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225화 (225/468)

제 74장. 드디어 다시. -03

“그걸 보고도 똑같으면 머리가 빈 거지. 근데 네가 왜 우쭐거려?”

“형님의 일은 곧 내 일과 같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사마의성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의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사이라고 하나 그래도 지켜야 하는 선이 있었다.

반호진과 자신을 동일시하자 사마의성은 서조운을 흘겨봤다.

“그런데 우리를 보는 시선도 상당한 거 같지 않아?”

서조운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주변에 소림사와 선우세가,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있기에 이쪽을 힐끔거리는 이들과는 거리가 상당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어서였다.

“확실히 늘긴 는 것 같아. 형님을 바라보는 눈빛하고는 좀 다르지만.”

“에이. 형님과 우리를 비교하면 쓰나. 격이 다른데.”

서조운이 당연하다는 듯이 검지를 휘휘 저었다.

반호진이 몇 번 하는 걸 보더니 따라 하는 것이었다.

“나도 그건 알아.”

“한 명의 무인으로서 형님을 존경하고 흠모하는 건 당연하지. 사실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기도 하고.”

“형님께서 굳이 드러내지 않으셨으니까.”

사마의성이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보통은 힘이 있고, 자신이 뛰어나다는 걸 알면 만인에게 드러내려 했다.

자랑은 어떻게 보면 인간의 본능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반호진은 그렇지가 않았기에 더더욱 존경스러웠다.

“나는 그게 진짜 멋있는 거 같아.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는 거지. 때가 되면 다 밝혀지니까.”

“그래서 지난번 전투에서는 조용히 있었구만?”

“내가 뛰어나다는 걸 이미 다 알고 있잖아? 그리고 나는 이름을 날리는 것보다 형님의 지시에 충실히 따르는 게 더 중요해.”

서조운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싹 사라졌다.

지금도 그는 반호진을 처음 만났을 때가 선명했다.

부모님과 형들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 가고 있을 때 반호진이 운명처럼 찾아왔었다.

그리고 그에게 생명을 주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형님이 거두어 주시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도 없어.”

사마의성 역시 숱한 곳에서 관심을 받고 있었다.

혼담은 물론이고 대놓고 포섭하려는 곳도 수두룩했다.

하지만 그 시커먼 속내에 순순히 넘어갈 사마의성이 아니었다.

“잘 알고 있네. 만약 그걸 잊으려 했으면 난 너 다시는 안 봤을 거야. 나는 배은망덕인 놈들을 아주 경멸하거든.”

“난 짐승 아니거든? 앞으로도 절대 잊을 일 없고. 평생을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는데. 그리고 떠날 생각도 없고.”

“흐음. 마지막에는 우리만 형님의 곁에 남겠지?”

서조운이 아주 흡족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고개를 슬그머니 들이밀었다.

그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설프게나마 강기막을 일으켜 목소리를 차단하면서 말이다.

“아마도?”

“그럼 장가를 가려면 조건을 하나 달아야겠다. 나는 데릴사위로 들어갈 수는 없다고.”

“삼처사첩을 거느리려면 네 가문을 따로 세우는 게 낫지 않겠어?”

“그건 좀 나중에. 한 번에 일곱 명과 혼인할 수는 없잖아?”

쓸데없이 진지한 서조운의 모습에 사마의성이 실소를 흘렸다.

농담으로 말했는데 서조운은 진담으로 받아들인 것 같아서였다.

그러는 사이 아직 노을이 지지도 않았는데 주변이 부산스러웠다.

오늘밤은 이 근방에서 머물려는 것인지 짐을 한가득 짊어지고 있던 이들이 익숙하게 천막을 치기 시작했다.

“우리도 자리 잡자.”

“저리로 가자.”

익숙하게 자리를 잡아서 천막을 치는 사람들의 모습에 사마의성이 빠르게 주변을 훑었다.

지형적으로 가장 좋은 곳을 찾는 것이었다.

함께 이동하는 인원이 워낙 많아 산 하나를 통째로 점거하는 거나 다름없었으나 그럼에도 좋은 자리가 있고, 나쁜 자리가 있었다.

다들 무인이라 바람이나 새벽이슬에 강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잠자리는 편안한 게 중요했다.

스스스슥!

그러자 근처에서 함께 이동하던 모용세가와 선우세가, 남궁세가, 하북팽가, 사천당가의 무사들이 주변을 호위하듯 둥글게 자리를 잡았다.

가주들이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늘 이랬었기에 무사들은 알아서 움직였다.

그 모습을 보며 서조운과 사마의성도 정이륭, 반호진과 함께 부지런히 천막을 세웠다.

“형님께서는 가만히 있으셔도 됩니다!”

“놀면 뭐 해? 내가 잘 곳인데 당연히 나도 만들어야지.”

“안 그러셔도 되는데.”

일행들이 익숙해진 것처럼 반호진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따져 보면 여기 있는 누구보다 노숙을 많이 한 게 반호진이었다.

지난 생에서는 맨바닥을 침상으로 삼고 하늘을 이불 삼아 하룻밤을 보낸 적이 허다했다.

그렇기에 이 정도 숙영지면 반호진에게 있어 천상의 호사나 마찬가지였다.

“후딱 만들고 저녁 준비해야지. 물도 떠 와야 하고.”

“이 근방의 야생 짐승들이 씨가 마르겠네요. 보급품이 있기는 하나 맛은 없으니까요.”

“얼마나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천막을 짓는 건 쉬웠다.

거기다 익숙해지기까지 했기에 천막을 세우는 건 순식간에 끝났다.

나머지는 자잘한 일이었기에 반호진은 마무리를 하면서 주변을 찬찬히 둘러봤다.

각자 맡은 바 일들을 하고 있었으나 시선은 다들 하나같이 이곳을 힐끔거렸다.

“확실히 우리가 유명해지긴 했나 봐. 사천당가, 하북팽가, 남궁세가가 저러는 거야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다른 곳들도 똑같아.”

“검룡과 염룡, 비룡과 은룡이라면 충분히 시선을 받을 만하지. 근래 가장 유명한 후기지수들이니까.”

“운남성에서는 크게 활약하지도 않았는데 말이지.”

선우세가 쪽이 얼추 정리되어 가자 슬그머니 반호진에게로 다가온 선우방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의 시선은 상당히 먼 곳까지 향해 있었다.

“눈에 띄지만 않았을 뿐 너도 유명해지긴 했으니까. 가문을 잘 이끌기도 했고.”

“확실히 다른 문파들에 비하면 피해를 덜 입기는 했어. 의성이가 도와줘서 그런지.”

“아니에요.”

자신이 거론되자 바짝 마른 낙엽을 모아 임시로 침상을 만들던 사마의성이 겸손하게 고개를 저었다.

선우세가와 모용세가의 지휘를 하긴 했으나 다른 이들의 활약에 비하면 아무래도 손색이 있었다.

직접 싸운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그러나 선우방과 모용척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긴. 내가 보기에는 제갈세가의 소가주보다 네가 더 나은 것 같은데.”

“선우세가주님과 모용세가주님께서 잘 싸워 주신 덕이지 제 능력만으로 결과가 나온 건 아니에요.”

“네가 없었다면 본가나 모용세가는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거야. 소규모 전투에서는 군사가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대규모 전쟁에서는 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이번에 느꼈어.”

선우방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그 정도로 사마의성의 능력은 대단했다.

두드러지지 않아서 그렇지 사마의성은 앞으로 있을 전투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인력이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척이도 같은 생각일걸?”

“그냥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할 것 같은데요.”

“그럴 리가. 나도 인정할 건 인정하는 사람이야.”

천막의 입구가 좌우로 갈라지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모용척의 음성이었다.

막 정리가 끝났는지 모용척은 흑의무복에 묻은 고운 흙먼지들을 털어 내며 안으로 들어왔다.

“웬일이래?”

“결과로 나온 사실이니까요. 그러니 인정해야지요. 곧 있을 전투에서도 의성이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선우방을 보며 모용척이 씨익 웃었다.

그 능글맞은 미소에 선우방은 물론이고 일행들도 피식거렸다.

“아직 별호가 안 생겼다고 서운해하지는 말고.”

“전혀요. 저는 오히려 지금 이 순간도 꿈만 같은걸요. 모두가 잊었던 사마세가를 하나둘 기억해 주고 있으니까요.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도 하고요.”

반호진의 말에 사마의성이 손사래를 쳤다.

별호가 생기면 좋겠지만 없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무림에서 살아남는 데 있어 중요한 건 능력이지 별호가 아니었다.

또 실력과 명성을 쌓으면 별호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었다.

“야망은 있단 말이지?”

“물론이죠. 저는 사마세가를 제갈세가 이상 가는 가문으로 만들 거예요. 죽기 전에 이루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원래 목표는 크게 잡는 것이니까요.”

“좋네. 꿈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지.”

“이 꿈도 형님이 계시기에 꿀 수 있지만요.”

“내가 없었어도 너는 결국 이루어 냈을 거야. 시기가 좀 더 앞당겨졌을 뿐이지.”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반호진은 확신하듯 말했다.

다만 이제는 뒤틀린 미래에서 사마의성은 유명해지긴 했으나 그게 좋은 쪽은 아니었다.

성격 역시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었고.

하지만 그건 이제 오지 않을 미래였기에 반호진은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사마의성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 주었다.

“아니요. 쉽지 않았을 거예요. 제 능력은 눈에 잘 띄는 능력이 아니니까요. 무림이라는 세상에서, 또 평화로운 시대에서 제 능력은 쓸모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사마세가가 부활하는 걸 원치 않은 이들도 있을 테고요.”

“그랬을 거야. 근데 중요한 건 너와 내가 만났고, 여기까지 왔다는 거잖아? 과거나 가정이 무의미한 건 아니지만 그걸 굳이 지금 이 순간 떠올릴 필요는 없지. 나중에 필요할 때 꺼내서 곱씹어 보는 걸로 충분해. 그러니 우리는 지금과 곧 다가올 미래만 생각하자고.”

“예!”

“그리고 이번에는 너희들도 마음껏 날뛰어.”

반호진의 말에 모두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지금까지 반호진은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었다.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후방에서 지켜보기만 했었다.

그래서 몇몇 수장들이 불만을 품고 있다고 일행들은 들었었다.

차마 반호진의 앞에서 그런 티를 내지는 못했지만.

한데 이번에는 마음껏 날뛰라고 하자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왜?”

“이제는 그래도 되니까. 너희들의 힘이 필요한 시기이기도 하고. 운남성에서는 전력을 최대한 보전하며 싸워야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

“북해빙궁이 참전했으니까? 그러고 보면 넌 북해빙궁의 참전을 예상했구나?”

“예상까지는 아니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어쩌면 북해빙궁이 끝이 아닐 수도 있고. 세상은 넓고 새외무림이 북해가 끝은 아니니까.”

선우방은 물론이고 일행들의 얼굴이 해쓱해졌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반호진이 이렇게 말하니 빈말로 들리지 않아서였다.

더 무서운 건 일행들의 뇌리에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곳들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후.”

“지금만 해도 감당이 안 되는데…….”

서로 같은 생각을 했는지 서조운과 모용척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그러더니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포달랍궁과 북해빙궁만 하더라도 감당하기가 벅찬데 다른 곳도 신경 써야 하자 머리가 아파 왔다.

“그래서 포기하려고?”

“그럴 순 없지요.”

“중원은 저희의 땅입니다. 당연히 지켜 내야지요!”

모용척과 서조운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적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절대 물러나거나 포기하지 않겠다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역사적으로도 패배는 있을지언정 포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너무 앞서가지는 말고. 난 그저 가능성을 말하는 것뿐이니까.”

“네가 말하면 무서워. 진짜 그대로 될 거 같단 말이다. 만약 철혈성부터 무너뜨리지 않았다면…….”

선우방이 말끝을 흐리며 몸을 떨었다.

구천문과 포달랍궁, 북해빙궁에 철혈성까지 합쳐졌을 걸 상상하자 선우방은 오금이 저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지금의 절반도 남아 있지 못하겠지.”

“절반이 뭐예요. 괴멸했을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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