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4장. 드디어 다시. -01
“이번 전투로 인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궁금하신 분이 없는 듯합니다.”
“사상자와 부상자의 숫자보다 중요한 게 현재 북해빙궁이지 않나. 더욱이 포달랍궁이 합류할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도 어서 이동해야 하지 않겠나?”
제갈문곡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방만춘이 입을 열었다.
북해빙궁의 이동 경로가 청해성과 감숙성 사이였기에 위험한 건 공동파 역시 마찬가지였다.
접경지에서 공동산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기에 방만춘의 얼굴에는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저도 추격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의합니다. 다만 문제는 그럴 경우 인원을 나누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부상자가 상당한 만큼 현재 바로 이동할 수 있는 인원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으음!”
운왕이 침음을 흘렸다.
마음이 급했지만 그도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서둘러야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서두르기만 해서는 안 되었다.
도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는 게 중요했다.
“저 역시 최대한 서두르고 싶습니다. 퇴각한 포달랍궁이 서장으로 향했고, 북해빙궁과 합류하기 위해 청해성으로 가리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스으윽.
제갈문곡이 설명과 함께 지도의 한 곳을 길쭉한 작대기로 짚었다.
바로 청해성의 감덕현(甘德縣)이었다.
그런데 작대기로 감덕현을 가리키기 무섭게 운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왜냐하면 포달랍궁과 북해빙궁이 감덕현에 집결하게 되면 곤륜파가 완전히 고립되어서였다.
“하필이면 감덕현이라니.”
그리고 방만춘 역시 장탄식을 흘렸다.
곤륜파는 고립이 되지만 감덕현에서 공동산까지는 금방이었다.
특히나 포달랍궁주의 무위를 직접 보았기에 방만춘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그래서 저도 무조건 서둘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개격파를 하려면 두 세력이 만나기 전에 해야 합니다.”
제갈문곡이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가 강경하게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었다.
회의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고 출발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북해빙궁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되었나?”
“정보를 수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정확한 무위는 파악이 되지 않았습니다. 다만 포달랍궁, 구천문과 손을 잡았으니 북해빙궁주의 실력도 두 수장과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뜻이로군.”
방만춘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오중건을 쏘아봤다.
개방의 후개답지 않은 정보력이라고 눈빛으로 힐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중건도 할 말이 있었다.
중원도 아니고 새외무림 중에서도 가장 멀고 외진 곳이 북해였다.
대막보다도 더 먼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게 북해빙궁이기에 정보를 구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천하에 거지가 없는 곳이 없다지만 보통의 거지는 큰 마을이나 도시에 있지 굳이 북해까지 빌어먹으러 가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제아무리 개방이라도 북해빙궁에 대해 조사하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는 오중건을 담현이 다독여 주었다.
그러고는 심유한 눈빛으로 방만춘을 지그시 바라봤다.
방만춘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나 그래도 이건 도를 넘었다고 생각했다.
개방이라고 해서 모든 걸 아는 게 아닌데 그걸 탓하는 건 잘못된 것이었다.
“정 그렇게 급하면 먼저 가시든가.”
“끄응!”
정작 자기는 아무것도 안 하고 나무라기만 하는 방만춘의 행태에 팽만철이 콧김을 내뿜었다.
도와 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노력한 것에 감사하기는커녕 구박만 하고 있어서였다.
당장 앞으로 개방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인데도 말이다.
만약 오중건이 아니라 개왕이 앉아 있었다면 방만춘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왜? 아니꼬워? 그럼 한판 붙든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도 당신 정도는 충분히 상대해 줄 수 있어.”
“그만하게.”
“방주님이 계셨으면 한마디도 못 했을 작자가.”
제갈문곡의 만류에도 팽만철은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했다.
그런데 웃긴 건 그를 말리는 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걸 깨달은 방만춘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당장 요양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제갈문곡의 시선이 팽만철을 지나 남궁호와 일우 등등에게로 향했다.
한눈에 봐도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상태로 보이지 않아서였다.
“지금 우리가 요양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우리가 빠지면 어떻게 싸울 건가?”
팽만철과 남궁호의 대답에 제갈문곡의 입이 다물어졌다.
개왕이 전력에서 이탈한 마당에 도왕과 염왕, 투왕마저 빠진다고 생각하자 제갈문곡은 머리가 아파 왔다.
그냥 전력도 아니고 핵심 전력의 이탈이었기에 보충할 방법은 없었다.
네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었으면 애초에 무림십왕이라 불리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포달랍궁주는? 그리고 북해빙궁주는?”
“후우.”
“방법이 없어. 방주님은 연세도 있으시니 어쩔 수 없다지만 우리는 가야 해. 안 그렇소이까?”
팽만철의 시선이 청성파와 점창파, 아미파의 장문인들에게로 향했다.
사실 후유증은 팽만철과 남궁호, 일우보다 세 사람이 더 심했다.
아무래도 경지가 셋보다 낮았기에 내상 역시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게 늘 최상의 상태에서만 싸울 수는 없기에 몸이 정상이 아니더라도 싸워야 했다.
“맞습니다.”
“저희를 대체할 사람도 없으니.”
본래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해도 청성파와 아미파, 점창파의 장문인들은 천하를 호령하는 고수들이었다.
웬만한 무인들보다 훨씬 강했기에 이기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반드시 필요했다.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그때 조용히 경청하고만 있던 담현이 입을 열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담현에게로 집중되었다.
“방법이라 하심은?”
“영약이나 영단이라면 내상과 후유증을 치료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구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찾아보면 몇 개 정도는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웃돈을 주는 방법도 있고.”
“제가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제갈문곡이 눈을 빛냈다.
영약이 귀한 건 사실이나 막상 찾아보면 아예 없지는 않았다.
후대를 위해 보관만 해 두고 있는 곳들도 있었고.
또 어쩔 수 없이 팔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곳도 찾아보면 분명 있을 터였다.
“구할 수 없다면 임시방편일지라도 소환단을 내놓겠습니다.”
“예?!”
“헉!”
이어지는 담현의 말에 모두가 경악성을 토해 냈다.
대환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하나 소환단 역시 소림을 대표하는 영단이었다.
만들고 싶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실패할 확률이 상당히 높았기에 소림사에서도 보물로 다루는 게 소환단이었다.
그걸 서슴없이 내놓겠다고 하자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 진심이십니까?”
오죽했으면 웬만한 일에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제갈문곡마저도 말을 더듬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담현의 발언은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꿀꺽!
그리고 조용히 듣고 있던 사마의성도 침을 삼켰다.
충격적인 발언에 사마의성은 반호진과 담현, 법무를 번갈아 쳐다봤다.
하지만 정작 말을 한 담현도, 들은 반호진과 법무도 태연한 표정이었다.
“중원을 지키기 위함이지 않습니까. 소환단이 본사의 보물인 건 맞지만 필요하다면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림사가, 백도무림이 사라지면 소환단과 대환단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으음!”
여기저기에서 깊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소환단의 가치를 알지만 대의를 위해 사용하겠다는 말에 모두가 존경심이 담긴 눈빛으로 담현을 바라봤다.
몇몇 수장들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담현에게 깊게 읍을 했다.
“방장의 말씀에 정말 탄복했습니다!”
“역시 방장이십니다!”
무거웠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풀렸다.
제갈문곡이 그토록 노력했던 걸 담현은 한마디로 이루어냈던 것이다.
그리고 좋은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방장께서 모범을 보이시는데 저도 받기만 할 수는 없겠지요.”
“맞습니다. 방장께서 소환단을 주신다고 했으니 본파에서는 금정신단(金精神丹)을 내놓겠습니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금정신단이라는 이름과 달리 소환단처럼 대단한 영단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미파를 대표하는 게 금정신단이었다.
아미파의 장문인은 그걸 내놓겠다고 말했다.
“괜찮습니다만.”
“소환단보다는 부족하지만 분명 쓰임새가 있을 것입니다, 방장.”
“그렇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반드시 주겠다는 연정 사태의 표정에 담현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
너무 거절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서였다.
또한 연정 사태의 말에 일정 부분은 동의하기도 했다.
“흠흠! 그렇다면 본가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요. 소환단에 비견될 만한 영약들을 찾아보겠습니다.”
“소환단을 어찌 그냥 받겠습니까. 남궁세가 역시 격에 맞는 것으로 준비하겠습니다.”
청성파의 장문인과 연정 사태가 물꼬를 트자 팽만철과 남궁호도 입을 열었다.
선의에는 선의로 보답하는 게 강호의 도리이기도 할뿐더러 선물도 아닌데 거저 받는 건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안 그러셔도 됩니다만. 여러분께서는 앞으로 큰일을 치르셔야 하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어찌 그 귀한 걸 덥석 받기만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께 그렇게 배우지 않았습니다.”
“허어.”
귀천한 전대 남궁세가주를 거론하자 담현으로서도 더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반면에 방만춘은 점점 조여 오는 시선에 눈알만 굴렸다.
네 사람이 왜 저러는지는 알지만 그는 딱히 소림사에 보답할 게 없었다.
‘그냥 받으면 되지, 왜들 저러는 거야?’
방만춘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보답할 물건이 있더라도 그는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공동파보다 더 크고 더한 성세를 누리는 게 소림사였다.
뭘 줘도 의미가 없기에 방만춘은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방 장문인은 어찌할 생각이오?”
“그러게. 너무 조용한 거 같은데?”
심드렁한 기색으로 가만히 앉아 있던 방만춘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갑자기 당우혁이 자신을 거론해서였다.
거기에 팽만철도 슬그머니 한 다리를 걸치자 방만춘은 어색하게 웃었다.
“허허허. 본파에는 소환단에 비견될 만한 것들이 없기에 조용히 있었소이다.”
“그래도 성의 표시는 해야 하지 않나?”
“방장께서 원하시지 않는 듯하여…….”
“허어! 예의상 하는 말이지, 예의상! 그럼 방장께서 내놓으시오! 이럴까?”
“끄응!”
대놓고 면박을 주는 팽만철을 보며 방만춘이 앓는 소리를 냈다.
그러나 대들기에는 팽만철의 성격과 무공이 너무 두려웠다.
만약 여기서 대거리를 한다면 팽만철은 참지 않고 거패도를 뽑아 들 게 분명했다.
“공동파의 명예도 있는데.”
“……생각해 보겠소.”
지켜보던 남궁호도 슬쩍 한마디를 하자 방만춘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그 말에 남궁호는 물론이고 팽만철과 당우혁도 코웃음을 쳤다.
요리조리 빠져나가려는 게 그들의 눈에는 훤히 보여서였다.
“그럼 다음 안건으로 넘어갈까요. 현재 북해빙궁의 전력에 대해서는 파악된 게 없습니다. 인원은 개방에서 대략적으로 파악한 상태지만 북해빙궁주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게 없습니다. 그러나 구천문주, 혹은 포달랍궁주와 비슷한 실력이지 않을까 합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면 포달랍궁주보다 더 강할 수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