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246화 (246/468)

제 80장. 몰려드는 손님들. -03

“괜찮지요?”

“네. 깔끔하고 정갈한 게 반 대협의 성향이 고스란히 담긴 것 같습니다. 묘하게 숭산의 거처와 비슷한 느낌도 들고요.”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만.”

“하하. 일단 넓어서 좋습니다.”

이동하면서 딴생각을 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볼 건 다 본 금호연이었다.

장원의 내부를 대략적으로나마 훑어봤기에 금호연은 만족스러운 듯이 웃었다.

숭산에서의 생활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으나 불편한 게 없지는 않았었다.

일단 호위대가 노숙을 해야 했기에 그게 좀 미안했었는데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금호연은 기꺼웠다.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서 일단은 큼직큼직하게 지었습니다. 성도인 남창이지만 그래도 좀 외곽이라서 그런지 부지가 싸게 나오기도 했고요.”

“알죠. 제가 알려 드린 곳 중에 한 곳이지 않습니까. 개인적으로 저도 이곳이 가장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지리적으로 가장 나으니까요. 아, 참고로 선물은 끌고 온 마차에 있습니다. 마차도 포함이고요.”

“예?”

마차까지 선물이라는 말에 반호진이 자기도 모르게 반문했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선물을 받았지만 마차까지 통째로 주는 경우는 없었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실소가 절로 나왔다.

“다른 분도 아니고 반 대협께서 문파를 세우셨는데 제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요. 지금까지 반 대협께 도움받은 게 얼마인데요. 참고로 장주님께서 보내신 선물도 마차에 실려 있습니다.”

“소장주님께서 응접실로 직접 가져오시지 않았다는 건, 부피가 크다는 뜻이겠지요?”

“후후후. 저는 대답해 드리지 않을 겁니다. 열어 보는 재미라는 게 또 있으니까요.”

금호연은 은근슬쩍 떠보는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

대신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었다.

어떤 걸 기대하든 그 이상이라는 듯이 말이다.

“말씀만 들어도 부담스러운데요.”

“반 대협, 아니 무상문주님께서는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개인적으로 저에게 있어 장주님보다 더 소중하고 감사한 분이 바로 문주님이십니다. 무상문주님께서 저를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테니까요.”

금가장의 소장주가 되었음에도 금호연은 초심을 잃지 않았다.

아니, 잃을 수가 없었다.

지금의 자리는 결코 그가 잘해서 차지한 게 아니었다.

반호진을 비롯해서 그를 지지해 주고 도와 준 이들이 없었다면 소장주라는 자리는 절대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 말씀이 더 부담스러운데요.”

“무상문주님은 충분히 자격이 있으십니다. 절대 농담이 아닙니다.”

“진심이라서 더 부담스러운 겁니다.”

“하하하. 그렇지만 이건 어쩔 수 없습니다. 사실이니까요.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환은 안 되겠지요?”

금호연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반호진은 부담이 되었다.

친분이 깊어질수록 그에게 있어, 또 무상문에 있어 크나큰 도움이 되겠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었다.

이렇게 나오면 제아무리 반호진이라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시면 제가 큰일 납니다. 장주님 성격이 보통이 아니시거든요. 문주님은 문주님이니까 장주님께서도 정중하게 대하신 겁니다.”

“그럼 과하다고 생각이 들면 소장주님을 쫓아내면 되는 겁니까?”

“어, 그것도 좀……. 저는 쫓겨날 걱정 없이 편하게 지내고 싶습니다. 얼핏 듣기로 빈방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방은 넉넉히 있습니다. 혹시 몰라서 숙소를 여유롭게 지었거든요.”

“호위대가 좋아하겠네요. 아무래도 노숙보다는 침상이 훨씬 편하니까요. 그리고 제가 준비한 진짜 선물은 이것입니다.”

스윽.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금호연이 품속에서 작은 서책을 한 권 꺼냈다.

손바닥보다 큰 크기에 제법 두꺼운 책이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제목은 따로 없었다.

“무엇입니까?”

“문주님께서 남창에 자리를 잡지 않으셨습니까. 그래서 강서성에 자리 잡은 무문들과 무가들의 세력 구도에 대해 정리한 것입니다. 또 간략하지만 주로 거래하는 표국이나 상단과 소유하고 있는 전답 등등 재산에 대해서도 적어 놓았습니다.”

“그 정도면 기밀 아닙니까?”

“깊게 파고든 건 아닙니다. 알아내고자 한다면야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문주님께서 거기까지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저희도 굳이 불필요한 충돌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고요. 꽤 상세히 파악하기는 했으나 기밀 수준까지는 아니니 편하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진짜 선물이네요.”

반호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설명을 들어 보니 금호연이 자신만만해할 정도여서였다.

“하오문과도 친분이 있으시지만 또 본 장만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으니까요. 교차 분석을 하면 훨씬 더 정확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준비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소장주님.”

“아닙니다. 받은 건 제가 훨씬 더 많지요. 전 조금이나마 보답한 걸로 충분합니다. 하하하.”

반호진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하자 금호연이 다급히 손사래를 쳤다.

이런 인사를 받자고 준비한 게 아니어서였다.

순수하게 보답의 의미로 준비한 것이었기에 금호연은 이런 감사 인사가 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감사한 건 감사한 거니까요. 이런 정보들은 구하고 싶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문주님과의 인연도 맺고 싶다고 해서 맺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문주님 덕분에 저도 알게 모르게 대우를 받거든요. 그러니 그냥 받으셔도 됩니다.”

“잘 사용하겠습니다.”

“저는 그거면 됩니다. 아참, 그런데 혹시 사람은 필요하시지 않으십니까? 새로 사람을 구한 것 같기는 한데 전부 여자아이들인 것 같아서요.”

하녀들이 있기는 하나 잡일이라는 게 남자들도 필요했다.

섬세한 쪽의 일은 하녀들이 한다 해도 힘을 쓰는 일에는 남자가 필요했기에 금호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이야 별다른 티가 안 난다고 하나 반호진의 위명을 생각하면 앞으로 손님들이 적잖이 들이닥칠 게 뻔하기에 미리미리 준비해 두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고민은 하고 있습니다.”

“손발이 맞춰질 것까지 감안하면 미리 고용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흐음. 필요할까요?”

무공은 반호진이 전문가지만 이런 운영 쪽의 일은 아무래도 금호연이 더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진지하게 조언을 구했다.

“생각보다 힘쓰는 일이 많습니다. 손님이 많아지면 그만큼 필요한 식재료도 늘어나고요. 지금이야 인원이 적으니 장작을 사서 쓰시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땔감을 직접 만드는 게 훨씬 낫습니다. 용도에 맞게 크기를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고요. 또 이런저런 잔심부름을 사마 공자나 서 공자에게 언제까지 맡길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러네요.”

반호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특히 마지막 말이 반호진을 동의하게 만들었다.

개인 수련 시간은 물론이고 스스로 찾은 꿈을 위해 전력질주를 해야 하는 게 서조운과 사마의성이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는 하지 말아야 했기에 반호진의 마음은 바로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숙련된 실력자를 원하신다면 제가 구해 드리겠습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신원 보장도 확실하고요. 또 모든 인력을 숙련자로 뽑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신입을 아우르고 일을 가르치려면 숙련자는 필수입니다.”

“긍정적으로 고민해 보겠습니다.”

“꼭 지금이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필요하실 때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금호연은 조언을 하되 선을 넘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 이쪽 분야에 전문가라고 하나 무상문의 주인은 반호진이었다.

그렇기에 딱 적당한 수준의 조언에서 그쳤다.

잘 보여도 모자랄 판에 미운 털이 박혀서 좋을 건 없었다.

‘묻고 싶은 게 있긴 한데, 이건 좀 민감한 문제라.’

반호진과 대화를 하면서도 금호연은 고민했다.

하지만 끝끝내 꺼내지 않았다.

좋은 분위기를 망칠 수도 있기에 결국에는 참았다.

‘기회는 또 있으니까.’

금호연은 길게 봤다.

당장의 불확실성보다는 오래 얻을 수 있는 이득을 생각했다.

또 반호진 하나만 봐서는 안 되었다.

반호진의 주변에는 후기지수들 중에서 최상위권이라 할 수 있는 인재들이 몰려 있기에 금호연은 다급한 마음을 억눌렀다.

두 딸을 데리고 먼 길을 온 팽만철은 얼굴 가득 못마땅한 기색을 띠었다.

사내자식들이 배짱은커녕 오기도 없어서였다.

물론 좌절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사내대장부라면 그조차도 이겨 내려는 근성과 독기가 있어야 했다.

“에잉!”

한데 근성은커녕 오기조차 보이지 않는 두 아들놈의 모습을 떠올리자 복장이 터졌다.

마음 같아서는 두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끌고 오고 싶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두 놈을 설득할 시간도 없었고 말이다.

“아직도 화가 안 풀리셨어요?”

“그럼 풀리겠느냐? 그 못난 꼴을 봤는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막내딸이기에 팽만철은 차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애초에 팽화영 때문에 쌓인 화도 아니었고.

다른 이한테 화풀이할 정도로 몰상식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팽만철은 얼굴은 붉혔다.

“오빠들 마음도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에요. 떠올리기도 싫은데 보고 싶지는 않았겠죠. 자괴감만 커질 테니까.”

“그렇게 피하기만 해서는 패배자밖에 안 돼!”

“둘 다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생각하세요, 아빠.”

“사내놈의 자식들이! 그냥 한 번에 탁 털어 내면 될 것을!”

“모두가 다 아빠 같지는 않아요.”

셋째인 팽수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라고 부친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모든 사람들이 팽만철의 성격과 같은 건 아니었다.

그리고 비교 대상이 나빠도 너무 나빴다.

실력이 차이가 나더라도 따라잡을 수 있겠다는 정도가 되어야지 무지막지한 수준이면 호승심이 생기려야 생길 수가 없었다.

따라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보통의 사람은 포기하기 마련이었다.

그런 점에서 두 오빠의 선택은 충분히 현실적이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노력은 해야지!”

“마음을 다잡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호통은 그때 하셔도 늦지 않아요.”

“에잉! 못난 놈들! 흘러간 시간은 절대 되돌아오지 않건만!”

팽만철이 콧김을 크게 내뿜었다.

그라고 아들들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과거 그 역시 좌절도 해 보고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하나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시간만 속절없이 흐를 뿐이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것처럼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릴 시간에 차라리 도라도 한 번 더 휘두르는 게 이득이었다.

“강제로 해 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아빠도 아시잖아요.”

“후우.”

팽수영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모두가 그와 같을 수는 없었고, 조언을 해 줘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다 보니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적어도 포기하지는 않았잖아요. 그러니 조금 기다려 봐요, 아빠.”

“그래서 더 데려오려고 했던 건데. 일단 마주 보기라도 하게 하려고.”

“또 이러신다. 아빠 입장에서만 생각하지 마요. 반 공자님 입장에서도 생각해야죠. 얼마나 귀찮으시겠어요. 두 오빠들이 앞에서 싫은 티 팍팍 내고 있으면.”

“끄응!”

팽만철이 앓는 소리를 냈다.

막내딸의 말이 전부 다 맞아서였다.

더구나 반호진은 그가 더 이상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당장 지금만 하더라도 매달리기 위해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그쪽 집안은 여전하구만.”

“응?”

“뭘 그렇게 놀라는가? 자네만 급한 줄 아나?”

두 딸과 나란히 걸어가던 팽만철의 퉁방울만 한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예상치 못한 인물의 등장에 크게 놀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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