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06화 (306/468)

제 102장. 새로운 씨앗들. -01

“네.”

“별다른 일은 없었고?”

“형님께서 보내신 아이들이 도착한 것 말고는 딱히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

“어째 타박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그럴 리가요.”

사마의성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절대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어서였다.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인데?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눈 밑도 검고.”

인사를 어느 정도 마치자 선우방이 살짝 걱정 어린 표정을 지었다.

떠날 때와 비교하면 안색이 너무 달라져서였다.

“일이 많아서요.”

“좀 줄여. 하오문 쪽 일은 거의 다 정리되었잖아. 잔당이 좀 남아 있다고는 하는데 의성이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잖아?”

“하오문에 손을 뗀 지는 좀 되었어요.”

“그래?”

선우방은 물론이고 서조운과 모용척, 정이륭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가장 신경 쓸 게 많은 하오문의 일에서 손을 뗐는데도 피곤해 보이자 의문이 든 것이었다.

“따로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있어서요. 안 그래도 형님께 보고를 드리려 했어요.”

“무슨 일인데 그렇게 분위기를 잡아? 가볍게 가자, 가볍게. 난 무거운 얘기 싫다.”

“그 정도의 일은 아니에요.”

“뭔데 그래?”

“저희도 이제 슬슬 정보 조직을 꾸렸으면 해요. 언제까지고 하오문이나 금가장에 도움을 청할 수는 없으니까요. 잠입과 은신에 특화된 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암살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암중호위로도 쓸 수 있고요.”

생각지도 못한 말이어서일까.

반호진을 비롯해서 모든 일행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보 조직?”

“필요하긴 하지.”

“근데 필요하다고 해서 당장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정이륭과 서조운, 모용척이 동시에 입을 열었다.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문제는 만들고 싶다고 해서 뚝딱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보를 다루는 만큼 신뢰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실력 역시 중요했다.

이 둘을 충족하는 인력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당장 원하는 수준으로 만들 수 없다는 걸 저도 인지하고 있어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요.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말한다는 건 계획이 있다는 뜻이겠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일행들과 달리 반호진은 깊은 눈으로 사마의성을 바라봤다.

그가 아는 사마의성은 아무 계획 없이 말을 내뱉는 성격이 아니었다.

이렇게 말을 꺼냈다면 이미 계획이 다 구상되었다는 뜻이었다.

“네. 난 소저가 은퇴한 살수들과 도둑들을 교관으로 보내 주기로 했어요. 대신 저는 무공을 봐주기로 했고요.”

“잠깐만. 사마세가의 정보 조직을 만들려는 거야?”

모용척이 일순 얼굴을 굳히며 끼어들었다.

어째 말하는 게 사마세가만의 정보 조직을 만들겠다는 식으로 들려서였다.

“잘 말하셨어요. 안 그래도 이 부분에 대해서 논의하려고 했거든요. 본가뿐만 아니라 형들 가문도 정보 조직이 필요하잖아요?”

사마의성의 시선이 차례대로 모용척과 선우방, 서조운에게로 향했다.

정보 조직이 필요한 건 피차일반이었기 때문이다.

“필요하기는 하지. 오대세가의 경우 따로 정보 조직을 운용하니까.”

“근데 들어가는 자금이 엄청나니까.”

정보 조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선우방과 모용척도 잘 알고 있었다.

내심 생각하고 있기도 했고.

다만 필요한 자금이 엄청나기에 섣불리 시도하지 못할 뿐이었다.

“많은 자금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작게 시작하면 그리 큰돈이 필요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리고 실력 있는 교관에게서 배울 수 있는 만큼 시도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희주가 선별했다면 믿을 만하지.”

“형님께서는 찬성하시는 건가요?”

“있어서 나쁠 건 없지. 네 말마따나 소수로 시작한다면 들어가는 금액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을 거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반호진은 문득 한 아이가 떠올랐다.

정보 조직을 꾸린다고 하자 이상하게도 그 아이가 뇌리를 스쳤다.

“나는 찬성이야. 대신 훈련은 같이 받더라도 소속은 확실하게 해야지. 그래야 나중에 탈이 안 나니까.”

“맞습니다.”

“세 사람은 어떻게 할 거야?”

반호진의 시선이 선우방과 모용척, 서조운에게로 향했다.

일단 사마의성과는 뜻을 모았기에 세 사람에게 물은 것이었다.

“저도 같이 하고 싶습니다.”

“나도.”

“저는 본가에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결정할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요. 본가의 재정상태도 알아봐야 하고요.”

충분히 고민한 끝에 모용척과 선우방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서조운은 보류였다.

소가주 신분인 두 사람과 달리 그는 삼남이었기에 이런 걸 결정할 권한이 없어서였다.

“꼭 이번만 기회가 있는 건 아니니까. 다음 훈련 때 참여해도 되고. 단발성 훈련이 아니니까. 또 서가장에서 힘들다고 하면 네가 따로 운용해도 되고. 돈이 부족하지는 않잖아?”

“그렇죠.”

서조운이 씨익 웃었다.

이번 복수행으로 산채들을 털면서 그가 배분받은 재화 역시 상당했다.

본래 주인을 찾아 주고 남은 걸 인원수대로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서가장과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상당한 재산을 모았기에 서조운은 부유함이 물씬 담긴 미소를 지었다.

“급히 결정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해.”

“그리하겠습니다.”

“자, 그럼 일단 시작은 우리 넷이네. 인원을 정해 볼까?”

반호진은 빠르게 진행했다.

결정이 된 이상 후딱 마무리 짓고 싶어서였다.

“아직 교관은 구해지지 않았어요. 난 소저가 알아보는 중인데 신경 써서 선별하는 것 같아요.”

“희주 성격이면 믿을 수 있지.”

“인원은 저희 넷 다 동일하게 뽑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몇 명을 생각하는데?”

“두 명씩 차출하는 게 적당할 것 같아요. 둘씩이라고 해도 여덟 명이니까요.”

나쁘지 않다는 듯이 선우방과 모용척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와 동시에 적당한 인물을 고민했다.

본가에서 데려올 인원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괜찮네. 훈련에 필요한 경비는 우리 넷이서 모으면 되고. 하오문도들을 가르치는 것 또한 번갈아 가면서 가르치면 되겠지.”

“경비는 저희가 조금 더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형님께서는 장소를 내어주시니까요.”

“됐어. 얼마나 한다고. 날 쪼잔한 남자로 만들 생각이야?”

반호진이 손을 휘휘 저었다.

어떤 마음인지 모르지 않으나 그렇다고 감면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보다 녹림대군의 제자에 대한 소식은 아직 없어?”

“난 소저가 백방으로 알아보는 중인데 아예 숨어 버린 모양인지 누구도 본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산채를 일일이 찾아가서 무너뜨린 건 복수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광살노옹의 사손이자 녹림대군의 제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살려 두면 두고두고 후환이 될 게 분명하기에 확실하게 싹을 뽑으려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가 없어서였다.

심지어 행적을 아는 이도 없었다.

“언젠가는 나타나겠지. 평생 숨어 있을 수는 없을 테니까. 잠잠해지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낼 거야. 그쪽 역시 복수하고 싶을 테니까.”

“잠시 시선을 거두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흐지부지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반호진은 차를 들이켰다.

이번에 처리하지 못한 건 아쉬웠으나 기다리다 보면 기회가 올 것이기에 조급해하지 않았다.

사실 크게 신경 써야 하는 존재도 아니었고.

반호진은 오히려 천사맹과 마도련에 관심이 많았다.

“가장 최근에 정리한 것들이에요.”

“고맙구나.”

“아니에요.”

그런 반호진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사마의성이 깔끔하게 정리된 책자를 건넸다.

그리고 현재 정천맹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체력단련을 위해 연무장으로 나온 봉구는 주변을 빠르게 훑어봤다.

통성명은 했지만 아직은 서먹서먹해서 그런지 다들 어색하게 인사만 할 뿐 따로 대화를 이어 나가지는 않았다.

‘무공은 다 똑같은 걸 익히는 것 같은데.’

무상문에 왔지만 봉구는 무공만 수련하지 않았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속담처럼 반호진은 기본공을 가르쳐 주되 이런저런 잡일을 시켰다.

먹이고 재워 주는 대신해 노동력을 받아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봉구는 단순히 일손이 필요해서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험이 분명해. 문도로 뽑을지 말지를 결정하는.’

봉구의 눈빛이 깊어졌다.

사람은 많지만 정식으로 무상문도가 된 이는 없었다.

배우는 건 말 그대로 기본공일 뿐이었다.

무상문도가 익히는 무공이 아니었기에 봉구는 지금의 과정이 시험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뛰어나지는 않더라도 두각은 보여야 해.’

봉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반호진에게도 말했지만 그의 무재는 형편없었다.

하오문은 비천대를 시작으로 계속해서 무재가 뛰어난 아이들을 물색했는데 봉구는 선택받지 못했다.

그게 말해 주는 건 명백했기에 봉구는 순순히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나만이 할 수 있는 것.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을 보여 줘야 해.’

복구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스스로가 무엇을 잘하는지 자각하는 건 중요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몰라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무재는 더 뛰어날 수도 있어.’

봉구가 삼삼오오 모여서 몸을 푸는 아이들을 힐끔거렸다.

통성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이도 밝혔기에 모여 있는 아이들이 자신보다 어리다는 걸 파악했다.

그러나 체구는 비슷했다.

원래부터 왜소하기도 했고, 제대로 먹지 못했기에 성장이 둔했는데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아, 어제 저녁에 먹었던 돼지 통구이는 진짜 끝내줬는데…….’

체격에 대한 생각은 성장기로 이어졌고, 자연스럽게 어제 먹었던 음식이 떠올랐다.

무상문에 와서 다 좋았지만 그중에 가장 행복한 건 바로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가축을 기르기에 고기도 자주 먹었는데 다들 음식 솜씨가 좋아서 그런지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꿀꺽!

자연스레 고이는 침을 삼키며 봉구는 머리를 흔들었다.

지금은 음식을 떠올릴 때가 아니었다.

자신의 쓸모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했다.

‘산적들에게 붙잡혀서 노예처럼 살았다고 했지. 그래서 산적들을 때려잡는 무인이 되고 싶다고.’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봉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앞으로 함께 지낼 이들에 대해서 파악하는 것이었다.

하오문 출신이다 보니 정보를 수집하는 게 일상이기도 했고.

‘성격들은 대체로 무난해. 우두머리 놀이를 하려는 아이도 없고. 그러면서도 독기는 가득해. 아마도 복수심 때문이겠지.’

산채에서 노예처럼 자랐다고 하니 반감이 엄청날 터였다.

힘에 대한 욕망도 클 것이었고.

그게 곧 독기와 근성으로 이어질 게 자명했다.

봉구 역시 하오문에서 비슷한 처지였기에 아이들의 심정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우선 내가 할 일은 갈등과 다툼이 벌어지지 않게 잘 다독이는 거야. 지금은 무상문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눈치를 보는 것일 수도 있으니.’

체구는 비슷하지만 새로 온 아이들 중 가장 연장자는 자신이었다.

그러니 분란이 일어나지 않게 자신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장 놀이를 하며 이끌 생각은 없었다.

비슷한 처지인데 그런 짓을 하면 되레 반감을 살 수 있었기에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친해져야 했다.

“헤.”

“누나!”

그나마 친해진 이들끼리 모여 있던 아이들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서조운을 필두로 쌍둥이 형제들과 나란히 걸어오는 예유화를 보고는 다들 얼굴이 환해졌던 것이다.

꿀꺽!

그리고 그건 봉구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하오문 소속이었지만 난희주를 직접 대면한 적은 없기에 봉구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지금 눈앞에 있는 예유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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