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3장. 검신이었다. -03
그걸 느낌과 동시에 담현은 땅을 박찼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했다.
포달랍궁주의 진정한 실력이 말이다.
‘나보다 경지는 높지만, 모든 승부가 무공의 고하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니.’
담현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불법을 공부하는 승려이지만 담현 역시 한 사람의 무인이었다.
또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포달랍궁주를 쓰러뜨려야 했기에 담현은 남아 있는 공력을 전부 다 끌어올렸다.
최상의 몸 상태라 하더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강자가 포달랍궁주인 만큼 담현은 처음부터 전력을 다했다.
웅웅웅웅!
그 사실을 증명하듯 포달랍궁주에게 쇄도하는 담현의 전신에서 찬란한 금광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살인마조차도 보는 순간 살기가 흩어질 정도로 따뜻하고 장엄한 금광이었으나 안타깝게도 포달랍궁주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파아아앗!
오히려 포달랍궁주는 똑같은 방식으로 담현을 찍어 누르겠다는 듯이 전신에서 혈광을 내뿜었다.
피처럼 붉은색이 아니라 금빛과 홍색이 뒤섞인 듯한 광휘였는데 놀랍게도 포달랍궁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혈광은 단숨에 담현의 금광을 집어삼켰다.
“으음!”
공수를 주고받은 것도 아닌, 그저 공력을 일으켰을 뿐이지만 담현은 알 수 있었다.
자신과 포달랍궁주의 격차를 말이다.
그러나 격차가 크다고 해서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그럴 마음가짐이었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전쟁이 시작됐을 때부터 담현은 목숨을 내놓았다.
중원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자신의 목숨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 마음가짐이 지금 이 자리에서 발현되었다.
쑤아아앙!
대웅전의 불상처럼 전신이 황금빛으로 휩싸인 담현이 수미불면장(須彌佛面掌)을 극성으로 펼쳤다.
가장 자신 있는 무공이자 사도(邪道)의 종파라 할 수 있는 포달랍궁주에게 진짜 불가(佛家)의 무공을 보여 주고 싶어서였다.
더불어 소림사의 무공이 포달랍궁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증명하고자 했다.
“제법이군.”
극성으로 펼친 수미불면장이 장엄한 광채와 함께 포달랍궁주에게 쇄도했다.
하지만 담현의 일장은 결코 빠르지 않았다.
비겁하게 싸우지 않겠다는 듯이 정정당당하게 정면으로 뻗어 나갔다.
그 모습에 포달랍궁주가 미약하게 감탄했다.
“얕보다가는 큰코다칠 것이오.”
“글쎄. 제법이긴 하나 날 놀라게 할 정도는 아니야.”
쩌저적!
거의 사람 키만 한 거대한 수미불면장이 산산조각 났다.
포달랍궁을 대표하는 무공이자 서장일절로도 유명한 밀종대수인과 부딪치자마자 박살이 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광경을 보고도 담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어서였다.
쌔애애액!
그래서 담현은 당황하지 않고 연거푸 칠십이종절예를 쏟아 냈다.
수미불면장이 통하지 않는다면 다른 무공을 펼치면 될 일이었다.
소림사의 무공은 다양하고 깊었기에 그중에 하나는 포달랍궁주에게 통할 거라고 믿었다.
콰콰콰쾅!
지금의 소림사를 만든 칠십이종절예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것도 허투루 익힌 무공은 단 하나도 없었다.
괜히 소림사의 방장이 아니라는 듯이 담현은 절륜한 무위를 보여 주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엄청난 수준의 무공임에도 포달랍궁주의 호신강기를 뚫지는 못했다.
“흥.”
아니,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담현이 평생 동안 쌓아 온 무공이 포달랍궁주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담현은 우직하게 계속 공격했다.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할 정도로 담현의 각오는 무르지 않았다.
“어리석구나.”
아무리 두들겨도 생채기 하나 생기지 않는 걸 본인 스스로도 알고 있을 텐데도 끊임없이 두들기는 담현의 모습에 포달랍궁주가 혀를 찼다.
근성은 있으나 승부의 세계는 냉정했다.
단순히 근성이 있다고 해서 승리할 수는 없었다.
그걸 포달랍궁주는 보여 주기로 마음먹었다.
우우우웅!
미동도 없는 완벽한 구(球) 형태의 호신강기 안에 있던 포달랍궁주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방금 전보다 더욱 거대한 밀종대수인이 펼쳐졌다.
마치 거인의 손바닥처럼 어마어마하게 큰 밀종대수인이 담현을 집어삼킬 기세로 느릿하게 뻗어 왔다.
피할 수 있다면 피해 보라는 듯이 말이다.
“차합!”
보는 순간 기가 질려 버릴 정도로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기운을 품고 있었으나 담현은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먼저 달려들었다.
“쯧쯧!”
그런 담현의 행동에 포달랍궁주는 코웃음 쳤다.
미련해도 저렇게 미련할 수가 없어서였다.
수준 차이를 느끼지 못했을 리 없을 텐데도 무모하게 달려드는 게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데 그때 담현의 옆으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지금부터는 함께합시다! 으합!”
“빈도도 있습니다.”
양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음성에 담현의 두 눈이 커졌다.
이 순간에 두 사람이 가세할 줄은 몰라서였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든든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소용없는 짓이다.”
뻐어어엉!
담현과 개왕, 운상이 힘을 합쳤음에도 포달랍궁주의 밀종대수인은 건재했다.
소림사와 개방, 무당파의 절학을 동시에 상대하고도 멀쩡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 사람의 협공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스스슥!
밀종대수인의 전진을 막아 냄과 동시에 운상과 개왕이 좌우로 흩어졌다.
애초에 두 사람의 목적은 밀종대수인을 잠깐이라도 멈춰 세우는 것이었다.
그 목적을 달성했기에 둘은 망설이지 않고 좌우로 이동해서는 강룡십팔장과 태극혜검을 펼쳤다.
“호오. 태극혜검과 강룡십팔장이라.”
소림사와 비교해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무당파와 개방 최고수의 협공에 포달랍궁주의 두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담현만큼이나 두 사람의 무공도 볼만한 가치가 있어서였다.
그리고 그 말은 달리 말하면 둘의 협공이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쩌어엉! 쩌엉!
전력을 다한 일격을 뿌렸으나 결과는 담현과 똑같았다.
두 사람의 공격도 포달랍궁주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긍정적인 게 하나 있다면 이번 협공으로 포달랍궁주의 호신강기에 균열이 생겼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담현이 합세하니 혈광으로 빛나는 호신강기가 크게 흔들렸다.
‘할 수 있다!’
그 광경을 본 셋은 빠르게 눈빛을 교환했다.
분명 포달랍궁주는 그들보다 한 수 위의 고수였다.
하지만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격차가 있는 건 아니었다.
혼자라면 불가능하겠지만 셋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우우우웅!
눈빛이 교차된 순간 세 사람은 각자의 역할을 깨달았다.
본능적으로 포달랍궁주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느낀 것이었다.
그걸 느낀 순간 세 사람의 위치가 달라졌다.
운상이 중앙에서 태극혜검을 펼치고 담현과 개왕이 양쪽에서 맹렬하게 공격을 쏟아 냈다.
콰콰콰쾅!
가장 강력한 무공들과 초식들을 포달랍궁주에게 쏟아부었던 것이다.
뒤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배수진처럼 담현과 개왕, 그리고 운상은 혼신의 힘을 다해 공격을 퍼부었다.
“어림없다.”
운상이 태극혜검으로 균형을 잡아 주고 담현과 개왕이 파상공세를 퍼부었으나 포달랍궁주의 표정은 태연했다.
호신강기에 균열이 생기고 격렬하게 흔들렸으나 딱 거기까지였다.
유의미한 피해는 전혀 끼치지 못했다.
“큭!”
“헙!”
“으음!”
오히려 느릿하게 뿌려지는 밀종대수인에 셋은 피하기 급급했다.
단순한 방어와 공격에 세 사람 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것이다.
게다가 시작했을 때부터 공력과 체력이 상당히 소모된 상태였기에 셋의 안색은 그리 좋지 못했다.
“구경은 이쯤 할까.”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세 명의 맹공을 받아 내기만 하던 포달랍궁주가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소림사와 무당파, 개방의 무공은 충분히 구경했다는 듯이 말이다.
별다른 감흥 없이 무심하게 입을 연 포달랍궁주는 진기를 가일층 끌어 올렸다.
웅웅웅!
이윽고 포달랍궁주의 전방에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밀종대수인이 생성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수십, 수백 개의 밀종대수인을 펼치는 것도 가능했지만 포달랍궁주는 그러지 않았다.
그보다 아랫줄이기는 해도 세 사람 다 초월경의 고수였다.
방어하는 것과 셋을 동시에 움켜잡는 건 다른 문제였기에 포달랍궁주는 일단 한 명씩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쌔애애액!
결정을 내린 순간 혈광으로 번쩍이는 밀종대수인이 전광석화처럼 쭉 뻗어졌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엄청난 속도였다.
“방장!”
껄끄러운 상대는 없지만 거슬리는 존재는 있었다.
바로 아류라 할 수 있는 소림사의 방장 담현이었다.
주제도 모르고 덤비기도 했기에 포달랍궁주는 가장 먼저 담현을 노렸다.
퍼어억!
그런데 그때 담현과 밀종대수인 사이로 하나의 인영이 끼어들었다.
바로 개방의 방주 개왕이었다.
“방주님!”
담현이 위험에 빠진 순간 망설이지 않고 개왕은 몸을 날렸다.
하지만 담현을 살린 대신 그 대가로 개왕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호신강기를 극성으로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밀종대수인은 개왕의 몸을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커헉!”
순식간에 호신강기를 우그러뜨린 밀종대수인은 단숨에 개왕을 집어삼켰다.
진짜 손처럼 개왕을 움켜쥐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개왕이 입에서 피를 토했다.
쩌어어엉!
자신을 대신해 밀종대수인에 당한 개왕의 모습에 담현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답지 않게 격노한 것이었다.
그러나 담현은 그저 분노하지만 않았다.
어떻게든 밀종대수인에 붙잡혀 있는 개왕을 구해 내고자 안간힘을 썼다.
“기다려라. 다음은 진짜 네 차례니까.”
운상과 함께 개왕을 구출하고자 사력을 다하는 담현을 보며 포달랍궁주가 비릿하게 말했다.
아무리 발악을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터였다.
그 정도로 셋과 그의 격차는 현격했다.
쌔애액!
한데 그 순간 포달랍궁주의 귓전으로 섬뜩한 파공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의 밀종대수인이 처음으로 깨졌다.
어디선가 날아온 검에 개왕을 움켜쥐고 있던 밀종대수인이 반 토막 났다.
“울컥!”
“방주님!”
“모시고 가세요, 사부님.”
겨우 밀종대수인에서 빠져나온 개왕을 부축하는 담현의 앞으로 한 명의 인영이 내려섰다.
바로 검을 날린 이였다.
“……또 이렇게 되었구나.”
“애초에 정정당당한 승부가 아니지 않았습니까. 이제야 공평해진 겁니다.”
“녀석.”
지켜 주듯 앞에 선 제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담현이 못 이기겠다는 듯이 실소를 흘렸다.
그러나 반호진의 말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포달랍궁주를 쓰러뜨릴 수 없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이미 체력은 물론이고 공력도 거의 바닥 난 상태였기에 담현은 개왕을 품에 안고서 조용히 본진으로 물러났다.
“괜찮겠소?”
“해 보는 데까지는 해 보겠습니다.”
“알겠소.”
반호진의 무경을 잘 알고 있었기에 운상은 더 묻지 않았다.
그만큼 반호진을 믿었기에 운상은 담현과 함께 본진으로 복귀했다.
“법왕을 잡으니 검성이 왔군.”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누가 누굴 잡아? 사부님은 멀쩡히 돌아갔는데?”
“허?”
포달랍궁주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참이나 어린 반호진이 이렇게 대뜸 반말을 지껄일 줄은 몰라서였다.
물론 서로 예의를 차릴 사이가 아니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존중은 있어야 하는 법이었다.
그게 강호의 도의이기도 하고.
근데 반호진에게는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처음부터 시건방진 태도를 고수했다.
“왜 그래? 우리가 친구 먹을 사이는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 그래도 신선하긴 하군. 내 앞에서 이토록 당돌한 태도를 보일 줄이야.”
“벌써부터 놀라긴 일러. 진짜는 지금부터니까.”
스으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