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1장. 각자의 방식으로. -02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초를 치는 모용척을 향해 모용희수가 눈을 흘겼다.
마음 같아서는 한마디를 쏘아붙이고 싶었는데 보는 눈들이 많았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대신 모용희수는 모용척을 매섭게 노려봤다.
“그럴 수는 없지. 여동생이 만든 첫 음식인데. 맛보다가 죽을지도 몰라도 일단 한 번은 먹어 봐야지.”
“…….”
모용희수의 눈빛이 더욱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용척의 능글거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겠다는 듯이 자세를 바로 했다.
“드셔 보시죠. 일단 저는 괜찮았습니다. 처음에 요리를 갓 배웠을 때는 먹어 주는 것도 고역이었는데 지금은 훨씬 나아졌습니다.”
“알겠습니다.”
모용궁의 말을 들으며 반호진은 젓가락을 들었다.
우선 미관상으로는 상당히 괜찮았다.
그릇에 담은 것도 하나하나 신경 쓴 티가 났다.
게다가 냄새도 나쁘지 않았기에 반호진은 망설이지 않고 생선구이에 젓가락을 뻗었다.
아무래도 소금만 뿌리면 되는 요리가 생선구이였기에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다들 똑같이 생각하는 모양인지 다들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오물오물.
경계심과 의심, 그리고 기대가 섞인 눈길을 받으며 반호진이 생선구이의 살점을 입에 넣었다.
혹시 몰라 적당량을 집어 입에 넣은 반호진은 천천히 이빨을 움직였다.
“형님. 이상하다 싶으면 뱉으세요. 억지로 드실 필요 없습니다. 다른 요리도 있어요.”
“어떠세요?”
진지하게 걱정하는 모용척을 한 차례 째려본 후 모용희수가 물었다.
한데 궁금한 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누구 하나 수저를 들지 않은 채로 반호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맛있는데요?”
“정말요?”
모용희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반대로 여인들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내심 별로이기를 기대했는데 맛있다고 하자 다들 아쉬운 표정으로 반호진이 먹었던 생선구이에 젓가락을 뻗었다.
평가를 들었으니 직접 맛을 볼 요량이었다.
“으음?”
“괜찮네?”
“엄청 맛있는 것도 아니지만 또 맛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여인들에 이어 팽만철과 남궁호도 기다렸다는 듯이 생선구이에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딸들의 평가처럼 맛이 나쁘지 않아서였다.
아니,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두 남자는 평가를 높이 했다.
일단 딸들이 부엌은커녕 식재료에 손을 댄 적도 없음을 잘 알아서였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고평가를 줄 수밖에 없었다.
‘허어. 너무 안일했어.’
‘이런 무기를 준비해 왔을 줄이야.’
남궁호와 팽만철의 생각이 일치했다.
그 정도로 모용희수의 무기는 강력했다.
얼굴도 예쁜데 요리까지 잘한다면 당연히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두 사람은 다른 음식도 조금씩 먹어 봤다.
“진짜 괜찮네?”
여인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놀란 표정으로 모용척이 중얼거렸다.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맛이 있어서였다.
막 엄청나게 감탄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먹어 줄 정도는 되었다.
“괜찮은 수준이 아닌데? 이 정도면 맛있지. 채소볶음도 간이 적당하고. 적어도 짜지는 않잖아. 싱겁다고 말할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뭐, 사람이 먹을 정도는 되는 것 같아요.”
“여동생이라고 너무 저평가하는 거 아냐?”
선우방이 실소를 흘렸다.
아무리 남매라지만 평가가 너무 박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나치게 편들어 주는 것도 좀 그렇지만 지극히 냉정한 것도 보기에 썩 좋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평가한 겁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이럴 때는 칭찬보다 쓴소리가 더 성장에 좋으니까요.”
“칭찬을 해 줘야 더 기분도 좋고, 노력할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막말로 너도 쓴소리보다는 칭찬을 좋아하잖아. 왜 너한테는 관대하고 모용 소저한테는 냉정해?”
“으음!”
모용척이 침음을 흘렸다.
모두 맞는 말이었기에 반박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언니들은 어때요?”
“……먹을 만해.”
“괜찮은데?”
“맛있어.”
“연습 많이 했겠는데?”
모용희수가 물어 오자 남궁소연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반면에 다른 세 사람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굳이 냉정하게 평가할 것 없이 그녀들의 입맛에도 괜찮았다.
전문적인 숙수에 비할 바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잘 만든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네요. 저 진짜 열심히 노력했거든요.”
스윽.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대답에 모용희수가 방긋 웃었다.
그러면서 섬섬옥수와도 같은 두 손을 자연스럽게 펼쳤다.
제법 많은 상처가 남아 있었는데 그중에는 막 아문 자상들도 있었다.
깊지는 않았으나 여기저기 칼에 베인 상처가 상당했다.
“흉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요.”
“맞아요. 근데 은근히 재미있더라고요. 보람도 느끼고요. 처음에는 아빠가 많이 힘들어 하셨는데 그 덕분에 지금은 제법 괜찮게 음식을 만들 수 있게 되었어요.”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저야말로 맛있게 드셔 주셔서 감사해요.”
반호진의 대답에 모용희수가 활짝 웃었다.
바로 이 말을 듣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었기에 모용희수는 기뻤다.
동시에 자신의 전략이 어느 정도 먹혔음을 느꼈다.
반호진이야 원래 감정기복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봤는데 전체적으로 괜찮았다.
특히 남궁소연이 남몰래 똥 씹은 표정을 짓고 있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됐어.’
차별성은 물론이고 반호진과 일행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모용희수에게는 남는 장사였다.
그리고 그녀는 결코 빈말을 한 게 아니었다.
자식을 낳는다면 아기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음식을 먹여 주고 싶었다.
‘그게 반 공자님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는데.’
처음에는 그저 가문을 위해서였다.
어차피 모용세가의 여식으로 태어난 이상 그녀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오로지 가문을 위해서 정략결혼을 해야 하는 운명만이 주어졌다.
그랬던 그녀에게 나타난 이가 바로 반호진이었다.
기존에 있던 암묵적인 서열을 뒤집어 버리며 강호의 신성으로 떠오른 반호진은 모든 가문이 원하는 인재였고 그건 모용세가 역시 다르지 않았다.
거기다 나이를 먹어도 철이 들지 않은 하나뿐인 오빠를 정신 차리게 만들어 주었기에 모용희수로서는 자연스럽게 호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친해지고, 반호진에 대해 알게 되면서 모용희수는 점점 빠져들었다.
‘경쟁자가 많지만, 포기할 수 없지.’
모용희수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과거 남자들이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피 튀기는 경쟁을 한 것과 상황은 똑같았다.
미녀를 가지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야 하는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최고의 후기지수이자 곧 천하제일인이 될 반호진을 얻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쟁에서 이겨야 했다.
‘절대 포기 못 해.’
모용세가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서라도 모용희수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이미 포기하기에는 너무 멀리 오기도 했고.
그렇기에 모용희수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에는 반드시 성과를 내겠다고, 성공하겠다고 말이다.
“흐음.”
모용희수가 의지를 활활 불태우고 있을 때 남궁호는 침음을 흘렸다.
전혀 예상치 못한 모용세가의 한 방 때문이었다.
헛손질이었다면 마음이 편했겠는데 그게 아니었기에 남궁호는 심사가 복잡했다.
팽만철 역시 같은 심정인지 아까 전부터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이런 걸 준비했을 줄이야.’
남궁호는 놀라는 한편 모용세가의 준비성을 인정했다.
더불어 자신이 얼마나 안일했는지 깨달았다.
‘최대한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해.’
남궁호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보통의 무인이었다면 남궁세가라는 말을 듣자마자 고민할 것도 없이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남궁소연과 혼인하겠지만 반호진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남자와는 궤를 달리했기에 그에 맞는 대책이 필요했다.
‘자존심 때문이라도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지.’
하북팽가도 아니고 모용세가에 패배한다는 건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남궁호는 두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
아침 일찍 난희주는 백설과 호위무사들을 대동하고 남창의 시전으로 나왔다.
염왕과 도왕 때문이 아니라 저잣거리의 분위기를 직접 느껴 보기 위해서였다.
“확실히 성도는 성도인 것 같아요. 강서성의 다른 곳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그렇긴 하네.”
“바로 가실 거예요?”
“응. 굳이 시간을 끌 필요 없잖아? 큰일도 아닌데 후딱 끝내고 돌아가자.”
“네!”
백설이 힘차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이번 일은 정말 사소한 일이었다.
굳이 난희주까지 나설 필요가 없는.
막말로 그녀 혼자만 나서도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백설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는 모습으로 난희주를 보필했다.
“확실히 시전은 시전 특유의 활기가 있어.”
“정겹기도 하고요.”
“멀리서 보면. 가까이서 보면 전쟁터나 다름없지. 장사라는 게 하나라도 더 팔아야 이윤이 남으니까. 그나저나 아직 안 알려진 것 같지?”
“문주님이 밖에 자주 나오는 성격은 아니시잖아요. 장을 보는 것도 매향이와 아이들이 다 하니 시전 상인들과 실질적으로 마주칠 일이 없죠.”
백설의 대답을 들으며 난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설사 반호진이 외출을 한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알아보는 이들은 없을 터였다.
중원 전역에 퍼진 명성에 비해 실제로 반호진을 만나거나 본 적이 있는 이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반호진이 내가 소림검신이라고 말하고 다닐 리도 없으니 더더욱 모를 게 분명했다.
“그래도 얼마 안 가서 다 알려질 거야. 우리와 금가장이 암암리에 통제하고 있기는 한데, 영원한 비밀은 없으니까. 일단 남궁세가주와 하북팽가주, 모용세가주가 와 있으니.”
“염왕과 도왕의 등장이 크죠. 아예 대놓고 찾아왔던데. 문주님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백설이 혀를 찼다.
정말 생각 없이 찾아와서였다.
심지어 남궁호와 팽만철은 정식으로 초대받고 온 것도 아니었다.
그게 백설은 너무나 고까웠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간절하다는 뜻이겠지.”
“백봉이 그렇게 나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예상외이긴 했어. 정말 상상치도 못한 한 방을 준비했을 줄이야. 나도 놀랐어.”
“놀라기만 하시면 안 되죠. 대책을 세우셔야죠!”
“그럼 나도 요리를 배울까?”
초조한 모양인지 백설의 목소리가 점점 더 높아졌다.
그 모습에 난희주가 싱긋 웃었다.
“똑같은 패로는 승산이 없어요! 두 번째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거 소문주님도 아시잖아요.”
“알지. 그래서 고민 중이야. 백봉과 달리 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으니까. 근데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당장 할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자고.”
백설과 대화하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남창의 암흑가를 사등분하고 있는 곳이자 하오문과는 그나마 깨끗한 인연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어, 어서 오십시오!”
호위무사는 열 명밖에 되지 않았으나 한 명 한 명이 흘리는 기도는 상당했다.
무상문에서야 일개 절정고수일지 모르나 뒷골목 암흑가에서는 달랐다.
대부분이 삼류나 이류였기에 호위무사들 정도면 가히 절대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암흑가의 수장들 중에는 절정의 경지에 오른 이도 있긴 하지만 같은 경지라고 해서 수준마저 같은 건 절대 아니었다.
더욱이 난희주를 호위하고 있는 무인들은 하오문에서 고르고 고른 인재일 뿐만 아니라 반호진에게 짧게나마 가르침은 받은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무려 열 명이었기에 정문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들이 굽실거리며 황급히 문을 열었다.
“안내해.”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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