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226화 (226/468)

제 74장. 드디어 다시. -04

서조운과 모용척의 말에 사마의성이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규모만 계산하더라도 중원무림의 필패였다.

철혈성과 구천문을 따로 상대했기에 지금 정도의 여력이라도 있었지, 만약에 네 곳이 처음부터 힘을 합쳤다면 승리는커녕 퇴각하기 급급했을 터였다.

물론 단순한 가정이고, 중원의 저력을 생각하면 쉽게 전멸하지 않았겠지만 문제는 백도무림의 적이 새외무림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꿀꺽!

백도무림에 비해 세력이 작다고 하나 중원에는 사도(邪道)와 마도(魔道), 흑도(黑道)의 세력들이 있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위시로 한 백도의 힘이 강성하기에 기승을 부리지 못하는 것일 뿐 만약 백도무림의 힘이 약해진다면 언제라도 물어뜯기 위해 이빨을 드러낼 게 분명했다.

그러니 만약 네 곳이 힘을 합쳐 중원을 침공했다면 백도무림은 안팎으로 싸워야 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사마의성도 선우방과 마찬가지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괴멸이라. 충분히 그럴 수도 있어. 우리의 대응이 절대 빠르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도 사문과 가문의 이해득실에 따라 자기들끼리 싸웠겠지.”

“부정을 못 하겠네.”

끔찍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선우방이 반호진의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정일 뿐이지만 그대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아서였다.

예전이었다면 그래도 한 가닥 믿음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회의 때 어떤 대화들이 오고 가는지 알았기에 선우방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정도면 충분히 잘 싸우고 있어. 좋은 결과도 냈을뿐더러 사기 역시 나쁘지 않아. 적어도 패배의식이 깔려 있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너희들의 활약이 더더욱 중요해.”

“최선을 다해야겠네.”

“그렇다고 무리하지는 말고. 이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죽지 않는 것도 중요해. 죽으면 끝이야. 승리도 패배도 죽음 앞에서는 무의미하지.”

“마치 겪어 본 것처럼 말한다?”

“봐서 알잖아?”

반호진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사실을 말해 줄 수 없기에 에둘러 말했다.

“맞아요. 죽으면 끝이죠.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으면…….”

서조운이 말끝을 흐렸다.

전투를 치를 때마다 덧없이 죽어 간 이들을 보았기에 서조운은 반호진의 말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가족도, 사형제도 없는 이들의 죽음이 가장 안타까웠다.

“위령제는 전쟁이 끝난 후에 한 번에 치를 거야. 이미 얘기가 되어 있기도 하고.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거고, 미래가 있는 거니까.”

“예.”

죽어서 싸늘히 식어 가던 이들이 떠오른 모양인지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더욱이 지금은 살아서 이렇게 마주 보고 있지만 다음에도 이럴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다들 표정이 어두워졌다.

“형님.”

“말해.”

“저는 의성이와 함께 있겠습니까.”

“흐음. 호위해 줄 인원이 필요하기는 하지.”

단 한마디였으나 반호진은 정이륭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건 사마의성도 마찬가지였기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형님께서도 참전하실 수밖에 없으니 한 명은 의성이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을 위해서요.”

“괜찮겠어?”

“예. 저는 무명을 얻기 위해 강호에 나온 게 아니니까요. 어떤 역할이든 저는 중원을 지킬 수 있다면 상관없습니다.”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거야.”

정이륭을 일별한 반호진이 사마의성을 바라봤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후미에서 지휘만 해도 되었다.

구천문, 포달랍궁과 치열한 접전을 벌였다고 하나 사마의성이 위험할 정도까지 밀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다를 것이었다.

“각오하고 있어요. 저도 매일 무공수련을 하고 있고요. 쉽게 죽을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래. 그 마음가짐이면 되었다.”

“형님도 약속해 주세요. 절대 무리하지 않겠다고요.”

“당연하지. 난 절대 혼자 죽을 생각이 없어. 동귀어진할 생각도 없고.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할 거야.”

반호진이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희생은 한 번이면 족했다.

이번에는 절대 희생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도 어쩔 수 없기에 나서는 거지 그가 나서지 않아도 되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은원을 풀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 되도 상관없지.’

할 수만 있다면 북해빙궁주를 잡고 싶었다.

그러나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잡을 수 있으면 잡고, 힘들다면 포기할 생각이었다.

굳이 무리하면서까지 죽일 생각은 없었다.

“저희도 무조건 살아남을 거예요.”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새로이 합류하는 이들 중에 천둥벌거숭이들이 있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대부분은 주제파악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 몇몇은 눈치를 보고 있는 거 같기는 한데, 전투를 치러 보면 정신을 차리겠죠.”

사마의성에 이어 서조운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모두가 나름의 사정으로 바쁜 것과 달리 서가장은 이번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서조운은 다른 일행들에 비해 여유가 있었다.

덕분에 서조운은 전체적인 동향에 대해 매일매일 파악했다.

일행들이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을 그가 대신해서 확인했던 것이다.

“북해빙궁은 몰라도 포달랍궁의 전력은 아니까.”

“실례합니다.”

반호진을 비롯해서 일행들의 시선이 천막의 출입구로 향했다.

낯선 목소리가 모두가 동시에 반응한 것이었다.

이윽고 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앳된 소년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금가장에서 왔느냐?”

쭈뼛거리며 들어 온 소년의 얼굴이 밝아졌다.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아도 중원에서의 위상은 감히 자신과 비교할 수 없는 존재가 반호진이었다.

그런 반호진이 먼저 운을 띄워 주자 소년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예. 반 대협. 소장주님께서 이걸 전해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고생했다.”

“아닙니다!”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으니 이건 수고비다.”

“어, 안 주셔도 되는데…….”

소년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생각지도 못한 공돈이었으나 주는 이가 소장주인 금호연도 어려워하는 반호진이었기에 소년은 선뜻 받을 수가 없었다.

“어른이 주는 건 괜찮아. 설마 내가 돈이 없어 보이는 건 아니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나 돈 많아. 그러니 받아. 힘들게 왔으니 그에 따른 보상이 있어야지. 소장주님께 잘 받았다고 말도 전해 주고. 알았지?”

“네!”

소년이 우렁차게 대답했다.

단순히 받는 돈이 아니라 말을 전해 달라는 부탁이 섞여 있었기에 소년은 환하게 웃으며 두 손으로 공손히 은자 한 냥을 받았다.

“그래. 조심히 가고.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보자.”

“반 대협께서도 무탈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오냐.”

몸이 반으로 접히다시피 깊게 읍을 하는 소년의 모습에 반호진은 물론이고 일행들도 피식 웃었다.

방금 전까지 분위기가 무거웠었는데 소년 덕분에 싹 환기가 되었다.

지이익.

소년이 물러나자 반호진은 단단히 밀봉되어 있던 서찰의 윗부분을 뜯었다.

그러자 일행들도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금호연은 금가장의 소장주이기에 이번 전쟁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인들과 상행들을 통해 이래저래 알아낸 정보들이 있으면 반호진에게 알려 주었다.

“뭐가 적혀 있어요?”

“북해빙궁의 위치와 경로. 근데 내려오는 방향이 일직선이 아니네.”

“청해성으로 오려고 해도 감숙성을 관통해야 하지 않아요?”

“맞아. 근데 중간에 들를 곳이 있는 거 같은데.”

반호진의 말에 서조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았기에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고. 가정일 뿐이니까. 금가장이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 일단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도움이 되니까.”

“금가장과 하오문이 알게 모르게 도와줘서 정말 다행인 거 같아요. 개방이 있기는 하나 솔직히 구할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개방도가 보이면 족족 죽이기도 하고.”

반호진에게 정보를 건네주는 건 금가장만이 아니었다.

하오문 역시 보급할 때 몰래 반호진에게 포달랍궁과 북해빙궁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 주었다.

기밀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동 경로나 인원, 혹은 현재 위치 정도는 파악할 수 있기에 그런 것들을 반호진에게 알려 주었다.

그게 사마의성은 너무나 고마웠다.

“자, 너희들도 확인해. 당장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그래도 알고는 있어야지.”

“예.”

중요한 내용은 없었으나 그래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컸다.

특히 사마의성의 경우 포달랍궁과 북해빙궁의 현재 위치를 알아야 두 세력의 합류 지점을 예상할 수 있기에 반드시 알아야 했다.

현재 제갈문곡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기도 했고.

운남성 전투처럼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려면 북해빙궁과 포달랍궁의 이동속도와 예상 합류 지점을 파악해야 했다.

촤르륵!

누구보다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야 하기에 사마의성이 가장 먼저 서찰을 읽었다.

그러고는 선우방에게 서찰을 넘긴 후 지도를 펼쳤다.

서찰의 내용을 곱씹으며 예상 지역을 꼽는 것이었다.

탁. 탁. 탁.

“우리의 이동속도까지 감안하면 그 세 곳 중 하나가 될 거 같아?”

“예. 북해빙궁과 포달랍궁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역에 자리를 잡을 거라고 가정하면 이 세 곳이 가장 유력해요.”

반호진의 시선이 작은 깃발이 박힌 동그란 돌로 향했다.

정확히 세 곳에 놓여진.

“세 곳 다 감숙성이네?”

“청해성이 변방이라고 하나 엄연히 중원에 속해 있는 지역이에요. 그렇게 따지면 감숙성도 마찬가지기는 한데, 청해성에 비해 한 가지 확실한 장점이 있어요.”

“새외로 나가기 편하지. 지리적으로.”

“맞아요. 게다가 변수는 북해빙궁이에요. 숫자가 포달랍궁과 비교하면 현저히 적어요.”

“대신 한 명 한 명이 일당백일 거야.”

사마의성은 물론이고 모두의 시선이 반호진에게로 향했다.

개방의 노력으로 북해빙궁의 정보가 하나둘 풀리고 있다 하나 무인들의 무력에 대해서는 밝혀진 게 전혀 없었다.

그런데 반호진이 장담하듯 말하자 모두의 눈동자에 의문이 떠올랐다.

“북해의 패자인 북해빙궁에서 고작 삼천 명만 내려왔어. 선발대였다면 규모가 훨씬 더 작았을 테고, 그게 아니라면 소수정예이겠지?”

“늘 했던 말인 거 같은데 형님께서 말씀하시는 건 다 맞는 말 같아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고요.”

“그렇지는 않고.”

“아닌데.”

서조운이 작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모두에게는 들렸다.

“북해빙궁의 전력은 곧 알게 될 거야. 그러니 우리는 늘 그랬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돼.”

“네.”

다들 여전히 미심쩍은 기색이었으나 더는 묻지 않았다.

이럴 경우 반호진이 절대 말해 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대신 북해빙궁과 어떻게 싸울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

초겨울임을 알려 주듯이 한낮임에도 날씨는 싸늘했다.

아침저녁으로는 입김이 보일 정도로 추위가 상당했으나 한서불침인 반호진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대신 반호진은 감숙성 무위현 북쪽에 자리 잡은 북해빙궁과 포달랍궁의 진영을 응시했다.

서두른다고 서둘렀건만 결국 두 세력이 합류하는 게 좀 더 빨랐다.

휘이이잉!

그러나 반호진의 시선은 포달랍궁이 아닌 북해빙궁의 진영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를 이곳으로 보냈다고 할 수 있는 북해빙궁주가 바로 저곳에 있었기에 반호진은 만감은 교차했다.

“북해빙궁의 육존(六尊)은 얼마나 강할까?”

“포달랍궁의 칠성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수장들과 비슷한 수준이라니.”

선우방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 무리하지 마. 이왕이면 죽지 말고. 난 너 오래 보고 싶다.”

“나도 오래 살 거다. 장가도 가야 하고. 너 장가가는 것도 볼 거다.”

선우방이 씨익 웃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그만의 표현이었다.

동시에 진영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전투를 앞두고 전운이 감도는 것이었다.

‘나왔군.’

선우방을 시작으로 일행들의 상태를 살펴보던 반호진이 고개를 돌렸다.

이번 생에서는 처음 만나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존재가 특이한 복장을 한 채로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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