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275화 (275/468)

제 90장. 모두 함께. -01

몸을 돌린 반호진은 그대로 방을 나섰다.

이윽고 방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실내에는 유호량만 남게 되었다.

꿀꺽!

혼자만 남게 된 유호량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반호진이 남겨 놓고 간 서책의 첫 장을 넘겼다.

한데 첫 장의 첫 문단을 읽은 유호량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

“안녕하세요!”

“그래. 둘 다 아침은 먹었고?”

“옙!”

누가 쌍둥이 아니랄까 봐 동시에 똑같이 대답하는 두 소년을 보며 반호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직 한창 자랄 때라서 그런지 둘 다 아주 힘이 넘쳤다.

“불편한 건 없고?”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엄마를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겨우 열세 살인 쌍둥이 형제가 거의 절을 하듯이 허리를 숙였다.

과해도 너무 과한 모습에 반호진은 한숨을 내쉬며 이번에도 무형지기를 일으켜 두 형제를 세웠다.

“우와!”

“우리도 언젠가는 가능하겠지?”

“너희들 일부러 무형지기를 느끼려고 이러는 거지?”

반호진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제는 눈치껏 적당히 할 때도 되었는데 매번 이러는 게 그는 의심이 되었다.

“아니에요!”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

“그래. 제발 그 말 좀 지켰으면 좋겠구나.”

“이 녀석들! 또 말썽 피웠지!”

그때 멀리서 서조운이 고성과 함께 바람처럼 달려왔다.

반호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걸 보고 헐레벌떡 달려온 것이었다.

그런데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평소의 서조운답지 않게 엄한 눈으로 백휘경, 백휘성 형제를 노려봤다.

“아, 아닌데요.”

“정말이에요! 아무 말썽도 안 피웠어요!”

“기껏 살려 놨더니…….”

변명하듯 말하는 쌍둥이 형제의 모습에 서조운이 이마를 짚었다.

애써 살려 놨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늘 그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성격은 착한데 둘 다 사고뭉치였다.

호기심이 얼마나 많은지 사고를 안 치는 날이 없었다.

“안 되겠다. 너희들은 당분간 나랑 같이 다녀야겠어.”

“헉!”

“누, 누나!”

서조운에 이어 다가 온 예유화가 서릿발 같은 눈빛으로 두 형제를 차례대로 바라봤다.

그러자 쌍둥이 형제가 바짝 얼었다.

서조운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건 예유화였다.

아예 말이 통하지가 않았기에 두 형제는 세상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은 것처럼 절망한 표정을 지었다.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우, 우리는 잘못한 거 없는데……!”

“진짜야! 얘나 나나 잘못한 거 없어!”

“얘?!”

두 눈을 부릅뜨는 예유화의 모습에 흠칫하던 두 소년이 이내 서로를 노려봤다.

동생인 백휘성이 얘라고 말하자 백휘경이 분노한 것이었다.

하지만 째려보는 백휘경의 눈빛에도 백휘성은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백휘경을 마주 노려봤다.

“가지가지 한다. 둘 다 따라와!”

“으아악!”

“누, 누나! 이건 놓고 말해 줘!”

쌍둥이 형제의 한쪽 귀를 잡고서 예유화가 연무장의 구석으로 향했다.

늘 그랬지만 이번에도 단단히 태도교육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두 형제는 폭풍 잔소리라고 칭했지만 서조운이 보기에는 녀석들이 매를 벌고 있었다.

“아침부터 혈기왕성하네.”

“눈치를 심하게 보던 처음이 가장 나았던 것 같아요.”

“무슨 소리야. 아이는 아이다워야지. 어머님은 오히려 좋아하시더만. 매일 고통스러워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그건 그렇긴 한데.”

서조운이 말끝을 흐렸다.

건강한 것도 좋지만 그래도 정도라는 게 있었다.

그러나 쌍둥이 형제는 아직 그걸 몰랐다.

“아직 어리잖아. 유화가 잘 가르치겠지.”

“유화도 겨우 열여섯밖에 안 됐지만요.”

“두 녀석보다는 많잖아. 유화에게 꼼짝도 못 하고. 그럼 됐지. 그보다 어머님께 슬쩍 물어보긴 했어?”

반호진이 예유화의 잔소리에 점점 더 어깨가 낮아지는 두 형제를 보며 물었다.

매번 혼나면서도 저러는 게 반호진은 신기했다.

“예. 근데 남편을 찾고 싶어 하지 않으시더라고요.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겠으나 찾을 수 있다고 했는데도요.”

“떠난 남자를 굳이 찾지 않겠다는 건가.”

“제가 보기에는 그런 것 같아요. 남편이 없어도 두 아이가 있으니 그걸로 만족하시는 것 같고요.”

“우리야 자세한 사정은 모르니까. 어머님께서 원치 않으신다면 어쩔 수 없지.”

“저도 형님하고 같은 생각이에요. 굳이 싫다는데 억지로 찾는 것도 좀 그렇죠. 저 말썽쟁이들도 딱히 아빠를 보고 싶어 하지 않고요.”

밝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는 게 백휘경, 백휘성 형제였다.

그걸 알기에 서조운은 도와주려고 했는데 정작 두 형제는 거절했다.

“아이들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야. 나라고 해도 비슷한 선택을 했을 테니까. 근데 생각이라는 게 시시각각 바뀌니까. 지금은 버려졌다는 생각에 분노심만 있지만 나중에는 또 달라질 수 있거든.”

“맞습니다.”

“그러니 대비는 좀 해 놓자고. 굳이 찾아볼 필요는 없지만 대략적으로 알아 둬서 나쁠 건 없잖아? 나중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찾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정보가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게 훨 편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해 놓겠습니다.”

서조운 역시 반호진과 같은 생각이었다.

핏줄이라는 게 생각하는 것보다 더 끈끈하기도 했고.

지금은 거부해도 나중에는 생각이 달라질 수 있기에 서조운은 비밀리에 알아보기로 했다.

“형님.”

“의성이구나.”

“네. 여기 두 명은 본가의 가솔들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영광입니다!”

사마의성과 함께 온 두 명의 청년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깍듯하게 포권을 해 왔다.

소림검신과의 대면에 잔뜩 긴장한 것이었다.

“반갑습니다. 의성이를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온몸을 바쳐 충성하겠습니다!”

별거 아닌 말에도 기합이 바짝 들어가 있는 모습에 반호진은 실소를 흘렸다.

처음에는 이런 반응이 어색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앞으로 여기 두 사람에게 정문을 맡길까 해요.”

“이분들에게?”

“네. 실력은 조금 부족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안 그래도 되는데.”

“불편하실까요?”

사마의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상문을 위해서 말했으나 반호진의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수도 있었다.

주제넘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기에 사마의성은 반호진의 눈치를 살폈다.

“왜 불편해. 날 위해서 한 말인데. 근데 괜찮겠어?”

반호진이 많은 의미를 함축시켜서 물었다.

엄밀히 따지면 앞에 있는 두 사람은 무상문의 사람이 아니라 사마세가 소속이어서였다.

두 사람 입장에서는 충분히 마음이 상했을 수도 있기에 반호진은 바로 그 점을 짚었다.

“저희는 괜찮습니다!”

“머물게 해 주셨는데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마의성에게 물었는데 대답은 두 사람에게서 나왔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둘 다 곧바로 대답했으나 반호진의 시선은 여전히 사마의성에게 향해 있었다.

“저희는 정말 괜찮습니다. 제가 강요하지도, 압박하지도 않았고요. 사실 말은 두 사람이 먼저 꺼냈습니다.”

“가주님을 위한다는 사적인 이유도 조금 있습니다. 알게 모르게 모두가 피해를 받고 있고, 그중에는 저희 가주님도 계시니까요.”

둘 중 좀 더 선한 인상의 청년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어떤 이들은 희생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적어도 그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농담처럼 밥값을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안에는 진담도 절반 정도는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까지 말하신다면야.”

“감사합니다.”

“감사는 제가 해야지요. 저 역시 방법을 찾아볼 터이니 당분간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마세가의 가솔이라고 하나 무림에서 알려진 인물도 아니었고 무공실력 또한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중하게 대해 주는 반호진의 모습에 두 청년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무리하지는 마시고요.”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저희는 지금부터 바로 일을 시작하겠습니다.”

반호진이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둘은 깍듯하게 허리 숙여 인사한 후 정문으로 향했다.

바로 문지기 업무를 하기 위해서였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하네.”

“미안하시다니요. 제가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딱히 큰일도 아니고요.”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지. 개인 시간을 그만큼 뺏는 것이니까.”

“미리 경험한다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나중에 본가를 재건하면 문지기도 필요하니까요.”

“말은 잘해.”

능청스럽게 대답하는 사마의성의 모습에 반호진은 피식 웃었다.

결론이 이렇게 날 줄은 몰라서였다.

“전 이만 물러날게요.”

거기에 사마의성은 들어올 때와 물러날 때를 귀신같이 잘 알았다.

얘기가 끝나기 무섭게 자신의 처소로 되돌아갔던 것이다.

“그럼 우리는 우리의 일을 시작해 볼까?”

“예!”

사마의성이 떠나자 반호진은 연무장의 한쪽으로 이동했다.

황매향과 곽춘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말이다.

순서를 기다리듯 정렬해 있는 그들을 보며 반호진은 뒷짐을 지고서 씨익 웃었다.

하나같이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어서였다.

“몸이 좀 안 좋다 싶은 사람은 빠지고. 건강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몸이 아프면 안 되잖아?”

“모두 괜찮습니다!”

“저희도 괜찮아요.”

기합이 단단히 들어가 있는 곽춘과 소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황매향과 소녀들은 차분했다.

하지만 열정은 남자아이들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운기토납법은 아침저녁으로 꾸준히 하고 있지?”

“예!”

“축기가 많이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반복하면 무병장수에 큰 도움이 되니까 빼먹지 말고. 그럼 체조부터 시작하자.”

무공을 가르쳐 주기로 했지만 반호진은 처음부터 상승절학을 가르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가르친다고 한들 다 소화할 수 있지도 않았고.

괜히 대문파, 명문세가들이 기본공에 공을 들이는 게 아니었다.

기초가 탄탄해야 무공이 제 위력을 발휘하기에 반호진은 기본 중의 기본인 운기토납법부터 시작했다.

“하압!”

“흡!”

거기에 몸을 풀기 위한 체조와 체력단련, 그리고 기초적인 무공초식들을 가르쳤다.

실전용이 아닌 엄연히 몸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둔 초식과 투로였다.

그걸 아이들 역시 잘 알고 있었음에도 누구 하나 허투루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익혀서 자신들이 손해 볼 게 없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여기서 더 잘하면 수준 높은 무공을 배울지도 몰라!’

‘나에게도 재능이 있을지 모르니까. 그럼 나도 무림고수가 될 수 있어!’

기초 중의 기초였으나 무인에게 있어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이는 없었다.

특히나 남자아이들의 경우 무림인이 되고 싶었기에 열의가 대단했다.

반면에 여자아이들의 경우 순수하게 건강증진의 목적으로 수련에 참여했다.

‘확실히 차이가 나긴 해. 시작점이 다르기도 하고.’

친구들이 조금은 허황된 꿈을 꾸고 있을 때 곽춘은 반대쪽 연무장에서 서조운과 함께 초식을 반복하고 있는 홍안(紅眼)의 쌍둥이 형제를 바라봤다.

두 눈뿐만 아니라 얼굴 형태와 체격도 그나 친구들과는 많이 달랐다.

색목인(色目人)의 혼혈답게 눈에 확 띄는 외양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저게 재능인가…….’

삼양절맥이라는 절맥을 앓으며 죽어 가다가 서조운을 만나 기사회생한 게 백휘경, 백휘성 형제였다.

그러나 곽춘에게는 죽다 살아났다는 것보다 눈부신 재능이 먼저 다가왔다.

그와 나이가 같음에도 쌍둥이 형제의 움직임은 흔한 말로 격이 달랐다.

심지어 쌍둥이 형제를 괴롭히던 극양지기는 전화위복이 되어 지금은 두 사람의 탄탄한 기반이 되었다.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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