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259화 (259/468)

제 84장. 복(福)은 돌아온다. -03

황매향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와서 일을 가리느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니라 손님들이 더 찾아올 수도 있으니 미리 대비해 두어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문주님께서는 남궁세가와 하북팽가, 모용세가의 가주님들이 직접 찾아오실 정도로 대단하신 분이시잖아요.”

“인원이 부족하기는 하지. 사실 너 하나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니까.”

“헤헤! 제가 체격은 작아도 일은 야무지게 잘합니다!”

“그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낫겠지?”

“어떤 사람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는 해요.”

곽춘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꼭 일하는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효율이 높아지는 건 아니어서였다.

어쩔 때는 반비례하는 경우도 있었기에, 그걸 직접 겪어 보기도 했기에 곽춘은 마냥 동의하지는 않았다.

“일단 할 수 있는 것만 하고 있어. 네 능력을 증명하겠다고 무리하지 말고. 미리 말해 두는데 문주님께서는 혹사하는 걸 아주 싫어해. 문주님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네가 무리해서 쓰러지는 건 내가 허락할 수 없어.”

“며, 명심하겠습니다!”

스산한 눈빛으로 경고하는 황매향의 모습에 곽춘은 기합이 바짝 들어갔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걸로 아는데 지금의 눈빛은 무인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야.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니까 꼭 기억해 둬. 문주님의 이름에 누를 끼쳐서는 안 돼.”

“옙!”

“좋아. 그럼 따라와. 아직 갈 곳이 많으니까.”

차가운 눈빛과 목소리를 풀며 황매향이 몸을 돌렸다.

하지만 분위기가 달라졌음에도 곽춘의 경직된 몸은 풀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둘째 날밖에 되지 않았기에 긴장을 풀지 못하는 것이었다.

***

“허허허. 개파를 축하드립니다, 문주님.”

“축하는 제가 먼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만. 이렇게 찾아오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아이고, 괜찮습니다. 제가 총타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도 서신은 보내 주시지 않으셨잖습니까.”

“나름 정성을 다해서 썼습니다.”

“흐흐흐! 암요. 잘 알지요.”

반호진이 권하는 자리에 앉으며 오중건이 히죽 웃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오중건은 많이 놀랐었다.

천하의 반호진이 축하한다는 서신을 보낼 줄은 몰라서였다.

“정식으로 축하드리겠습니다, 방주님.”

“흠흠! 사실 아직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저는 적어도 이십 년은 후개로서 편하게 살 줄 알았거든요.”

“전대 방주님의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신 겁니까?”

반호진이 차를 따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와 동시에 오중건의 안색을 살폈다.

“아무래도 이제는 연세가 적지 않으시니까요. 술 때문에 몸 관리도 제대로 안 되어 있으셨고. 근데 또 나이를 생각하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몸이라는 게 백 년도 가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그동안 술로 혹사시킨 걸 감안하면 또래에 비해 건강하신 편이지요.”

“그래도 이왕이면 정정하신 게 좋으니까요.”

“다 자업자득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친구들, 지인들이 다 만류했는데도 매일같이 술을 드셨으니…….”

오중건이 혀를 찼다.

그러나 반호진이 보기에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었다.

적어도 술로 개왕에게 뭐라 할 자격이 오중건에게는 없었다.

“지금부터라도 건강을 챙기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술만 안 드시면 된다고 하더군요. 근데 문제는 그 말을 들을 사람이 아니라서.”

“아직 회복도 안 되신 겁니까?”

“회복은 거의 다 되었습니다. 거동도 하시고요. 다만 무공수련은 아직입니다.”

“큰일이군요.”

반호진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개왕은 단순히 개방의 방주가 아니었다.

천하십대고수 중 한 명이자 중원무림을 수호하는 노고수 중 한 명이었다.

더욱이 포달랍궁과 구천문은 패퇴한 것뿐이지 멸문한 게 아니었기에 개왕의 건강 악화는 중원무림에 있어 좋지 않았다.

“하하하. 그렇다고 골골대시는 건 또 아닙니다. 무공을 펼치지 못할 뿐입니다. 그거 때문에 밑에 아이들이 고생 중이지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챙겨 드려야 해서. 저는 이렇게 강제로 방주가 되었고요. 사실 이건 결코 축하받을 일이 아닙니다. 일을 해야 하니까요.”

오중건이 진심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계획적인 승계가 아니다 보니 신경 써야 될 게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특히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개방의 방주가 되었다는 게 오중건을 가장 힘들게 했다.

“잘 해내실 수 있을 겁니다.”

“이상하게 응원하시는 것 같지가 않은데요?”

“그럴 리가요. 저도 어떻게 보면 같은 처지니까요.”

“흐음. 그런 것치고는 얼굴이 되게 좋아 보이십니다만.”

“저는 규모가 작지 않습니까.”

반호진이 옅게 웃으며 차를 들이켰다.

언뜻 보면 놀리는 것처럼 말이다.

“부럽습니다. 진심으로.”

“개방과 비교하면 되나요. 지금은 정신없으시겠지만 곧 안정화가 될 겁니다. 그런데 저보다는 두 분을 만나러 오신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두 분이 안 계셔도 반 대협을 찾아왔을 겁니다. 숭산에 계셨어도 말이지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여전히 찻잔을 들고 있는 상태로 반호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전쟁에서 큰 활약을 한 건 맞았지만 그렇다고 개방의 수장이 된 오중건이 직접 찾아올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있습니다. 적어도 제게는 이곳에 계신 두 분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문주님이 중요하시기 때문이지요. 개인적으로도, 개방주로서도 감사한 마음도 있고요.”

“감사요?”

반호진이 다시 한번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좀처럼 알 수 없는 말만 하고 있어서였다.

“하오문과 금가장을 붙잡아 주신 게 문주님이시지 않습니까.”

“아.”

반호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제야 오중건의 말이 이해가 되어서였다.

동시에 이걸 오중건이 알아냈다는 사실에도 조금 놀랐다.

‘아니. 당연한 건가. 이제는 개방의 주인인데.’

하오문주와 금가장주와 나누었던 대화는 기밀 중의 기밀이었다.

그때 당시 반호진은 두 사람과 독대를 했는데 그럼에도 오중건이 알아냈다는 건 그만큼 개방의 정보력이 대단하다는 걸 뜻했다.

“저희는 개방입니다, 문주님.”

“그런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조금 놀라서 말이지요.”

“압니다. 저도 그냥 한번 꺼내 본 말이었습니다. 이런 때가 아니면 또 언제 문주님을 놀릴 수 있을지 몰라서. 그래도 감사한 마음은 진심입니다. 전쟁에서도 크게 활약하셨는데 암암리에 이런 도움까지 주실 줄은.”

“제가 한 건 크게 없습니다. 설득한 것도 아니고요. 그저 신중하게 지켜봐 달라고 한 게 전부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나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지요. 똑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니까요.”

오중건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금가장과 하오문은 누구의 편도 들어 주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중원의 편을 들어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약 하오문과 금가장이 새외무림과 결탁했다면 결과는 지금과 달랐을 수도 있었다.

“오늘따라 저에게 너무 금칠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문주님께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뇌물을 달라고 하셔도 이번에는 없습니다.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어서.”

“허어. 저 그렇게 술만 마시는 놈 아닙니다. 사부님이 술 때문에 고생하시는 걸 보고 줄이고 있습니다. 저도 말년에 사부님처럼 되기는 싫거든요.”

“그건 다행이네요.”

진심이 담긴 자아성찰에 반호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중건이 술을 줄여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이 말을 온전히 믿지는 않았다.

지난 생에서도 줄인다, 줄인다 말은 하지만 결국에는 실패했었기에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문주님께는 제가 꼭 감사하단 말을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사부님도 마찬가지고요. 직접 오고 싶어 하셨는데 몸이 좋지 않아서 제가 대표로 왔습니다.”

“방주님이면 과하다 못해 넘치지요.”

“개방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으시면 언제라도 기탄없이 말씀해 주세요. 문주님의 부탁이라면 제가 발 벗고 나서겠습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진심입니다. 그러니 꼭 기억해 두시죠.”

빈말이 아니라는 듯이 오중건이 두 눈에 힘을 주었다.

그 모습에 반호진은 그저 빙긋 웃기만 했다.

“알겠습니다. 기억해 두겠습니다.”

“아, 이미 알고 계실지 모르겠는데 사천성에서 무상문으로 손님이 오고 계십니다.”

“지금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안 와도 된다고요.”

“이건 저도 힘듭니다. 아시잖습니까. 저 이제 막 방주가 되어서 힘이 없습니다. 하하하.”

반호진이 자기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사천성이라는 단어에서 누가 오는지 알 수 있어서였다.

금호연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빈자리가 채워질 듯하자 반호진은 골치가 아파 왔다.

“개인적으로 저는 문주님이 부럽습니다. 백봉이 해 주는 밥이라니. 세상에 어떤 남자가 그런 밥을 먹겠습니까?”

“그럼 방주님도 함께 식사하시죠.”

“허. 정말 그래도 됩니까?”

오중건이 반색했다.

내심 말은 꺼냈어도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호진이 너무나 선선히 같이 먹자고 하자 오중건은 눈을 반짝였다.

이런 기회가 이번 생에 다시없을 것임을 잘 알아서였다.

“안 될 것도 없지요. 모용 소저는 싫어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허어. 욕은 저더러 먹으라는 말씀이시군요.”

“제가 욕까지 막아 드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죠. 그래도 저는 먹겠습니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있겠습니까?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지요. 다른 분들과도 인사도 나눌 겸.”

오중건이 씨익 웃었다.

아직 무상문이 크게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렇지 앞으로는 인산인해를 이룰 게 분명했다.

게다가 무상문에는 반호진만 있는 게 아니었다.

조금 과장하면 중원무림의 미래가 이곳에 있었다.

‘염룡과 검룡, 비룡이 있으니. 뭐, 일단 반 대협이 있다는 것으로 다 끝나기는 하지만.’

오중건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잊히지가 않았다.

아마 평생을 가도 반호진의 무위는 잊히지 않을 터였다.

더불어 그가 반호진을 뛰어넘는 것도 상상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모든 무인들의 목표가 꼭 천하제일인인 건 아니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사명을 하면 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꼭 모두가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었다.

돋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받쳐 주는 사람도 있었다.

오중건은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중원무림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그 역할을 얼마든지 할 수 있었고.

***

똑똑.

“들어가도 될까요?”

“응? 아, 들어와.”

“네.”

갑자기 찾아온 예유화에 서조운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연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책상에는 무공구결이 적힌 종이들이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걸 대충 하나로 모아서 치우자 예유화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앉아.”

“제가 방해한 건 아니죠?”

“방해는 무슨. 늘 하던 일인데. 정말 방해했으면 다음에 찾아오라고 했겠지. 근데 무슨 일이야?”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앉자마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으나 예유화는 당황하지 않았다.

서조운의 성격이 원래 좀 급하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거기다 요즘에는 무공수련하랴, 연구하랴 정신이 없기도 했다.

“할 말이 있다고?”

“네. 오라버니가 부모님께 한 말을 들었어요.”

“으음. 그건 어쩔 수 없어. 세상에 공짜는 없거든.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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