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4장. 복(福)은 돌아온다. -01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소리쳤던 곽춘에게로 세 개의 하얀 덩어리가 다가왔다.
반호진과 함께 장원을 돌고 있던 강아지 삼형제가 정문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낯선 사람이라서 그런지 삼형제는 섣불리 곽춘에게 다가가지 않고 반호진의 옆에 서서 코를 킁킁거렸다.
“이 녀석들도 네가 싫지는 않은 모양이네.”
“강아지를 키우시네요?”
“어쩌다 보니. 나도 태어나서 처음 키워 보는 거야.”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기는 하지만 가까이 다가오지는 않았다.
처음 보는 곽춘을 경계하는 것이었다.
보통은 사람이라면 그저 좋아서 달려들 텐데 그러지 않는 게 곽춘은 신기했다.
“아직 새끼인데 경계심이 많네요.”
“들개 출신이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 야생 출신이군요.”
“그보다 임금은 어느 정도를 생각하고 왔어?”
“어…….”
훅 들어오는 급여 조율에 곽춘은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현재 자신의 나이와 남창의 평균 급여, 그리고 일을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를 빠르게 계산했다.
“참고로 말하자면 거짓말은 안 통해. 마음만 먹으면 임금에 대해서는 금방 알 수 있거든.”
“말로 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제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받은 적이 없어서요.”
“호오. 자신 있다는 눈빛인데?”
“네.”
“좋아. 따라 와.”
다시 자신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온 곽춘의 모습에 반호진이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망설이지 않고 몸을 돌렸다.
결정을 내렸으니 더는 고민하지 않는 것이었다.
때마침 일손이 필요하기도 했고.
킁킁! 킁킁킁!
반호진을 따라가자 일동이, 이동이, 삼동이가 가까이 다가와서 냄새를 맡았다.
장원 안으로 들이는 모습에 경계심을 조금은 푼 것이었다.
그러나 완전히 푼 건 아니라는 듯이 손이 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며 연신 킁킁거렸다.
“이름이 뭔가요?”
“내 이름? 아니면 이 녀석들 이름?”
“아, 제가 존함도 여쭙지 않았었네요. 죄송합니다!”
“존함은 무슨. 너랑 나랑 나이 차이가 얼마나 난다고. 내 이름은 반호진이야. 지금부터는 대인이라고 하지 말고 문주님이라고 불러.”
“문주님이셨군요.”
곽춘은 반호진의 이름을 곱씹었다.
확실하게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무릇 인간관계에게 가장 기본적인 게 이름을 외우는 것이었기에 곽춘은 끊임없이 반호진이라는 이름을 되뇌었다.
‘근데 이상하게 익숙한데? 왜 익숙하지?’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가급적이면 하지 않는 게 좋았다.
실수를 하지 않는 것도 능력이었다.
그런데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곽춘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처음 보는 사이인데 이상하게 이름이 낯설지가 않아서였다.
‘어디서 들었나? 근데 그런 것치고는 딱히 사람이 많지 않은데? 얼핏 듣기로는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다고 한 것 같은데.’
곽춘이 두 눈을 껌뻑거리며 빠르게 장내를 살폈다.
하지만 넓은 크기에 비해 사람들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문주님.”
“아, 매향아.”
휑하게 느껴지는 장내의 모습에 곽춘이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고 있을 때 선한 인상의 여인이 다가왔다.
부드러운 눈매를 가지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깐깐할 것 같은 인상에 곽춘은 긴장했다.
“손님이신가요?”
“아니. 오늘부터 일할 아이야. 무작정 나를 찾아왔더라고.”
무작정이라는 세 글자에 황매향의 눈썹이 미약하게 꿈틀거렸다.
반호진이 격식을 따지지 않아서 망정이지 다른 곳이었으면 크게 혼쭐이 났을 터였다.
막말로 선우세가나 모용세가였으면 문지기 선에서 끝났을 것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곽춘이라고 합니다!”
“이름은 들은 대로고. 여기는 우리 무상문의 부총관.”
“네?”
서늘한 눈으로 곽춘을 응시하던 황매향이 퍼뜩 놀랐다.
난데없이 부총관이라고 하자 대경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안절부절못하던 곽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부총관이 하는 일이잖아. 중간에서 관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렇다고 총관 자리를 줄 수는 없으니 부총관 정도면 적당하잖아?”
“너무 과하십니다.”
황매향이 황당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놀란 것도 놀란 것이지만 부총관이라는 직급을 제대로 수행할 자신이 없었다.
“과하기는. 어차피 하는 일 그대로 하는 건데. 내가 딱히 더 시키는 것도 없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내가 봐도 부족하다 싶으면 회수할 거야. 그러니까 부담 갖지 말고 하던 대로 해. 그거면 되니까.”
“……알겠습니다.”
더 말한다고 한들 반호진이 뜻을 거둘 것 같지 않았기에 황매향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정받은 듯한 기분이 들어 기쁘기도 했다.
자신이 반호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마침 잘 왔어. 안 그래도 무엇부터 시켜 봐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내가 아무래도 살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잖아? 작은 규모야 주먹구구식으로 할 수 있다지만 이제는 좀 커졌으니까. 매향이가 데려가서 일 좀 시켜. 곽춘이 할 수 있는 것으로. 밥도 팍팍 먹이고.”
“네.”
황매향의 시선이 빠르게 곽춘을 훑었다.
처음 마주쳤을 때도 살펴봤었지만 지금은 보다 더 세심하게 훑어봤다.
“예?”
반대로 곽춘은 반호진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밥을 팍팍 먹이라는 말에 크게 당황했던 것이다.
“지금 몸 상태로 일을 제대로 하겠어? 나는 적어도 굶겨 가며 일을 시키진 않아. 제대로 먹여야 일도 잘할 거 아냐? 안 그래?”
“지당하신 말씀이세요.”
황매향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소림검신이라 불리기 전부터 반호진은 신분차별 없이 모두를 평등하게 대했다.
무상문에서야 직급의 차이가 생겼다고 하나 반호진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대했고, 그 시작이 식사였다.
그녀가 무상문에 와서 굶거나 부족하게 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빙그레 웃으며 곽춘을 바라봤다.
“오해하지 마. 잘 먹여서 일 시키려고 하는 거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죽도록 일할게요!”
“죽도록 일하지는 말고. 그럼 시체 치워야 하잖아. 아직 이곳은 송장 나온 적 없는 깨끗한 곳이야. 나는 앞으로도 가급적이면 안 나왔으면 좋겠고.”
“각골명심하겠습니다!”
“어디서 이상한 말만 배워 왔네.”
쓸데없이 기합이 바짝 들어가 있는 곽춘의 모습에 반호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황매향에게 눈짓했다.
그녀더러 데려가라는 뜻이었다.
그걸 단박에 알아차린 황매향은 고개를 한 차례 꾸벅 숙여 인사한 후 곽춘을 데리고 이동했다.
우선 반호진의 지시대로 먹을 것부터 챙겨 줄 요량이었다.
왕왕!
“그래. 너희들도 가서 간식 좀 얻어먹고. 앞으로 밥은 아무래도 저 녀석이 챙겨 줄 것 같으니까.”
삼형제가 꼬리를 격렬하게 흔들며 황매향을 쫄래쫄래 따라갔다.
반호진 다음으로 밥을 잘 챙겨 줘서 그런지 삼형제는 황매향을 잘 따랐다.
물론 끼니때가 되면 가장 먼저 찾는 게 반호진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다른 사람이 주는 것도 잘 먹었기에 반호진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똑똑똑.
“저예요, 형님. 들어가도 될까요?”
“응.”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이 든 야심한 시각에 서조운은 반호진을 찾았다.
그런데 안색이 썩 좋지 않았다.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했던 것이다.
웬만해서는 보기 힘든 얼굴에 반호진이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늦은 시간에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해요.”
“우리 사이에 사과는 무슨. 그보다 많이 힘든 모양이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렵지?”
“네. 자신만만했던 과거의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요.”
“원래 세상살이라는 게 쉽지 않지. 생존은 늘 어려운 법이야.”
한숨을 푹푹 내쉬는 서조운을 앞에 앉힌 반호진이 차를 따라 주었다.
숭산에서 가져온 차향이 방 안을 그윽하게 채우자 서조운의 얼굴도 점차 나아졌다.
마음이 평온해진 덕분이었다.
“제 생존은 아니지만요.”
“그렇지만 너와 연관된 일이기는 하잖아.”
“그렇죠.”
“얘기는 얼추 들었어. 절맥은 맞다고?”
“칠음절맥이에요.”
반호진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구음절맥만큼은 아니지만 칠음절맥 역시 만만치 않은 절맥이었다.
또한 보기 드문 절맥이기도 하고.
‘아니. 이런 소문 자체가 믿을 게 안 되지. 누가 직접 통계를 낸 것도 아닌데. 그냥 암암리에 전설처럼 내려져 온 것뿐이니까.’
반호진은 턱을 쓰다듬었다.
절맥은 분명 불치병이 맞았다.
그렇지만 그게 희귀하단 말과 동의어는 아니었다.
당장 그의 눈앞에만 하더라도 구양절맥을 앓았던 서조운이 있었기에 어쩌면 절맥이라는 게 알려진 것처럼 보기 드문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보는 이가 드물기에 드물다는 말이 나온 건 아닐까?’
중원에 의원은 많았다.
의술을 익힌 의녀까지 합치면 숫자는 더더욱 많았고.
하지만 그중에 절맥을 알아볼 정도의 실력자는 소수였다.
“형님?”
“아, 미안. 잠시 딴생각을 좀 하느라고. 구양절맥과 칠음절맥이 동시에 나타난 게 신기해서. 어쩌면 우리는 왜곡된 소문을 너무 맹신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
“어, 그거 일리 있는데요? 사실 저도 그게 좀 의문이었거든요. 꿈을 찾기는 했는데 내심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거든요. 소문이 그랬잖아요. 절맥을 앓고 있는 이들은 되게 드물다고.”
“맞아. 나도 그래서 문득 의문이 들었던 거야.”
“사람이 엄청 많아서 그러지 않을까요? 세상은 넓고 그만큼 사람도 많으니까요.”
반호진보다 먼저 이 부분에 대해서 고민해서 그런지 서조운이 조심스럽게 자신만의 결론을 꺼냈다.
슬그머니 반호진의 눈치를 살피면서 말이다.
“네 생각인데 왜 눈치를 봐?”
“헤헤. 아무래도 습관이 되다 보니.”
“너도 이제 열아홉 살인데.”
“약관이 코앞이기는 하죠.”
서조운이 해맑게 웃었다.
자신의 나이를 들을 때마다 새삼 완치되었다는 걸 체감해서였다.
“네가 찾아낸 결론도 일리는 있어. 나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고. 또 실질적으로 조사를 한 사람도 없잖아? 아니면 운명의 장난일 수도 있고. 근데 중요한 건 이게 아니잖아?”
“맞아요. 칠음절맥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저를 찾아왔다는 게 중요하죠. 솔직히 다른 건 신경 쓸 필요도 없고요.”
“그렇지. 그래서 이 야밤에 날 찾아온 이유는?”
“……치료할 자신이 없어요.”
“영약 때문이구나.”
반호진이 미지근하게 식은 차를 들이켰다.
어느덧 2월이 되었지만 아직도 밤에는 날씨가 추웠다.
그래서인지 차도 금방 식었다.
“네. 음한기공은 있지만 영약은 아직 구하지 못해서요. 게다가 구음절맥보다는 낫다지만 칠음절맥이 만만한 건 아니고요.”
“칠양절맥이라면 모를까 굳이 영약이나 영초가 필요할까?”
“예?”
“치료에 영초나 영약이 필요한 이유가 뭐야? 극양지기 때문이잖아? 칠음절맥의 극음지기를 억누르기 위한. 근데 그 극양지기, 너한테도 있잖아?”
“……!”
서조운의 두 눈이 더 이상 커지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상상도 못 한 말에 놀란 것이었다.
“굳이 멀리서 찾을 이유가 없잖아? 나는 오히려 영약이나 영초보다 낫다고 생각하는데. 순양지기이도 할뿐더러 영성을 지니고 있는 영초나 영약보다는 통제가 쉬울 거 아냐? 구양절맥이라면 네가 제압하기가 힘들겠지만 칠음절맥이면 충분히 가능할 것도 같은데?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굳이 영약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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