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273화 (273/468)

제 89장. 답은 늘 가까이에. -02

난희주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아직 대대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하오문만은 이상한 기류를 감지하고 있었다.

“심상치 않다는 게 무슨 말이야?”

“우리도 정확하게 파악은 하지 못했는데 몇몇 사도문파들의 수장들이 꽤 빈번하게 모임을 가지고 있어.”

“모임이라.”

“시기적으로 수상할 수밖에 없잖아? 나름 거물급이라 불리는 이들이 자주 모인다는 게.”

“확실히 그렇기는 하네.”

반호진은 턱을 쓰다듬었다.

대국적으로 보면 중원의 사도무림이나 마도무림에 기회가 온 게 맞았다.

강호를 거의 지배하던 백도무림의 힘이 새외무림과의 전쟁으로 확연히 약해졌으니까.

다만 천하사패 이후의 미래에 대해서 반호진은 전혀 알지 못했기에 무엇 하나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막 전쟁이 발발할 것 같다는 건 아니고. 그냥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걸 오빠한테 알려 주려는 거야.”

“고맙네.”

“이 정도 가지고 뭘. 게다가 우리는 오빠한테 잘 보여야 하잖아? 사부님께서도 신신당부하셨다고.”

“하오문의 입장이 애매해질 텐데?”

“전혀. 우리는 정사중간이지만 그렇다고 사파는 아니야. 정파도 아니지만.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우리의 이득만 생각해.”

난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몇몇 사람들은 하오문을 박쥐에 빗대지만 하오문의 입장에서는 어느 쪽도 믿을 수 없기에 양쪽에 한 다리씩 걸쳐 놓을 게 최선이었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게 승리라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생존이었다.

그리고 생존이야말로 하오문이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었다.

“확실히 그러면 손해는 안 보지.”

“그리고 더 이상 과거의 하오문이 아니기도 하고.”

“이야. 자신감 넘치는데?”

“그럴 만한 전력을 갖추었으니까.”

난희주의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맺혔다.

아직 만족할 만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더 이상 무력한 하오문은 없었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꿀릴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

“보기 좋네.”

“다 오빠 덕분이야.”

“그건 아니고. 어느 정도 일조하기는 했지만. 하오문이 잘한 거지. 그래서 언제 떠나려고?”

“이별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하잖아. 오늘 저녁에 출발할 거야.”

“건강 잘 챙기고.”

보통은 아침 일찍 출발하지만 하오문이라면 저녁에 떠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미리 작별인사를 했다.

“오빠도.”

“나야 건강한 거 빼면 시체라.”

“여자 조심하고. 여자는 다 여우니까.”

“그것도 걱정할 것 없고.”

한마디도 지지 않는 반호진의 모습에 난희주가 웃었다.

반호진답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녀는 진심이었다.

***

“으음.”

옅은 신음 소리와 함께 유호량은 눈을 떴다.

그러자 낯선 천장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벌떡!

그걸 자각하자마자 유호량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동시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곳이 어디인지 살펴봤던 것이다.

“객잔은 아닌 것 같은데…….”

대개의 객잔은 결코 침상이나 모포가 이렇게 깨끗하지 않았다.

좋은 냄새가 나지도 않았고.

악취까지는 아니었으나 대부분 퀴퀴한 냄새를 은은히 풍겼는데 지금 그의 몸을 덮고 있는 모포는 달랐다.

햇살에 잘 말린 듯한 냄새가 났기에 유호량은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객잔의 객실이 아님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시간도 늦었고.”

한쪽만 열린 창문을 통해 깜깜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전력을 쏟아부은 만큼 기절한 시간이 꽤 길었던 것 같았다.

“그나저나 검신과의 비무라니. 믿기지가 않네.”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오자 유호량은 실소를 흘렸다.

반호진과 비무를 한 게 그는 꿈처럼 느껴졌다.

바라마지 않던 일이긴 하나 상대가 반호진이기에 크게 기대를 하진 않았었다.

천하를 호령하는 반호진과 달리 그는 보잘것없는 무인이었기 때문이다.

“처참하게 발리기는 했으나.”

반호진과의 비무를 떠올리며 유호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자신이 이길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걸 알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패배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 다시 시작하면 돼. 더 높은 경지에 오르는 건 지난하지만 체력은 얼마든지 늘릴 수 있어.”

유호량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장 최절정의 경지에 오르는 건 불가능했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체력은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시킬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기도 하고.”

어쩌면 그래서 게으름의 유혹에 빠졌는지도 몰랐다.

가장 자신 있기에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론 그건 정말 크나큰 착각이었다.

무공수련에 적당히라는 말은 있을 수 없었다.

스륵.

단순히 지쳐서 기절한 것이었기에 유호량은 침상에서 내려왔다.

내상을 입은 것도 아니니 정신을 차린 김에 바로 체력단련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비무로 인해 머리가 복잡하기도 하고.

그의 문제는 체력만 있지 않았다.

휘이이잉!

봄이 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밤바람은 서늘했다.

근데 그게 유호량에게는 좋았다.

찬바람에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이다.

“후우. 그럼 시작해 볼까.”

가벼운 체조로 몸을 개운하게 푼 유호량은 애병을 뽑았다.

그러고는 지금까지 수련한 무공초식을 하나씩 펼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순서대로, 그다음에는 마음 가는 대로 뒤죽박죽 섞어서 펼쳤다.

하지만 단순히 투로에만 맞게 휘두르지 않았다.

스으윽! 쌔애애액!

점점 더 빠르게 휘두르거나 아니면 아예 속도를 죽이고서 느리게 펼쳤다.

완급조절이 얼마나 중요한지 반호진과의 비무로 깨달았기에 유호량은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해서 도무(刀舞)를 추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몸을 움직였지만 유호량은 알고 있었다.

단순히 노력만 해서는 절대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익히고 있는 것보다 더 뛰어난 상승절학이 필요해.’

서른다섯의 나이에 절정고수가 된 건 결코 느린 게 아니었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에나 절정고수가 발에 치일 정도로 많지 중원 전체에서 놓고 보면 절정고수의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특별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찾아보면 유호량 정도 되는 무인이 널렸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꾸욱.

그 사실을 떠올리며 유호량은 도파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해결책을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상승절학이라는 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유호량이 할 수 있는 건 딱 한 가지뿐이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무공초식을 계속 반복하는 것 말이다.

후우우웅!

초식의 이해도와 숙련도를 쌓으면서 유호량은 동시에 체력도 단련했다.

도법이라고 해서 팔만 휘두르는 게 아니었다.

보법도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펼쳐야 하는 만큼 전신훈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유호량은 일거삼득을 노렸다.

“헉! 헉! 헉!”

물론 노린다고 해서 원하는 게 바로 얻어지지는 않았다.

체력이라는 게 단기간에 확 늘어나는 것도 아니었고.

그 결과 유호량은 도무를 추기 시작한지 한 식경 만에 땀이 흥건한 모습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내상이 없다지만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니실 텐데.”

“무, 문주님!”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숨을 고르던 유호량이 화들짝 놀랐다.

어둠 속에서 반호진이 모습을 드러내서였다.

강호에서의 위상과 달리 평범하기 짝이 없는 흑의무복을 입고서 터벌터벌 걸어오는 반호진의 모습에 유호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많이 답답하신 모양입니다.”

“……그것도 있지만 무상문주님께 너무 못난 모습을 보인 것 같아서 그게 좀 부끄러웠습니다.”

“어째서 부끄러워하십니까? 유 대협은 최선을 다하시지 않았습니까. 저는 그것만으로도 유 대협이 충분히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협이라니요. 가당치도 않습니다.”

고마운 마음도 잠시 유호량은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무명도 없는 일개 무인인 그에게 대협이라는 호칭은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였다.

나이가 적지 않은 건 사실이나 무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력이었다.

그렇기에 유호량은 대협이라는 호칭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대협이 싫으시다면 어떻게 불러 드릴까요?”

“아직까지는 소협이라 불려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나이가 꽉 차긴 했으나 공자라고 불릴 나이는 아니니까요.”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늦었지만 감사합니다. 비무신청도 받아 주시고 이렇게 방까지 내어주셔서요.”

깜빡 잊고 있던 걸 떠올린 유호량이 허리를 깊게 숙였다.

반호진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호의를 베풀었는지 잘 알았기에 유호량은 거의 몸이 접히듯이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저도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이만 일어나시지요.”

“아, 예.”

과례는 비례라는 말처럼 의도와 달리 반호진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었기에 유호량은 곧바로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면서 고민했다.

오늘 밤 머물러도 되냐고 물어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말을 꺼내는 순간 너무 없어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래도 이왕이면 확실한 게 났기도 하고, 더 이상 폐를 끼쳐서는 안 될 것 같았기에 유호량은 입을 열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한 가지 조언을 해 드려도 될까요?”

“예? 아, 네! 얼마든지요. 저야 감사하지요.”

물어보려고 막 입술을 떼던 유호량의 동공이 커졌다.

비무를 해 준 것도 감사한데 조언까지 해 준다고 하자 유호량은 너무나 고마웠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놀랍기도 했다.

반호진씩이나 되는 인물이 별 볼일 없는 자신에게 이토록 신경을 써 주는 게 말이다.

“제가 보기에는 도라는 병기에 지나칠 정도로 얽매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얽매여 있다.”

“예. 도는 기본적으로 날이 하나만 있는 병기입니다. 그런데 꼭 날이 하나만 있다고 해서 베기만 해야 할까요? 찌르는 건 검에게만 허락된 행위일까요? 필요에 의해 모습이 다를 뿐 도나 검, 창, 도끼 등등의 목적은 모두 같습니다. 물론 무공에 한해서요.”

“틀에 박혀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예. 굳이 참격에만 고집할 필요는…….”

반호진이 갑자기 말끝을 흐렸다.

동시에 그의 눈이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갑자기 초점이 흐려졌던 것이다.

그 모습에 유호량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무상문주님?”

“아. 죄송합니다. 순간 떠오른 게 있어서. 제 말은 말 그대로 조언일 뿐입니다. 정답은 아니니 참고 정도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큰 조언이 되었습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거든요. 그보다 지금 가 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창졸간이었으나 유호량은 분명히 봤다.

반호진의 동공에서 초점이 흐려진 순간 신비로운 기광이 번뜩인 것을 말이다.

깨달음인지 아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분명한 건 지금 이 순간이 반호진에게는 중요할 것 같았기에 유호량은 먼저 운을 띄워 주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예!”

반호진이 반색한 얼굴로 정중히 포권했다.

안 그래도 어떻게 대화를 마무리 지어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다.

그런데 유호량이 물꼬를 터 주자 반호진은 고마운 얼굴로 인사하고는 몸을 돌렸다.

“일단 내일까지는 머물러도 되겠네.”

순식간에 반호진이 사라지자 유호량은 지금껏 억눌러 두었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다행히 야밤에 쫓겨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싶어서였다.

스으윽.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유호량은 다시 도를 휘둘렀다.

그러면서 반호진이 해 준 조언을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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