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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265화 (265/468)

제 86장. 반가운 손님. -02

그 흔한 문지기 하나 없었으나 담현은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막내제자인 반호진이 소탈한 성격이라는 걸 잘 알아서였다.

야망은 있으나 그렇다고 거기에 휘말릴 성격이 절대 아니었기에 담현은 빙그레 웃으며 정문을 열었다.

끼이익.

“제가 조금 늦었네요.”

“응?”

직접 정문을 열고 장원 안으로 들어가던 담현과 법무의 두 눈에 익숙한 인영이 나타났다.

마치 두 사람이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안쪽에서 걸어오는 반호진의 모습에 둘은 얼굴 가득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사부님. 대사형.”

“허허허. 아니다. 잘못한 건 말 없이 온 우리지.”

“참고로 나는 사제에게 전서구를 보내야 한다는 쪽이었어.”

개구쟁이처럼 웃는 담현과 살짝 떨어져서 법무가 말했다.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이런 재미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고.”

“아직 빈 공간이 많습니다만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습니다.”

“규모는 일부러 이 정도로 한 거지?”

“예. 너무 크면 관리하기가 힘들 것 같아서요.”

“사람을 뽑은 모양이구나.”

반호진을 따라 장원을 가로지르며 담현이 눈을 빛냈다.

듣기로는 일손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직접 보니 크게 부족한 것 같지는 않았다.

여유롭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많이 부족하지는 않아 보였다.

“어쩌다 보니 인연이 닿았습니다.”

“사람을 다루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느낄 게다.”

“믿을 수 있으면서 능력 있는 사람이 참 희귀하다는 걸 이미 느끼고 있습니다.”

반호진과 나란히 걸어가던 담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제자의 하소연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어서였다.

더구나 그와 달리 반호진은 정말 맨땅에서 맨손으로 모든 걸 일구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기에 얻는 것도 많을 게야. 문주의 자리에 있어야지만 알게 되는 것들도 있으니까.”

“이왕이면 고생을 안 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문파를 세우면 안 되지. 정말 유유자적하게 살고 싶었으면.”

“아직 제 나이가 그러기에는 많이 젊지 않습니까.”

“그게 싫다면 다른 방법도 있고.”

담현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멀리 한 곳을 바라봤다.

바로 빈객들이 머물고 있는 숙소였다.

“사부님마저도 그러시는 겁니까.”

“그냥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거지. 건물은 잘 지었구나. 세심하게 설계해서 지은 티가 나.”

“의성이가 많이 신경 썼습니다.”

“호오. 그럼 아무 이유 없이 건물을 세우지는 않았겠구나.”

“예.”

반호진의 대답에 담현은 물론이고 법무도 눈을 반짝였다.

기문진법으로 유명한 사마세가의 유일한 적자이니만큼 두 사람 다 반호진의 말을 단박에 알아들었다.

그러나 더 깊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굳이 자신들이 거기까지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왕! 왕왕!

그때 담현과 법무의 귓가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개라고 하기에는 아직 앳된 듯한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더불어 세 개의 기척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강아지?”

“예. 뒷산에서 핏덩이일 때 만났습니다. 부모는 맹수와 싸우다 죽었고요. 어미가 숨이 겨우 붙어 있을 때 저와 만났습니다.”

헥헥헥!

어디서 놀다 왔는지 온몸에 이름 모를 풀들을 묻힌 채로 달려 온 삼형제가 반호진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그러면서도 살짝 경계하는 눈빛으로 법무와 담현을 힐끔거렸다.

적의가 없기에 적대하지는 않지만 낯선 사람이기에 경계하는 것이었다.

“들개인데 들개답지가 않구나.”

“완전 핏덩이일 때부터 사람 손에 자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귀엽네.”

법무가 옅게 웃었다.

강아지라고 하기에는 좀 크고 성견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덩치였지만 그럼에도 세 마리는 귀여웠다.

특히 매정하기 짝이 없는 반호진에게 애교를 부리는 모습이 법무의 눈에는 너무나 신기하게 보였다.

몸을 정신없이 비비는데도 가만히 있는 반호진도 신기했고.

“하루만 겪어 보시면 귀엽다는 말이 쏙 들어가실 겁니다. 한창 자랄 때라 힘이 넘치는지 매일 미쳐 날뛰고 있거든요.”

“하하하.”

법무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래 보였다.

당장 지금만 하더라도 강아지들은 조금도 멈춰 있지 않고 움직였다.

꼬리를 쉴 새 없이 흔들면서 말이다.

“이름은 지어 주었느냐?”

“겨울에 만나서 일동이, 이동이, 삼동이라 지어 주었습니다. 사실 데려오긴 했어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거든요. 그래서 겨울을 무사히 보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좋구나.”

몸을 낮추고 손을 뻗으며 담현이 빙그레 웃었다.

아직 새끼라서 그런지 경계심이 그리 크지 않아 세 마리는 이내 그에게 다가왔다.

냄새를 맡듯이 손가락 근처에서 킁킁거리더니 이내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핥았다.

“가운데가 일동이고, 오른쪽이 이동이, 반대쪽이 삼동이입니다. 태어난 순서가 정확한 건 아니고 처음 봤을 때 덩치 순서로 이름을 정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지. 태어났을 때 본 게 아니면. 근데 아마 얼추 맞을 게다.”

경계심이 많이 사라졌는지 이내 조금씩 몸을 비비기 시작하는 삼형제를 담현이 웃으며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삼형제도 더욱 친밀감을 드러냈다.

삼동이가 아예 배를 까놓자 지켜보고 있던 법무는 피식 웃었다.

“다 자라면 그래도 경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충분히 해 줄 것 같구나. 의외로 개의 감각이 예민하기도 하고. 키워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밥값은 해 주길 바라는 중입니다. 안 되면 어쩔 수 없고요.”

반호진은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 정도가 딱 적당해. 너무 큰 기대는 실망만 낳는 법이니까.”

“아직은 아기들이기도 하고요. 지금은 그냥 건강하게, 무탈하게 잘 자라는 것만으로도 이 녀석들은 제 몫을 다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맞다.”

“그럼 안내를 계속하겠습니다. 별채도 알려 드려야 하고.”

삼형제의 등장으로 잠시 지체되었던 안내를 반호진은 계속했다.

그런데 반호진이 이동하자 삼형제도 쪼르르 따라왔다.

보통은 조금 있다가 다른 곳에 놀러 가는데 낯선 사람이 있어서인지, 아니면 오늘따라 함께 있고 싶은 건지 삼형제는 반호진을 호위하듯 옆에 나란히 서서 위풍당당하게 걸었다.

“허허허.”

사주경계를 하듯 연신 귀를 쫑긋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삼형제의 모습에 담현이 귀엽다는 듯이 바라봤다.

하지만 정작 삼형제는 그런 담현의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 듯 주위만 살폈다.

짐을 푼 담현은 홀로 별채를 나왔다.

그가 무상문을 찾은 건 막내제자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궁금해서기도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 때문에 담현은 조금 전과 달리 사뭇 딱딱한 표정으로 빈객들이 머물고 있는 전각으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방장!”

미리 언질을 해 두었기에 경계를 서고 있던 남궁세가와 하북팽가의 무인들이 절도 있게 읍을 했다.

소림사의 방장인 담현에게 예를 갖추었던 것이다.

“아미타불.”

그런 무사들에게 담현 역시 짧게 합장을 하고는 건물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제가 안내를…….”

“괜찮네.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기는 담현에게 무인 한 명이 다가왔다.

담현의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가장 상급자가 모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담현은 만류했다.

거리가 먼 것도 아닌데 굳이 안내까지는 필요하지 않아서였다.

“알겠습니다.”

무인 역시 더 고집을 부리는 게 무례라는 걸 알았기에 이쯤에서 물러났다.

잠시 후 담현은 시비가 열어 주는 문을 통해 방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방장.”

“먼 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랜만입니다.”

방 안으로 들어가자 세 사람이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명 한 명이 강호를 호령하는 절대고수이자 오대세가의 수장이었지만 셋 다 담현 앞에서는 빛을 바랬다.

또한 천하의 팽만철조차 예의를 차려야 하는 게 담현이었기에 먼저 방에 와 있던 이들은 공손하게 포권을 해 왔다.

“모두 오랜만에 뵙습니다.”

담현은 그런 세 사람과 일일이 눈을 마주하며 합장을 했다.

누가 봐도 할 말이 있는 표정으로 말이다.

“저희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 듯합니다.”

“예.”

“저희에게요?”

가장 먼저 눈치챈 남궁호가 운을 떼자 팽만철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팽만철과 달리 당우혁은 짐작이 가는 게 있다는 듯이 얼굴을 굳혔다.

“그렇습니다. 두 분은 알아차리신 듯하군요.”

“무상문주에 관한 것이겠지요?”

“예.”

먼저 입을 열었던 남궁호가 무거운 어조로 묻자 담현은 고개를 느리게 주억거렸다.

반면에 팽만철은 여전히 머리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호진이에 대해서라니?”

“팽가주님께서 궁금해하시니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 분 다 이제는 그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수백 번 고민했다는 표정으로 담현이 입을 열었다.

그러나 표정과 달리 목소리는 단호했다.

“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팽가주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빈승이 무엇을 말하는지.”

“…….”

팽만철의 입이 다물어졌다.

동시에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그이지만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모를 리 없었다.

그렇기에 팽만철은 대답 대신 입을 다물었다.

“이쯤 하면 되었지 않습니까. 이 이상은 압박이고 강요일 뿐입니다. 세 분 모두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

담현의 시선이 팽만철을 지나 남궁호와 당우혁에게로 향했다.

세 사람의 마음을 알지만 이만큼 했는데도 안 되었다면 싫다는 뜻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억지로 붙어 있는 것이었기에 담현은 냉정한 표정으로 세 명과 눈을 마주했다.

“세 분에게 따님이 소중하듯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담현은 다시 한번 세 사람과 시선을 마주했다.

세 명이 딸의 미래를 생각하듯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담현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으음!”

“흠!”

그걸 세 사람도 느낄 수 있었기에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동시에 무거운 침음을 흘렸다.

조금의 여지도 두지 않겠다는 걸 표정에서 알 수 있었기에 셋의 눈빛이 복잡해졌다.

“그러니 이만 돌아가 주셨으면 합니다.”

어떻게든 상황을 타개하려는 듯한 셋의 모습에 담현이 확고한 어조로 말했다.

강호에서의 위상은 반호진이 세 사람보다 높지만 연배는 낮았다.

그렇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솔직하게 꺼내기가 쉽지 않을 터였다.

세 사람은 그걸 악용해 눌러앉은 것이고.

그래서 담현은 그 부분을 자신이 콕 짚었다.

반호진은 할 수 없지만 그는 할 수 있었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희를 보자고 하셨을 때 사실 어느 정도는 짐작을 했습니다. 저도 염치라는 게 있으니까요.”

팽만철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다른 이도 아니고 당우혁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은 몰라서였다.

심지어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에 팽만철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건 옆에 앉아 있던 남궁호도 비슷했다.

“당가주께서는 결정하신 겁니까?”

“별수 없지 않습니까. 방장과 날을 세울 수도 없고, 저도 최소한의 염치는 가지고 있습니다.”

당우혁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겉으로는 정말 아쉽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속내는 달랐다.

자연스럽게 물러날 수 있는 구실이라고 생각했다.

‘최후의 방법이 실패했으니…….’

사실 당우혁은 지금도 믿기지가 않았다.

남자라는 놈이 육탄돌격하는 미녀를 밀어낸 게 말이다.

그것도 보통 여자가 아니라 무림삼봉이라 불리는 여자였기에 당우혁은 진심으로 고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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