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236화 (236/468)

제 77장. 새로운 시대로. -04

‘생각을 달리해야겠는데.’

‘이대로 있을 수는 없어.’

서로 편하게 대하는 모습에 지켜보던 이들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했다.

혹시 모르니 친해져 볼까 하는 생각해서 무조건 가까워져야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금호연과 안면을 트고 반호진과도 교분을 나누고 싶었으나 무릇 모든 단계에는 중간과정이라는 게 있었다.

최종적인 목적지는 반호진이었으나 그걸 단번에 이룰 수가 없기에 많은 이들은 징검다리로 서가장을 생각했다.

스슥!

다만 문제는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입을 열지는 않아도 눈빛만으로 다른 이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기에 하객들의 얼굴에 초조함이 맺혔다.

경쟁자들이 많았기에 자연스레 머리가 복잡해졌던 것이다.

단순히 만나서 인사를 나누는 건 얼굴에 철판을 깔면 가능하지만 중요한 건 친분을 맺는 것이었다.

‘기발하면서도 확실한 방법 어디 없나.’

앞으로의 시대는 반호진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반호진에 많이 가려 있기는 하나 이 자리에 있는 염룡과 검룡, 비룡, 은룡도 향후 천하십대고수가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기에 향후를 생각하면 반드시 친해져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관계가 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어.’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른다.’

‘반드시 혼례식이 끝나기 전에 결판을 봐야 해!’

하객들의 눈빛이 뜨겁게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경쟁자가 많았으나 애초에 인생은 경쟁의 연속이었다.

포기하는 순간 도태되기에 하객들은 더 이상 주변을 둘러보지 않고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다.

이 자리에서 얻을 것만 말이다.

“어후. 뜨겁다, 뜨거워.”

“너한테 꽂히는 시선도 많아.”

“알지. 그러니까 이렇게 웃고 있잖아.”

“근데 가주님까지 오실 줄은 몰랐어.”

“와야지. 전우 아니야, 전우. 나랑 의형제나 마찬가지인데. 그리고 동료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선우방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듯한 미소였는데 재미있는 건 듣고 있던 모용척도 같은 표정이라는 점이었다.

“동료?”

“응. 일차적인 목표는 십대세가야. 본가나 서가장은.”

“아하.”

이어지는 선우방의 말에 반호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떤 의미의 동료인지 알 수 있어서였다.

“안타깝게도 본가는 이미 십대세가에 속해 있지요. 그러니 부지런히 따라오셔야 할 겁니다. 꾸물거리면 본가가 먼저 오대세가에 들어가 있을 테니까요.”

선우방을 넘어 서조운을 쳐다보며 모용척이 히죽 웃었다.

미적거리다가는 격차가 더더욱 벌어질 거라는 듯이 말이다.

그 광역도발에 서조운이 발끈했다.

“금방 따라잡을 거거든요! 나중에 추월당하고 울지나 마요!”

“허어. 그럴 일은 없다. 나도, 본가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

“원래 바닥에 가까울수록 성장세는 급격할 수밖에 없는 법이죠. 두고 봐요. 오대세가에는 본가가 먼저 들어갈 테니까!”

서조운이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호언장담했다.

연회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다 들을 정도로 말이다.

오죽했으면 그 말에 서이경이 놀라서 표정관리를 못 했을 정도였다.

“너희 둘, 선우세가를 잊은 건 아니지? 본가도 있다.”

“오대세가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전략적 동맹을 맺는 겁니다. 일단 일차적 목표는 십대세가에 선우세가와 서가장이 들어오는 것이고, 이차적 목표는 오대세가입니다. 우선 하나씩 제쳐 보자고요.”

모용척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모용세가 혼자서는 현재의 오대세가에 균열을 만들기 힘들었다.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겠으나 어려운 건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모용세가로서도 선우세가와 서가장이 필요했다.

“시기적으로도 괜찮지.”

“그러니까요. 어쩌면 저희 세대에서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어요.”

“맞아.”

연이은 전쟁으로 인해 백도무림이 입은 피해는 컸다.

물론 선우세가, 모용세가가 입은 피해도 크긴 했으나 오대세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때문에 선우방은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실례하겠습니다.”

“큰형!”

그때 잔뜩 긴장한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서정운과 신부였다.

눈에 확 띄는 미모는 아닐지라도 단아하고 고운 인상의 신부는 묘하게 서정운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외모는 전혀 닮지 않았는데 신기하게 분위기가 닮은 듯한 느낌에 반호진은 보는 순간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인사를 드려서 죄송합니다. 서가장의 서정운이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신부와 나란히 서 있던 서정운이 누가 봐도 긴장한 얼굴로 정중히 인사를 해 왔다.

한 명 한 명이 무림에서 난다 긴다 하는 이들이다 보니 잔뜩 긴장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좋은 날임에도 불구하고 신랑과 신부의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정말 축하드려요!”

“두 분 모두 꽃길만 걸으셨으면 좋겠어요!”

신랑신부가 긴장한 걸 알았기에 반호진을 비롯해서 일행들은 더더욱 친근하게 대했다.

환하게 웃으면서 두 사람을 축하해 주었던 것이다.

특히 반호진이 무게 잡는 것 없이 편하게 대해 주자 신부가 크게 놀랐다.

상상했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였다.

“이거이거, 역시 무림은 명성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신부님께서 형님만 보시네요.”

“사회생활을 잘하시는 거지. 이 자리에서 누가 가장 중요한 인물인지 알아본 거야.”

“나도 어디 가서 꿀리는 사람이 아닌데.”

모용척이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구박하던 정이륭은 물론이고 일행들 모두가 웃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금가장의 금호연이라고 합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결혼 축하드립니다.”

“하오문의 난희주라고 해요. 결혼 축하드리고, 행복하세요. 참고로 저도 축의금은 두둑이 냈답니다.”

인사에도 순서가 있었고 신랑신부에게 있어서는 반호진 일행이 좀 더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금호연과 난희주도 잘 알고 있었기에 잠자코 있다가 차례가 되자 신랑신부와 인사를 나눴다.

“방문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좋은 날인데 당연히 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리를 깊게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서정운의 모습에 금호연이 손사래를 쳤다.

어떤 마음인지는 알았으나 그렇다고 이 정도로 깍듯하게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이제는 중원상계의 거물이 되었으나 그럼에도 반호진의 옆에서는 빛을 바랬다.

스스로도 반호진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도 했고.

“정말 감사드려요, 소장주님. 그리고 소문주님.”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원할게요.”

서정운이 금호연을 상대하는 사이 신부는 난희주와 대화했다.

면사를 쓰고 있음에도 범상치 않은 미모를 느낄 수 있었기에 신부는 살짝 기가 죽은 표정을 지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그녀였으나 아무리 치장을 해도 근본적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라는 건 존재하는 법이었다.

그걸 처절하게 느낄 수 있었기에 신부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큰형. 선우세가주님과 모용세가주님은 내가 소개해 줄게.”

“그래 줄래?”

“응. 따라와.”

서조운이 앞장서서 걸어갔다.

아무래도 일면식이 있다고 하나 서정운의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기에 서조운은 다리를 놓아주기 위해 두 사람을 이끌고 선우청과 모용궁에게 향했다.

“다른 분들은 좋은 소식 없으신지요?”

자연스럽게 반호진이 앉아 있는 원탁에 자리를 잡은 금호연이 은근슬쩍 물었다.

서정운의 결혼이 갑작스러워서 그렇지 예전부터 많은 혼담이 오고 갔던 게 반호진 일행이었다.

그걸 잘 알고 있었으니 금호연은 짐짓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일행들을 찬찬히 둘러봤다.

“저는 없습니다.”

“반 대협께서야 지난번에도 아직 생각이 없으셨다고 하셨으니.”

“저는 오히려 소장주님의 소식이 궁금한데요.”

“예?”

“저희보다 더 많이 오고 가지 않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반호진의 역공에 금호연은 말문이 막혔다.

아니라고 할 수도 없기에 금호연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하. 설마 반 대협만큼만 할까요. 조금 있습니다, 조금.”

“어떻게, 다음은 소장주님입니까?”

“에이. 그렇게 급하게 추진할 계획은 없습니다. 아직 젊기도 하고요. 저보다는 선우 공자님이 먼저 가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갑자기 자신을 거론하는 말에 선우방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부정하지는 않았다.

일행들에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진척이 상당히 나가서였다.

“호오?”

그 기색을 읽은 모양인지 모용척은 물론이고 정이륭과 사마의성이 눈을 빛냈다.

곧바로 반박하지 않는다는 긍정을 뜻했기에 세 사람은 놀리듯이 눈썹을 씰룩거렸다.

“가야겠다고 생각하면 가는 거지. 방이는 나와 상황이 많이 다르니까. 가솔들을 생각하더라도 후대를 준비하는 게 맞지.”

“그렇게 따지면 척 형도 마찬가지고요.”

“왜 난 물고 늘어져?”

반호진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사마의성을 모용척이 짐짓 노려봤다.

하지만 고작 째려보는 것에 기가 죽을 사마의성이 아니었다.

“방이 형과 상황이 비슷하니까요.”

“그렇게 따지면 너부터 가야지. 나나 방이 형이나 소가주지만 넌 가주잖아? 후대를 대비해야 하는 건 네가 가장 급하지.”

“전 아직 어리니까요.”

사마의성이 당당하게 양손으로 허리를 짚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급한 것도 없어서였다.

“호호호.”

그 광경에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난희주가 습관적으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순간적으로 면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반호진을 힐끔힐끔 훔쳐봤다.

‘검신이라니.’

신룡이라 불린 게 불과 작년이었다.

한데 지금은 검성을 넘어 검신이라 불렸다.

난희주는 그게 새삼 신기했다.

검신이라 불리는 무인과 자신이 스스럼없이 지낸다는 사실이 말이다.

‘사부님께서도 믿지 못하셨지.’

반호진이 철혈마황을 잡았을 때만 하더라도 다들 은연중에 천운이 따른 결과라고 생각했다.

실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무공의 상성 등 어느 정도 운이 따랐기에 나온 결과라고 여겼다.

그러나 구천문주를 잡고, 포달랍궁주와 대등한 싸움을 보이고, 북해빙궁주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자 모두의 생각은 달라졌다.

이 정도 전공은 단순히 무공의 상성이나 운으로 낼 수 있는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오빠의 시대야.’

천하십대고수는 아직 건재했다.

하지만 난희주는 물론이고 하오문주 역시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반호진의 시대라는 걸 말이다.

그걸 이제는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무조건 옆에 붙어 있어야 해.’

난희주는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더 가까워지고 싶었다.

경쟁자가 많았지만 그럼에도 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

똑똑똑.

서가장을 다녀온 반호진은 곧바로 방장실을 찾았다.

그간 했던 고민에 대한 답이 나와서였다.

“사부님.”

“들어오너라.”

기척만으로 반호진임을 알아본 것인지 방장실 안에서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음성에 반호진은 옅게 웃으며 방장실의 문을 열었다.

“다녀왔습니다.”

“할 말이 있는 모양이구나. 도착하자마자 나를 찾은 걸 보면.”

“예.”

“우선 앉거라. 차 한 잔 하면서 대화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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