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227화 (227/468)

제 75장. 이번에야말로. -01

“저자가 북해빙궁주인가요?”

“응.”

한눈에 봐도 이국적인 복색을 한 북해빙궁도의 모습에 서조운은 물론이고 정이륭과 모용척, 사마의성이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포달랍궁은 서장에 있지만 승복이나 가사와 거의 흡사한 형태였기에 딱히 이색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러나 북해빙궁은 달랐다.

거기다 겉모습도 중원인이나 묘강인, 대막인과도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존재감이 엄청나네요. 포달랍궁주와 비슷한 거 같아요.”

거리가 상당하지만 기감만큼은 비슷한 실력자들보다 훨씬 뛰어난 게 서조운이었다.

그렇기에 거리에 상관없이 북해빙궁주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도를 느낀 듯했다.

반호진이 보기에도 갈무리하지 않고 드러내고 있기도 했고.

“원래 비슷한 힘을 가진 이들끼리 손을 잡는 거야.”

“형님 말씀대로 죄다 일당백인 거 같아요. 포달랍궁의 혈승들이 숫자는 배 이상 많은데도 존재감은 북해빙궁이 꿀리지 않아요.”

“그러니까 삼천 명만 데리고 왔지.”

“으음!”

서조운의 안면이 굳어졌다.

사실 서조운은 내심 자신이 있었다.

포달랍궁주도 강하고 칠성들도 만만치 않은 실력자였지만 단순히 규모만 따지면 이쪽이 월등했다.

더욱이 구천문의 독으로 인해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던 수장들도 소환단으로 인해 완전히 회복되었기에 충분히 할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마주하게 되니 자신감이 흔들렸다.

“그래서 네 활약이 필요해. 알겠지만 빙공의 상극은 극양기공이야. 물론 수준이 압도적으로 차이가 나면 빙공이 극양기공을 잡아먹기도 하지만 육존과 장로들을 제외하면 네 상대가 별로 없을 거야.”

“최선을 다할게요.”

“방이에게도 말했다시피 무리하지는 말고. 힘들다 싶으면 바로 물러나. 괜히 자존심 세울 것 없다.”

“명심하겠습니다!”

이 모든 게 자신을 위한 말임을 알았기에 서조운은 히죽 웃었다.

남들은 잔소리라 생각할지 모르나 그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렇게 걱정해 주는 게 좋았다.

“그나저나 공동파 쪽은 초상집 분위기네요.”

모용척의 시선이 공동파가 자리 잡은 곳으로 향했다.

다른 진영에 비해 유독 살기가 짙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운이 없었지. 애초에 피해가 없는 전쟁은 있을 수가 없고.”

“오히려 곤륜파가 멀쩡하니 저자 입장에서는 더 열불이 날 것 같습니다.”

“그런 탓을 할 겨를이 없을걸. 복수 대상이 코앞에 있는데.”

“죽은 이들은 안 됐지만 그간 저자가 했던 짓을 생각하면 고소하네요.”

“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지.”

평소 방만춘의 행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반호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빌기는 해도 방만춘을 동정하지는 않았다.

“저도 이만 가 보겠습니다.”

“죽지 말고.”

“저도 형님께서 장가가고 손주 낳는 것까지는 보고 죽을 생각입니다. 흐흐흐!”

“지금 농담이 나오지?”

“돌아와서 인사드리겠습니다.”

포달랍궁과 북해빙궁이 진군하는 걸 본 모용척이 반호진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였다.

장난기 어린 말투와 달리 모용척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몇 번의 전쟁을 치렀지만 그렇기에 모용척은 더더욱 여유를 가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굳은 얼굴로 반호진에게 인사하고는 모용궁의 곁으로 이동했다.

차차차창! 콰콰쾅!

잠시 후 두 진영이 충돌했다.

북해빙궁, 포달랍궁 연합과 백도무림의 무인들이 격돌했던 것이다.

“크아악!”

“컥!”

충돌과 함께 곳곳에서 비명과 신음 소리가 난무했다.

하지만 반호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이 죽어 가며 초원과 평야가 피로 물들어 갔지만 반호진은 자리를 지켰다.

‘북해빙궁주.’

반호진의 시선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오직 한 명에게만 향해 있었다.

애초에 그의 목표는 단 한 명이었다.

이미 다른 이들에게 공표하기도 했고.

“죽여라!”

“밀리지 마라!”

사방에서 피와 비명 소리가 난무했으나 움직이지 않고 있는 건 반호진만이 아니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비롯해서 대문파와 명문세가의 수장들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포달랍궁의 칠성과 북해빙궁의 육존이 움직이지 않기에 다들 때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전부, 전부 다 죽일 것이야!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야!”

“따르겠습니다, 장문인!”

물론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었다.

공동산이 불타고 본산에 있던 제자들이 몰살을 당했다는 소식에 눈이 돌아간 방만춘과 장로들, 일대제자들은 제갈문곡의 지시는 새까맣게 잊고 적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정확하게는 공동산을 공격한 북해빙궁을 향해서 말이다.

“공동파의 자리를 부탁드립니다, 연정 사태!”

그런데 그걸 예상했다는 듯이 제갈문곡이 크게 소리쳤다.

이윽고 공동파의 이탈로 훤히 드러난 공간을 아미파의 여승들이 순식간에 메웠다.

그러나 표정들은 썩 좋지 않았다.

분명 전술 회의를 했고, 알아들었다고 대답했음에도 방만춘이 자기 멋대로 뛰쳐나갔기에 연정 사태는 물론이고 비구니들은 매서운 눈으로 공동파의 제자들을 노려봤다.

“끄윽!”

“켁!”

제멋대로 행동한 대가일까.

살기등등하게 달려들었던 공동파의 제자들이 일제히 입에서 피분수를 내뿜었다.

북해빙궁도들이 펼치는 빙공에 공동파의 일대제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으윽! 모, 몸이……!”

“사술, 사술이다!”

분노에 잠식되어 달려들었던 공동파의 제자들이 기겁했다.

난생처음 겪어 보는 빙공에 당황한 것이었다.

몸이 닿기도 전에 지독한 한기가 피부 속으로 파고들자 몸을 뜻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냉기로 인해 반사신경은 물론이고 감각이 둔해졌고, 그로 인해 공동파의 제자들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으아아아!”

그리고 그건 방만춘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일반 북해빙궁도의 빙공은 어렵지 않게 버텨 낼 수 있었으나 장로들은 달랐다.

그의 심후한 공력도 단숨에 얼려 버릴 정도로 냉기가 끔찍했다.

“흐흐!”

고통에 신음하는 방만춘의 모습에 장로로 보이는 백발의 노인이 비릿하게 웃었다.

방만춘이 괴로워하면 괴로워할수록 그에게는 즐거움이어서였다.

“이대로, 이대로 내가 죽을 줄 아느냐! 네놈들을 모조리 찢어발겨……! 컥!”

“장문인!”

방만춘의 말이 도중에 끊어지자 근처에 있던 공동파의 장로 한 명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그 역시 온몸에 서리가 내린 듯 얼음 알갱이가 잔뜩 달라붙어 있었으나 그럼에도 방만춘을 향해 뛰어왔다.

모자라고 부족한 이지만 그래도 공동파의 하나뿐인 장문인이었다.

그렇기에 주변에서 악전고투하던 장로들이 황급히 방만춘에게 모여들었다.

“다 같이 죽는 것도 나쁘지 않지.”

다만 문제는 공동파의 장로들이 움직인다는 건 싸우고 있던 북해빙궁의 무인들도 함께 이동한다는 뜻이었다.

협공에 익숙해지긴 했으나 따로 합격진이 있는 게 아닌 만큼 안타깝게도 방만춘의 상황은 썩 좋아지지 않았다.

푸스스스……!

한겨울도 아니건만 대지에 서리가 내렸다.

그뿐만 아니라 미세한 얼음 알갱이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초겨울 날씨에 빙공이 더해지자 추위가 더 심해진 것이었다.

그로 인해 북해빙궁도와 싸우는 이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으으!”

“제기랄!”

웬만한 추위에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게 무인이었다.

또한 일류지경 정도쯤 되면 고뿔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북해빙궁의 무인들이 내뿜는 한기는 달랐다.

빙공을 펼치면 자연스럽게 한기가 흘러나왔는데 그게 무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냉기만 아니었어도……!”

아무리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한들 날씨로 인해 감각이 둔해지는 경우는 없었다.

한데 그렇기에 무인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었기에 대응이 늦었고, 그 결과는 죽음으로 이어졌다.

북해빙궁의 빙공이 위험하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으나 듣는 것과 직접 겪는 것의 차이는 컸다.

“약해 빠졌네.”

“이런 녀석들한테 당한 거야? 구천문과 포달랍궁은?”

단순히 숫자만 비교하자면 북해빙궁에 비해 백도무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진정한 고수 앞에서는 숫자가 의미 없다는 말처럼 공동파와 점창파, 청성파의 무인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못한 채 너무나 허무하게 말이다.

그 광경에 북해빙궁도들이 조소를 머금었다.

“어이어이. 모두가 다 그런 건 아니라고.”

화르르륵!

그때 비아냥거리던 북해빙궁도 한 명의 전신이 불길에 휩싸였다.

서조운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불길이 온몸을 휘감았어도 북해빙궁도나 옆에 있던 동료는 놀라지 않았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딱히 큰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흥! 이까짓 불꽃쯤이야.”

부지불식간에 당하기는 했으나 북해빙궁의 빙공은 천하제일이었다.

또한 상극이라고 해서 꼭 음한계열의 무공이 극양기공에 약한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당사자들의 성취였기에 북해빙궁도는 이 정도 불꽃쯤은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코웃음 쳤다.

“이까짓 불꽃이라니. 중원에서 가장 뛰어난 열양공 중 하나인 축융신공의 극양지기인데.”

“끄아아악!”

북해빙궁도의 생각이 틀린 건 아니었다.

분명 극에 이른 빙공은 극양지기도 얼려 버릴 수 있었다.

다만 서조운의 축융신공에 당한 북해빙궁도가 그 정도 수준에 오르지 못했을 뿐이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사방에 가득한 게 비명 소리지만 원래 아는 이의 목소리가 더욱 잘 들리는 법이었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있던 북해빙궁도들이 반응하며 고개를 돌렸다.

털썩!

하나 그들이 볼 수 있는 건 숯처럼 새카맣게 탄 동료의 시신뿐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불타 버린 동료의 모습에 북해빙궁도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

스스슥!

그리고 그 틈을 타 서조운이 날뛰기 시작했다.

검강은 물론이고 장강을 쉴 새 없이 뿌리며 북해빙궁도들을 도륙했다.

손이든 검이든 걸리는 족족 서조운은 불태워 버렸다.

“잡아!”

“저놈부터 죽여!”

상극이라 할 수 있는 극양지기를 줄기줄기 내뿜으며 동료들을 학살하는 서조운의 모습에 북해빙궁도들의 눈이 돌아갔다.

분노도 분노지만 북해빙궁도들이 느낀 건 두려움이었다.

절대적이라 믿었던 자신들의 무공이 너무나 쉽게 파훼되자 북해빙궁도들은 공포와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서 일제히 서조운에게 달려들었다.

“와라!”

근데 그 모습을 보고도 서조운은 겁먹지 않았다.

오히려 호기롭게 소리쳤다.

자신이 북해빙궁도에게 상극이라는 걸 알기도 했지만 중요한 건 반호진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바로 지금이야. 내가 은혜를 갚아야 할 때가.’

누구보다 오랫동안 반호진과 함께한 이가 서조운이었다.

때문에 서조운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바로 지금이 반호진이 말한 때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마 형님께서는 그때부터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짐작하셨던 것이겠지.’

서조운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집을 떠나자마자 북해를 찾아갔던 날을 말이다.

퍼퍼퍼펑!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서조운은 공력을 가일층 끌어올렸다.

반호진이 무리하지 말고 조심하라고 했지만 그 말은 달리 말하면 할 수 있을 만큼까지는 마음대로 날뛰어도 된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떠올리며 서조운은 오랜만에 축융신공을 극성으로 일으켰다.

화르륵!

서조운의 전신이 불꽃에 휩싸였다.

그 상태로 서조운은 북해빙궁도들을 향해 돌진했다.

“애송이가 감히!”

“얼려 버려!”

츠츠츠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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