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252화 (252/468)

제 82장. 누구 마음대로. -03

“너로구나.”

급한 일도 없고 궁금하기도 하기에 반호진은 곧바로 이동했다.

그리고 볼 수 있었다.

죽어 있는 들개 한 마리와 다 죽어 가는 들개를.

끼이이잉…….

“응?”

한데 자세히 보니 살아 있는 개는 한 마리가 아니었다.

암컷으로 보이는 피투성이 들개의 아래에는 아주 작은 생명체들이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이래서 날 불렀느냐?”

눈도 채 뜨지 못한 강아지들이 어미젖을 문 채로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며 반호진이 애잔한 표정을 지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부모와 이별하게 되었기에 불쌍한 마음이 든 것이었다.

보아하니 영역다툼이라기보다는 맹수와 싸운 듯했다.

곳곳에 떨어져 있는 핏자국으로 볼 때 가까스로 쫓아낸 것 같았다.

끼이잉……. 끼잉…….

“흐음.”

주변을 둘러보는 반호진을 어미 개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올려다봤다.

말이 통하지 않은 짐승이지만 그럼에도 반호진은 어미 개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마음으로 느껴진다고나 할까.

“어떻게 보면 이 또한 인연이겠지. 알겠다. 네 아기들은 내가 책임지마.”

끼잉!

회광반조(回光反照)처럼 어미 개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초롱초롱해졌다.

그러고는 천천히 다가오는 반호진의 손을 힘차게 핥았다.

마치 고맙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어미 개의 생명은 딱 거기까지였다.

반호진의 쓰다듬을 받으며 어미 개는 눈을 감았다.

한결 편한 표정을 짓고서.

끄으응! 끙!

아직 따뜻해서 그런지 어미 품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강아지 세 마리를 반호진은 조심스럽게 품에 안았다.

그런데 낯선 품이라서 그런지 강아지들이 격렬하게 움직였다.

처음 맡아 보는 냄새에 겁을 먹은 듯했다.

“괜찮다.”

그 마음을 모를 수가 없기에 반호진은 천천히 강아지들을 쓰다듬어 주었다.

게다가 추위가 한풀 꺾였다고 하나 아직 겨울이 끝난 건 아니었다.

그래서 반호진은 장포를 벗어 강아지들을 감싸고는 왼손을 흔들었다.

흔하디흔한 들개이지만 이제는 가족이 된 강아지들의 부모이기에 산짐승의 먹이가 되게 놔두고 싶지는 않았다.

스르륵.

비록 그게 자연의 섭리라지만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는 없었다.

또 어려운 일도 아니었기에 반호진은 무형지기로 땅을 파고는 두 마리의 개를 묻어 주었다.

끄으응.

부모를 묻어 주는 걸 알아차린 건지 아니면 이제는 반호진의 냄새에 적응을 한 것인지 강아지들이 얌전해졌다.

그러더니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키우는 개나 들개를 본 적은 많아도 직접 만지거나 키워 본 적은 전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반호진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강아지들의 상태를 꼼꼼히 살펴봤다.

“어? 웬 강아지예요?”

“어쩌다 보니 주웠어.”

“예? 주웠다고요? 부모는 어쩌고요?”

“산짐승이랑 싸우다가 죽었어. 어미 개도 버티다가 결국 죽었고.”

“아이고.”

서조운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적자생존의 자연이라지만 동정심이 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더욱이 개는 큰 무리를 이루지 않는 이상 먹이사슬에서 낮은 층에 위치할 수밖에 없기에 서조운은 불쌍한 눈으로 잠든 강아지들을 바라봤다.

“내가 키워 보려고. 만난 것도 인연이고.”

“정말요?”

“그러니까 데려왔지. 키울 생각이 없었다면 자연의 뜻에 맡겼겠지.”

“무슨 일이에요?”

서조운의 목소리가 컸던 모양인지 일행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중 사마의성이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눈도 못 뜬 채로 반호진의 품에서 꼼지락거리는 강아지들을 사마의성은 그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인연이 닿았어.”

“그런 말은 보통 제자를 만나거나 반려를 만날 때 쓰는 거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잖아?”

선우방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시선은 장포에 돌돌 말려 있는 강아지에게 향해 있었다.

“진짜 키우게?”

“응. 너무 어려서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살아남는다면 같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쓰다듬는 손길을 느낀 모양인지 강아지들이 꿈틀거리며 반호진의 손을 핥았다.

조그만 크기만큼이나 혀도 작았는데 놀랍게도 그 안에는 온기가 담겨 있었다.

“저는 찬성요! 어렸을 때부터 꼭 강아지를 키워 보고 싶었어요!”

“저도 좋을 것 같아요. 집을 지켜 줄 개가 있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공간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대찬성을 하는 서조운에 이어 사마의성이 조곤조곤 말했다.

반호진이 말한 대로 인연이 닿았기도 했고, 이리저리 따져 봐도 나쁠 게 없어서였다.

약간의 사심을 보태자면 사마의성도 개를 키워 보고 싶었다.

“경비라. 도움이 되긴 되겠네. 후각이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니까.”

“거부들이 괜히 맹수를 길들이는 게 아니니까요. 위신도 위신이지만 쓸모가 꽤 많거든요.”

“꼭 그런 목적으로 키울 생각은 없지만 말이지.”

“아직은 애기들이니까요.”

“우선은 살아남아야지.”

강아지들을 따뜻하게 쓰다듬어 주며 반호진은 곰곰이 생각했다.

당장 먹일 수 있는 것들부터 말이다.

동시에 조언을 구할 사람들도 떠올렸다.

개를 키우는 게 처음이기에 전문가의 조언은 필수였다.

“이름은 생각해 보셨어요?”

“겨울의 끝자락에 만나서 일동이, 이동이, 삼동이.”

“헙.”

강아지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서조운이 질색한 표정을 지었다.

작명 감각이 너무 끔찍해서였다.

좋게 말하면 직관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서조운이 느끼기에는 아무 생각 없이 대충 지은 것 같았다.

“난 괜찮은데? 촌스럽긴 해도 정감 가잖아. 또 들개 출신이니 차라리 이게 나을 수도 있고. 야성을 죽이려면 이런 이름이 어울리지.”

“야성이 있을까요? 새끼 때부터 키우는데.”

“그건 모르지. 늑대의 피가 섞여 있을 수도 있고. 들개면 반쯤 늑대나 마찬가지지.”

모용척의 말에 서조운은 반박하지 않았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서였다.

“형님께서 데려오셨으니 형님의 뜻에 따르는 게 맞지.”

“하긴. 애초에 나한테는 결정권이 없으니.”

사마의성까지 모용척의 의견에 동조하자 서조운도 결국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좋고 싫고를 떠나 처음부터 그에게는 권한이 없었다.

“촌스럽단 말이지.”

“하하하. 꼭 그렇다는 게 아니라 그런 느낌이 난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뭐, 괜찮아. 내가 들어도 성의 없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근데 잘 자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데 너무 정을 주는 건 아닌 것 같아서.”

“형님 말씀이 전부 옳습니다!”

말실수를 했다고 여기는지 서조운이 과장되게 맞장구를 쳤다.

그 모습에 반호진은 피식 웃으며 사마의성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소의 젖이 가장 낫겠지? 새끼를 낳은 개가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당장은 찾기 힘드니까.”

“네. 제가 구해 올게요.”

“저는 이 녀석들이 지을 집을 만들게요! 형님과 인연이 있으니 반드시 살아남을 거예요!”

서조운이 의욕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쓸데없는 짓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반호진은 제지하지 않았다.

강아지들에게 집이 있어 나쁠 건 없어서였다.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 덩치가 커지면 그때 맞춰서 새로 만들면 되니까.”

“옙!”

벌써부터 신나는 모양인지 들뜬 기색의 서조운을 보며 반호진은 실소를 흘렸다.

서서히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각에 난희주는 백설과 함께 응접실로 향했다.

하지만 방 안으로 들어간 건 난희주뿐이었다.

“얘네들이구나? 오빠의 간택을 받은 아이들이.”

“간택은 무슨. 그냥 인연이 닿은 거지.”

“진짜 귀엽다.”

지붕이 반밖에 없는 작은 개집에서 죽은 듯이 자고 있는 강아지 세 마리를 본 난희주가 눈을 반짝거렸다.

새끼일 때는 다 귀엽고 깜찍하다지만 그럼에도 강아지들은 너무나 앙증맞고 귀여웠다.

여심을 순식간에 녹여 버릴 정도로 말이다.

“들개 같지 않지?”

“응. 늑대 같지도 않고. 개집채로 들고 다니는 거야?”

“생각보다 편하더라고. 녀석들이 하루가 다르게 크기도 하고.”

“이름이 되게 특이하다면서?”

잠든 강아지들을 일별한 난희주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게 반호진에게는 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직관적이게 지은 거야. 외우기도 쉽고.”

“일동(一冬), 이동(二冬), 삼동(三冬)이라니. 직관적이 아니라 너무 건성으로 지은 거 아냐?”

“이미 늦었어. 셋 다 자기 이름이라는 걸 아니까.”

“덩치가 제일 큰 애가 첫째지?”

“응. 처음 봤을 때부터 컸어. 지금도 순서대로 크고 있고.”

들개답지 않게 새하얀 털을 가져서 그런지 난희주는 내심 강아지들과 이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겨울하면 아무래도 흰색이 가장 먼저 떠오르니까.

“근데 나 혼자 불러도 돼? 남궁세가나 하북팽가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모용세가도 불만을 가질 테고.”

“내가 눈치 봐야 하는 위치는 아니잖아?”

“올.”

난희주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할 줄은 몰라서였다.

그런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반호진은 이렇게 말할 자격이 있었다.

“너 역시 손님이기도 하고.”

“그렇지. 나도 손님이지. 나름 중요하다고? 제일 먼저 축하해 주러 온 게 바로 나 아니겠어?”

“그렇지. 이런저런 도움도 많이 받았고.”

“에이. 그건 아니다. 나랑 본문이 오빠한테 받은 게 얼마인데. 그런 걸 떠나서 당장 이곳의 생활만 하더라도 고맙지. 나는 살아생전에 염왕과 도왕을 만날 줄은 몰랐어. 그런 거물들을 만나는 날이 내 인생 끝장나는 날이라고 생각했거든.”

“두 사람도 똑같은 사람이야.”

반호진이 실소를 흘렸으나 난희주의 생각은 달랐다.

엄연히 신분의 차이는 존재했고, 실제로 모두가 살아가면서 느꼈다.

평등이라는 단어는 냉정하게 말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두 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걸.”

“지내는 건 어때?”

“나가라는 말은 아니지?”

“내 성격 알잖아. 나가길 원했으면 진즉에 말했지.”

“좋아.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오죽 했으면 호위대가 계속 머물기를 바랄 정도야. 아마 오빠가 문도를 모집한다고 하면 망설이지 않고 지원할걸?”

장난기가 다분히 섞여 있었으나 그 안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 말은 반호진이 동의하기 힘들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갑자기 왜 소속을 바꿔?”

“그 정도로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뜻이지.”

“그럼 너는 어때?”

“나도 좋아. 평화롭고, 자유로워서. 일단 마음 편히 잘 수 있다는 게 제일 좋아. 나도 은근히 암살 위협을 받거든. 신분이 신분인지라.”

“그거 말고 다른 거. 정확하게는 나와의 관계.”

난희주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지금 묻는 게 무엇인지 모르지 않아서였다.

“그러니까, 다 알고 있었다는 뜻이네?”

“내가 바보도 아니고 모를 리가 없잖아? 나름 눈치가 빠르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모른 척을 하고 있었단 말이네?”

“모른 척이라기보다는 굳이 아는 티를 내지 않았을 뿐이지.”

“우와.”

난희주가 헛웃음을 흘렸다.

말이라는 게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근데 이제는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서.”

“지금 선 긋는 거지?”

“선을 그으려고 했다면 그냥 나가라고 했겠지.”

“그랬겠지. 오빠 성격이라면.”

난희주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가 알고 있는 반호진이라면 굳이 여기까지 올 것도 없었다.

시간을 질질 끌지도 않았을 테고.

또 냉정하게 말하면 매달린 건 그녀이지 반호진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반호진은 누구에게도 자신을 좋아해 달라고 한 적 없었다.

오히려 여자들이 반호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으면 붙잡았지.

“보니까 넌 정작 중요한 걸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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