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04화 (304/468)

제 101장. 똑같이 당해 봐야지? -01

동갑내기 친구인 서조운의 행보를 보며 사마의성은 많은 자극을 받았다.

그래서 반호진의 허락을 받아 똑똑한 아이들을 따로 거두었다.

원래의 계획과는 다르게 말이다.

한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손이 많이 가지만 일정 궤도에 오르면 많이 편해질 거야. 또한 규모도 점차 커질 테고.’

사마의성의 머릿속에 앞으로의 계획이 차곡차곡 떠올랐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는 과거의 성세를 회복한 사마세가가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사마의성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똑똑똑.

“사마 공자님. 매향이옵니다.”

“무슨 일이야?”

사마의성이 행복한 상상에 빠져 있을 때 문 너머에서 황매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지는 않았다.

이곳이 무상문과는 차별된 공간이어서였다.

반호진이 직접 독립된 공간이라 정해 주었기에 부총관인 황매향은 물론이고 누구도 사마의성의 허락 없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하오문의 소문주께서 만나 뵙고 싶다고 청하셨습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알겠어.”

“예, 그럼.”

차분한 대답과 함께 황매향이 물러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틈틈이 무공을 익혀서 그런지 예전보다는 확연히 가벼워진 걸음을 느끼며 사마의성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습격을 한 번 겪고 나자 다들 마음가짐이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어서였다.

또한 지금의 무상문은 사마의성이 바라는 모습이기도 했다.

“모두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모르는 게 있으면 따로 정리해 두고.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말고.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도 능력 부족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언제고 자신도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것이었다.

열심히 노력하되 몸에 무리가 가도록 하지는 않게.

무작정 쥐어짜는 게 능사가 아님을 반호진에게서 배웠기에 사마의성도 꼭 한 번 써먹고 싶었었다.

“그래.”

점점 총기를 발하는 아이들의 눈빛에 사마의성은 흡족하게 웃으며 방을 나섰다.

그러고는 곧장 난희주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약속 시간에 늦었습니다.”

“괜찮으니 너무 괘념치 않으셔도 돼요.”

단아한 복장의 난희주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마의성이 여러 가지 일로 바쁘다는 걸 모르지 않아서였다.

그녀는 하오문의 내전만 신경 쓰면 되었지만 사마의성은 수하들과 무상문, 거기에 이곳까지 도와주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개인 공부와 무공수련까지 하고 있기에 난희주는 충분히 이해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마 공자님께서 바쁘시다는 걸 모두가 아는데요. 오히려 감사한 건 저이지요. 바쁘신 와중에도 본문의 일을 도와주고 계시니까요.”

“형님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빚은 꼭 갚아야 하는 성격인지라. 또 형님과 무상문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요.”

“공통의 적이지요.”

난희주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처음에는 배신자들이 속출해서 마음고생이 심하고 막막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오히려 큰 기회라고 생각했다.

속을 알 수 없는 이들을 완벽하게 쳐내서 보다 단단한 하오문을 만들 기회 말이다.

“상황은 어떻습니까?”

“정보망은 많이 복구했어요. 적과 아군, 그리고 중립을 표방하는 이들을 확실하게 구분했고요. 현재는 배신한 장로들의 위치를 파악하면서 중립을 지키고 있는 이들을 포섭 중이에요. 느리지만 한 명씩 확실하게요. 물론 넘어온 이들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아요.”

난희주의 두 눈이 차갑게 빛났다.

이번 일로 그녀는 처절하게 깨달았다.

자신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것을.

또 사람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도.

“한 번 주인을 바꾼 사람은 또 바꿀 수 있으니까요. 엄밀히 따지면 바꾼 건 아니지만.”

“따르지 않겠다는 것부터가 이미 반쯤 돌아선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어찌 그런 이들을 믿을 수 있을까요.”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정보 조작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오히려 이쪽에서 정보를 교란하고 있어요. 오빠에 대해서는 일절 알지 못할 거예요. 그럴 여력도 없고요. 정천맹의 군단이 남하하는 중이라 온 신경이 거기에 쏠려 있기도 하고요.”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요.”

“그렇죠.”

난희주가 빙긋 웃었다.

그녀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하나 그럼에도 반호진의 행적을 감추는 건 보다 편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이번 복수행을 편하고 확실하게 말이다.

“살방에 대한 건 아직입니까?”

“정보는 차곡차곡 모이고 있는데 살수 출신이라서 그런지 위치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도 정천맹과의 전투를 앞두고 있기에 서서히 드러나고 있어요. 우선 지금까지 수집한 것들을 정리, 요약한 것이에요. 본거지는 파악 중이고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당연히 해 드려야 하는 것인데요. 저희도 결국에는 천사맹과 싸워야 하는 입장이고요.”

천사맹에 대한 정보 공유는 당연한 것이었다.

안전을 보장받고 있기도 하지만 천사맹 역시 공통의 적이었다.

배신자들이 천사맹에 붙어 있기에 하오문으로서는 자연스럽게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고생해 주신 건 사실이니까요. 정보를 수집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텐데.”

“어려워도 해야지요. 전쟁이라는 건 결국 승패가 정해져야지만 끝이 나니까요. 그리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겨야 하고요.”

“맞습니다.”

난희주와 대화하면서도 사마의성은 건네준 책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느 쪽도 막힘이 없었다.

“지금은 좀 미흡하지만 차차 정교해질 거예요.”

“이것만 해도 상당한데요.”

“하오문의 이름값이 있는데 그 정도는 당연하지요.”

사마의성의 칭찬에 난희주가 생긋 웃었다.

칭찬은 언제 들어도 기분 좋았기에 미소가 절로 나왔다.

“아, 그리고 개인적으로 부탁을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거래라고 해야 할까요.”

“부탁이든 거래이든 편하게 말씀하세요.”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는 듯이 난희주가 공손히 대답했다.

둘 다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였다.

“하오문에는 은신과 잠입에 능한 이들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맞아요. 도둑도 있고, 살수들도 있어요.”

“혹 현역에서 물러난 이들도 있습니까?”

“은신과 잠입에 특화된 인력을 키우시려고요?”

눈치가 빠른 난희주답게 단박에 사마의성의 속내를 읽었다.

동시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멸문했다고 하나 사마의성은 엄연히 명문세가 출신이었다.

한데 그런 이가 이런 조직을 만들겠다고 하자 놀라웠다.

“예. 앞으로는 필요할 것 같아서요. 지난번 습격 때 느낀 것도 많고요. 현역으로 활동하는 이들은 소문주께서 쓰셔야 할 테니 은퇴한 자들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대신 그 대가로 저희 역시 소문주님의 무인들을 훈련시켜 드리겠습니다. 아시겠지만 이곳에는 뛰어난 무공교관이 많습니다.”

“저로서는 좋아요!”

난희주는 대번에 받아들였다.

그녀로서는 이득이었으면 이득이었지 절대 손해가 아니어서였다.

은퇴한 이들을 찾는 것과 그중에 실력 있는 이들을 선별하는 일은 분명 약간의 수고가 필요했으나 얻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난희주로서는 어떻게든 무상문과의 끈을 더욱더 굵고 질기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수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야말로 감사한걸요.”

난희주가 작게 손사래를 쳤다.

서로에게 이득인 이런 거래는 얼마든지 응할 마음이 있었다.

더구나 무상문은 이미 한 차례 성과까지 내었기에 난희주는 진심으로 기대가 되었다.

탁!

호화스럽게 꾸며진 밀실에서 귀밑이 하얗게 변한 장년인이 거칠게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로 인해 술잔에 남아 있던 고급술이 사방으로 거칠게 튀었으나 장년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혼자서 사용하는 독실이었기에 거리낄 것이 없어서였다.

대신 그는 누군가를 향해 분노를 표출했다.

“갈보 같은 년들! 끝까지 말썽이야! 계집답게 순순히 포기하고 대세를 따를 것이지!”

장년인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고성을 토해 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솟아서였다.

곱게 포기하고 항복했으면 하오문의 힘이 반으로 갈라지지 않았을 텐데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게 그는 심히 거슬렸다.

졸졸졸.

그래서 그 분노를 담아 장년인은 술잔에 술을 따랐다.

하오문주와 소문주도 마음에 안 들었지만 현재 강호의 정세도 그를 짜증 나게 만들었다.

기세등등하게 발족했던 것과 달리 천사맹의 위세가 그리 강력하지 않아서였다.

이빨 빠진 호랑이라 생각했던 정천맹을 상대로 예상과 달리 고전하고 있었기에 장년인은 입맛을 다셨다.

“마도련이 있기는 한데, 희한하게 압도를 하지 못한단 말이지.”

안주도 없이 독주를 들이켜며 장년인이 중얼거렸다.

그로서는 좀처럼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거기다 반호진을 처치하지 못한 게 입 안의 가시처럼 불편했다.

어찌 보면 지금의 상황은 반호진 한 명으로 인해서 어그러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광살노옹 이 병신 같은 새끼. 이왕 뒈질 거면 검신이랑 같이 죽을 것이지 왜 혼자 뒈져서 사태를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

탕탕!

계속해서 치솟는 분노에 장년인이 왼손으로 거칠게 탁자를 두드렸다.

그런데 그때 문 밖이 소란스러웠다.

하오문주가 자신을 비롯해서 배반한 장로들을 추적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그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안가에 숨었다.

지인들도 모르게 만들어 놓은 비밀스러운 장소였기에 찾아올 사람도 없는데 밖이 소란스럽자 장년인은 순간 팔에 닭살이 돋았다.

“……설마.”

뇌리를 스치는 불길한 생각에 장년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이내 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심복 중에서도 딱 한 명만 아는 곳이 이곳이었다.

그 한 명도 여기에 있었기에 위치가 발각될 가능성은 전무했다.

“밖에 누구 있느냐! 무슨 소란인지 나에게 보고해라!”

철렁한 마음을 추스르며 장년인이 짐짓 아무렇지 않게 수하를 불렀다.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한데 그의 일갈에도 문 밖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평소였다면 부리나케 달려왔을 텐데 시간이 흘러도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꿀꺽!

하다못해 대답이라도 들려와야 하는데 그것조차 없자 장년인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혹시나 했던 불안감이 점점 커져 가서였다.

끼이익.

그때 드디어 문이 열렸다.

하지만 방 안으로 들어오는 이는 그의 충복이 아니었다.

“숨어 있는 주제에 꽤나 호화스럽게 살고 있네?”

“너, 너는……!”

장년인의 두 눈이 더 이상 커지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인물이 눈앞에 나타났기에 장년인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쥐새끼 주제에 어디서 형님께 하대야? 쥐새끼면 쥐새끼답게 행동을 해야지.”

초면이지만 용모파기는 수도 없이 봤기에 장년인은 반호진의 등장에 대경실색했다.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그리고 반호진은 혼자가 아니었다.

활짝 열린 문을 통해 서조운과 모용척, 선우방, 정이륭이 차례대로 들어오자 장년인은 얼어붙었다.

“야야, 그만해. 그러다 겁에 질려 죽겠다. 난 소저가 가급적이면 생포해 달라고 했잖아.”

“가급적이라고 했으니 어쩔 수 없이 죽었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요?”

히끅!

모용척과 서조운의 대화에 장년인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주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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