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1장. 후학양성? -02
부우웅!
있는 힘껏 휘두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묵직한 파공성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면서 빠르기도 했다.
탄탄한 체격에서 느꼈다시피 힘과 속도의 균형이 제법이었다.
하지만 ‘제법’ 정도로는 반호진에게 턱없이 부족했다.
스윽.
전광석화처럼 허공을 찢듯이 떨어져 내리는 검격을 반호진은 오른쪽으로 반 보 움직이는 것으로 피해 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중년인의 검을 피해 낼 정도로만 이동했던 것이다.
“흐읍!”
그 간결한 움직임에 중년인은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팔을 비틀었다.
자신과 반호진의 격차를 생각하면 회피에 성공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니 공격이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할 건 없었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었다.
후우웅!
땅바닥에 거의 닿을 듯 말 듯 떨어졌던 검을 중년인은 사선으로 베었다.
정확히 반호진이 움직인 방향으로 휘둘렀던 것이다.
바닥에 닿기 직전에 방향을 틀었기에 손목과 근육이 비명을 질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게 그로서는 최선이었기에 이를 악물고서 반호진을 노렸다.
탁.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일격이 반호진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사선으로 반호진을 절단시키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섬전 같은 일격에도 중년인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전광석화처럼 파고드는 그의 검을 반호진이 손가락으로 너무 쉽게 붙잡아서였다.
“오오!”
“역시 대단하셔!”
“멋있다…….”
눈으로 좇기도 힘든 속도로 휘둘러지는 검을 너무나 손쉽게 붙잡는 광경에 두 눈을 부릅뜨고서 지켜보던 일급표사들이 탄성을 흘렸다.
가볍게 붙잡는 것도 붙잡는 것이지만 반호진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료에게만 향해 있었다.
즉 보지도 않고 손만 뻗어서 검신을 붙잡은 것이었다.
“끄으응!”
그 광경이 다른 이들에게는 더없이 멋있고 놀라워 보이겠지만 중년인에게는 아니었다.
당사자로서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중년인은 기를 쓰며 오른팔을 움직였다.
어떻게든 잡혀 있는 검을 회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부르르르!
거기에 더 놀라운 건 반호진의 팔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끙끙대고 팔을 비틀어도 검신이 떨리기만 할 뿐 반호진의 팔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스윽.
그사이 반호진의 오른손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왼손의 검지와 중지가 검신을 붙잡고 있었기에 자연스레 오른손을 움직인 건데 그걸 본 중년인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천천히 다가오는 반호진의 오른 손바닥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아서였다.
“흐읍!”
물론 중년인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느리게 다가오는 만큼 반응할 시간은 충분했고, 그 역시 왼손이 남아 있었기에 반호진의 일장을 막기 위해 마주 주먹을 뻗었다.
괜히 똑같이 일장을 날렸다가 손가락 사이로 깍지를 끼게 되면 그대로 붙잡힐 것 같았기에 중년인은 그 짧은 사이에 기지를 발휘해 일권을 내질렀다.
퍼억!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기지는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맞받아칠 듯이 뻗어 오는 중년인의 주먹을 반호진은 미꾸라지가 움직이는 것처럼 손을 움직여 피해 내고는 그대로 지나쳐 복부에 일장을 먹였다.
“커허헉!”
눈에 뻔히 보이지만 피할 수 없는 일격에 직격으로 당한 중년인이 고통 가득한 신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꼴사납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진기를 싣지 않았음에도 제대로 들어간 일격이다 보니 충격이 큰 것이었다.
스으윽.
하지만 반호진의 공격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중년인이 뒤로 넘어가는 것과 동시에 붙잡고 있던 검신을 놓아 버리고는 그대로 전방을 향해 몸을 날리며 발을 뻗었다.
정확히 중년인의 턱밑을 노리고서 발끝을 들어 올렸다.
부웅!
때리는 게 아니라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반호진의 발이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그리고 중년인의 몸도 덩달아 허공으로 유려하게 떠올랐다.
반호진의 의도대로 무기력하게 붕 떴던 것이다.
퍼퍼퍼퍽!
그와 동시에 반호진의 왼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꽃이 만개하듯 수십 번 움직이며 중년인의 전신을 두들겼다.
“커헉! 켁! 끄억! 꺽!”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파상공세에 중년인의 입에서 끊임없이 신음 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람이 낼 수 있는 거의 모든 신음을 냈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중년인이 순순히 당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나름 저항을 했으나 안타깝게도 반호진의 눈에는 모든 수가 다 보였다.
“어후…….”
“진짜 아무것도 못 하네.”
“게다가 포기도 못 해.”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는 동료의 모습에 일급표사들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중년인의 모습이 자신의 미래였기 때문이다.
뼈가 부러지거나 내상을 입지는 않겠지만 그 못지않은 고통을 느낄 게 뻔하기에 다들 얼굴이 창백해졌다.
“으으으……!”
그러는 사이에도 중년인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하나 온몸에서 느껴지는 고통보다 더 그를 힘들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이 시간을 끝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반호진이 결정하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네.’
서서히 동공이 풀려 가기 시작하는 중년인의 모습에 반호진이 속으로 씨익 웃었다.
지금부터가 어떻게 보면 진짜 훈련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어서였다.
반호진은 결코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몰아붙인 게 아니었다.
지금처럼 극한으로 몰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절정의 벽. 물론 높지. 괜히 첫 번째 시련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니까.’
검기상인이 일류무사의 상징이라면 강사(罡絲)는 초일류, 그리고 절정은 검기성강이었다.
검기가 극도로 압축되어 만들어지는 게 바로 강기(罡氣)였다.
그런데 웃긴 건 이 사실을 모든 무인이 알고 있는데도 성공하는 이는 소수라는 점이었다.
더 웃긴 건 절정의 벽을 넘는 데 엄청난 깨달음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었고.
‘검기성강을 이루는 건 머리가 아니라 몸이거든.’
머리로는 무림에 존재하는 모든 무인들이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절정의 벽을 넘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넘을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였다.
그래서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었고.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깨달음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자신만의 방법을 알아야 했다.
퍼퍼퍼퍽!
멍한 표정으로 두들겨 맞고 있는 것과 달리 중년인의 몸은 미약하지만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무기력하게 맞고만 있지 않았다.
나름 최선을 다해 저항하고 피하려고 애썼다.
몸에 각인된 무공이 반호진의 공격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무식하지만 때론 이런 방법이 정공법이기도 하니까.’
싸우는 도중에 경지가 상승하는 경우가 바로 이런 경우였다.
머리가 아니라 몸이 상승의 경지로 이끄는 경우.
물론 흔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없는 것도 아니었기에 반호진은 여기에 기대를 걸었다.
초일류의 경지라는 건 달리 말하면 계기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절정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걸 뜻했으니까.
다만 그 계기라는 게 사람마다 다 달랐지만 적어도 손 놓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금처럼 처절하게 움직이는 게 나았다.
‘실패하더라도 나와의 대련이라는 경험은 얻으니까.’
탁 까놓고 얘기해서 일급표사들에게는 나쁠 게 없었다.
벽을 넘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고, 실패해도 소림검신과의 비무라는 소중한 경험이 남았다.
비록 지금 당장 절정의 벽을 무너뜨리진 못해도 이 비무가 거름이 되어 나중에 절정고수가 될 수도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남는 장사지.’
털썩.
중년인이 뒤로 넘어갔다.
완전히 탈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손에서 검을 놓치지 않은 모습에 반호진이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른 분이 데려가 주시겠습니까?”
“예! 제가 하겠습니다!”
중년인과 친한 사이인 듯 말이 끝나기 무섭게 키가 상당히 큰 사내가 뛰어왔다.
다른 일급표사들에 비해 머리가 하나는 더 클 것 같은 사내였는데 큰 키에 비해 체형이 호리호리해서 이상하게 말라 보였다.
“두 번째는 저입니다.”
“준비하시죠.”
키 큰 사내가 기절한 중년인을 데리고 연무장의 가장자리에 가서 눕히자 묵직한 발소리와 함께 장한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중년인을 데려간 사내와는 전혀 다른 체형의 소유자였는데 키가 작은 대신 골격이 컸다.
“저는 준비되었습니다.”
차돌을 연상케 할 정도로 단단하고 두꺼운 체구의 장한이 부리부리한 눈으로 대답했다.
다른 이들과 달리 전혀 겁먹지 않은 기색에 반호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차합!”
이미 선례가 있었기에 장한은 힘찬 기합성과 함께 반호진에게 달려들었다.
앞서 있었던 비무에서 반호진이 중년인이 가지고 있는 내공만큼만 사용한다는 걸 알았기에 장한은 내심 자신이 있었다.
공력이 비슷하다면 근력에서 자신이 무조건 앞선다고 생각해서였다.
속도와 경신술이 신통치 않지만 대신 그에게는 단단한 몸이 있었다.
‘똑같이 한 대 때리면 내가 유리하다!’
공력이 똑같다는 게 모든 것이 동등하다는 걸 뜻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장한은 자신이 있었다.
맷집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만큼 똑같이 공격을 주고받는다면 그가 유리했다.
퍼어엉!
그래서 장한은 반호진의 일장을 피하지 않았다.
순수한 힘의 싸움이라면 자신이 절대 뒤질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더구나 근접박투는 그가 가장 잘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대로 밀어붙인다!’
반호진이 얼마나 대단한 무인인지는 장한도 잘 알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자신이 좀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체력과 달리 근력은 태생적으로 타고나는 것이기에 늘리고 싶다고 해서 늘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헉!”
한데 그 생각이 충돌과 직후 모래성처럼 허물어졌다.
그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왜소한 체격의 반호진이 밀리기는커녕 오히려 밀어내서였다.
굳건히 제 자리를 지키는 반호진과 달리 장한의 몸은 붕 떠올랐다.
충돌로 인한 충격으로 두 발이 지면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쿠웅!
그러나 체공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무래도 체중이 꽤 나가는 만큼 떠오른 높이가 그리 높지 않아서였다.
순간적으로 천근추의 수법을 펼치기도 했고.
허공에 떠 있으면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었기에 장한은 황급히 바닥에 착지한 후 연달아 쌍권을 내질렀다.
퍼엉! 퍼어엉!
한 번은 운일 수도 있기에 장한은 그걸 확인하기 위해 연속적으로 정권을 꽂았다.
두 번 연속은 절대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반호진은 그의 쌍권을 가볍게 받아 냈다.
흘리거나 피한 게 아니라 정면으로 받아 냈던 것이다.
‘어, 어떻게……!’
그 모습에 장한의 두 눈이 더 이상 커지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누가 봐도 근력은 압도적으로 그가 우위에 있는데 한 치도 밀리지 않는다는 게 장한은 믿기지가 않았다.
“근력이 뛰어나다면 유리한 게 사실이지만 승패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요인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상대보다 조금 더 유리할 뿐이지요. 중요한 건 가지고 있는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입니다.”
장한의 생각대로 근력은 그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었다.
반호진이 무슨 수를 써도 뒤집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몸의 균형과 무게중심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자신보다 강한 힘이 실린 일격을 받아 낼 수 있었다.
터엉!
거기에 타점을 비틀어 버리는 수법까지 사용하면 더더욱 수월하게 받아 내는 게 가능했다.
물론 모든 무인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경험이 많은 노련한 이들만 가능했다.
“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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