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01화 (301/468)

제 100장. 반격의 서막. -01

“독이 아주 바짝 오른 모양이네.”

“이번 배신은 확실히 치명적이니까요. 형님과 어울리는 걸 탐탁지 않아 하는 이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난 소저가 은연중에 티를 많이 내기는 했잖아요. 하오문주도 그렇고.”

“나와 붙어먹을까 봐?”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와서였다.

한데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기도 했다.

난희주가 승승장구하는 걸 원치 않는 이들도 분명 있을 테니까.

“네. 사람에게 있어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니까요. 또 현재 상황이 난세잖아요. 영웅과 간웅은 난세에 나오는 법이고, 만약 천사맹과 마도련 연맹이 승리한다면 하오문을 손에 넣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강력했던 백도무림의 힘이 새외무림과의 전쟁으로 약해지기도 했고요. 지금과 같은 기회가 또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이긴 하니까요.”

“그래 봤자 천사맹의 아래에 있는데.”

“적어도 하오문은 자기 손에 들어오니까요. 그 후는 생각하지 않겠지요. 아니면 또 다른 수가 있거나.”

“반대로 팽을 당할 수도 있는데. 뭐, 그런 걸 다 따졌으면 반기를 들지 않았겠지. 제 딴에는 도박을 할 만하다고 생각했을 테고.”

반호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더는 하오문의 장로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가 나서지 않아도 난희주가 알아서 잘할 거라 믿기도 했고.

모든 걸 제외하고 순수한 전력만 따지면 난희주가 아주 약간 우세했다.

“욕심은 사람의 눈을 아주 잘 가리니까요. 자기 주제를 모르는 이들이 너무 많기도 하고요. 남은 냉정하게, 자기 자신에게는 지극히 관대하잖아요.”

“부정을 못 하겠네. 그나저나 네가 보기에 상황은 어때?”

“확실히 능력은 있더라고요. 괜히 차기 하오문주가 아니에요. 형님의 조언을 제대로 받아들였는지 적과 아군부터 확실하게 분류하더라고요. 거기에 중립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따로 분류해서 적절하게 당근과 채찍으로 회유하고 있어요.”

“능력 있지.”

반호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난 생에서는 냉혈마녀로 불렸던 이가 난희주였다.

비록 지금은 그때만큼 여물지는 않았으나 잠재력은 똑같았다.

새외무림의 침공과 이번 사태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니 슬슬 잠재력이 개화하는 중일지도 몰랐고.

“소문주인데도 아주 칼 같아요. 하오문주에게서 전권을 받아서 휘두르는데, 저도 기가 질릴 정도더라고요. 괜히 정사중간이 아닌 것 같아요. 협력하면서 정말 많이 배우고 있어요.”

“깨끗한 싸움만 있는 건 아니거든. 사실 대부분이 진흙탕 싸움이지. 그걸 가장 잘하는 게 하오문이고. 예전에는 무력이 부족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거야.”

“저는 좀 걱정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독보적인 정보력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무력까지 손에 넣게 되면 하오문의 힘이 너무 강해져요.”

사마의성이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지금의 하오문은 딱 알려진 대로의 하오문이었다.

그러나 반호진의 도움으로 부족했던 무력 부분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괜히 하오문의 장로들이 천사맹의 지원을 받았음에도 난희주와 하오문주를 못 잡은 게 아니었다.

“강해지겠지. 근데 그것도 한계가 있어. 좋은 무공, 좋은 사부, 좋은 제자가 삼위일체가 되어야지만 절대고수가 탄생한다고 말하지. 근데 말이야. 이 세 개가 다 모인다고 해서 반드시 절대고수가 나오는 건 아니야. 그랬으면 천하십대고수급 무인들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 무더기로 나와야 해. 근데 결과는 어떻지?”

“신기할 정도로 비슷한 숫자를 유지하고 있어요.”

“맞아. 아무리 좋은 무공과 사부, 제자, 거기에 투자가 합쳐진다고 한들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냐. 변수가 워낙에 많거든. 그리고 성장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야. 짓밟으려 하면 되레 더 강하게 반발할 거야. 너도 마찬가지잖아.”

“맞아요.”

사마의성은 순순히 인정했다.

안 된다고 해도 자신이 이루고자 한다면 도전하는 게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였다.

그러니 막으려고 해도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사마의성은 불안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능성은 모두에게 있어야 해. 그래야 사는 재미가 있지 않겠어? 예외와 변수, 기적이 있어야 도전도 할 수 있는 거야. 꼭두각시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명심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진지하게 받아들일 건 없고. 일단 현재 상황은 잘하고 있다는 거지?”

“네. 이제는 별호도 생겼더라고요. 냉혈마녀라고. 적이라고 판단한 순간 가차 없이 치워 버리더라고요. 저도 깜짝 놀랄 정도였어요.”

나이는 어려도 하오문의 소문주이기에 당연히 강단이 있을 거라고 사마의성도 생각했다.

후계자라는 자리는 단순히 운이 좋다고, 실력이 좋다고 해서 차지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까.

당장 가까이에 있는 금호연만 하더라도 목숨을 건 경쟁 끝에 금가장의 소장주가 되었다.

“단호함이 필요한 자리이기는 하지.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

“맞아요.”

“잘하고 있는 모양이네. 천사맹이야 정천맹이 상대해 줄 테니까. 집안싸움이라면 희주가 유리하지. 일단 명분이 있으니까.”

“하오문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그럼 이 사안은 이제 넘어가고, 알아봤어?”

반호진의 물음에 사마의성이 자세를 바로 했다.

말을 많이 해야 했기에 가볍게 심호흡을 한 후 입을 열었다.

“네. 광살노옹이 온 날 암습했던 살수들은 사도육주(邪道六主) 중 한 곳인 살방(殺幇) 소속이에요. 난 소저가 이중첩자를 통해 직접 알아냈어요.”

“암월교의 자리를 꿰찼다는 곳이군.”

반호진이 실소를 흘렸다.

운 좋게 어부지리를 얻은 놈들이 은혜를 갚기는커녕 원수로 갚아서였다.

하지만 이런 일은 무림에서 비일비재했기에 그러려니 했다.

중요한 건 불확실했던 것들이 확실해졌다는 사실이었다.

“천사맹은 수많은 사도방파의 연합이지만 중심은 사도육주라고 할 수 있어요. 그중에서도 특히 현재 맹주 자리를 차지한 사사혈천교주의 힘이 가장 강해요. 단순히 세력의 규모로만 봐도 사사혈천교가 가장 크고요.”

“사사혈천교주가 머리고 사도육주가 몸통이로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마도련에 대해서도 파고 있지?”

“네. 근데 천사맹을 중심으로 조사해서 아직 마도련에 대한 정보는 미흡해요.”

“그건 어쩔 수 없지. 하오문이 내전 중이니까. 그렇다고 우리에게 정보 조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만으로도 충분해. 마도련에 관한 건 개방에서 알려 줄 거야.”

사마의성이 송구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으나 반호진은 개의치 않았다.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였다.

오히려 이렇게까지 알아낸 게 대단했다.

“그래도 추가적으로 계속 조사해 보겠습니다.”

“우선은 살방부터. 받은 게 있으면 당연히 돌려줘야지?”

“안 그래도 난 소저가 배신자들을 공격하면서도 살방에 대한 정보를 집중적으로 알아보고 있어요. 본거지는 알아내기 힘들겠지만 살방주는 다른 사도육주들과 함께 움직일 가능성이 크기에 그쪽으로 파고 있는 듯해요.”

“당장 급한 건 아니니까. 개방이 활발히 움직이고 있기도 하고.”

“가장 좋은 건 본거지를 알아내는 것이지만요.”

적에 대해서는 조금의 인정도 없는 게 사마의성이었다.

더구나 먼저 공격한 쪽은 천사맹이기에 이쪽이 전멸하든 천사맹이 사라지든 둘 중 하나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었다.

“시간은 많으니까 서두를 필요는 없어. 괜히 서두르다가 실수할 수 있으니까. 조금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나아가는 게 더 나아.”

“네.”

“마지막으로 천사맹은 왜 나를 노렸대?”

“하오문에서 알아낸 정보와 제 추측에 의하면 형님을 향후 가장 큰 위협으로 여긴 듯합니다. 당대의 천하십대고수는 현 무림에서 정점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모두 전성기가 지난 상태입니다. 심후한 공력으로 노화를 막고 있지만 한계가 있지요. 전대 개방주께서 그 일례이고요. 반면에 형님께서는 다릅니다. 현재 천하십대고수는 아니지만 그 어떤 천하십대고수보다 강하시죠. 게다가 육체적으로 이제 전성기를 향해 가는 나이이기도 하고요.”

“싹을 미리 제거하려 한 거군.”

상식적으로 이해는 되는 추측이었다.

다만 그런 것치고는 준비가 너무 허술했다.

광살노옹이 전대 천하십대고수이고 초월경의 무인이라고 하나 이미 전성기가 한참이나 지난 무인이었다.

거기다 천하십대고수라고 해서 다 같은 실력이 아니었다.

고작해야 천하십대고수 중에서도 말석에 불과한 광살노옹을 믿고 제거 계획을 짰다는 게 반호진은 의문이 들었다.

녹림팔노와 이천 명, 거기에 광살노옹까지 속이며 특급살수까지 추가했다지만 그를 죽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전력이었다.

“이런 비유가 이상하기는 하지만 형님은 떠오르는 태양이니까요. 그것도 아직 하늘 끝에 닿지 않은.”

“그런데도 고작 그 정도 전력을 보냈단 말이지.”

“철혈성, 구천문, 포달랍궁, 북해빙궁을 겪어 보지 못했잖아요. 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직접 겪어 보지 못했으니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밖에요.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몸으로 직접 겪어도 때론 믿지 않잖아요.”

“듣고 보니 그러네.”

반호진의 두 눈이 살짝 커졌다.

가만히 들어 보니 사마의성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이게 상식적인 판단이기도 했고.

오히려 반호진의 존재 자체가 비상식적이었다.

“저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역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사사혈천교주가 초월경의 고수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형님보다 강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그건 모르지. 우열은 직접 붙어 봐야 아는 법이야.”

“예전이었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지금은 북해빙궁주를 상대하실 때보다 더 강해지셨잖아요.”

“그래도 난 이왕이면 정천맹(正天盟) 선에서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어.”

반호진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복수도 좋지만 거기에 인생을 전부 갈아 넣을 생각은 없었다.

할 일도 하면서 여유롭게.

이게 지금 반호진이 바라는 삶이었다.

“살방까지는 정리하실 거죠?”

“당연하지. 빚은 갚으라고 있는 거니까. 먼저 무너진다면 어쩔 수 없고. 이미 사라졌는데 내가 다시 살려 줄 수는 없잖아?”

“그렇죠.”

사마의성이 눈을 빛냈다.

복수는 해야 하지만 꼭 반호진이 나서야 하는 건 아니었다.

“먼저 갈 곳도 있고.”

“다 알아내신 거예요?”

“아무래도 이쪽은 금가장과 표국 쪽이 전문가니까. 금가장에 이 정도 부탁은 할 수 있잖아?”

“이 이상도 가능하시죠. 그리고 오히려 소장주뿐만아니라 금가장주도 좋아할걸요? 가뜩이나 골치를 썩이는 이들이 싹 다 치워지는 거니까요. 어떻게 보면 상부상조죠.”

“그렇지.”

이번에는 반호진이 씨익 웃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한번 결정하면 망설이지 않는 게 그였다.

“저는 이곳을 지키고 있을게요.”

“방천문주님이 계실 거니까 별일은 없을 거야.”

“어르신이 안 계시더라도 별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믿으마.”

자신만만한 사마의성의 대답에 반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성장한 건 다른 일행들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순수하게 성장세만 따지면 사마의성이 제일 많이 발전했다.

그래서 반호진은 사마의성을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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