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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287화 (287/468)

제 93장. 결국 만류귀종(萬流歸宗). -02

‘역시 순서가 없다니까.’

반호진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가장 경지가 높다고 해서, 혹은 경험이 많다고 해서 벽을 제일 빨리 넘는 건 아니었다.

단지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실력순으로 세우면 중간 정도에 설 수 있는 중년인이 가장 먼저 절정의 벽을 허물고 있었다.

우우우웅.

단전에서부터 시작된 묘한 태동은 천천히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면서 반호진의 기도를 조금씩 밀어냈다.

스으윽.

동시에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땅에 닿았던 무릎이 떨어지고 구부러졌던 허리가 천천히 펴졌다.

그러고는 느릿하게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한데 특이하게도 중년인의 눈빛이 멍했다.

‘무아지경인가.’

눈빛은 물론이고 표정도 멍했다.

언뜻 보면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러나 반호진은 알고 있었다.

중년인이 어떤 상태인지 말이다.

웅웅웅.

완전히 뽑혀 나온 검이 미약한 검명을 토해 냈다.

더불어 빛이 뿜어져 나왔다.

“허!”

“벽을 넘었구나!”

눈부신 빛이 가라앉고 영롱하게 빛나는 검강이 검신을 감싸자 곳곳에서 탄성과 환호가 터졌다.

처음으로 벽을 넘은 이가 나오자 축하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중년인이 벽을 넘자 다들 초조해졌다.

자신은 아직 제자리였기에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이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혹시 자신만 안 되는 건 아닐까 하고.

파아아앗!

그게 괜한 걱정이 아니라는 듯이 또 한 번 찬란한 빛이 솟구쳤다.

또 다른 이가 절정의 벽을 넘은 것이었다.

눈부신 빛과 함께 권강이 반짝이자 남은 이들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나도……!’

‘반드시 넘는다!’

대부분이 조급증을 느꼈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아니, 생각 자체를 달리했다.

나만 실패하면 어쩌지 하지 않고 동료가 성공했으니 자신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파아앗! 파앗!

그리고 그 믿음은 곧 좋은 결과로 돌아왔다.

스스로를 믿는 마음이 앞을 가로막고 있던 벽을 천천히 허물었다.

“아!”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벽에 균열이 일어나고 이내 허물어지자 청년의 얼굴이 환희로 가득 찼다.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절정의 경지에 자신이 첫발을 내디뎠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어서였다.

특히 애병을 감싸는 도강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보는 순간 혼이 나갈 정도로.

후우우웅!

그와 동시에 사방을 잔인하게 짓누르던 중압감이 사라졌다.

더 이상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반호진이 기도를 거둔 것이었다.

“허억! 헉!”

“으으으! 아직도 다리에 힘이 안 들어가는구먼.”

“부럽다……. 나도 얼른 벽을 넘어야 하는데…….”

벽을 넘은 이들은 기뻐하고 반대로 넘지 못한 이들은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에 격차가 확 벌어진 것 같아서였다.

특히나 추월당한 이들의 얼굴이 정말 안 좋았다.

애써 티를 안 내려 했지만 티가 안 날 리가 없었다.

“벽을 넘었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검기성강을 이루는 것과 강기를 유지한 채로 싸우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반호진이 느끼기로 강기를 생성하는 것과 내공의 양은 크게 상관이 없었다.

적은 공력으로도 충분히 강기를 일으킬 수 있었다.

다만 유지 시간이 짧을 뿐이었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강기는 내공 소모가 상당하기에 자신이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를 아는 건 매우 중요했다.

반호진은 바로 그 부분을 명확히 짚어 주었다.

절정의 경지에 오른 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이다.

“벽을 넘으신 분들은 개인수련을 하시면 됩니다. 우선 강기에 적응하시길. 그리고 다른 분들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죠.”

절정고수가 된 이들이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뿔뿔이 흩어지자 반호진은 남은 이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췄다.

현재의 심리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다음 단계도 있습니까?”

“이대로 끝내길 바라시는 건가요?”

“아닙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만족해도 되지만, 저는 조금 더 해 보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여기 계신 모두를 절정고수로 만들고 싶고요. 애초에 그런 마음으로 이번 일을 받아들였거든요.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 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부러움과 열등감으로 인해 흔들렸던 다짐을 일급표사들은 바로잡았다.

반호진의 말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었다.

특히 마지막 말이 일급표사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죄송합니다.”

“문주님께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다시는 포기하지도, 흔들리지도 않겠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웅웅웅!

다시금 뜨겁게 타오르는 일급표사들의 눈빛에 반호진이 옅게 웃으며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이윽고 반호진의 전후좌우에 벽을 닮은 직사각형의 호신강기가 생성되었다.

“네 명씩 오세요. 제 호신강기에 모든 걸 쏟아붓겠다는 생각으로. 직접 부딪치고 느끼다 보면 얻는 게 있을 겁니다.”

“예!”

난생처음 겪어 보는 방식이었으나 의문을 가지는 이는 없었다.

방금 전에 절정의 경지에 도달하는 걸 두 눈으로 직접 봤기에 다들 의욕이 대단했다.

정신적으로 지치고 공력도 거의 바닥이었지만 체력은 달랐다.

소모된 게 거의 없었기에 일급표사들은 호신강기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었다.

까아앙! 터터터텅!

여전히 몇몇 이들은 다리가 풀린 상태였으나 그럼에도 전력을 다했다.

벽을 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이 일급표사들을 처절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흐읍! 흡!”

“차합!”

그래서인지 다들 급속도로 지쳤다.

완급조절은 생각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공격만 하니 금세 체력이 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이는 없었다.

절정고수가 되고 싶다는 집념이 일급표사들의 정신을 바짝 붙잡아 주었다.

“으아아아!”

이제는 독기만 남은 포효가 연무장을 가득 채웠다.

그것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 명이 나가떨어지면 그 자리를 다른 일급표사가 채웠고, 그게 계속해서 이어졌다.

반호진과 약속했던 대로 일급표사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막히고, 깨지고, 넘어져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드는 일급표사들의 모습에 반호진이 눈을 빛냈다.

처음에는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생각이 바뀌었다.

잘하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동기부여는 확실하니까.’

어제와는 다른 간절함을 보이는 이유는 명확했다.

똑같은 처지에 있던 동료가 절정의 벽을 넘는 걸 직접 봤기에 이처럼 지독하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저변에는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추월당하기 싫은 마음이 깔려 있었다.

또는 자신이 추월하고 싶다거나.

‘잘되면 서로 좋은 일이니까.’

노력한다고 해서 모두 다 원하는 걸 얻을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이 무의미하지는 않을 터였다.

비록 지금은 절정의 벽을 못 넘을지 몰라도 이 경험을 기반으로 나중에 절정고수가 될 수도 있었다.

반대로 평생 동안 제자리에 머물 수도 있지만 이 순간 반호진은 느낌이 좋았다.

좋은 결과가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지.’

아예 시작을 안 하면 모를까 일단 시작을 했다면 대충은 없었다.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게 올바른 마음가짐이었기에 반호진도 일급표사들에게 집중했다.

***

거의 반년 만에 무상문의 연무장을 찾은 방일석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도열해 있는 서른세 명의 일급표사들을 보고는 믿기지 않은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반호진이 따로 말해 주지 않았으나 그는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전원이 벽을 넘었다는 걸 말이다.

“미, 미친!”

좋은 결과가 나오길 바라기는 했으나 방일석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건 청림표국주인 방현승도 마찬가지였다.

절정의 벽을 넘는 게 쉬웠다면 진즉에 무림은 절정고수들로 넘쳐 났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은 수많은 무인이 절정에 벽에 막혀 절망했고, 방일석과 방현승은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무리 뛰어난 고수라도 가르치는 건 다르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그래서 삼 할 정도만 벽을 넘어도 정말 큰 성과라고 생각했는데 서른셋 전원이 절정고수로 되어 있자 방일석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운이 좋았습니다.”

“이게 운이 좋다고 될 일이야? 이 세상의 모든 운이 너에게 쏠렸나?”

“저에게라니요. 여기 계신 분들에게 몰린 거죠. 제가 얻는 게 뭐가 있다고요.”

반호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가 직접 방향을 잡아 주고 도와준 건 맞으나 이득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반호진은 무공교두 쪽으로 갈 생각도 없었고.

그저 약간의 명성만 얻을 뿐이었다.

“하긴.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러네. 이미 넌 절대고수니까.”

“맞습니다.”

말만 들으면 거들먹거리는 것처럼 들렸으나 실상은 달랐다.

반호진에게 있어 이런 성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이런 결과가 나올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방일석이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서른세 명의 일급표사들을 바라봤다.

사실 성공보다는 반호진과의 인연에 더 비중을 두었었다.

안면이 있긴 하나 딱 거기까지였다.

긴밀한 관계까지는 아니기에 차근차근 친분도 다지고 약간의 이득도 챙길 생각으로 제안한 일이었는데 기대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 내자 방일석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래서 싫으십니까?”

“전혀! 오히려 더할 나위 없이 좋지! 절정고수가 단번에 서른셋이 늘었는데!”

방일석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단순히 숫자만 해도 서른세 명이 는 것이었다.

전력으로 따지자면 엄청난 전력 상승이었기에 방일석의 얼굴은 흥분으로 붉어졌다.

“다들 열심히 노력하셨습니다. 이 결과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요.”

“아닙니다. 문주님께서 잘 가르쳐 주신 덕분입니다. 저희들에게 정말 많이 신경 써 주셨습니다. 배운 것도 정말 많고요.”

자신들에게 공을 돌리는 반호진의 말에 일급표사들 중 가장 연장자가 입을 열었다.

열심히 노력한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절정의 벽을 넘은 건 절대 아니었다.

반호진의 적절한 조언과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이런 결과는 절대 나오지 않았을 터였다.

“나는 알고 있었어. 네가 가르치는 것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걸. 네가 선택한 후기지수들이 모두 다 터졌잖아?”

“적당한 비유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결과지. 이번처럼 과정과 결과가 다 좋으면 금상첨화고.”

반호진의 말이 들리지 않는 모양인지 방일석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했다.

그 모습에 반호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흥분할 만큼 기쁘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정도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여기 있는 아이들도 노력 많이 했습니다. 눈에 띄는 발전은 아닐지라도 다들 일인분은 확실하게 해 줄 겁니다.”

“아.”

반호진의 말에 뒤늦게 쟁자수 아이들을 발견한 방일석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의 흥분이 싸늘히 식는 듯한 느낌에 방일석은 머쓱하게 웃으며 오십 명의 쟁자수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쳤다.

그뿐만 아니라 일일이 손을 잡아 주었다.

그러나 방일석의 그런 모습에도 아이들은 실망하지 않았다.

자신들보다는 당연히 절정고수가 된 일급표사에게 먼저 시선이 갈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만약 자신들이 방일석이었다고 해도 같았을 것이기에 아이들은 모두 괜찮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저희는 괜찮아요!”

“표사님들이 강해지면 저희에게도 좋은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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