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266화 (266/468)

제 87장. 꼬리에 꼬리를 물고. -01

‘근데 그래서 더 욕심이 난단 말이지.’

속된 말로 대차게 까였지만 당우혁은 그렇기에 더더욱 탐이 났다.

천하의 독봉을 깔 정도의 정심(正心)을 가졌으니 만약 딸과 맺어진다면 다른 여자는 거들떠도 보지 않을 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당우혁은 진심으로 아쉽고 안타까웠다.

처음에는 분노가 치솟았지만 그게 가라앉자 남은 건 짙은 아쉬움이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폐를 끼쳐 송구한 마음일 뿐입니다. 무상문주에게는 제가 따로 사과하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지요.”

당우혁을 일별한 담현의 시선이 팽만철과 남궁호에게로 향했다.

이제는 두 사람의 대답을 듣고 싶다는 무언의 행동이었다.

그런 담현의 시선에 남궁호는 두 눈을 감았고, 팽만철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따로 대답을 하지는 않았으나 두 명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모용세가, 모용세가도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묵묵히 체념하는 남궁호와 달리 팽만철은 기지를 발휘했다.

그답지 않게 꽤나 적절한 이를 끌어들였던 것이다.

하나 그의 말에도 담현은 고개를 저었다.

“모용세가는 상황이 다릅니다. 모용 공자는 호진이의 의형제이지 않습니까.”

“끄응!”

팽만철이 앓는 표정으로 입술을 달싹였다.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조금 궁색하기에 차마 꺼내기가 애매했다.

더구나 확정된 게 아니었기에 조심스러운 것도 있었고.

평소였다면 앞뒤 생각하지 않고 내질렀겠지만 팽만철도 나름 상대를 보고 뻗댈지, 참을지를 결정했다.

“그래서 따로 찾아뵐 생각입니다.”

“하긴. 상황이 저희와 조금 다르기는 하지요.”

아직도 두 눈을 감고 있는 남궁호를 대신해 당우혁이 담현의 말을 받았다.

가장 먼저 떠나겠다고 했으나 그렇다고 반호진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딸은 포기했을지 몰라도 그는 아직 아니었다.

또 사천당가가 가질 수 없다면 다른 곳도 못 가지게 만들 작정이었다.

“그러니 차별한다고 생각하지는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방장께서 어떤 마음이신지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이왕 물러나기로 결정했으면 망설여서는 안 되었다.

그래야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었다.

처음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게 마지막이었기에 당우혁은 이 부분에 신경 썼다.

“본가도 돌아가겠습니다.”

“……저희 역시.”

그 기미를 읽은 남궁호도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 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렇다면 당우혁처럼 마지막 인상이라도 좋게 남겨야 다음이라는 이름의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

거기에 팽만철 역시 백기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담현은 그런 세 사람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강하게 나간 만큼 세 명의 기분이 상했을 수도 있어서였다.

명분을 쥐고 있기는 하나 결국 결정은 세 사람이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담현은 진심을 담아서 고마움을 표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저희가 죄송하지요. 욕심을 놓지 않았으니. 그런데 방장께서도 한 가지는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이렇게 할 정도로 무상문주가 탐이 난다는 사실을요.”

“빈승도 알고 있습니다. 막내제자가 뛰어나다는 것을요.”

“그나저나 궁금하네요. 어떤 사람을 반려자로 들일지가. 조금 기대를 한다면 나중에라도 본가와 맺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가능성은 아직 열려 있으니까요.”

당우혁이 슬그머니 한 다리를 걸쳤다.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는 만큼 그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포기하기에는 반호진이라는 무인이, 인물이 너무나 탐이 났고.

“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요.”

“하하하. 이거 정화수라도 떠 놓고 기원해야겠습니다.”

농담처럼 말했으나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당우혁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웃는 건 당우혁뿐이었다.

“방장께서는 얼마나 머무실 예정이십니까?”

더 이상 당우혁의 가식적인 웃음을 듣고 싶지 않았기에 남궁호는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고.

“오래 머물지는 않을 생각입니다. 근처에 온 김에 들른 것이라.”

“그렇다면 오신 김에 한번 저와 어울려 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담현도 반호진에 대한 얘기를 더 나누고 싶지 않았기에 흔쾌히 응했다.

원래 인간관계라는 게 하나를 얻어 내면 다른 하나를 줘야 탈이 나지 않는 법이었다.

자기 욕심만 부리다가는 결국 나중에 탈이 나는 법이었기에 담현은 남궁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편 담현이 세 사람을 만나고 있을 때 법무는 반호진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무실에는 둘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강아지 삼형제도 반호진을 호위하듯 의자 옆에 나란히 엎드려 있었다.

“충견이구나.”

“저를 부모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눈도 떼지 못했을 때 데려왔거든요.”

“그럼 충분히 부모라고 생각할 만하지.”

반호진이 따라 준 차를 들이켜며 법무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면서 새삼 놀랐다.

숭산에서 마셨던 차와 맛이 똑같아서였다.

“아직 남아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자그마한 텃밭에서 직접 키울 생각이고요.”

“사제가?”

“예. 생각해 보니 명색이 농부의 자식인데 농사 한 번 안 해 봤더라고요. 그래서 이참에 조그맣게 한번 키워 보려고 합니다.”

“자연을 배운다라. 나쁘지 않아.”

법무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분이었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만큼 텃밭을 직접 가꾸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기도 했고.

“그런 거창한 이유 때문은 아니고, 그냥 한번 해 보고 싶어서요. 너무 수련만 한 것 같아서 잠시 쉬어 갈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생각이야. 그동안 너무 무리했어, 사제는. 싸움이라는 싸움은 다 했으니까.”

“저 혼자 한 게 아닙니다. 모두가 다 같이 싸웠지요.”

“허허허.”

법무가 대견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신기하기도 했다.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인 반호진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그가 지금껏 보아 온 대개의 후기지수들은 어떻게든 자신의 무명과 실력을 과장하려 하는데 반호진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그래도 중원무림의 평화를 위해 열심히 싸웠으니 이 정도 휴식은 취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히 있지, 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와 사부님, 그리고 소림사는 사제와 같은 생각이야.”

“감사합니다.”

“아, 정현이와 이대제자들 몇몇도 함께 오고 싶어 했어.”

“그 녀석들은 아직 산문 밖으로 나올 때가 아니죠. 한창 수련에 매진해야 하는 시기인데.”

반호진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피식 웃었다.

마음은 알겠지만 정현을 비롯해서 이대제자들은 밖에 싸돌아다닐 때가 아니었다.

한 번이라도 더 초식을 펼쳐야 하는 시기였기에 반호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맞아. 그래서 사부님과 나도 허락하지 않은 것이고. 찾아오는 거야 나중에 찾아와도 되는 일이니까. 보아 하니 금세 정리할 것 같지는 않고.”

“막상 살아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더라고요.”

“다행이구먼.”

“사부님은 가주들을 만나러 가신 거죠?”

“맞아. 아마 한 소리 하고 계실 게야.”

자신에게 밝히지 않았지만 추측 정도는 반호진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고마웠다.

자신을 위해서 나서 주는 게 말이다.

“감사하네요.”

“아무리 사제의 위상이 대단하다고 하나 그래도 쉽사리 말을 꺼내기는 어려울 테니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기는 하죠. 사이가 나쁘다면야 얼마든지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니까요. 근데 저도 슬슬 말할 시기를 고민하고 있기는 했어요.”

반호진이라고 아무 생각 없이 놔두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나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분이 더욱 단단해질 때를 말이다.

“사제가 직접 말하는 것보다는 사부님께서 말하는 게 훨씬 낫지.”

“그렇지요. 겉으로 보이는 모양새도 훨씬 낫고요.”

“사실 이렇게 눌러앉은 게 말이 안 되는 거지만. 근데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야. 사제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다만 문제는 제가 그분들하고는 생각이 다르다는 거지요.”

“그건 어쩔 수 없지.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의 마음이니까.”

법무는 절대 반호진을 타박할 생각이 없었다.

그럴 자격도 없었고.

엄밀히 따지자면 그는 반호진의 편이었다.

“맞습니다.”

“다들 욕심이 과해.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건만.”

“지금이라도 다행입니다. 사부님께서 나서 주신 덕분에 큰 문제 없이 해결되었어요. 감정이야 조금 상하겠지만 그렇다고 사부님께 직접 따지지는 못할 테니까요.”

“따지면 진짜 염치가 없는 거지. 근데 사제는 아직 제자나 문도를 받지 않을 생각이야?”

차를 한 모금 들이켜며 법무가 은근슬쩍 물었다.

이곳에 터를 잡은 지도 꽤 되었는데 딱히 문도가 보이지 않아서였다.

“이제 막 체계가 어느 정도 잡힌 상태라서요. 제자는 아직 생각이 없고, 문도는 고민 중입니다.”

“하긴. 급할 건 없으니까.”

“예.”

“그렇지만 장원을 운영하려면 고정적인 수익이 있어야 하지 않아?”

“아직은 괜찮습니다. 식솔이 적다 보니 의외로 나가는 돈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고민은 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출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남들의 눈에는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상은 달랐다.

개인수련은 물론이고 무상문의 운영에도 반호진은 꼼꼼하게 신경 쓰고 있었다.

휴식을 취하면서도 할 일은 다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중에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수익이었다.

“막말로 돈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융통하거나 따로 구할 수 있겠지. 사제의 능력이나 인맥을 활용하면. 그러나 그건 말 그대로 임시방편일 뿐이야.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지.”

“그렇죠. 근데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거지요.”

“맞아. 그래서 사제에게 한 가지 방안을 말해 볼까 하는데 들어 볼 의향이 있어?”

“제안이 아니라 방안요?”

“그 정도로 거창한 건 아니고. 또 사형인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주제넘은 일이니까.”

비슷한 말이지만 담겨 있는 의미는 완전히 달랐다.

그렇기에 법무는 그 점을 명확히 짚었다.

“소림사의 차기 방장이면 충분히 그래도 되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구나. 방장은 대표자이지 지배자가 아니야. 그리고 내가 본산제자들의 대표자라면 너는 속가제자들의 대표자이지 않느냐?”

“속가제자들을 대표하기에는 제 나이가 아직 젊죠.”

반호진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이런 기미가 은연중에 보이기는 하나 반호진은 그런 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었다.

자신과 주변만 챙기기에도 벅찼다.

“나이는 젊지만 자격은 충분하지 않더냐. 사부님께서도 그리 생각하시는 것 같고.”

“감투는 무상문주라는 것 하나로 충분합니다. 그보다 방안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사실 나에게 꽤나 많은 부탁이 들어오거든. 그중에는 정말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한심한 것들도 있는데 이건 사제가 알 필요는 없고. 서로 이득이 될 것 같은 방법이 하나 있어서 말이야.”

“서로에게 이득이라.”

반호진이 짐짓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진짜 그에게도 이득이 되는 내용일 게 분명해서였다.

인자하지만 담현을 닮아 맺고 끊는 게 확실한 법무였기에 반호진은 계속 말해 달라는 듯이 사형을 바라봤다.

“속가제자들의 경우 무관이나 문파를 차리기도 하지만 몇몇은 표국을 운영하기도 하는 걸 알지? 역사적으로 오래 된 표국도 있고. 사제도 제안을 받아 봤을 테고.”

“예전에 한 번 받은 적이 있습니다. 신룡이라 불릴 때였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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