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247화 (247/468)

제 81장. 각자의 방식으로. -01

터벅터벅 걸어오는 중년인의 모습에 팽만철은 물론이고 팽수영과 팽화영, 그리고 호위무사들도 놀랐다.

오지 않을까 예상을 하긴 했으나 이렇게 동시에 도착할 줄은 몰랐기에 모두가 눈을 크게 떴다.

“크흠! 안 왔으면 싶었는데.”

“사돈 남 말하고 있군. 그럼 혹시 양보할 생각이 있나?”

“있겠어?”

“그러니 피차 따지지는 말자고. 어찌 보면 같은 처지인데.”

남궁호가 그답지 않게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인지 팽만철은 남궁호가 자기를 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같은 처지라니. 그건 아니지.”

“아니긴. 우리 둘 다 초대받지 못한 처지이지 않나. 안 그런가?”

“커험! 초대가 중요하나? 축하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지!”

“하북팽가의 축하는 원치 않을 것 같은데.”

팽만철이 대놓고 헛기침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나 남궁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이러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팽만철보다는 자신이 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해서였다.

가문은 물론이고 딸의 미모 역시 쌍둥이 딸들이 팽수영, 팽화영 자매보다 훨씬 나았다.

삼봉에 비해서 떨어질 뿐이지 쌍둥이 자매 역시 어디 가서 꿀리는 외모는 절대 아니었다.

“그건 남궁세가 역시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나는 다르지.”

“남궁세가에서 있었던 일을 아는데. 그런 일을 당했는데도 과연 반겨 줄까? 더구나 불청객인데?”

“호진이는 누구와 달리 속 좁은 아이가 아니네.”

“어허! 호진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호칭을 그렇게 하나! 이제는 일문의 수장인데!”

트집거리 하나를 잡았다는 듯 팽만철의 목청이 터져라 소리쳤다.

마치 다른 사람들도 들으라는 듯이 말이다.

그 모습에 남궁호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참.”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하라고. 벌써부터 반 문주를 이렇게나 무시할 줄이야. 이거이거, 가뜩이나 자네를 탐탁지 않아 할 텐데 큰일이로고.”

“전혀 걱정해 주는 기색이 아니네만.”

“당연하지. 전쟁 때야 전우였지만 지금은 달라. 적이라고, 적. 경쟁자를 넘어 적이지!”

“그렇게 나오겠단 말이지.”

남궁호의 눈빛이 달라졌다.

상대 쪽에서 이렇게 나오니 그도 더는 웃으며 받아 주기가 힘들었다.

엄밀히 말해 팽만철의 말이 틀리지도 않았고.

어떻게 보면 이 또한 전쟁이었다.

“아빠!”

그런 둘의 모습에 네 여인이 동시에 뾰족하게 소리를 질렀다.

일가의 수장이라는 사람들이 너무 못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서였다.

그것도 그저 그런 가문이 아닌 무림오대세가 중 남궁세가와 하북팽가의 주인들이었다.

그 때문에 딸들은 하나같이 민망하다는 듯이 얼굴을 붉혔다.

끼이익.

게다가 때마침 정문이 열렸다.

시끄러운 소란 때문인 것처럼 절묘한 순간에 문이 열리자 팽만철과 남궁호가 반사적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누구신가 했더니 두 분이었군요.”

“어…….”

“크흠!”

남궁호와 팽만철의 얼굴이 민망함에 벌게졌다.

하필이면 정문을 열고 나타난 이가 반호진이어서였다.

“아무리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없다지만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장원 안까지 쩌렁쩌렁 들립니다.”

“다 저 녀석 때문이야.”

“뭐라고?”

너무나 당당하게 자신 탓으로 떠넘기는 팽만철의 모습에 남궁호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건 쌍둥이들과 팽수영, 팽화영 자매도 마찬가지였다.

얼마나 어이가 없는지 네 명의 여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유가 있다고 다 큰 소리를 내는 건 아닙니다만.”

“내가 태어나길 이렇게 태어났어.”

“변명일 뿐입니다. 그보다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제 기억에는 두 분을 초대한 기억이 없습니다만.”

뻔뻔하게 잘만 대답하던 팽만철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마땅히 할 말이 없어서였다.

“개파를 축하해 주러 왔다네. 아들의 혼례식 때도 와 주었는데 응당 나도 축하하러 와 주어야 하지 않겠나. 무릇 경조사는 최대한 챙기는 게 맞는 것이니까.”

“오랜만에 맞는 말을 하는군.”

“저쪽은 아무 생각 없이 온 게고. 아, 하나는 있군. 근데 그건 내 입으로 말해 주고 싶지는 않네.”

남궁호의 시선이 팽만철을 지나 팽수영, 팽화영 자매에게로 향했다.

입으로 말은 하지 않았으나 대신 눈빛으로 말을 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더구나 그 역시 같은 이유로 이곳을 찾았기에 더더욱 거론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군요.”

“근데 섭섭하이. 개파를 했는데도 연락 하나 주지 않고.”

“거창하게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개파를 하긴 했으나 문도나 제자를 받을 생각도 아직 없고요. 소소하게 개인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만든 곳이라 굳이 따로 연락을 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험험! 아무리 그래도 연락은 좀 해 주지 그랬나. 우리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큰 전쟁을 함께 치른 전우이지 않나.”

“바쁘실 것 같아서요.”

남궁호가 자연스럽게 서운함을 내비쳤으나 반호진은 미리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변명거리를 말했다.

실제로 빈말이 아니기도 했고.

당장 사문인 소림사만 하더라도 잃은 전력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다른 곳들도 마찬가지였고.

“바쁜 건 사실이네만 여기까지 못올 정도는 아니네. 저 사람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아마 가문의 일을 다른 이들에게 떠넘기고 왔을 것이네.”

“지도 마찬가지면서.”

“다 들린다.”

제 딴에는 작게 말한다고 했으나 안타깝게도 큰 목청을 타고난 게 팽만철이었다.

그의 작은 중얼거림은 평범한 사람들이 말하는 것과 비슷했기에 남궁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원래 저런 성격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듣다 보니 심기가 불편해져서였다.

“일단 들어오시죠. 축하해 주시러 먼 길을 오셨는데.”

“다행이구먼. 혹시 문전박대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중원에서 가주님을 문전박대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자네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일세. 아, 이제는 반 공자가 아니라 무상문주라고 말해야 하나?”

“모두 그런 걱정을 하시는데, 편하신 걸로 하시면 됩니다. 저도 아직 새로운 호칭이 적응되지 않아서.”

남궁호는 물론이고 남궁소연, 남궁수연 자매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들이 생각하기에도 그럴 것 같아서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반호진에게 눈인사를 했다.

“저희도 허락해 주시는 거죠?”

“예. 저는 차별하는 사람이 아닌지라. 뭐, 조금 불편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요.”

쌍둥이 자매들보다는 가깝다고 볼 수 있는 팽화영의 질문에 반호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말에 뼈를 담았다.

대놓고 팽만철을 보면서 말이다.

“지금 나에게 하는 말인가?”

“편한 사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허어!”

팽만철이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감히 따지지는 못했다.

나이는 그가 많지만 강호는 강자존의 세상이었다.

강자의 말이 곧 법이고 진리였기에 팽만철은 불같은 성정을 토해 내지 못하고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다.

“팽가주님도 들어오시죠. 단, 소란을 일으키시면 안 됩니다. 숭산에서야 저도 얹혀사는 입장이었지만 이곳은 다릅니다. 여기의 주인은 접니다. 그걸 명심해 주셨으면 합니다.”

“흠흠! 물론이지! 나 그렇게 몰상식한 놈 아니야. 사리분별은 한단 말이지.”

“퍽이나.”

팽만철이 자신만만하게 말했으나 남궁호는 코웃음을 쳤다.

너무나 당당하게 거짓부렁을 지껄여서였다.

다른 이들도 같은 생각인지 표정이 모두 똑같았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저희도요.”

더 있어 봤자 분위기가 좋을 것 같지 않기에 팽화영이 선수를 쳤다.

우선 숙소부터 배정받을 생각이었다.

일단 방을 배정받으면 나가라 해도 조금은 버틸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눈치 빠른 남궁소연도 그걸 알았기에 냉큼 동조했다.

아침 식사 초대를 받고 온 남궁소연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모용희수가 직접 음식을 만들었다는 말에 대경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건 남궁호를 비롯해서 팽만철과 남궁수연, 팽화영, 팽수영도 마찬가지였다.

딱 봐도 상당한 실력으로 보였기에 모용궁을 제외한 모두가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후후후.”

오직 딱 한 명.

본가에서 모용희수의 음식을 먹어 본 모용궁만이 흐뭇하게 웃었다.

모용희수의 솜씨를 알았기에 유일하게 그만이 여유로웠다.

“이걸 진짜 네 손으로 만들었다고?”

“응. 못 믿겠으면 매향이한테 직접 물어봐. 나랑 같이 만들었으니까.”

“너는 지시만 한 거 아니고?”

“아니거든? 볶음이랑 구이, 찜 요리는 내가 직접 재료 손질까지 해서 만들었어. 탕이랑 채소무침 같은 것들은 매향이가 만들고.”

“허어.”

모용척이 믿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비록 친밀한 사이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혈육이었다.

부친을 제외하면 모용희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게 그였다.

그렇기에 모용척은 지금 이 광경이 너무나 낯설었다.

“원래는 나 혼자서 다 만들려고 했는데 갑자기 인원이 늘어나서 이 정도가 한계였어.”

“믿기지가 않네. 네가 요리를 한다니.”

“못 할 것도 없잖아? 인생에서 먹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맞아. 중요하지. 근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맛이지. 진미가 되느냐, 못 먹는 음식이 되느냐는 만든 사람의 실력에 따라서 달라지니까.”

“먹어 보고 얘기해, 먹어 보고.”

얼굴 가득 미심쩍은 기색을 드러내는 모용척의 모습에 모용희수가 가슴을 내밀었다.

자신감이 잔뜩 서려 있는 모습이었으나 모용척은 선뜻 수저를 들 수가 없었다.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모용희수의 모습이 너무나 강렬하게 남아 있었기에 섣불리 믿기가 힘들었다.

“놀랍네. 희수 네가 직접 요리를 했다니.”

모용척만큼이나 놀란 남궁소연이 떠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녀가 보아 온 모용희수와는 너무 다른 모습이어서였다.

“사람을 부려도 되지만, 그래도 할 줄은 알아야 할 것 같아서요. 나중에 자식을 낳으면 제가 직접 만들어 주고 싶기도 하고.”

“아…….”

얼굴을 살짝 붉히며 대답하는 모용희수의 모습에 남궁소연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모용희수가 왜 요리를 배우려고 했는지 말이다.

그걸 다른 이들도 눈치챘는지 하나같이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발칙한 계집애.’

남궁소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의 발언이 그녀를 비롯해서 팽화영에게 하는 선전포고임을 알아서였다.

동시에 한 방 제대로 먹었다고 생각했다.

가뜩이나 미모에서 상대가 안 되는데 요리까지 배우자 남궁소연은 초조해졌다.

“으음!”

“커험!”

그건 남궁호와 팽만철도 마찬가지인 듯 안절부절못했다.

모용희수가 이런 무기를 가지고 올 줄은 몰랐기에 둘 다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반호진의 얼굴을 살폈다.

“일단 먹어 봐요. 음식은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으니까요.”

“보기에는 괜찮아 보이는데.”

“맛도 괜찮을 거예요.”

딱 봐도 맛으로 트집을 잡으려고 하는 게 보였기에 모용희수가 먼저 말했다.

어느 정도 자신이 있기도 했고.

간을 보면서 맛도 봤기에 모용희수는 자신 있었다.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맛이 없거나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럼 먹어 볼까요.”

“감상평도 말씀해 주세요.”

“제가 좀 평가에 냉정한데요.”

“그래야 발전도 있으니까요. 음식은 먹는 사람 입맛에 맞추는 게 정답이기도 하고요.”

모용희수의 말에 남궁소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정말 대놓고 끼를 부리고 있어서였다.

그런데 더 열 받는 건 이 광경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너무 호언장담하는 거 아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인데.”

“믿을 수 없으면 오빠는 먹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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