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1장. 똑같이 당해 봐야지? -02
그뿐만 아니라 오줌까지 지렸다.
얼마나 무서운 모양인지 가랑이가 누렇게 물들어 가자 모용척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백의경장을 입고 있었기에 오줌이 더욱 도드라져 보여서였다.
“아, 더럽게.”
모용척이 인상을 있는 대로 썼다.
시각적으로도 좋지 않지만 꾸리꾸리한 냄새가 순식간에 방 안을 가득 채워서였다.
독주의 향을 찢어 버리며 올라오는 소변 냄새에 모용척은 곧장 손가락으로 코 밑을 가렸다.
더러운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성격답게 바로 반응한 것이었다.
“어, 어떻게?!”
한편 장년인은 난데없이 나타난 반호진 일행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꼭꼭 숨어 있는 자신을 찾아낸 것도 믿기지 않지만 소림검신이라 불리는 반호진이 직접 나선 것도 이해가 안 되었다.
자신이 하오문의 장로라지만 반호진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었다.
“어떻게 찾았기는. 누가 알려 줬으니까 찾아왔지.”
“네, 네놈이 어찌……!”
잔뜩 겁먹은 얼굴로 소변을 지리던 장년인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거의 평생을 함께한 심복이 비천대원의 뒤에 서 있어서였다.
“배신은 너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네놈이! 네놈이 어떻게 나를……!”
서조운의 비아냥거림에도 장년인의 시선은 배반한 수하에게만 향해 있었다.
얼마나 분노했는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살벌한 장년인의 눈빛에도 비슷한 또래의 장한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똑바로 마주 바라봤다.
“나라도 살아야 하지 않겠소. 이미 손 장로도 잡혀갔소이다.”
“……!”
배신한 심복의 말에 장년인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동시에 그는 깨달을 수 있었다.
이미 전부터 장한이 자신에게 오는 정보를 조작했음을 말이다.
“인사는 그쯤 했으면 충분한 거 같은데.”
“죄, 죄송합니다!”
“사과할 것까지는 없고.”
장년인을 비웃었던 장한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반호진이 입을 열어서였다.
우드드득!
“끄억!”
그때 갑자기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더해서 장년인이 비명을 내질렀다.
뜬금없이 팔다리가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움직여서였다.
그것도 기괴하게 비틀렸기에 장년인은 죽을 것처럼 괴성을 질렀다.
“쯧쯧! 사내 녀석이 인내심이 없기는. 고작 그 정도로는 안 죽어.”
기괴하게 꺾인 팔다리로 인해 바닥으로 허물어진 장년인을 보며 모용척이 혀를 찼다.
고통스럽기는 하겠으나 그렇다고 죽을 정도는 절대 아니어서였다.
“으어어어……!”
물론 장년인의 눈에는 모용척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사지에서부터 올라오는 지독한 고통에 머리가 새하얘졌기에 그저 벌레처럼 꿈틀거리기만 했다.
“데려가게.”
“감사합니다.”
무형지기로 가볍게 장년인을 제압한 반호진의 말에 대기하고 있던 두 명의 비천대원이 고개를 한 차례 꾸벅 숙인 후 걸어갔다.
쓰러진 장년인을 부축하기 위해서였다.
팔다리가 부러지기는 했으나 점혈을 한 건 아니었기에 두 사람은 장년인을 일으켜 세우면서 마혈과 아혈을 짚었다.
“어후.”
이윽고 비천대원들은 장년인을 짐짝처럼 짊어지고 석실을 나섰는데 그 움직임에 따라 소변이 방울져 떨어졌다.
그러자 모용척이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가끔 보면 형도 좀 심한 것 같아요. 깔끔도 적당히 떨어야죠.”
“깔끔한 게 뭐 어때서?”
“나쁘다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에 비해 심하다는 거죠. 가끔은 병처럼 보일 때도 있어요.”
“그럼 넌 이게 좋아?”
“당연히 싫죠. 저도 더러운 건 싫어요. 근데 상황이 이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저자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서조운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청결함을 유지해서 나쁠 건 없지만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었다.
“대경하는 모습은 마음에 들더라. 통쾌하다고나 할까. 묘하게 속 시원한 게 있어.”
“저도요. 이런 거에 맛 들리면 안 되는데.”
“뭐 어때. 우리가 살인귀도 아니고 정당하게 복수하는 건데. 명분이 없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먼저 싸우자고 달려든 건 저쪽이야.”
서조운과 모용척의 대화를 들으며 반호진은 찬찬히 석실을 살펴봤다.
비밀스러운 장소인 만큼 장년인이 따로 챙겨 둔 것들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흐음.”
“왜? 수상한 게 있어?”
“아니. 그냥 잠깐 살펴본 거야. 어째 생각하는 게 다 비슷비슷한 것 같아서.”
“그러게. 둘 다 지하를 좋아하네. 햇빛이 안 들어와야 안심이 되는 건가.”
선우방이 피식 웃었다.
앞서 사로잡았던 장로도 이곳과 같이 지하에 안가를 마련했었다.
구조도 이곳과 비슷했고.
“자, 잠시만요! 대협! 무상문주님!”
“이놈이!”
찬찬히 석실을 둘러보는데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잠시 후 열 살 남짓해 보이는 소년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대뜸 엎드렸다.
“대협을 모시고 싶습니다! 충심으로 견마지로를 다하겠습니다!”
“이, 이놈이! 어서 일어나지 못할까!”
갑자기 반호진을 향해 엎드려서는 거두어 달라며 소리치자 뒤따라 들어온 하오문도가 당황한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그러고는 황급히 반호진과 일행들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라도 언짢아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무작정 받아 달라 떼를 쓰는 소년을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노려봤다.
“거두어만 주신다면 목숨을 바칠 각오로 충성하겠습니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얼른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다시 한번 크게 소리치는 소년의 모습에 하오문도가 다급히 어깨를 움켜잡았다.
강제로라도 소년을 일으켜 세우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소년도 만만치 않았다.
목숨을 걸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닌지 악착같이 버티며 머리를 조아렸다.
“잠깐 기다리게. 몇 마디 듣고 내보내도 되니까.”
“아, 알겠습니다!”
반호진의 말에 하오문도가 공손하게 대답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멀리 떨어지지는 않았다.
언제라도 소년을 데리고 나갈 수 있도록 적당히 떨어진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고개를 들어라. 대화는 눈을 보면서 하는 것이다.”
“예에!”
소년이 조심스럽게 머리를 들었다.
격렬하게 떨리는 두 눈이 얼마나 긴장했는지를 간접적으로 알려 주었다.
“이유를 말해 봐라. 내가 왜 너를 거두어야 하는지.”
“하오문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했습니다. 무재는 없을지 몰라도 분명 쓰임새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장기도 모르면서 거두어 달라는 건가?”
무심한 반호진의 눈빛에 소년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나 당황하지는 않았다.
이 또한 예상했던 상황이어서였다.
그리고 반호진이 아무나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에 소년은 떨리는 목소리로 준비한 말을 꺼냈다.
“사람마다 타고나는 재능이 각기 다르듯이 쓰임새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무식한 저이지만 미루어 짐작하건대 무상문주님께는 분명 인재가 많을 겁니다. 하지만 무재보다 다른 쪽의 능력이 뛰어난 인재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인재가 너다?”
“예. 무재가 뛰어난 이들이 할 수 없는 걸 저는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하오문 출신이니까요.”
“재미있는 녀석이로구나.”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소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단박에 알아차려서였다.
그래서 반호진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실망은 안 하실 겁니다.”
속을 알 수 없는 반호진의 미소에 소년이 흔들리지만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험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으나 큰 걸 얻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걸 걸어야 했다.
그리고 어차피 소년에게 미래는 없었다.
배신자인 반 장로의 안가에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끌려 왔다고 해도 차별을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도박일지라도 시도해야 했다.
잘만 되면 인생이 달라질 것이기에 소년은 이번 일에 모든 걸 걸었다.
“이보게.”
“끌어낼까요?”
반호진의 시선이 대기하고 있던 하오문도에게 향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하명만 하면 당장 끌어내겠다는 듯이 말이다.
반대로 소년의 어깨는 축 늘어졌다.
“이 아이를 무상문으로 보내 주겠나?”
“예에?!”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축 늘어지던 소년의 고개가 번쩍 들려졌다.
하지만 가장 놀란 건 누가 뭐래도 하오문도였다.
설마 반호진이 아이를 거둘 줄은 몰랐기에 경악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 정말입니까?”
“내가 허언을 하는 사람으로 보였더냐?”
“아, 아닙니다. 저는 그저 믿기지가 않아서…….”
하오문도만큼이나 놀란 소년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바라 마지않던 일이었으나 그렇기에 좀처럼 믿기지가 않았다.
“싫으면 말고.”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목숨을 다해 문주님을 보필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다만. 가능하겠는가?”
살짝 못 미더운 표정으로 소년을 바라보던 반호진이 이내 실소를 흘리고는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오문도에게 물었다.
대답이 아직 나오지 않았기에 다시 한번 물은 것이었다.
“가, 가능합니다!”
“그럼 부탁하네. 무사히 무상문에 도착할 수 있도록. 자네도 알겠지만 내가 당장 복귀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하오문도가 허리를 깊게 숙이며 대답했다.
반호진에게 남은 일이 무엇인지 그는 알고 있어서였다.
하오문에 득이 되는 일이기에 하오문도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믿음직스럽게 대답했다.
“고맙네.”
“아닙니다! 당연히 소인이 해야 하는 일인걸요!”
“이쪽 일은 됐고. 자, 떠나기 전에 통성명은 해야겠지? 내 이름은 알 테고.”
반호진의 시선이 다시 소년에게로 향했다.
다짜고짜 거두어 달라고만 말했지 이름을 밝히지는 않아서였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모양인지 소년이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 이름은 봉구라고 합니다!”
“……봉구?”
“그렇습니다!”
“고아 출신이더냐?”
“예!”
촌스러운 이름에 혹시나 하고 물었던 반호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부모 없는 아이들의 이름이 어떻게 지어지는지 이제는 잘 알아서였다.
그나마 그럴 듯한 이름이라도 있으면 다행이었다.
“절대 잊어 먹지는 않을 듯하구나.”
“맞습니다. 하하하.”
“놀리려는 건 아니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 먼저 남창에 가 있거라. 남은 일을 마저 한 후에 돌아갈 터이니.”
같이 가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봉구는 기뻤다.
일단 반호진의 그늘 아래에 들어가서였다.
반호진이 자기 사람을 얼마나 잘 챙기는지 알았기에 봉구는 태어난 이래로 지금이 가장 기쁘고 행복했다.
“예! 먼저 가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대기는 무슨. 수련부터 해야지.”
“그럼 열심히 수련하면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가볍게 대답해 준 반호진은 기다리고 있던 하오문도에게 눈짓했다.
이제는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기에 봉구를 데려가라 지시한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본 후 반호진도 석실을 나섰다.
***
어느새 완연한 가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뜰의 풍경을 지켜보며 반호진은 오랜만에 집무실로 들어갔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떠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집무실에는 먼지 한 톨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없어도 매일같이 청소한 것이었다.
“부총관은 진짜 부지런한 것 같아.”
“이게 정상입니다.”
“너랑 좀 비슷한 것 같단 말이지.”
“일문의 수장이 업무를 보는 공간이지 않습니까. 당연히 이렇게 관리되어야 합니다.”
문틀에 먼지 하나 없는 걸 확인하며 선우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반면에 모용척은 아주 흡족한 얼굴이었다.
다른 방이라면 모를까 반호진이 머물 집무실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관리하는 게 정상이었다.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반호진이 자리에 앉기 무섭게 문이 열이 열리며 사마의성이 들어왔다.
얼굴 가득 반가운 기색을 띠고서 말이다.
“잘 지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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