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1장. 후학양성? -01
황매향이 날카로운 눈으로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봤다.
외부에서 훈련을 받으러 온 게 처음이지만 그렇다고 어설프게 일을 해서는 안 되었다.
무상문의 위신을 위해서라도 완벽을 기해야 했다.
실수는 있을 수 있지만 절대 반복되어서는 안 되었다.
“예!”
“정말?”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서 최대한 외웠습니다!”
괜히 완벽하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실수하면 엄청난 잔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아이 중 한 명이 먼저 선수를 쳤다.
하도 당하니 이제는 한마디 말도 조심하게 된 것이었다.
“노력한 건 당연한 거야. 중요한 것은 실수하지 않는 거지. 차라리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봐. 괜히 혼자서 판단하지 말고. 알았어?”
“예!”
“다시 한번 말하는데, 문주님께 누를 끼치면 안 돼.”
황매향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해이한 것보다는 차라리 긴장한 게 나았기에 아이들을 바짝 휘어잡았다.
“든든하네.”
“문주님!”
기척도 없이 다가온 반호진의 등장에 황매향이 화들짝 놀랐다.
그리고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러운 반호진의 등장에 아이들은 반사적으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부총관. 애들을 얼마나 잡은 거야?”
“그, 그게…….”
“너무 긴장할 거 없어. 처음이잖아. 서투른 게 당연하지. 그렇다고 부총관 말도 틀린 건 아냐.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되지. 근데 시행착오를 겪는 건 당연한 거니까 너무 나무라지는 마.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어. 다 이리 깨지고, 저리 깨지면서 노련해지는 거지.”
“명심하겠습니다.”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부담감 갖지 말고.”
반호진은 황매향의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가장 나이가 많다지만 황매향 역시 아직은 어린 편이었다.
하오문에서 일을 배웠다고 하나 부총관의 역할을 하는 건 처음이기에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또 배워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시간만이 해결해 주는 일이었기에 반호진은 지적을 하거나 독촉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가, 감사합니다.”
“너희들도 마찬가지고. 다만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써 주었으면 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살짝 감동한 황매향과 달리 남자아이들은 우렁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언제 접근했는지 일동이, 이동이, 삼동이들도 힘차게 짖었다.
자신들이 직접 소년들을 관리감독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 모습에 반호진은 실소를 흘렸다.
“거기에 우리도 있으니까.”
“저희가 바로 훈련교관입니다. 자기 일 하느라 바쁜 조운이 녀석과는 완전히 다르죠.”
반호진의 곁으로 선우방과 모용척이 다가왔다.
그동안 개인 수련만 하며 호의호식했으니 이제는 그 빚을 갚을 차례였다.
“나야 도와주면 감사하긴 한데 괜찮겠어?”
“밥값은 해야지. 그리고 우리도 아무 생각 없이 도와주겠다고 한 건 아니야.”
“맞습니다. 방이 형이나 저나 나중에 가주가 될 몸이지 않습니까. 그때가 되면 가솔들에게 무공을 가르쳐야 할 텐데 그걸 미리 경험해 보는 거죠. 청림표국이나 모용세가나 똑같이 아이들이 미래이지 않습니까.”
선우방과 모용척의 말에 반호진은 미약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듣고 보니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어서였다.
다만 고급인력이라는 생각은 여전했다.
“조운이랑 의성이도 중간중간 합류하기로 했어.”
“유화랑 휘경이, 휘성이도요. 세 아이가 아주 큰 자극이 될 겁니다. 쟁자수들에게는요.”
모용척이 히죽 웃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주 악동 같은 미소였다.
“안 됐다.”
“불쌍하다.”
모용척의 말에 아이들이 소곤거렸다.
눈치 빠른 아이들답게 모용척의 꿍꿍이속을 단박에 알아차린 것이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고맙기는. 너에게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옳은 말씀입니다.”
선우방과 모용척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개인 시간을 내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희생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예 무의미한 시간도 아니었고.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
“언제부터 시작할 거야?”
“바로. 두 사람도 알다시피 적이 우리 사정을 생각해 주지는 않잖아?”
반호진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여독이 있을 수 있으나 무인들과 마찬가지로 표사들 역시 언제나 최상의 상태에서 싸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또한 놀러 온 게 아니라 엄연히 가르침을 받기 위해 온 것이니만큼 반호진은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미 방현승과 얘기가 되어 있기도 했고.
“역시 준비하고 오기를 잘했네.”
“제가 예상했었지요. 무슨 일이든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요. 한번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으니.”
모용척의 두 눈이 살벌하게 빛났다.
더 이상 허송세월을 보내던 게으른 천재는 없었다.
누구보다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알게 되었기에 모용척은 자신의 깨달음을 후배들에게도 친히 전수해 줄 생각이었다.
“가자.”
“그래.”
“예.”
우청룡, 좌백호처럼 반호진은 선우방, 모용척을 이끌고 숙소로 향했다.
그런 세 사람의 뒤로 황매향과 아이들이 뒤따랐다.
반호진이 바로 시작한다고 했으니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도착하자마자 연무장에 집결한 청림표국의 일급표사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부동자세를 취했다.
갑작스러운 호출이었으나 불만을 표하는 이는 없었다.
심지어 가장 어린 막내보다도 반호진이 어렸으나 누구 하나 앞에 서 있는 반호진을 만만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이는 어려도 청림표국주인 방현승과 대표두 중 한 명인 방일석과 같은 배분이었고, 실력으로 따지자면 감히 두 사람도 반호진에게 비빌 수 없었다.
“갑자기 집결을 시켜서 다들 당황하셨을 겁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반호진이 입을 열자 서른세 명의 일급표사들이 크게 대답했다.
지금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너무나 잘 알았기에 다들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그리고 한참이나 어린 반호진을 경외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지금 제 눈앞에 계신 서른세 분은 청림표국에서 고르고 고른 인재라고 들었습니다. 또한 사적으로는 사형이신 방현승 표국주님께서 저에게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부디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고요.”
꿀꺽!
별거 아닌 설명이었으나 서른세 명은 동시에 마른침을 삼켰다.
담담하게 말했음에도 상관인 방현승의 간절한 마음이 전달되어서였다.
지금의 자리를 만들기까지 방현승이 얼마나 노력했을지 짐작할 수 있기에 서른세 명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일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가 온 만큼 어떻게든 이번 기회를 단단히 붙잡을 생각이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표국주님과 무상문주님께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열망과 의지가 들끓는 목소리로 일급표사들이 포효하듯 소리쳤다.
나이는 각기 달랐으나 품고 있는 의욕은 똑같았다.
그런데 단단히 각오한 일급표사들의 모습에도 반호진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좋습니다. 그 각오를 살려 바로 훈련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말씀이십니까?”
“예.”
일급표사들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소개도 하지 않고 곧바로 훈련에 들어갈 줄은 몰라서였다.
“무인은 무공으로 대화하는 법이죠. 싫으신 분은 처소로 돌아가시면 됩니다.”
“아닙니다!”
편한 대로 하라고 반호진이 말했으나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피곤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여기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더욱이 무림에서 검신이라 불리는 반호진의 가르침이었기에 다들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한 명씩 저와 비무를 하면 됩니다. 순서는 알아서 정하시면 되고요.”
경청하던 일급표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대뜸 비무부터 한다는 말에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일급표사들에게서는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렇게 빨리 일대일 비무를 하게 될 줄은 몰라서였다.
그래서인지 의논하는 일급표사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졌다.
‘슬슬 시작했으려나.’
서서히 조율되어 가는 대화를 들으며 반호진은 기감을 움직였다.
쟁자수들을 이끌고 뒷산으로 간 선우방과 모용척이 단련을 잘 시키고 있나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우선은 가장 기초적인 체력단련부터 시작하기로 했기에 딱히 특별한 건 없지만 그래도 반호진은 궁금했다.
청림표국이 기대하는 쟁자수들의 체력 수준이.
‘흐음. 심각한데.’
두 눈으로는 여전히 순서를 정하지 못한 일급표사들을 주시하며 반호진은 미간을 좁혔다.
생각했던 것보다 쟁자수들의 체력이 형편없어서였다.
아무리 청림표국에서 이곳까지 오느라 여독이 남아 있는 상태라고 하나 그럼에도 실망스러웠다.
표사와 마찬가지로 쟁자수들 역시 표행을 나가야 하기에 체력은 기본인데 그런 것치고 너무 부족했다.
‘많이 굴려야겠는데.’
반호진은 턱을 쓰다듬었다.
자고로 어떤 일이든 체력이 좋아서 나쁠 건 없었다.
장점이면 장점이었지.
더구나 쟁자수라면 체력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기에 반호진은 이따가 선우방과 모용척에게 할 말을 머릿속에서 정리했다.
“저어. 저부터 부탁드리겠습니다.”
쟁자수들이 지옥훈련이라고 울부짖을 훈련계획을 머릿속으로 거의 다 짰을 때 사십 대 안팎으로 보이는 탄탄한 체구의 중년인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딱 봐도 상념에 잠겨 있는 듯했기에 눈치를 보다 겨우 말을 꺼낸 것이었다.
“바로 시작하지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키는 큰 편이 아니었으나 대신 몸이 한눈에 보기에도 탄탄해 보였다.
외공을 놓지 않고 꾸준히 한 몸이라고나 할까.
거기다 짙은 갈색의 피부는 중년인이 얼마나 열심히 표행을 다녔는지 간접적으로 알려 주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건 어떻게 살아왔느냐가 아니라 실력이었다.
스슥!
그리고 반호진은 비무에 대충 임할 생각이 없었다.
돈을 받고 일하는 것이니만큼 보수가 아깝지 않게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헙!”
시작하자마자 쇄도하는 반호진의 모습에 중년인은 물론이고 적당히 거리를 벌리고서 지켜보던 다른 일급표사들도 깜짝 놀랐다.
당연히 선수를 양보할 줄 알았는데 먼저 달려들어서였다.
쉬이익!
눈 깜짝할 사이에 코앞까지 다가온 반호진이 손을 뻗었다.
실력 차이가 확연한 만큼 검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호진의 실력이 어디로 가는 건 아니었다.
벼락같은 속도로 파고드는 일수에 중년인은 반사적으로 청강검을 들어 올렸다.
따아아앙!
명치를 노리고서 파고드는 반호진의 일장을 중년인은 가까스로 막았다.
검면으로 반호진의 일장을 받아 냈던 것이다.
“커헉!”
그렇지만 완벽하게 막아 내지는 못했다.
검을 통해 전달되는 충격을 해소하지 못하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털썩.
순식간에 네다섯 바퀴를 구른 중년인이 바닥에 대(大) 자로 뻗었다.
공력을 사용했음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손목을 시작으로 오른팔 전체가 얼얼했다.
충돌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었다.
“일어나시죠.”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중년인이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반호진이 입을 열었다.
쓰러졌다고 해서 이대로 비무를 끝낼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반호진의 목소리는 싸늘했다.
사람이라면 단박에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는 음성에 중년인이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부터의 비무는 제가 끝내겠다고 할 때까지 끝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각오 단단히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예.”
빈말이 아니라는 걸 표정과 눈빛으로 알 수 있었기에 중년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포기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를 악물었다.
절정의 벽을 넘기 위해 이곳에 온 만큼 중년인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할 작정이었다.
“가겠습니다.”
“흐읍!”
반호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중년인이 땅을 박찼다.
이번에는 그가 먼저 움직인 것이었다.
선수를 빼앗기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확실하게 알았기에 중년인은 젖 먹던 힘까지 전부 다 끌어 올리고서 반호진에게 검을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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