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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239화 (239/468)

제 78장. 무상문(無上門). -03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부친이 이맛살을 잔뜩 찡그리자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형들이 그러는 게 정상이었다.

큰 마을도 아니고 한창때의 나이이니 이곳에 있는 게 갇혀 있는 것처럼 느껴질 터였다.

“일단 들어가자꾸나. 내 금방 차를 내오마.”

“물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어머님!”

부엌으로 가는 모친의 모습에 선우방이 잽싸게 입을 열었다.

괜히 무리해서 준비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동시에 사마의성이 은근슬쩍 모친에게 따라붙었다.

혼자서 일행들이 마실 걸 챙기는 건 벅찰 것 같았기에 손을 보태려는 것이었다.

“아들의 친구들이라고 하나 손님들이신데 어찌 맹물만 줄 수 있겠니. 고급은 아니지만 정성 가득한 차를 줄 테니까 다들 기다리고 있으렴.”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말을 편하게 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어려워하는 모친의 모습에 선우방이 일부러 우렁차게 대답했다.

자신이 약간 과장되고 넉살 좋게 대해야 모친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말할 것 같아서였다.

그런 노력을 안 모양인지 모친의 표정이 조금은 편안해졌다.

“많이 좁지?”

“괜찮습니다, 아버지. 같이 사는 식구들을 생각하면 이 정도 크기가 정상이지요.”

“너는 괜찮은데 다른 분들께 죄송해서 그렇지.”

방으로 안내한 부친이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오래간만에 만난 막내아들을 못 알아본 것도 미안한데 좁은 방구석에 구겨 앉게 만들었기에 부친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저희는 정말 괜찮습니다!”

“오히려 사람 냄새 나고 좋은걸요. 이곳에서 형님이 태어나신 거잖아요.”

“그랬나?”

서조운이야 늘 이랬지만 오늘따라 싹싹한 모용척을 바라보며 반호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기억하기로 이곳에서 태어난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여기에서 태어났지. 그때는 진짜 조막만 했는데. 그런 아이가 무림을 호령한다니.”

“호령하는 수준이 아닙니다, 아버님. 검신이라 불리고 있어요. 소림검신이 형님의 새 별호입니다.”

“허어. 검신이라니.”

서조운의 말에 부친이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로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 별호여서였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검신이라는 별호가 어쩌다 보니 얻을 수 있는 것 같지는 않다만.”

“실력을 보이면 되더라고요.”

“허허허.”

부친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모친은 반대로 환하게 웃었다.

아들이 잘되어서 나쁠 건 없어서였다.

더욱이 절이기는 하나 무림의 세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림사로 데려간다고 했을 때 그녀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잘 자리 잡은 듯하자 마음이 조금은 놓였다.

“검신이라 불린다지만 그래도 조심해야 한다. 위험한 곳은 피하고. 전쟁터도 이제는 그만 가고. 세 번 갔으면 이제 충분하지 않니.”

“저도 전쟁 싫습니다. 유유자적하게 조용히 사는 게 제 목표입니다, 어머니.”

“호호호. 좋구나. 근데 나는 어머니보다는 엄마라는 말이 듣기 좋은 거 같아. 너에게서는 유독 듣지 못한 말이니까.”

“제 나이에 엄마라고 하면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뭐 어때서? 내 눈에는 여전히 아이같고만.”

막내아들을 못 알아본 남편과 달리 그녀는 보는 순간 알았다.

반호진이 자신의 아들임을 말이다.

그래서 은근슬쩍 강요했다.

“원하시면 해 드려야지. 그게 효도야.”

“맞아요. 효도가 별거 아닙니다.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면 그게 바로 효도죠.”

“암. 그렇고말고.”

웬일인지 죽이 척척 맞는 선우방과 서조운의 모습에 반호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둘은 반호진의 반응보다는 모친의 반응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듯이 그녀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어머.”

“안 그렇습니까? 어머니?”

“저라도 엄마라고 불러 드릴까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서조운의 모습에 모친이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늘 무뚝뚝한 남편과 아들들만 보다가 이렇게 애교 넘치는 서조운을 보자 그녀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거이거, 형님께서 호칭을 얼른 바꾸셔야겠는데요.”

“정 원하신다면야.”

서조운의 말에 반호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 정도로 좋아하시는데 고집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그리 힘든 것도 아니었고.

“그럼 지금 해 보렴.”

“이게 뭐 어렵다고요. 엄마.”

“한 번 더.”

“엄마.”

“호호호!”

모친의 미소가 짙어졌다.

편지야 자주 주고받았지만 이렇게 직접 마주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기에 모친은 흐뭇하게 웃었다.

“호칭이 무에 중요하다고.”

“얼마나 중요한데요. 무감정한 당신은 모르겠지요.”

“무감정하다니!”

“아, 화는 있네요.”

아내의 말에 부친이 민망한 듯 시선을 피했다.

부정하고 싶었으나 만약 그럴 경우 일이 더 커질 것 같았기에 부친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건 선물입니다. 겨울이기도 하고 따로 보약을 안 드시는 것 같아서 직접 지어 왔어요.”

“뭘 이런 걸 사 와. 그냥 와도 되는 것을.”

“건강은 젊었을 때 챙겨야 한다고 들어서요. 아직 두 분 다 정정하시지만 미리 챙겨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한두 푼이 아닌 것 같은데.”

모친이 부담스러운 듯이 말했다.

포장만 봐도 상당한 가격임을 짐작할 수 있어서였다.

“저 돈 꽤 많아요. 이래저래 번 게 제법 있거든요. 그리고 엄청나게 비싼 보약은 아니에요. 영약이나 영단은 구하고 싶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지금까지 제대로 챙겨 드리지 못한 걸 이번에 조금씩 챙겨 드리는 거라고 생각해 주세요.”

“흠흠! 애써 준비해 왔는데 그냥 받자고. 이거 버릴 거야? 우리 체질 다 감안해서 지어 온 것일 텐데.”

미안한 표정을 짓는 모친과 달리 부친은 은근슬쩍 바람을 잡았다.

굳이 주는 선물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였다.

더구나 오랜만에 본 막내아들이 준 것이니만큼 더더욱 거절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맞습니다. 두 분께서 안 받으시면 버릴 수밖에 없어요.”

“으이그. 사기 전에 좀 물어보지.”

“그럼 사 오지 말라고 하실 거잖아요.”

모친이 곱게 눈을 흘겼다.

차마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어서였다.

“잘 먹으마.”

“예.”

“그보다 우리에게 할 말이 있는 거 같은데? 표정을 보아 하니.”

“맞습니다. 이번에 숭산에서 내려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저와 함께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두 형들도 같이요. 여기 땅은 처분하고요.”

이어지는 반호진의 말에 부부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상상도 못 한 말이라는 듯이 둘 다 눈을 휘둥그레 떴던 것이다.

그러더니 이내 서로를 바라봤다.

“으음!”

“당혹스럽구나. 갑자기 떠나자고 하다니.”

“갑작스러우실 거라는 거 저도 이해합니다. 그러니 충분히 고민하시고 결정해 주세요.”

똑같이 당황스러워하는 부모님을 차례대로 바라보며 반호진이 말했다.

그런데 의외로 고민은 길지 않았다.

“미안하지만 그건 힘들겠다. 우리는 이곳을 떠날 수 없어. 둘째 녀석이야 나가도 상관없다지만 우리와 장남은 달라. 나는 물론이고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그 윗대의 선조들께서 살아온 곳이 이곳이다. 물려받은 땅은 절대 처분할 수 없어.”

“역시 그런가요.”

“미안하구나.”

단호한 어조와 달리 부친은 얼굴 가득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의미로 반호진이 이런 말을 했는지 알기에 그로서는 더욱더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에요. 저도 어느 정도는 예상했는걸요. 아버지의 선택을 존중할게요.”

“그래 주면 고맙고.”

“대신 제가 자주 찾아오겠습니다. 이제는 여유가 좀 생겨서요.”

남편과 마찬가지로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던 모친이 반색했다.

그녀에게는 너무나 좋은 소식이어서였다.

안 그래도 보고 싶었지만 자주 볼 수 없었던 자식이 막내였는데 앞으로는 자주 찾아오겠다고 하자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예. 터를 잡은 곳이 이곳에서 가깝거든요.”

“어디인데?”

“강서성 남창이에요.”

“숭산보다 정말 가깝네?”

모친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워서였다.

“네. 엄마가 원하면 제가 모시러 올게요.”

“정말?”

“네. 제가 모시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 사람을 보낼게요.”

“그런 경우에는 제가 모시러 오겠습니다, 엄마.”

조용히 듣고 있던 서조운이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아직 약속한 십팔 년이 남아 있는 만큼 서조운은 늘 반호진과 함께할 예정이었다.

그러니 반호진이 모시러 오지 못한다면 그가 오면 되었다.

“말만 들어도 기분 좋구나.”

“저희랑 강서성의 명승지를 돌아다니는 것도 좋고요.”

“좋다.”

모친이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서 꽉 붙잡았다.

상상만 해도 기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반호진은 가슴이 울컥했다.

중원을 수호한다는 목적으로 새삼 부모님께 소홀했음을 깨달았기에 반호진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앞으로는 제대로 효도하면서 살겠다고 말이다.

그게 어려운 게 아님을 이번에 알게 되었기에 반호진은 하나하나 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연락드릴게요.”

“바쁜 때만 아니라면 난 언제라도 좋단다. 밥이야 다 큰 어른 셋이 있으니 알아서 먹겠지.”

“커험! 큼!”

만약 반대한다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듯이 모친이 서슬 퍼런 눈빛을 뿌리자 부친이 자연스럽게 시선을 피했다.

자신은 절대 반대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 모습에 모친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건강 조심하고. 사람은 건강이 제일 중요해. 큰일도 다 건강해야 할 수 있는 법이야. 우리 막내아들이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래도 또 혹시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근데 좋은 소식은 없니? 혼담이 오고 가는 사람이 있다거나. 무림에서 유명해지면 혼담도 많이 들어오지 않니? 방장께서 우리 대신해서 많이 받으셨을 것 같은데.”

훅 들어오는 모친의 질문에 일행들이 입술을 달싹거렸다.

할 말이 많았으나 반호진이 미리 시선을 보냈기에 다행히 입을 여는 이는 없었다.

“있긴 있는데 아직 깊게 대화하는 곳은 없어요. 이번에 찾아오시면 그때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호호호. 있긴 있다는 말이지? 역시 내 아들이야.”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모친은 기뻐했다.

적어도 장가에 대해서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아서였다.

“우선 두 형부터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이 사람하고 얘기를 끝냈어. 꼭 장남부터 갈 필요는 없다고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 막내아들은 순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괜찮은 처자 있으면 바로 붙잡으렴.”

“어…….”

처음으로 반호진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두 형들부터 가고 그다음이 자신의 차례라고 생각했는데 순서가 상관없다고 하자 반호진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턱하니 막혔다.

“나는 호진이의 안목을 믿어.”

“아, 예.”

부담을 팍팍 주는 모친의 모습에 반호진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

갓 완공된 티가 풀풀 나는 아담한 장원을 둘러보며 서조운이 미간을 좁혔다.

상상했던 것보다 규모가 훨씬 작아서였다.

일행들이 머물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쳤지만 반호진의 무명을 감안하면 턱없이 작은 수준이었다.

“형님. 너무 작은 거 아닌가요?”

“대궐처럼 크면 뭐 해? 텅 빈 느낌만 들지. 청소하기도 번거롭고. 딱 이 정도가 적당해.”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조운을 향해 반호진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무슨 마음인지는 알겠으나 그가 생각하기에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래도 너무 작은 것 같아요.”

“청소는 네가 하게?”

“다 같이 하면 되죠. 아니면 사람을 쓰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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