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256화 (256/468)

제 83장. 운명은 만드는 것. -03

기다리고 기다리던 존재였으나 서조운의 얼굴은 밝지 못했다.

절맥을 앓고 있는 이의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누구보다 잘 알아서였다.

대화를 하고 있음에도 눈을 뜨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기력이 없다는 뜻이었다.

거기다 부모로 보이는 두 사람의 건강도 썩 좋지 않아 보였기에 서조운은 전음으로 사마의성에게 여러 가지를 부탁하고는 자신의 방으로 세 사람을 이끌었다.

“어, 어떻습니까?”

눕혔음에도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불규칙적인 호흡을 하고 있는 딸을 보며 중년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나 늦지는 않았을까 싶어서였다.

그건 중년여인도 마찬가지인지 두 손을 꼭 붙잡고서 흔들리는 눈으로 서조운을 바라봤다.

“우선 두 분 모두 식사부터 하시죠. 따님보다 먼저 쓰러지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꼬르륵!

부부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너무나 절묘한 순간에 배에서 소리가 흘러나와서였다.

그것도 작기는커녕 우렁차게 흘러나오는 소리에 두 사람 다 민망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달칵.

그때 문이 열리며 사마의성과 황매향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서조운이 일가족을 데려오는 사이 둘은 음식을 챙겨 온 것이었다.

소화되기 편하게 죽과 미음을 가져와서는 부부의 앞에 쟁반과 함께 내려놓았다.

“저희는 나중에 먹겠습니다.”

“유화부터 먹이고 먹겠습니다.”

“따님의 이름이 유화인 모양이군요.”

허기가 심할 텐데도 자기들보다 딸을 생각하는 모습에 서조운은 부모님이 떠올랐다.

자신이 구양절맥으로 힘들어할 때 부모님도 이러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예유화라고 합니다.”

“예쁜 이름이네요.”

“가, 감사합니다.”

딸을 칭찬하자 부부의 얼굴이 밝아졌다.

호랑이도 제 새끼를 귀여워한다는 말처럼 두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고통으로 인해 제대로 먹지 못해서 시체와 다름없는 몰골이었으나 그럼에도 두 사람의 눈에는 더없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안타까웠다.

고통에 신음하는 게 말이다.

더불어 딸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는 게 너무나 화가 났다.

“그럼 일단 따님부터 깨워 볼까요. 식사도 정신을 차려야 할 수 있으니.”

“가능할까요?”

“당장 치료하는 건 못 해도 깨우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겁니다.”

중년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치료하지 못한다는 말이 그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혀서였다.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인 듯 중년여인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 말을 잘못했습니다. 치료를 못 한다는 뜻이 살리지 못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힘들다는 뜻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모습에 서조운이 황급히 말을 이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부부가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음을 뒤늦게 깨달아서였다.

하지만 서조운의 말에도 두 사람의 표정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으음!”

그런 부부의 모습을 보며 서조운은 극양지기를 끌어올렸다.

백 마디 말보다 직접 보여 주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동시에 예유화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 주고 싶었다.

‘얼음장 같네.’

눕힐 때부터 느꼈었지만 예유화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냉기는 상당했다.

그의 극양지기만큼은 아니지만 예유화의 극음지기도 꽤나 지독했다.

화아아앗!

대혈에서 흘러나오는 극음지기로 인해 창백하다 못해 시체처럼 보였던 예유화의 얼굴에 거짓말처럼 혈색이 돌았다.

서조운의 극양지기가 극음지기를 억누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으음!”

“어어?”

“보통 한 번 잠들면 웬만해서는 깨지 못하는데…….”

미약한 침음과 함께 눈꺼풀이 꿈틀거리자 부부가 깜짝 놀랐다.

아무리 서조운이라도 깨우는 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손을 대기 무섭게 반응하자 두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누구세요?”

“서조운입니다.”

“아!”

힘겹게 눈을 뜬 예유화가 화들짝 놀랐다.

눈앞에 외간 남자가 있는 것도 놀라운데 그 사람이 서조운이라고 하자 더더욱 놀란 것이었다.

사실 예유화는 부모님과 달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천하에 이름을 알렸다는 건 그만큼 유명하다는 뜻이고, 그걸 달리 말하면 쉽게 만날 수 없다는 말과도 같았다.

단순히 희망을 품기에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았다.

잘사는 집안이라면 모를까 그녀의 집안은 오히려 정반대였기에 내심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서조운이 있자 예유화는 믿을 수가 없었다.

“많이 놀라신 모양이네요. 보니까 저를 못 만날 거라 생각하신 모양이죠?”

“헙!”

귀신같이 속내를 꿰뚫어 보는 서조운의 말에 예유화가 기겁했다.

나름 표정관리에는 일가견이 있는데 이렇게 쉽게 들여다 볼 줄은 몰랐기에 예유화는 마른침을 삼켰다.

“충분히 이해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괜한 희망을 품기보다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했고. 모든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걸 잘 아니까요.”

“…….”

예유화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정확히 그녀의 마음과 일치해서였다.

“그런데 기적은 있더라고요. 확률은 극악할 정도로 희박하지만. 그리고 그 확률이 지금 예 소저에게 찾아왔죠. 그러니 좀 더 힘을 내 봐요. 치료를 위해서는 마음가짐도 중요해요. 결국 이겨 내는 건 본인이거든요.”

“아…….”

예유화가 탄성을 터트렸다.

서조운의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닿아서였다.

“그러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요. 저기 계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요.”

꿀꺽!

예유화의 시선이 나란히 앉아 있는 부모님에게로 향했다.

음식이 앞에 있음에도 두 사람의 시선은 오로지 자신에게 향해 있는 모습에 예유화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도 울어서 이제는 더 이상 흘릴 눈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다시 눈물이 쏟아지자 예유화는 힘겹게 소매로 눈가를 훔쳤다.

“잠시만 가만히 있어 주세요. 몸 좀 살펴볼게요. 오음절맥인지, 칠음절맥인지 두 분께서도 모른다고 하셔서요.”

“칠음절맥보다는 오음절맥이 더 나은 거죠?”

“치료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그렇죠?”

조심스럽게 물어 오는 예유화에게 대답해 주며 서조운은 손목을 잡고 진기를 주입했다.

공력을 이용해 예유화의 체내를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어, 어떤가요?”

진지함을 넘어 심각하게 느껴지는 서조운의 표정에 예유화가 바짝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그런지 그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먼저 두 분과 대화부터 나누겠습니다.”

서조운의 말에 예유화의 얼굴도 굳어졌다.

왠지 모르게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건 부부도 마찬가지인지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

어느새 가까워진 정문을 보며 소년이 침을 꿀꺽 삼켰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입안이 바짝 말라 왔다.

그러면서도 소년의 발걸음은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정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더 이상 갈 곳도 없어. 어떻게든 일자리를 찾아야 해.”

소년은 각오를 다졌다.

이곳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말이다.

나이는 어려도 웬만한 일은 다 할 줄 알았기에 소년은 마음을 다잡고서 조심스럽게 정문을 두드렸다.

쿵. 쿵. 쿵.

워낙에 먹고 살기 바빴기에 이곳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저 무림문파라는 것과 그런 것치고는 인원이 되게 적다는 정도만 알았다.

대신 신기하게도 손님이 많아서 일손이 부족할 거라는 말을 들었기에 소년은 용기를 내서 문고리를 잡고 두드렸다.

한데 시간이 제법 흘렀음에도 안쪽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너무 작게 두드렸나?”

소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작게 두드려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자 소년은 다시 문고리를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근데 그 순간 문이 활짝 열렸다.

“누구?”

“아, 안녕하세요! 혹시 하인이나 잡부가 필요하지 않으신가요?”

“흐음. 일자리를 구하러 온 건가?”

“예! 맞습니다!”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를 향해 소년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체격이 왜소한 만큼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야 상대방이 좋아한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였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소심한 것보다는 적극적인 태도가 첫인상을 좋게 만들었기에 소년은 일부러 크게 말했다.

“여기가 어딘지는 알고 있고?”

“무, 무림문파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게 다야? 다른 건?”

“어, 손님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소년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아는 게 적었기에 자연스레 말도 아끼게 되어서였다.

그런데 소년이 점점 움츠러들수록 사내의 미소는 점점 짙어졌다.

소년은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짜 아는 게 없는 모양이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일은 잘할 자신 있습니다! 웬만한 일은 다 할 줄 압니다!”

사내, 반호진이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답과 반응을 보아하니 진짜 순수하기 일자리를 찾으러 방문했음을 알 수 있어서였다.

특히나 두 눈과 얼굴에서 느껴지는 간절함에 반호진은 호기심이 일었다.

“나이가 어떻게 되니?”

“여, 열세 살입니다!”

“정말?”

“예! 제가 못 먹어서 키가 좀 작습니다. 그래도 힘은 좋습니다!”

소년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또래에 비해 체격은 작지만 그에게는 악과 깡이 있었다.

한 번에 못 들면 두 번, 세 번에 나눠서 들면 되었기에 소년은 열의 가득한 눈빛으로 반호진을 바라봤다.

“근성은 있어 보이네.”

“잘 보셨습니다! 저를 고용하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건 두고 봐야 하는 거고. 근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어?”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 그렇지만 제가 일을 못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부터 객잔과 객점, 다관, 어육점(魚肉店), 포목점(布木店) 등등 다양한 곳에서 일했었습니다!”

“그런데 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거야? 경험이 다양하다는 건 달리 말하면 한 곳에서 오래 일하지 못했다는 뜻이잖아?”

정곡을 찌르는 반호진의 말에 소년이 움찔거렸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고민하는 것이었다.

“그게…….”

“표정을 보아하니 후려치기 당했구나?”

“……!”

“거기에 당장이라도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흔들리는 동공이 대답을 대신해 주는 모습에 반호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였기에 반호진은 가슴이 무거워졌다.

평범한 가정이었다면 부모의 사랑을 한참 받아야 할 나이가 열세 살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소년은 사랑이 아닌 냉혹한 현실을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있었다.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대인께 폐를 끼쳤습니다.”

흐르는 분위기가 결코 좋지 않다는 걸 느꼈기에 소년은 허리를 직각으로 굽혔다.

처음부터 욕이 나오지 않아서, 문전박대를 당하지 않아서 조금은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게 착각이란 걸 알았기에 소년은 망설이지 않고 사과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불편한 상황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렇지만 나중에, 몇 년 후에는 또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었기에 소년은 마무리라도 잘 맺고 싶었다.

“이름이 뭐니?”

“과, 곽춘입니다.”

“지금 바로 일할 수 있어?”

“예?”

“방금 전의 패기는 어디로 간 거야?”

굽히고 있던 허리를 어정쩡하게 세운 곽춘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였다.

“그럼, 그러니까…….”

“대답해 봐. 할 수 있어? 할 수 없어?”

“할 수 있습니다!”

곽춘은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았다.

이게 기회라는 걸 잘 알아서였다.

여기에서 퇴짜를 맞으면 최악인 곳에 가서 일해야 했기에 곽춘은 다시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크릉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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