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6장. 재대결, 그리고 결과는. -03
복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기등등하게 북해빙궁주에게 달려들었던 방만춘이 피를 토하며 튕겨 날아갔다.
쇄도하던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튕겨졌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버러지 같은 새끼가.”
주제도 모르고 달려든 방만춘을 노려보며 북해빙궁주가 손을 흔들었다.
마치 더러운 걸 만졌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반호진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비록 잠깐뿐일지라도 북해빙궁주를 붙잡은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휘이이익!
그리고 반호진은 혼자가 아니었다.
얼음 감옥이 흩어지는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의 인영이 맹렬한 기세로 북해빙궁주에게 쇄도했다.
웅웅웅웅!
그와 동시에 거대한 권강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허공을 갈랐다.
가로막는 건 모조리 밀어 버리겠다는 듯이 북해빙궁주에게 뻗어 갔다.
“문주님!”
“지금부터는 함께 싸우시지요.”
허공을 가르는 명왕권을 보며 반호진이 반색했다.
혹시나 도움을 받지는 않을까 했는데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상일기가 참전하자 반호진도 얼마 남지 않은 공력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기회는 여전히 한 번뿐이었다.
오늘 북해빙궁주를 놓치면 다음은 없었기에 반호진은 두 자루의 검을 움켜쥐었다.
“나도 있다.”
“빈도도 함께하겠소이다.”
그런 반호진의 좌우로 두 사람이 더 나타났다.
한 명은 직접 싸우기도 했던 일우였고, 다른 한 명은 곤륜파의 장문인인 운왕이었다.
둘 다 육존을 상대하고 바로 왔는지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반호진과 마찬가지로 온몸이 피투성이였는데 그럼에도 두 눈에는 아직 힘이 남아 있었다.
“이놈들이!”
상일기의 명왕권으로 인해 완벽하게 붙잡힌 북해빙궁주가 다급한 얼굴로 노성을 터트렸다.
그러면서 잽싸게 주변을 훑었다.
뒤늦게 전황을 살펴본 것이었다.
동시에 불러들일 이들을 찾았는데 안타깝게도 멀쩡히 살아 있는 육존은 없었다.
어느새 다섯이 죽고 한 명만이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게다가 상황은 포달랍궁의 칠성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츠츠츠츠! 우우웅!
그사이 일우의 자하강기와 운왕의 태허도룡검(太虛屠龍劍)이 동시에 펼쳐지며 북해빙궁주의 양쪽을 노렸다.
상일기가 정면을 맡아 주는 동안 둘은 각각 오른쪽과 왼쪽을 공략했던 것이다.
퍼퍼퍼펑!
그러나 화산파와 곤륜파의 장문인이 협공했음에도 북해빙궁주는 건재했다.
안색이 해쓱하기는 하나 세 사람의 합공을 어렵지 않게 막아 냈던 것이다.
아니, 막아 내는 걸 넘어 얼음 폭풍으로 세 사람을 한꺼번에 밀어 버렸다.
“큭!”
“흐읍!”
“헉!”
전신을 휩쓸고 지나가는 얼음 폭풍에 세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셋 다 혈전을 치르고 온 뒤라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기에 창백했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셋은 끈질기게 북해빙궁주를 물고 늘어졌다.
반호진과 마찬가지로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껴서였다.
“이 버러지 새끼들이!”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면서도 집요하게 매달리는 세 사람으로 인해 북해빙궁주의 부동심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싸우면 싸울수록 단전의 상처가 벌어지고 있어서였다.
그렇다고 천하십대고수 중 셋과 싸우는데 공력을 사용하지 않을 수도 없기에 북해빙궁주로서는 진퇴양난이었다.
제대로 힘을 쓰면 세 명을 단숨에 죽이지는 못해도 빈사상태로는 만들 수 있었지만 문제는 그럴 경우 요양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진다는 점이었다.
“왜? 초조해? 단전의 상처가 더 커질까 봐?”
“큭!”
명왕과 투왕, 운왕이 시간을 벌어 주는 걸 반호진은 놓치지 않았다.
바닥 나 있던 공력을 모으고 모아서 이기어검을 날렸고, 두 자루의 검은 북해빙궁주의 등과 손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조금만 늦었어도 등이 갈라지고 손이 꿰뚫렸을 것이기에 북해빙궁주는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러나 진짜는 따로 있었다.
버언쩍!
반호진이 반쪽짜리라고 평했지만 그럼에도 북해빙궁주에게 섬뜩함을 느끼게 만들었던 기형검이 다시 한번 펼쳐졌다.
검신만 생성되다 만 기형검이 이번에도 역시나 단전을 노리고서 쇄도했다.
꽈아아앙!
그런데 그 순간 순백의 기운이 북해빙궁주의 전신에서 솟구치더니 그대로 그의 몸을 휘감았다.
결국 극도로 자제하던 내공을 사용한 것이었다.
덕분에 반호진의 공격은 막았지만 대신 북해빙궁주는 얼음장처럼 창백한 얼굴로 칠공에서 시커멓게 죽은 피를 흘렸다.
울컥!
동시에 반호진도 입에서 피를 토했다.
과도한 진기 사용으로 그 역시 심각한 내상을 입은 것이었다.
옷은 진즉에 넝마가 되어 있었고, 온몸이 피투성이였지만 반호진은 웃었다.
“이번에는 내가 이겼네. 크크!”
“……그게 무슨 소리지?”
“당신은 모르는 이야기다.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가 이런 곳에서…….”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 반호진을 무시하며 북해빙궁주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공격은 막아 냈으나 그로 인해서 단전의 상처는 더욱 벌어졌다.
이제는 회복불능의 상태에 도달했기에 북해빙궁주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목표는 결코 이런 허망한 끝이 아니었다.
때문에 북해빙궁주는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셋 중 가장 상태가 양호한 상일기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죽기 전 유언 정도는 남기게 해 주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북해빙궁주는 코웃음을 쳤다.
“날 죽일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그리고 나는 혼자 가지 않는다!”
모든 걸 내려놓은 얼굴이던 북해빙궁주의 표정이 악독해졌다.
비록 요 모양 요 꼴이 되기는 했으나 그는 북해의 주인이었다.
남의 손에 죽을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또한 이대로 순순히 죽어 줄 생각도 없었기에 망설이지 않고 동귀어진을 선택했다.
“피, 피하시오!”
눈빛과 말투에서 그 기색을 읽은 상일기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호신강기를 극성으로 일으켰다.
남아 있는 단전의 공력을 쥐어 짜 어떻게든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것이었다.
한데 그때 지면이 출렁거렸다.
뻐어어엉!
예고한 대로 북해빙궁주는 선천진기까지 이용해 폭사공을 펼쳤다.
최소한 여기 있는 네 명만큼은 함께 데려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시도는 실패하고 말았다.
반호진이 진각을 이용해 북해빙궁주를 멀리 밀어 버려서였다.
투둑. 투두둑.
파도처럼 출렁이는 지면은 북해빙궁주의 위치를 옮겼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흙벽을 만들어서 폭발을 완화시켰다.
거기에 호신강기까지 더해지자 셋 모두 내상을 입었을지언정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허어. 어찌 그런 묘수를 생각해 내셨습니까?”
“그냥 떠올랐습니다.”
“허허허.”
호신강기 안에 있었으나 반투명했기에 밖의 상황을 전부 다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상일기는 헛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이런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위기를 모면할 줄은 몰랐기에 실소가 계속 흘러나왔다.
“중요한 건 모두가 무사하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형님!”
“괜찮으십니까!”
폭발이 서서히 가라앉자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일행들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소리였다.
북해빙궁주가 죽은 걸 봤기에 일행들은 곧장 반호진에게 달려왔다.
물론 가장 선두에 있는 건 서조운이었다.
“사부보다 반 공자님이 먼저 눈에 보이는 모양이구나.”
“저는 사부님부터 찾았습니다. 일행들의 목소리가 커서 묻힌 겁니다, 사부님.”
“후후.”
변명과도 같은 대답에 상일기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정이륭이나 다른 일행들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막판에 힘을 보탰을 뿐 실질적으로 북해빙궁주를 쓰러뜨린 건 반호진이었다.
치명적인 부상을 입힌 것도 반호진이었고 지금처럼 그나마 멀쩡히 서 있을 수 있는 것도 다 반호진 덕이었다.
“괜찮으세요?”
“보다시피.”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요?”
정이륭이 상일기의 곁을 지키는 동안 서조운과 사마의성, 선우방, 모용척은 반호진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한눈에 봐도 몸 상태가 만신창이기에 샅샅이 살펴보는 것이었다.
특히 사마의성과 서조운이 울상을 지었다.
지금껏 수많은 격전을 치렀지만 반호진이 이렇게 부상을 당한 적이 없기에 두 사람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다 긁힌 거야, 긁힌 거.”
“입가에 핏자국이 있는데요?”
“이 정도 내상으로 북해빙궁주를 잡았으면 충분히 남는 장사지. 포달랍궁주보다 더 강하니까.”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괴물 같은 무위를 가진 게 북해빙궁주였다.
죽어도 다시는 상대하기 싫을 정도로 말이다.
“정말 대단했어요. 특히나 그 얼음성은…….”
“빙옥(氷獄)이라고 해. 북해빙궁주가 가장 자주 쓰는 기술이지.”
“형님께서 빙옥에 갇혔을 때 정말 가슴이 철렁했어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죽을 정도로 위험하기는 했지.”
“제 극양지기로도 녹일 자신이 없더라고요.”
서조운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무공에서는 차이가 나도 순수하게 상성에서는 북해빙궁의 그 어떤 무인에게도 밀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북해빙궁주의 빙옥은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녹일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월경의 고수가 괜히 초월경의 고수겠어? 못 녹이는 게 당연하지. 그 정도로 초절정의 경지와 초월경의 격차는 커.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우선 약부터 발라요!”
삼천포로 빠진 서조운과 달리 사마의성은 부랴부랴 상비품으로 챙겨 두고 있던 금창약을 꺼냈다.
대부분은 얕은 상처였으나 군데군데 깊은 상처가 있었고, 아직도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기에 사마의성은 일단 지혈용으로라도 금창약을 뿌렸다.
“아직 전투 안 끝났어.”
“거의 끝나가요. 육존도, 칠성도 다 죽였어요. 포달랍궁주도 끝나 가고요.”
“그래 보이기는 하네.”
부지런히 가루형태의 금창약을 꺼내서 상처 부위에 뿌리는 사마의성의 말에 대답하며 반호진이 고개를 돌렸다.
가장 먼저 포달랍궁주를 밀어붙이는 담현과 네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소림사의 진영을 살폈다.
법무와 사형제들의 상태를 확인했던 것이다.
다행히 무리하지 않고 전선을 유지하는 데 집중했는지 큰 피해는 없어 보였다.
“네가 북해빙궁주를 붙잡고 있던 게 컸어. 육존이 쓰러지니까 평궁도들도 순식간에 무너지더라.”
“나 혼자 쓰러뜨렸나. 다 같이 싸워서 쓰러뜨렸지.”
“가장 큰 활약을 한 건 너니까. 치명적인 일격을 먹인 것도 너고.”
“독에 당한 모양이네.”
반호진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다섯 명의 협공에 주춤주춤 물러나는 포달랍궁주를 보면서.
딱 봐도 안색이 파리한 게 독에 중독된 모습이었는데 그럼에도 포달랍궁주는 쉽게 쓰러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반전시키겠다는 듯이 악착같이 다섯 명의 맹공을 받아 내며 간간이 반격을 가했다.
“커헉!”
하지만 반전은 없었다.
칠성을 쓰러뜨린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수장들이 가세하자 가까스로 유지되던 균형은 무너졌다.
이윽고 전신에 칼이 박힌 채로 포달랍궁주가 무릎을 꿇었다.
“포달랍궁주가 죽었다!”
“북해빙궁주도 죽었다!”
처참한 몰골로 포달랍궁주가 죽자 곳곳에서 그와 북해빙궁주의 죽음을 알렸다.
결사항전하려는 북해빙궁과 포달랍궁의 기세를 꺾어 놓기 위해서였다.
더해서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무인들이 더욱 크게 소리쳤다.
“끝났네.”
“으음.”
결사항전을 할 생각까지는 없는지 그나마 남아 있던 수뇌부가 빠르게 퇴각을 지시했다.
더 싸워 봤자 몰살당할 게 뻔하기에 고민하지 않고 물러난 것이다.
그런 포달랍궁과 북해빙궁의 모습에 반호진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을 지었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음에도 사실 그는 지금의 광경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