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245화 (245/468)

제 80장. 몰려드는 손님들. -02

모용척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많은 의미가 함축된 표정이었다.

“서운하기는. 다 설명 들었는데. 그리고 수장은 엉덩이가 무거워야 하는 법이다. 가벼우면 주위에서 무시를 하는 법이야. 편한 것과 만만한 것은 완전히 달라.”

“흐음?”

모용척이 고개를 비스듬히 꺾었다.

어째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 같아서였다.

그게 눈빛에서 느껴졌기에 모용궁이 헛웃음을 흘렸다.

“나는 상황이 다르지. 딸을 가진 아빠이기도 하고. 또 비바람은 피해야지 맞아서 무엇 하겠느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네요.”

“아, 그리고 잘했다. 장소를 알자마자 연락한 건.”

“당연히 그래야죠. 저도 모용세가의 사람인데요. 오빠이기도 하고.”

아무리 툴툴거리고 옥신각신해도 남매였다.

핏줄이자 죽을 때까지 함께해야 하는 가족이었기에, 좋아하지는 않아도 챙겨야 하는 동생이 모용희수였기에 모용척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거라도 잘 알고 있어서 나는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저도 철들었어요.”

“많이 들기는 했지. 불과 이 년 전만 하더라도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었었으니까.”

“그때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던지라. 남자들에게는 다 그런 시기가 있지 않습니까. 흠흠!”

천하의 모용척도 민망한지 헛기침을 했다.

그러나 모용궁은 순순히 넘어가지 않았다.

“남녀불문하고 모두에게 사춘기가 찾아오지만 넌 유달리 심하고 길었지.”

“크흠! 얼른 가시죠.”

“말 돌리기는.”

차마 따지지는 못하고 말을 돌리는 아들의 모습에 모용궁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더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고 현재의 모용척은 누구보다 잘해 주고 있었다.

일단 별호와 명성이 그걸 증명했다.

“의외로 일하는 사람이 많네? 난 오빠랑 일행분들만 계실 줄 알았는데.”

따라서 걸어가던 모용희수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녀의 예상과는 풍경이 많이 달라서였다.

조금 많이 휑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장원 내부를 오가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일하는 사람을 좀 들였어. 정확하게는 형님을 찾아왔다고 해야 하나. 지금 있는 사람들은 산채에서 형님과 우리들이 구해 준 사람들이야.”

“아하. 그럼 은혜를 갚으러 다 온 거야?”

“응. 지금 있는 인원이 다가 아니고 좀 더 온다고 한다네.”

“대단하시다.”

“나도 같이 했거든?”

모든 공이 반호진에게 있다는 듯이 모용희수가 중얼거리자 모용척이 짐짓 서운한 기색을 띠며 입을 열었다.

가장 큰 활약을 한 건 반호진이 맞지만 그 역시 함께했었다.

정확히 말하면 모두가 힘을 합쳐 구해 낸 것이었기에 모용척은 조금 섭섭했다.

“오빠가 주도해서 한 일은 아니잖아. 반 공자님을 따라다니다가 운 좋게 걸린 거지.”

“하!”

모용척이 거칠게 콧김을 내뿜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불만은 있지만 부정은 할 수 없었기에 모용척은 입술만 비틀었다.

“응?”

누가 봐도 불만이 가득 담긴 걸음걸이로 앞장서서 걸어가는 모용척을 바라보던 모용희수가 고개를 돌렸다.

반대쪽에서 그녀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이가 있어서였다.

“우와…….”

“누구지?”

“엄청난 미인인데?”

시선이 끌려간 건 모용희수만이 아닌지 뒤따르던 호위대원들이 본능적으로 중얼거렸다.

그 정도로 연무장에 나타난 여인의 미색은 압도적이었다.

거의 매일같이 모용희수를 보는 게 호위대였는데 말이다.

‘하오문의 소문주.’

웬만해서는 면사를 풀지 않기에 얼굴을 아는 이가 극히 드물다는 게 하오문의 소문주였다.

아니, 맨 얼굴은커녕 만나기조차 힘든 게 난희주였다.

하지만 모용희수는 미녀를 보는 순간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모용척에게 대략적으로나마 들어서였다.

스윽.

연무장으로 걸어 나오던 난희주 역시 모용희수를 쳐다봤다.

자신에게 향하는 시선을 느끼고는 마주 바라봤던 것이다.

한데 허공에서 교차되는 시선에서 번갯불이 튀었다.

서로의 목적이 무엇인지 둘 다 너무나 잘 알아서였다.

저벅저벅.

하지만 마주친 시선은 얼마 안 가서 떨어졌다.

정식으로 인사하는 자리가 아니었고, 서로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이내 두 여인은 고개를 돌려 제 갈 길을 갔다.

‘예쁘긴 정말 예쁘네.’

고개를 돌린 모용희수가 자기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딱 보는 순간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남자라면 환장하고도 남을 미녀가 난희주라는 걸 말이다.

단순히 예쁜 걸 넘어 난희주에게는 남자의 가슴을 벌렁거리게 만들 고혹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꿀꺽! 꿀꺽! 꿀꺽!

그 사실을 증명하듯 주변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굳이 집중하지 않아도 송곳처럼 파고드는 소리에 모용희수의 얼굴이 굳어졌다.

“마중을 나가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가주님.”

“허허허. 아닙니다. 한창 정신없을 때이지 않습니까. 저도 일가의 수장이다 보니 이해합니다. 그래서 척이가 나온 것이기도 하고요.”

“사실 크게 바쁜 건 없습니다만.”

직접 응접실의 문을 열어서 모용궁과 모용희수를 반겨 준 반호진이 함께 온 모용척을 슬쩍 쳐다봤다.

정문으로 나갈 수 있음에도 그걸 만류한 게 모용척이라서였다.

이래저래 바쁜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시간을 아예 못 낼 정도는 또 아니었다.

“그렇지만 신경 쓸 게 상당히 많지요. 수장이라는 자리가 그런 자리이니까요. 아, 이제는 무상문주님이라고 불러 드려야 하나요?”

“편하게 하시면 됩니다. 문주라고 해도 문도 하나 없는 문주이니까요. 사실 식구가 많아진 것 빼고는 딱히 달라진 점을 느낄 수가 없어서요. 그보다 가주님이야말로 바쁘시지 않습니까? 위령제야 끝났다고 해도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으실 텐데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래도 자식보다 중요하지는 않으니까요. 저 하나 없어도 가문이 잘 돌아가기도 하고요. 체제를 잘 구축해 놓으면 이런 점이 편하기는 합니다. 별다른 일이 없기도 하고요.”

“부럽습니다.”

반호진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로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걸 모용궁은 가지고 있었기에 처음으로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금방 키우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다른 분도 아니고 무상문주님이시지 않습니까. 거기다 문도나 제자는 아직 없지만 대신 일당백, 아니 일당천이라 할 수 있는 문주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아마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무상문주님이 개파하신 것을요.”

“개파식은 따로 안 하시나요?”

모용궁과의 인사가 어느 정도 정리된 듯하자 모용희수가 슬그머니 대화에 끼어들었다.

때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그녀의 질문은 어색하지 않았다.

“당장은 계획이 없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아직은 문도나 제자를 받아들일 계획이 없어서요. 전쟁도 막 끝났기에 우선은 휴식과 제 무공을 돌아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러시구나. 그럼 하오문도 초대하신 건 아니네요?”

“예. 소식을 알리긴 했지만요.”

“하오문의 소문주와 오빠, 동생 하는 사이라고 듣긴 했어요.”

모용희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그러나 속으로 질투심이 살짝 올라왔다.

반호진을 오빠라고 부를 수 있는 이가 난희주 한 명뿐이라는 사실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렸던 것이다.

“몇 번 만나 보니까 착하기도 하고 말도 잘 통해서 편하게 지내기로 했습니다.”

“예쁘기도 엄청 예쁘지. 좀 전에 봤겠지만. 근데 눈인사도 하지 않더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자극하는 못난 오빠를 모용희수는 살짝 노려봤다.

하지만 그 기색은 창졸간에 사라졌다.

반호진의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기에 모용희수는 눈빛으로만 경고했다.

“제대로 인사할 시간이 없었잖아. 서둘러서 걸어간 게 누군데.”

“흐음. 뭐, 좋아. 인정. 변명으로 합당해.”

“뭐래.”

모용희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화가 났다.

도와주기는커녕 자꾸 훼방을 놓고 있어서였다.

“그만해라. 여기에서까지 그럴 것이냐.”

결국 보다 못한 모용궁이 나섰다.

이러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그래도 반호진에게 보여 줘서 좋을 게 없기에 적당히 중재했다.

스윽.

그리고 분위기도 환기시킬 겸 본가에서부터 챙겨 온 물건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바로 개파식 선물이었다.

보아하니 따로 개파식을 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빈손으로 올 수는 없기에 나름 고심해서 준비한 것이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개파식 선물입니다. 개파식을 안 하실 수도 있다고 예상하긴 했으나 그래도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요. 어떻게 보면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일이지 않습니까.”

“감사히 받겠습니다.”

준비한 이의 성의도 있기에 반호진은 거절하지 않았다.

주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필요도 없었고.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아 주십시오. 엄청 대단한 건 아닌지라.”

“선물은 성의가 중요하지요. 전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허허허.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용궁이 빙그레 웃었다.

지금 당장 그가 모용희수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이런 것밖에는 없었다.

경쟁자들이 만만치 않은 만큼 그라도 무언가를 해야 했다.

오대세가에 비해 부족하다면 더욱더 노력을 하면 되었다.

‘믿는다, 희수야. 넌 할 수 있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반호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모용궁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 있었다.

구름이 서서히 벌겋게 물들어 가는 시각에 일단의 무리가 무상문 정문에 도착했다.

화려하게 꾸며진 마차 한 대와 함께 도착했는데 선두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좋네.”

무상문이라고 음각되어 있는 편액을 보며 금호연은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반호진과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려서였다.

“저희보다 하오문이 먼저 도착했다고 합니다.”

“벌써?”

“예. 반 대협, 아니. 무상문주께서 도착하신 다음 날에 방문했다고 들었습니다.”

“엄청 빠르네.”

호위대주의 말에 금호연이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도 최대한 서둘러서 왔건만 하오문보다 늦었다고 하자 믿기지가 않았다.

“다 목적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 원하는 대로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금호연은 서가장에서 마주쳤었던 난희주를 떠올렸다.

면사를 쓰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알 수 있었다.

난희주의 미모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말이다.

예전부터 미색이 대단하다고 유명하기도 했고.

‘솔직히 말하면 반 대협이 대단하신 거지. 그런 여자가 달려드는 데도 꿈쩍도 안 하는 거니.’

금호연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반호진이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

아마 그가 반호진이었다면 그는 진즉에 난희주를 품었을 게 분명했다.

‘내 짝으로도 나쁘지 않은 상대이기도 하지만, 힘들겠지.’

금호연은 입맛을 다셨다.

금가장의 소장주인 자신과 하오문의 소문주인 난희주가 맺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희박하다는 수준을 넘어 불가능에 가까웠다.

‘반대로 반 대협과 소문주라.’

난희주의 목적은 명백했다.

오빠, 동생 사이라고 하나 난희주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반호진 또한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난희주가 포기하지 않는 건 상대가 반호진이어서였다.

‘가능할까? 신분이 달라도 너무 다른데.’

난희주의 욕심은 알겠으나 신분의 벽은 무시할 수 없었다.

소림사의 속가제자와 하오문의 소문주가 맺어진다는 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였다.

“오셨습니까.”

“반 대협!”

“들어오시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정문을 넘어 응접실에 도착한 금호연이 얼굴 가득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가식적인 미소가 아니라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웃음이었다.

얼마 전 서가장에서 봤었지만 그럼에도 금호연은 반호진이 반가웠다.

“장소가 달라져서 그런가. 느낌이 확 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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