

이어지는 서조운의 말에 쌍둥이 형제가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예유화도 말은 하지 않았으나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서조운을 바라봤다.

“엄밀히 따지자면 정식 문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반은 문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잖아? 그래서 내가 부총관님께 슬쩍 찾아가서 부탁했어. 우리 애들 것도 만들어 주실 수 있느냐고. 그런데 놀랍게도 이미 만들어 두셨더라고.”

“오오오오!”

“근데 색깔은 조금 달라. 반은 무상문도라는 말은 반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래도 완성도는 똑같아. 다만 색을 좀 연하게 입혔을 뿐이지.”

서조운이 씨익 웃으며 품에 안고 있던 보자기를 풀었다.

그러자 세 벌의 청의무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유화와 쌍둥이 형제가 입을 무복이었다.

“예뻐요.”

“색깔이 잘 나왔지? 짙은 푸른색도 괜찮은데 난 이 연한 색도 마음에 들어. 부총관께서 손수 색을 입히기도 했고.”

건네받은 무복을 이리저리 살피던 예유화가 눈을 반짝였다.

무복답게 실용성을 갖추면서도 선이 꽤나 잘 빠졌다.

누가 봐도 정성 들여 만든 옷이라는 게 티가 날 정도였다.

그중에 예유화가 가장 마음에 든 건 바로 바지와 팔 부분의 길이였다.

“신기하네.”

“너도 느꼈구나? 거짓말처럼 딱 떨어져.”

여자인 예유화와 달리 거리낄 것 없이 새 옷으로 갈아입은 백휘경과 백휘성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치수를 알려 주지도 않았는데 무복이 몸에 딱 맞아떨어져서였다.

“그만큼 눈썰미가 뛰어나다는 거지. 이따가 부총관님 만나면 꼭 감사하다고 말해.”

“네!”

“꼭 말할게요!”

“저도요.”

감정 표현이 드문 예유화도 반드시 감사하단 말을 전하겠다는 듯이 뜨거운 눈빛으로 말하자 서조운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찌 보면 별거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인간관계라는 게 사소한 것에 감동받기도 하고, 틀어지기도 했다.

그렇기에 선물을 받았으면 보답은 못 하더라도 고맙다고 표현 정도는 하는 게 예의였다.

“근데 조금 궁금하기는 해요.”

“뭐가?”

“문주님께서는 대체 무엇을 보고 호법으로 임명하신 걸까요?”

백휘성의 시선이 호랑이처럼 엄하게 동갑내기들을 가르치는 유호량에게로 향했다.

그로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서조운, 선우방, 모용척, 정이륭, 사마의성은 모두 재능이 출중한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유호량은 천재 같지도, 그렇다고 젊은 것도 아니었다.

“이미 이유를 알고 있네.”

“예?”

“네가 보지 못한 걸 형님은 보신 거지. 그리고 지금까지 형님의 선택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 단 한 번도 말이지. 그 예 중 하나가 바로 나이기도 하고.”

내심 백휘성과 같은 생각이었던 백휘경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서조운의 말을 들어 보니 자신과 동생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을 했는지 알게 되어서였다.

“괜찮아. 사람이 실수도 하고 그러는 거지. 너희들은 한창 실수하고, 깨닫고, 쪽팔려 할 때야. 나도 그랬고, 척이 형도 그랬어. 다 실수하면서 크는 거야. 대신 똑같은 실수를 하면 안 돼. 그건 어리석은 거니까.”

“명심할게요.”

“개인적으로 나는 의심하는 건 좋다고 봐. 형님도 늘 의심하라고 하셨거든. 자기 자신의 실력을 믿되, 끝까지 의심도 하라고. 이게 진짜 내 실력인지, 아닌지를. 그래야 확인할 수 있다면서. 또 자신의 한계도 끝까지 의심하라고 하셨지.”

“진짜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검신이 된 거지.”

서조운이 씨익 웃었다.

세상에 이유 없는 결과는 없었다.

사람들은 반호진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고 말하지만 서조운을 비롯해서 주변 사람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반호진이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보면 그런 말들은 쏙 들어갈 것이었다.

“검의 신이라니.”

“그럼 난 무신(武神)할 테니까 너는 권신(拳神)해.”

“싫은데. 내가 무신할 거야. 그러니 네가 권신을 해.”

“내가 더 무신에 어울리거든?”

“아니거든? 내가 더 어울리거든!”

점점 더 목소리가 높아지는 쌍둥이 형제의 모습에 서조운은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예유화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양손으로 황매향이 손수 만든 연청빛의 무복을 꼬옥 껴안은 채로.

***

인적은커녕 길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우거진 숲속을 가르며 반호진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길이 없어서 그런지 그의 눈에는 사방이 다 비슷비슷해 보였다.

“미로라고 해도 믿겠는데.”

“이런 곳에 있으니 드러나지 않은 것이겠지요.”

“그렇겠지. 그런데 하오문은 어떻게 찾았대.”

사마의성의 대답을 들으며 반호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길잡이도 신기했지만 목적지를 찾아낸 하오문의 능력도 신기했다.

“사실 금가장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본문만으로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요. 근데 문주님의 일이라서 그런지 금가장이 대단히 협조적으로 나와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눈치챘을 수도 있겠군요.”

난희주가 하오문도 복수할 권리가 있다며 붙여 준 게 비천대였다.

그래서 반호진은 비천대와 함께 이동하고 있었다.

“눈치챘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현재 정천맹과 전쟁 중이기도 할뿐더러 정보 조작은 본문의 특기 중 하나입니다. 배신자들의 정보망이 온전한 상태였다면 모를까 지금은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본문뿐만 아니라 금가장에서도 움직였기에 문주님께서 움직이는 걸 절대 모를 겁니다.”

반호진의 옆에서 나란히 이동하던 비천대주가 장담하듯 말했다.

개방급의 세력이 있다면 모르겠으나 현재 천사맹에는 딱히 정보 조직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었다.

물론 배신자들의 세력이 조금은 남아 있겠으나 그 정도로는 감히 하오문에 비빌 수 없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하오문뿐만 아니라 금가장의 정보 조직도 같이 행동했기에 천사맹이 알아차렸을 가능성은 전무했다.

“그렇습니까.”

“믿어 주십시오. 몇 번이고 확인했고, 지금도 반 시진 간격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비천대주가 이를 갈며 대답했다.

배신자들로 인해 하오문이 입은 막대한 피해가 떠올라서였다.

천사맹은 하오문을 이렇게 만든 원흉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난희주만큼이나 비천대주 역시 오늘을 기다리며 칼을 갈았다.

물론 비천대 단독으로는 감히 덤벼들 엄두를 내지 못했겠으나 지금 그의 곁에는 반호진이 있었다.

“저곳입니다.”

선두에서 길을 안내하던 길잡이가 멈춰 서며 손가락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그 모습에 반호진이 중년의 길잡이 옆에 서서 손가락이 향하는 곳을 바라봤다.

“작은 화전촌 같네요.”

“언뜻 보면. 근데 숨어 있는 보초가 많아.”

서조운이 자그마한 산골 마을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그냥 벽촌처럼 보일 정도로 평범했다.

하지만 반호진의 눈에는 보였다.

육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보초들이 촘촘히 배치되어 있는 게.

“여기가 딱 경계선입니다. 보초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대신 거리가 제법 있는 편이지만요. 위치가 높기도 하고요.”

반호진과 서조운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말할 순간을 재고 있던 비천대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오문에서는 장로 바로 아래라고 할 정도로 신분이 높은 그이지만 이곳에서는 밑바닥 중의 밑바닥이었다.

게다가 반호진은 물론이고 다른 일행들에게도 가르침과 조언을 받았었기에 비천대주는 거의 스승을 대하듯 깍듯하게 대했다.

“희생자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걱정하신 만큼 많지는 않습니다. 하오문도라고 해서 모두가 다 무공을 익히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약초꾼이나 양봉을 하는 이들의 경우 외진 산속을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아 일반 양민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도인들이나 마도인들도 가급적이면 범인들을 잘 안 건드리기도 하고요. 타지인은 티가 확 나지만 낯이 익은 이들한테는 크게 경계심을 갖지 않습니다. 무림도 크게 보면 사람 사는 세계이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초소의 위치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이런 쪽에는 또 본문이 전문가이지 않습니까. 어느 분야도 최고 수준은 없지만 두루두루 잘하는 게 본문인지라 웬만한 건 파악이 다 끝났습니다. 문주님께서 지시를 내려 주시면 바로 정리 가능합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굳이 시간 끌 필요 없으니.”

“알겠습니다.”

반호진의 말에 비천대주가 절도 있게 대답한 후 입을 오므렸다.

그러더니 묘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높고 가는 음인데 언뜻 들으면 새가 내는 소리에 가까웠다.

지저귐은 아니고 울부짖는 듯한 소리였는데 비천대주가 그 소리를 내기 무섭게 곳곳에서 무언가가 쓰러지는 기척이 잡혔다.

삐이이이! 삐이!

뒤이어 사방에서 알 수 없는 소리들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보초들이 쓰러지기 무섭게 말이다.

“스물세 곳 다 정리되었습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비천대원들의 신호를 확인한 비천대주가 보고했다.

단 한 명도 실패하지 않아서인지 비천대주의 표정이 밝았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당연히 저희가 할 일이었는데요.”

비천대주가 겸손하게 대답했다.

난희주가 제대로 보좌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지만 그녀가 그렇게 말하지 않더라도 비천대주는 최선을 다해 반호진을 보필할 생각이었다.

지금의 비천대를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오문의 위기를 몇 번이나 구해 주었기에 비천대주에게 반호진은 각별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건 그뿐만 아니라 비천대원들의 생각도 같았다.

“이제부터는 저희가 맡겠습니다.”

“보조하겠습니다.”

스르릉.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집중력을 극도로 끌어 올리는 비천대주의 눈빛을 일별한 반호진이 진기를 움직였다.

그러자 허리춤에 있던 소천검이 저절로 뽑혀져 나왔다.

바로 이기어검이 펼쳐진 것이었다.

꿀꺽!

그 광경에 비천대주는 물론이고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천대원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로는 수십, 수백 번 들었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다들 눈동자가 반짝였다.

“우와…….”

“내 두 눈으로 이기어검을 보게 될 줄이야.”

하오문의 핵심 전력인 만큼 비천대원들도 검강이나 도강 같은 강기들은 제법 봤었다.

그러나 초절정의 상징인 강환은 본 이들보다 보지 못한 이들이 훨씬 더 많았는데 그보다 상위 경지라 할 수 있는 이기어검이 펼쳐지자 다들 입을 벌리며 감탄했다.

쌔애애액!

하지만 하늘 높이 솟구친 검이 무시무시한 파공성을 토해 내며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을 박살 내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공할 위력에 기가 질렸던 것이다.

뎅뎅뎅뎅!

동시에 산골 마을 곳곳에서 경종 소리가 격렬하게 울려 퍼졌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비상사태임을 알리는 것이었다.

더불어 사방팔방에서 사람들이 메뚜기처럼 튀어나왔다.

“암월교 때가 생각나네.”

“그때는 우리도 참 어설펐죠.”

“맞아. 그러니 이번에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줘야지.”

허공에서 갑자기 떨어져 내렸기에 적들은 좀처럼 방향을 가늠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다들 혼란스러운 기색이었는데 그런 적들의 모습을 보며 선우방과 서조운이 씨익 웃었다.

예전에 암월교를 토벌할 때가 생각나서였다.

“뒤를 부탁드립니다.”

“단 한 명도 빠져 나가지 못하게 만들겠습니다.”

이번 작전은 단순한 기습공격이 아니었다.

섬멸전이었기에 비천대주는 반호진을 바라보며 결연하게 대답했다.

그런 비천대주를 한 차례 바라본 반호진은 이내 믿겠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가볍게 땅을 박찼다.

한데 가벼운 발구름과 달리 반호진의 신형은 순식간에 멀어졌다.

“우리도 가자!”

“예!”

“싹 쓸어버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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