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장. 복(福)은 돌아온다. -02
서조운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동시에 가능성의 유무에 대해서 확인했다.
정확하게는 극양지기를 품고 있는 영약과 자신의 순양지기에 대해서 말이다.
‘가능성은 있어. 형님 말대로 내가 유리한 점도 분명히 있고.’
서조운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러다가 결론에 도달했는지 얼굴이 밝아졌다.
“나름 해결책이 된 모양이네.”
“역시 형님은 대단하신 것 같아요.”
“완벽한 방법은 아냐. 그냥 이런 방법도 있다는 것 정도이지. 그래도 네 극양지기만으로는 힘들 거야. 그 이유는 네가 직접 겪어 봤으니 알지?”
“예. 유화의 몸에 자리 잡은 극음지기는 영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절대 쉽게 굴복하지 않을 거예요.”
직접 겪어 보기도 했고, 확인도 했기에 서조운은 장담할 수 있었다.
아무리 자신의 극양지기가 대단하더라도 제압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맞아. 그래서 그 아이, 유화라고 했던가?”
“예유화라고 해요. 열여섯 살이고요.”
“다행히 너보다는 조금 빠르다.”
“예. 제가 열일곱 살일 때 형님을 만났으니까요. 그런데 상태는 저보다 더 심각해요. 무가 출신이 아니라 평범한 가정이라. 유화는 물론이고 부모님도 제대로 식사를 못 한 것 같더라고요.”
서조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보이는 게 있었다.
특히나 형편 같은 건 딱 보면 알았기에 서조운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더불어 자신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병마와 싸웠는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식사는 신경 쓰고 있지?”
“안 그래도 이 부분에 대해서 형님께 여쭙고 싶었어요. 저도 어떻게 보면 빈객이잖아요.”
“언제는 가신이 될 거라며? 그건 역시 빈말이었나?”
“에이. 그럴 리가요. 제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형님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거라서.”
“쓸데없이 눈치 보기는. 매향이한테 말은 해 놓으마. 식사 좀 잘 챙겨 달라고.”
반호진은 먹는 것 가지고 인색하게 굴 생각이 없었다.
강호에서의 체면 때문이 아니라 일단 손님은 손님답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돈이 없다면 모를까 아직은 풍족했기에 대접은 앞으로도 모자라지 않게 할 예정이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기는. 다 나에게 돌아올 텐데. 업보는 선업이든 악업이든 다 돌아오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형님께 도움을 좀 청해도 괜찮을까요?”
“치료 말이지?”
“예. 형님께서 도와주신다면 보다 확실하게 치료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심적으로도 든든하겠지만 일단 형님께서는 경험이 있으시잖아요.”
서조운에게는 완치된 경험은 있지만 남을 치료해 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의원은 아닐지 몰라도 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해박하고 섬세하게 제어할 줄 아는 게 반호진이었다.
극양지기니 극음지기니 반호진에게는 의미가 없었다.
순수하게 힘으로 찍어 누를 수도 있을 것이기에 서조운은 이왕이면 반호진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뭘 그렇게 어렵게 물어봐?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인데. 또 네가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고.”
“그럼 도와주시는 건가요?”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어쩌면 나에게도 도움이 될 테고. 유화라는 애. 너처럼 무상문에 묶어 둘 거 아냐? 강호의 평화를 위해서. 그럼 나에게도 이득이지. 나중에 네가 데리고 나갈 수도 있겠지만.”
“저는 언제나 형님의 오른팔입니다!”
“그건 내가 싫어.”
진심으로 단호한 반호진의 대답에 서조운이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나 싫어할 줄은 몰라서였다.
그러나 반호진은 진짜로 진심이었다.
“너무하세요.”
“너도 나중에 가정을 꾸릴 때가 되면 오늘 이날을 잊고 싶을 거야.”
“전 이제 적은 나이가 아닌데요?”
“생각은 늘 바뀌는 법이니까. 본론으로 돌아와서 준비는 어느 정도 되어 있어? 일단 몸 상태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 건 알지?”
“예. 그래서 몸 상태를 정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육체가 받쳐 줘야 정신도 단단해지니까요. 건강 상태가 워낙에 안 좋아서 최소 열흘은 생각하고 있어요.”
반호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직접 치료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이런 사소한 부분은 확실히 알아서 잘했다.
“극양지기도 있고, 음한기공도 있으니 준비는 거의 다 된 셈이네. 근데 북해빙궁의 무공을 그대로 익히게 할 거야?”
“조금 변경했어요. 북해인과 중원인은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체질이 좀 다르니까요. 그렇다고 크게 달라진 건 아니고요. 어중간하게 건드렸다가 이상해질 수도 있어서. 제가 아직 재창조할 수준도 아니고요. 그래서 형님께 조언을 구하려고 가져왔어요.”
“한천기공(寒天氣功)이라.”
“이름이 조금 촌스럽죠?”
“아니. 직관적이고 좋네. 무공은 단순한 게 최고야. 이름이 어려우면 외우기 힘들어.”
“하하하.”
서조운이 품속에서 꺼낸 무공서를 반호진은 곧바로 받아서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그러자 서조운은 입술이 바짝 마르는지 연신 혀로 핥았다.
“좋은데?”
“정말요?”
“응.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 잘 비틀었네. 가장 안전한 방법이기도 하고. 완성도는 괜찮아. 대신 한계도 명확한 거, 알고 있지?”
“예. 절정까지는 무난하겠지만 그 이상은 힘들다는 거 알고 있어요.”
“그래도 여지가 있으니 계속 손을 보면 될 거야. 너에게는 축융신공이 있잖아. 공부도 분명히 될 테고.”
반호진의 말에 서조운의 얼굴이 밝아졌다.
최소한 부정적이지는 않아서였다.
게다가 그에게는 일대종사라 해도 모자라지 않은 반호진이 있었다.
“틈틈이 조언을 구하러 오겠습니다!”
“잘 생각했어. 가지고 있는 패는 모두 다 써야지. 의성이하고도 논의해 봐. 꼭 무공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어. 깊이도 중요하지만 저변을 넓혀서 나쁠 건 없어.”
“명심하겠습니다!”
“날짜 정해지면 말해 줘. 나도 나름 준비를 해야 하니까.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도 해야 하고. 실력 좋은 의원도 알아봐야겠다. 이건 희주한테 도와 달라고 하면 될 것 같고.”
“알겠습니다.”
만사불여튼튼이라고 했다.
준비해서 나쁠 건 없었기에 서조운은 무조건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욱이 남자인 그와 달리 예유화는 여자였기에 더 세심한 준비가 필요했다.
치료를 위해서라지만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처럼 신체적 접촉은 최대한 피하는 게 예유화를 위해서라도 좋았다.
“치료도 좋지만 네 근본을 잃으면 안 된다. 네가 해야 할 걸 다 하면서 다른 걸 해야 해. 주가 되는 것과 부가 되는 걸 확실하게 구분해야 한다. 이게 뒤바뀌면 이도저도 아니게 돼.”
“넵!”
“뭐, 알아서 잘하겠지만.”
“헤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님은 괜찮습니다! 형님의 잔소리는 잔소리로 들리지 않거든요!”
“잔소리이기는 한다는 거 아냐?”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어쨌거나 잔소리라는 건 달라지지 않아서였다.
“잔소리도 좋은 잔소리가 있고,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잔소리가 있잖아요.”
“됐다. 얼른 가서 공부해. 아니면 수련을 하든가.”
반호진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하지만 서조운은 그의 축객령에도 나가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렸다.
***
첫날에는 식사와 함께 기본적인 업무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면 둘째 날인 오늘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확인했다.
쉽게 말해 황매향이 그를 데리고서 이것저것 물어봤던 것이다.
“마구간도 관리할 수 있어?”
“예. 기본적인 것들은 할 수 있어요. 객잔이나 객점에는 말을 타고 오신 손님들이 많으니까요. 소규모 표행이나 상행도 자주 찾아오고요. 그래서 간단한 일들은 할 줄 알아요.”
“경험이 많네?”
“근데 말이 왜 이렇게 많아요? 보니까 분류도 확실하게 되어 있고.”
제법 넓은 마구간도 마구간이지만 곽춘이 놀란 건 말들의 숫자였다.
그가 알기로 반호진 일행과 황매향을 비롯해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원도 그리 많지 않은데 말이 너무 많았다.
그게 곽춘은 의문이었다.
“우리 소유의 말은 없어. 다 손님들 말이야.”
“손님이요?”
“응. 남궁세가, 하북팽가, 모용세가.”
“호, 혹시 남궁세가와 하북팽가가 제가 아는 두 곳인가요?”
해연히 놀란 얼굴로 곽춘이 반문했다.
반신반의하는 눈빛으로 말이다.
“네가 말하는 곳이 무림오대세가라면 맞아.”
“흐업!”
설마 했던 게 진짜라고 하자 곽춘이 대경실색했다.
듣고도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대책 없었는지도 깨달았다.
“모르고 온 거야?”
“네, 네!”
“그럼 무작정?”
“예에. 일단은 뭐라도 해 보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온 거라서요. 새로운 곳이 생겼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찾아왔던 거였어요.”
“어떻게 보면 대단하네.”
황매향이 실소를 흘렸다.
무대책도 이런 무대책이 없어서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용기가 있기에 일자리를 손에 넣은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이긴 하나 일도 야무지게 잘했고.
“그냥 아무 대책이 없었던 거죠.”
“그래도 시도했다는 점은 충분히 대단해. 용기 내서 찾아온 게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 낸 거니까. 상황이 잘 맞기도 했고.”
“하인이 이렇게나 없을 줄은 몰랐어요.”
“정착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거든. 원래 소림사 출신이고. 혹시 검신이라는 별호는 못 들어 봤어?”
황매향이 은근히 기대하는 어조로 물었다.
그녀가 소림검신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반호진을 모시는 사람이었다.
또한 반호진이 검신이라는 별호를 얻는데 아주 조금이나마 일조했기에 살짝 기대하는 눈빛으로 곽춘을 바라봤다.
“검신요? 그건 처음 들어 봐요. 제가 무림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곳에서 살다 보니.”
“오대세가는 아는데 소림검신은 모른단 말이지.”
“유명한 분이세요? 그럼 객잔이나 객점에서 들었을 법도 한데. 무당파의 검왕은 들어 봤는데 검신은 못 들어 봤어요.”
“네가 만난 분이 검신이셔.”
“예?”
곽춘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였다.
그런 곽춘의 모습에 황매향이 피식 웃었다.
“문주님이 소림검신이시라고. 남궁세가주님과 팽가주님, 모용세가주님이 온 게 다 문주님 때문이야. 문주님께 잘 보이려고.”
“예에에?!”
원래부터 커져 있었던 두 눈 대신 곽춘의 입이 찢어질 것처럼 벌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콧구멍까지 커졌다.
그 정도로 대경한 것이었다.
“내가 거짓말하는 것 같아?”
“진짜예요?”
“너에게 거짓말해서 나한테 뭐가 남는다고. 그리고 금세 밝혀질 걸 내가 뭐 하러 거짓말을 해? 내가 그렇게 할 일 없는 사람으로 보여?”
“아니요.”
불과 만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으나 황매향이 어떤 성격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곽춘은 거짓말일 거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일하는데 문주님에 대해 너무 모르는 것도 충분히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서 말해 주는 거야. 기본적인 것들은 알고 있어야 하니까.”
“확실하게 기억해 두겠습니다. 근데 제가 관리해도 될까요? 다 비싼 말로 보이는데.”
“경험이 없는 우리들보다는 낫겠지. 우리도 무사분들께 여쭈어보면서 배웠는데 많이 부족해. 그러니까 서로 배워 가면서 하자고.”
“알겠습니다!”
“무사분들께서 하루에 한 번은 오시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비싼 말이라고 해서 막 엄청 다르지는 않을 테니까.”
티는 안 냈지만 황매향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인력이 부족함을 느끼고 있어서였다.
더구나 말똥을 치우는 일은 무공을 익히지 않은 여인들이 하기에는 많이 힘든 일이었기에 곽춘의 합류가 참으로 시기적절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근데 일손이 더 필요한 건 아닌가요?”
“왜? 혼자 하기에는 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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