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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281화 (281/468)

제 91장. 후학양성? -03

일종의 요령이라 할 수 있었지만 이 또한 실력이었다.

그걸 반호진은 장한도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좀 전에 상대한 중년인과 마찬가지로 쉴 새 없이 두들겼다.

퍼퍼퍼퍽!

중년인보다 몸이 단단하다고 하나 결국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신이었다.

아무리 탄탄해도 고통을 느끼는 건 똑같았기에 장한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더구나 중년인보다 체격이 좋은 만큼 때릴 곳도 많았다.

“컥! 켁! 윽! 헙!”

싸우는 방식이 힘에 치중되어 있기에 당연히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장한은 말 그대로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았다.

쿠웅!

첫 번째로 상대했던 중년인과 마찬가지로 장한 역시 멍한 얼굴로 기절했다.

극한까지 몰린 후 정신줄을 놓아 버린 것이었다.

“자, 다음 분 오시죠.”

“괴, 괴물…….”

두 명을 탈진시켰음에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반호진의 모습에 일급표사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똑같이 움직였는데, 심지어 공격하는 쪽의 체력소모가 더 큰데도 멀쩡해 보이자 경악한 것이었다.

더불어 반호진의 훈련량을 대략적으로나마 유추할 수 있었다.

“벌써 포기하신 겁니까?”

“아, 아닙니다! 세 번째는 접니다!”

“준비하시죠.”

“예, 옙!”

평범한 인상의 청년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은 표정으로 터덜터덜 걸어 나왔다.

앞서 당한 두 사람의 모습에 잔뜩 겁먹은 것이었다.

훈련이 힘들 거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에 청년은 울상을 하고서 박도를 뽑았다.

“두려우시면 포기해도 됩니다. 다만 그럴 경우 더 이상 이곳에 머무실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제대로 하겠습니다.”

반호진의 말에 청년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공포에 잠식당해 자신이 얼마나 못난 모습을 보였는지 뒤늦게 깨달았기에 청년은 반호진을 향해 직각으로 허리를 숙였다.

“시작하죠.”

“예!”

비장한 얼굴로 대답했으나 청년 역시 앞선 두 사람과 결과는 똑같았다.

버티는 시간도 비슷했고 말이다.

그 뒤로 반호진은 조금의 휴식 시간도 없이 일대일 비무를 이어 나갔다.

괴물 같은 체력과 집중력을 보여 주며 한 명씩 확실하게 기절시켰다.

***

“말도 안 돼…….”

청림표국의 쟁자수이자 예비 삼급표사라고 할 수 있는 소년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무공을 수련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소녀에게 패배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비록 쟁자수이긴 하나 그래도 그는 여덟 살 때부터 기초를 다지며 무공에 입문했다.

그런데 고작 반년도 안 된 또래에게 지고 말았다.

“말이 안 되긴. 이게 세상인데. 진짜 무림은 더해. 대련은 패배하면 끝이지만 무림에서는 지면 죽어.”

“…….”

위로는커녕 냉혹한 현실을 말해 주는 서조운의 말에 소년은 주먹을 쥐었다.

쟁자수들 중에서는 나이가 제법 많은 편이었기에 표행에 나간 경험도 꽤 있었다.

그렇기에 서조운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잘 알았다.

냉정한 약육강식의 세계가 바로 무림이었다.

“야, 애 울겠다.”

“이 정도에 울면 안 되죠. 표국계 역시 무림에 반쯤은 걸쳐 있는 세계이지 않습니까. 산적, 도적, 수적, 마적들하고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하는 게 표사잖아요. 아름답고 좋은 것만 보려면 다른 일을 해야죠.”

“네 말도 맞는데 정도껏 해야지. 아직 표사도 안 된 아이들한테 냉혹한 현실부터 알려 줄 필요는 없잖아.”

가뜩이나 예유화에게 패배해서 기가 잔뜩 죽어 있는 소년을 달래기는커녕 속을 뒤집어 버리는 서조운의 모습에 선우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느 정도 자극을 줄 필요는 있었으나 그게 너무 과했다.

승부욕을 일으키기는커녕 좌절감부터 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이겨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애들이야. 네 또래가 아니라고. 기도 적당히 죽여야지 이건 뭐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 거잖아.”

“아득바득 싸우는 애들도 있어요.”

“있겠지. 근데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야.”

선우방의 시선이 백휘경, 백휘성 형제와 대련하고 있는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무공에 입문한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형제의 재능은 눈부셨다.

삼양절맥의 재능이란 게 이 정도라는 듯이 짧게는 오 년, 길게는 십 년 가까이 무공을 수련한 쟁자수들을 압도했다.

“이익!”

물론 서조운의 말마따나 질 걸 알면서도 계속 덤벼드는 아이들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 숫자는 소수였다.

“젠장!”

“흑! 흐흑!”

대부분은 좌절하거나 훌쩍였다.

재능의 차이를 실감했기에 정신적으로 무너진 것이었다.

“형도 보셨잖아요. 정신 상태가 다들 글러 먹었다는 걸. 청림표국, 대단하죠. 중원십대표국 중 하나이니까. 아마 평범한 표국들의 쟁자수들하고는 격이 다르겠죠. 그 사실을 여기 있는 아이들도 알고 있을 테고. 그런데 그게 목숨을 살려 주는 건 아니잖아요. 청림표국도 저희들이 우쭈쭈 해 주며 가르치길 바라지 않을 테고요.”

“그렇긴 한데.”

서조운의 말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었다.

솔직히 첫날 쟁자수들의 체력을 보고 선우방도 크게 실망했었으니까.

“또 대충 하는 건 저나 형이나 성격상 안 되잖아요.”

“근데 아이들에게는 너무 잔인하니까.”

“어리니까 더 강하게 키워야지요. 그렇다고 저희가 막 쥐 잡듯이 잡는 건 아니잖아요. 몸을 망가뜨리는 것도 아니고. 철도 두드려야 더 단단해지는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잖아요.”

“흐음.”

선우방이 주저앉아 있는 아이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하나같이 패배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백휘경, 백휘성 형제에게 패한 애들의 충격이 커 보였다.

아무래도 자기보다 어린 동생에게 당했다는 게 큰 충격인 모양이었다.

“아이들이 사는 세상도 똑같은 세상입니다. 어른들의 세상보다 덜 물들었을 뿐이죠. 그리고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고 하지 않습니까. 자기 잘난 줄 알면 척이 형처럼 될 겁니다. 허송세월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충대충 수련하며 시간을 보낼 겁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미리 깨지는 게 낫지 않을까요? 무너지는 애들도 있겠지만 다행히 여기 있는 아이들은 혼자가 아니잖습니까.”

“너 언제 이렇게 컸냐?”

“전 원래 컸는데요.”

서조운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불만을 표정으로 드러낸 것이었다.

하지만 서조운의 그런 행동에도 선우방은 씨익 웃었다.

“그럴 리가. 처음에는 너 완전 핏덩이였잖아. 기본기도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그냥 내공만 많은 꼬맹이였지.”

“아니거든요!”

서조운의 얼굴이 붉어졌다.

과거가 떠올라 민망해서였다.

“이런 말이 있지.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서조운이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분노를 꾹꾹 담아 경고하듯이 말했던 것이다.

“근데 괜찮겠어? 척이 뒷담화를 해도?”

“사실이잖아요. 척이 형도 알고 있고. 그리고 전 엄연히 일례를 든 것뿐이에요.”

“척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그럼 어쩔 수 없죠.”

“진짜 많이 컸다니까.”

알아도 개의치 않겠다는 듯이 대답하는 서조운의 모습에 선우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모용척의 귀에 이 말이 들어가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훤히 예상되어서였다.

“다 끝났어요.”

그때 예유화가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왔다.

백휘경, 백휘성 형제가 쟁자수들과의 대련을 마무리 짓는 걸 보고 둘에게 보고하러 온 것이었다.

“굳이 여기까지 안 와도 돼. 말하면 되는데.”

“체력이 남아 있어서요.”

예유화가 그리 말하며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있는 쟁자수들을 힐끔거렸다.

고작 이 정도에 헐떡이는 게 그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대련을 더 해도 되겠네.”

“얼마든지요.”

“너희 둘은?”

서조운의 시선이 혀를 쯧쯧 차고 있는 쌍둥이 형제들에게로 향했다.

자매도 아닌데 두 형제의 표정은 옆에 있는 예유화와 쏙 닮아 있었다.

“저희들도 괜찮습니다!”

“이 정도에 지치면 그동안 훈련한 게 울지요!”

멀쩡하다는 듯이 일부러 크게 소리치는 쌍둥이 형제의 모습에 서조운이 피식 웃었다.

반면에 쟁자수들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말하는 걸 보니 대련을 더 할 것 같아서였다.

“너무 싫어하는 티를 내는 거 아냐? 이것도 다 너희들을 위해 우리가 시간을 내 준 건데. 나 섭섭해지려고 해?”

“죄, 죄송합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아이들이 벌떡 일어났다.

예유화, 백휘경, 백휘성과 달리 서조운은 특별했다.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아도 이미 천하에 이름을 날린 무인이 서조운이었다.

더욱이 알게 모르게 서조운을 동경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다들 벼락같이 몸을 일으켰다.

“이제야 좀 마음에 드네. 근데 똑같은 방식으로 대련을 하면 재미가 없잖아? 다들 자신감도 없어 보이고. 그래서 대련 방식을 조금 바꿔 볼까 해.”

“어떻게요?”

“이번에는 일대일이 아니라 전부 다 같이 싸우는 거지. 편은 너희들이 한 편, 그리고 유화, 휘경, 휘성이가 한 편. 어때?”

서조운의 말에 쟁자수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아서였다.

분명 세 사람의 재능은 뛰어났다.

그러나 세 명 대 오십 명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이쪽은 굳이 더 안 물어봐도 될 것 같고. 너희 셋은 어때? 참고로 이번에는 모두 내공 사용 금지야. 오로지 육체적인 능력만으로 겨루는 거지.”

“저는 좋아요.”

“재미있을 것 같네요.”

“눈빛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흐흐흐!”

기가 팍 죽어 있던 조금 전과 달리 하나같이 눈을 빛내는 모습에 백휘성이 히죽 웃었다.

이번에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다수와 겨루는 건 처음이었기에 기대도 되었다.

“양측 다 자신감이 대단하네. 서로 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서조운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의 눈에는 양쪽의 생각이 훤히 보여서였다.

동시에 흡족한 마음도 들었다.

완벽하게 깨져서 심리적으로도 무너지지 않았을까 조금 걱정했는데 그게 괜한 걱정임을 알 수 있어서였다.

‘소림사에 뿌리를 둔 표국인데 이 정도 근성은 있어야지.’

패배는 누구나 할 수 있었다.

수많은 무인이 우러러보는 천하십대고수도 언제나 이기는 건 아니었다.

다만 중요한 건 패배한 이후였다.

한 번 졌다고 무너진다면 무인이 될 자격이 없었다.

“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바로 시작해!”

스스슥!

서조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영이 나뉘어졌다.

예유화, 백휘경, 백휘성을 포위하듯이 쟁자수들이 넓게 포위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세 사람은 등을 맞대게 되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이긴다.’

‘혼자서는 무리지만 다 함께 싸우면 가능할지도 몰라.’

쟁자수들이 눈을 번뜩였다.

일대일 대련은 처참하게 발렸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일단 수적으로 훨씬 유리했다.

더구나 공력 사용을 금지했기에 쟁자수들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한 손으로 열 손을 감당하지 못하는 법이지!’

‘굳이 서두를 필요 없어. 차륜전으로 간다!’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뜻이 통했다.

함께한 시간이 제법 길다 보니 이제는 눈빛으로 의견교환이 가능했던 것이다.

다들 생각하는 게 비슷하기도 했고.

그래서 쟁자수들은 포위망을 구축한 상태로 천천히 다가갔다.

“이런 식으로 나온단 말이지.”

“어떡할래?”

“우리는 우리 방식으로 해야지.”

등을 맞댄 채로 세 사람이 말을 주고받았다.

전음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셋은 일부러 육성으로 대화했다.

“실패하면?”

“실패가 무서워서 꼬리를 말자고? 난 그렇게 못 해.”

“안 되면 그때 가서 방법을 찾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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