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300화 (300/468)

제 99장. 관점의 차이. -02

난희주는 물론이고 하오문주의 두 눈이 커졌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두 사람은 단박에 파악한 것이었다.

“확실한 우리 사람을 알 수 있다?”

“응. 너도 말했잖아. 장악력이 그리 크지 않다고. 이번 기회에 체질개선을 하는 거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만.”

난희주와 하오문주의 표정이 달라졌다.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과 정말 딱 떨어져서였다.

동시에 신기하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말이다.

“내 사람이라.”

“설마 이대로 꼬리를 내릴 생각은 아니지?”

“전혀. 당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갚아 줘야지. 그리고 본보기로 보여 줘야지. 배신자의 마지막이 어떠한지.”

“나도 갚을 게 있고 말이지. 아는지 모르겠지만 난 당하고만 살지는 못하는 성격이라.”

난희주가 눈을 반짝였다.

안 그래도 그녀 역시 이 부분을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자칫 잘못하면 반호진이 자신을 이용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에 먼저 꺼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잠자코 있었는데 반호진이 먼저 말을 꺼내자 난희주의 얼굴이 밝아졌다.

“잘 알고 있지. 오빠도 한 성깔 한다는 걸.”

“거기에 이제는 지켜야 할 식구들이 생겨서. 내 체면도 있지만 식구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아니 우리가 아주 잘 지원해 줄 수 있어.”

난희주가 자신 있게 말했다.

아무리 내분이 일어났다고 하나 하오문은 하오문이었다.

배신자들의 영향력이 급격히 늘었다고 해도 아직 그녀와 하오문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보다는 의성이와 대화하는 게 편할 거야. 나는 무인이지 머리를 쓰는 사람이 아니니까.”

끼이익.

반호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응접실의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사마의성이었다.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반호진의 전음을 듣고는 바로 입실한 것이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하오문주님. 소문주님.”

사마의성이 정중하게 하오문주, 난희주를 마주 보며 읍을 했다.

한데 갑작스러운 사마의성의 등장에도 두 사람 다 기분 나쁜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가워하는 표정이었다.

“나보다는 의성이와 대화하는 게 더 나을 거야. 똑똑하니까 대화도 잘 통할 테고. 또 의성이도 궁금한 게 있다고 했거든.”

“나는 얼마든지 환영이야. 그렇죠, 사부님?”

“물론이지.”

다른 일행들에 비해 많이 가려져서 그렇지 사마의성 역시 뛰어난 인재였다.

추후 사마세가를 일으킬 사람이기도 했고.

또 지금과도 같은 상황에서 사마의성의 조력은 천군만마나 마찬가지였기에 두 사제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대답했다.

“대략적인 이야기는 형님께 들었어요. 현재 내분이 일어난 상황이고, 배신자들이 천사맹에 붙었다고요.”

“예.”

“매우 난감하시겠네요.”

“맞아요. 배신자들이 천사맹을 등에 업고 사방에서 조여 오는 상황이에요.”

기분 나쁠 법도 한 말이었으나 난희주는 순순히 인정했다.

사실을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어서였다.

더욱이 이 자리는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자리가 아니었다.

현재 처한 상황을 앞으로 어떻게 타개할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하는 자리였기에 난희주는 적극적으로 대화에 임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겠죠. 이기지 못하면 죽을 테니까요.”

“그건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한쪽이 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게 내전이니까요.”

난희주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대외에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까지 그녀가 받은 도전은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그건 사부인 하오문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계속된 도전을 이기고 뿌리친 끝에 지금의 자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잠시 물러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 같은데요. 북쪽으로요.”

“그럴 수는 없어요. 물러나는 순간 도망쳤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또 물러난다고 해서 포기할 이들이 아니고요. 때문에 저희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요.”

가뜩이나 천사맹을 등에 업고서 배신자들이 날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도망친다면 수하들이 동요할 터였다.

더불어 중립을 지키고 있던 이들이 배신자 쪽에 붙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복권하는 건 불가능했기에 난희주는 이동을 자주 할지언정 멀리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다.

“힘드셨겠어요.”

“……아니라고 부정은 못 하겠네요.”

난희주가 처연하게 웃었다.

괜찮은 척하고 있었으나 실상은 달랐다.

그녀도, 하오문주도 많이 지친 상태였다.

“현재 상황은 얼추 파악한 것 같으니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건지에 대해서 의논해 보자고.”

“알겠습니다.”

사마의성이 현황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한 듯하자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던 반호진이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서였다.

“나는 우선 사마 공자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 왠지 모르게 묘책이 있을 것만 같거든.”

난희주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사마의성을 바라봤다.

누가 봐도 부담스러운 시선이었다.

한데 그건 난희주만이 아니었다.

반호진의 책사이자 지낭이며 지자가 사마의성이었기에 하오문주 역시 잔뜩 기대한 눈으로 사마의성을 주시했다.

“묘책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고, 저는 기본을 생각했습니다.”

“기본이요?”

“네. 현재 두 분께 가장 중요한 건 안전이지 않습니까. 정보력이 비등하다고 감안했을 때 저쪽과 차이가 나는 건 실질적인 무력이니까요. 그래서 계속 안가 이곳저곳을 이동하셨을 테고요.”

“맞아요.”

“달리 말하면 그 문제만 해결하면 천사맹에 붙은 배신자들과 제대로 붙을 수 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난희주는 물론이고 하오문주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 두 사람을 가장 골치 아프게 만드는 건 바로 천사맹이었다.

사사건건 방해하는 건 배신자들과 그 휘하의 부하들이지만 천사맹을 제외하면 얼마든지 붙어 볼 만했다.

아니, 순수하게 하오문의 세력만 가지고 싸운다면 난희주는 이길 자신이 있었다.

“동등한 조건이라면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어요. 다만, 피해가 상당하겠죠.”

난희주가 입술을 깨물었다.

승패는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건 하오문이 제 살 까먹기를 해서 약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호진의 말대로 확실하게 내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좋네요. 그럼 바로 시작하면 되겠네요.”

“네?”

“중원에서 하오문주님과 소문주님에게 여기보다 안전한 장소는 없지 않습니까?”

반문했던 난희주의 동공이 더 이상 커지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사마의성의 말대로 그녀와 사부에게 있어 무상문보다 안전한 곳은 없었다.

다른 곳이라면 언제 암살 시도가 있을까 전전긍긍해야 했지만 무상문은 달랐다.

백도무림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었고.

“그게, 가능할까요?”

난희주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선은 사마의성에게 향해 있지만 실질적으로 물은 건 반호진이었다.

“안 될 건 없지. 숭산과는 달리 여기는 오로지 내 소유의 장원이니까.”

“너무 염치가 없는 것 같아서.”

“생각해 둔 곳이 있어?”

“아,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난희주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안가야 수십 개도 넘지만 무상문보다 나은 곳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최선의 선택은 무상문이었고.

“나는 괜찮아. 아까도 말했다시피 천사맹에는 갚아야 할 빚도 있고. 거기에 네가 도와준다면 나로서는 이득이지. 남창에서의 빚도 있고.”

“그게 빚인가.”

난희주가 어색한 얼굴로 볼을 긁었다.

남창의 뒷골목 흑도 무리를 정리한 것 정도로 빚 운운하기에는 민망해서였다.

막말로 반호진이 나설 것도 없이 서조운이나 선우방, 모용척, 사마의성만 나서도 정리는 깔끔하게 될 터였다.

그녀가 한 건 그저 뒤탈 없이 말끔하게 미리 청소한 것밖에 없었다.

“수고로움이 있는데 당연히 빚이지. 가장 위험한 빚이 바로 선의로 한 행동이고.”

“그렇게 생각해 주니 감사해요.”

“아닙니다.”

머쓱해하는 난희주와 달리 하오문주는 별거 아닌 말임에도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욕심 많은 이들은 하나를 주면 두 개, 세 개를 달라고 하는데 반호진은 달랐다.

하나를 줘도 고마워했기에 하오문주는 순간 울컥했다.

“오빠한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물어봐.”

“나 믿을 수 있어? 만약에 지금 이 모든 게 계획된 거라면 어떡하려고?”

“상관없어. 어차피 책임은 너와 내가 지는 거니까. 나는 사람을 잘못 본 책임을. 넌 선택을 잘못한 책임을.”

후르릅.

담담한 어조로 말했으나 그 안에 남긴 의미는 명백했다.

적이 된다면 망설이지 않고 베어 버리겠다는 뜻이었다.

아무런 기세도, 기운도 일으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섬뜩함이 선명하게 전달되는 한마디에 난희주와 하오문주는 동시에 마른침을 삼켰다.

“물론 저희는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거예요. 하오문이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비견되는 곳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알아요. 그래도 혹시 몰라서 물어본 거예요. 오빠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사마의성이 한마디를 보탰다.

하오문의 정보력이 대단한 건 인정하지만 개방과 금가장을 압도할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그렇기에 사마의성은 경고 아닌 경고를 했다.

만약 허튼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 끝이 결코 좋지는 않을 거라고 말이다.

“반대로 지금 이 마음이 진심이라면 든든한 우군을 등에 업은 거예요. 곧 백도무림도 연합을 할 거니까요.”

“드디어인가요.”

난희주가 눈을 빛냈다.

사실 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백도무림은 과거부터 뜻을 하나로 모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기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나로 뭉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연합만 되면 움직임은 빨랐다.

“네. 그리고 그 말은 곧 천사맹이 지금처럼 마음대로 날뛸 수 없다는 뜻이고요.”

“싸움은 그 전에 시작될 거예요. 시작은 배신자가 했지만 끝을 내는 건 저일 테니까요.”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 소문주님도 아시겠지만 형님과 마찬가지로 저희도 빚을 잊지 못하는 성격이라서요.”

“저는 얼마든지 환영이에요.”

난희주가 활짝 웃었다.

그녀도 똑똑하다고 소문이 난 편이었으나 사마의성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더구나 사마세가는 병법으로도 유명한 가문이었기에 난희주로서는 좋으면 좋았지 나쁠 게 전혀 없었다.

“우선은 정보부터 부탁드려요. 사도육주와 천사맹에 대해서요. 적을 알아야 효과적인 전술과 전략이 나오는 법이니까요.”

“전력을 다해 협조할게요.”

난희주의 두 눈에 살기가 어렸다.

지금까지는 도망치느라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달랐다.

안전한 장소를 손에 넣은 만큼 받은 것 이상으로 반격할 작정이었다.

더불어 반호진의 말대로 확실한 아군을 하나로 모을 계획이었다.

“언제부터 시작할 거야?”

“지금 바로.”

언제 안절부절못했냐는 듯이 난희주가 의욕 넘치는 얼굴로 대답했다.

얼굴 가득 스산한 표정으로 말이다.

그런데 그건 하오문주도 마찬가지였다.

불안해하던 표정은 사라지고 독기와 살기가 두 눈에서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가능하겠어?”

“저도 준비되었습니다.”

“좋아. 그럼 시작하자고.”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었기에 반호진도 허락했다.

개인적으로 빚은 나중에 갚는 것보다 바로 갚는 게 제일 좋다고 생각했다.

그게 원한이든 은혜이든 말이다.

***

또르륵.

해가 중천에 다다르는 시각에 반호진의 집무실로 사마의성이 들어왔다.

늘 그렇듯이 입실하기 전에 의관을 정제한 사마의성이 반호진을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잠은 자 가면서 하는 거야?”

“난 소저보다는 좀 더 자고 있어요.”

“매일 밤을 새우는 것 같던데.”

직접 찾아가지는 않아도 보고는 꾸준히 받고 있었다.

아이들을 통해서든, 아니면 황매향을 통해서든.

그런데 불이 꺼지는 날이 없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고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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