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219화 (219/468)

제 73장. 검신이었다. -01

“의성이를 중심으로 움직여. 우리도 구천문을 몰아붙인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반호진의 지시에 정이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사마의성처럼 똑똑하지도, 서조운처럼 다재다능하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잘하는 게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정이륭은 군말 없이 반호진의 지시를 받아들였다.

“저보고 모용세가와 선우세가를 지휘하라는 말씀이시죠? 섬서성처럼.”

“맞아. 큰 줄기는 제갈세가주께서 맡으시겠지만 세밀한 지휘는 힘들 거야. 특히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제갈 소협과 제갈세가가 어느 정도는 보좌하겠지만 아무래도 포달랍궁까지 신경 쓰려면 군데군데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어. 그 틈을 네가 메워 줘야 해.”

“최선을 다할게요.”

사마의성이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섬서성 때도 심각한 건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무게감이 달랐다.

어쩌면 지금의 전투가 앞으로의 향방을 결정지을지도 몰랐다.

그 부담감이 엄청났지만 동시에 가슴속에서 호승심이 불타올랐다.

‘내 이름을 천하에 알리겠어!’

섬서성에서의 활약으로 사마의성 역시 약간의 명성을 얻었다.

일행들과 비교하면 조족지혈의 수준이었으나 중요한 건 사마의성이라는 이름과 사마세가의 부활을 알렸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아직 천하에 널리 알려진 수준은 아니었다.

일행들의 무명에 덤으로 얹혀 가는 수준이었기에 사마의성은 각오를 불태웠다.

“네 눈빛을 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게 있어. 난 네가 마지막까지 인간이었으면 좋겠어.”

“물론이에요. 인간의 마음을 가진 괴물이 될 거예요. 형님처럼요.”

반호진이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듯이 사마의성이 활짝 웃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라는 듯이 말이다.

그리고 반호진을 보고 자랐기에 사마의성은 괴물이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었다.

올바른 지향점이 있는데 굳이 딴 길로 갈 이유는 없었으니까.

“좋아. 그럼 뒤를 부탁한다.”

“네! 저희에게 맡겨 주세요!”

“걱정 마세요, 형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마의성을 시작으로 서조운과 정이륭이 대답했다.

그런 세 사람과 한 번씩 눈을 마주한 후 반호진은 공력을 끌어올렸다.

스르릉.

반호진의 의지를 받은 진기는 자연스럽게 소천검을 뽑았다.

그리고 그 위로 반호진이 올라갔다.

소천검의 검면 위에 올라탔던 것이다.

쌔애애액!

그와 동시에 반호진의 신형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어검비행술을 펼친 것이었다.

그 모습에 주변에 있던 무인들이 입을 쩍 벌렸다.

말로만 듣던 어검비행을 직접 보게 되자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이었다.

‘포달랍궁주는 사부님과 운상 진인을 믿어야 해.’

높은 고도까지 올라왔기에 전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반호진은 잠시 포달랍궁의 진영을 살펴봤다.

정확하게는 포달랍궁주와 담현, 운상을 말이다.

곤륜파의 장문인인 운왕(雲王)이 있었으나 멀리서 봐도 평정심이 흐트러진 상태였기에 크게 기대하는 건 무리였다.

‘그러니 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할 수밖에.’

구천문주와 포달랍궁주를 동시에 상대하는 건 아직 무리였기에 반호진은 지금껏 신중하게 움직였다.

괜히 무리했다가 북해빙궁주를 남겨 놓고 큰 부상을 입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몸 상태를 늘 최상으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게 늘 뜻대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구천문주를 최대한 빨리 잡는다.’

반호진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현재 그에게 있어 가장 까다로운 상대는 누가 뭐래도 구천문주와 포달랍궁주였다.

이곳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두 명이기도 했고.

하지만 굳이 까다로움의 고하를 나누면 구천문주였다.

“공격해!”

“어떻게 해서든 떨어뜨려!”

“문주님께 가지 못하게 만들어!”

더욱이 전투에 참여하지 않아 힘을 온전히 비축하고 있는 포달랍궁주와 달리 구천문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당우혁과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비겁하게 협공을 하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반호진은 신경 쓰지 않았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승리이고 힘을 합친 건 구천문도 마찬가지였다.

그걸 구천문도들도 알았기에 반호진에게 야유를 보내기보다는 어떻게든 추락시키려고 했다.

쉬이익! 쉬익!

그러나 구천문도들이 아무리 독강을 날리고, 암기를 뿌려도 반호진에게는 닿지 않았다.

워낙에 높은 곳에서 날고 있기도 하거니와 반호진이 순순히 맞아 줄 리가 없어서였다.

어검비행술 역시 공력을 섬세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하는 기술인 만큼 반호진은 가끔 근처까지 날아오는 공격들을 유려하게 회피하며 목적지를 향해 날아갔다.

“막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반호진이 향하는 방향이 너무나 명명백백했기에 방해가 끊임없이 이어졌으나 안타깝게도 성공한 이는 없었다.

오히려 반호진에게 시선을 뺏겨 역공을 당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구천문도들은 악착같이 매달렸다.

반호진이 가세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불 보듯 뻔해서였다.

“응?”

쉴 새 없이 날아오는 공세들을 유유히 회피하며 날아가는 반호진의 기척을 당우혁과 구천문주도 알아차렸다.

워낙에 기도를 숨기지 않고 다가갔기에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당혹스러워하는 구천문주와 달리 당우혁의 얼굴은 밝아졌다.

“반 공자!”

“다행히 제가 와서 싫으신 건 아닌 모양이네요.”

“그럴 리가! 중요한 건 복수를 하느냐이지 자존심이 아니니까!”

살짝 우려했던 것과 달리 당우혁은 의외로 반호진의 합류를 반겼다.

스스로 복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당우혁은 크게 봤다.

냉정하게 말해 혼자서 구천문주를 쓰러뜨릴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렇다면 반호진과 함께 싸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다.

“비겁한 놈들!”

“먼저 비열하게 나온 놈이 비겁 운운하다니 어처구니가 없군.”

“닥쳐라!”

반면에 구천문주는 길길이 날뛰었다.

하늘 위에서 검을 타고 있는 반호진을 보는 순간 느낄 수 있어서였다.

당우혁은 그보다 반 수 정도 아래였으나 반호진은 달랐다.

자신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실력자란 걸 알았기에 구천문주는 초조했다.

“상황을 들으셨을지 모르는데 북해빙궁이 남하하는 중입니다. 그래서 지금 상황이 좀 좋지 않습니다.”

“북해빙궁이?”

반호진의 등장으로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기에 당우혁은 북해빙궁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선은 여전히 구천문주에게 향해 있었다.

“예. 그로 인해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이 이렇게 시끄러운 것이로군.”

“예.”

뒤늦게 전장의 분위기를 느낀 당우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북해빙궁의 합류가 중원무림에 얼마나 안 좋은 일인지 잘 알아서였다.

당장 구천문과 포달랍궁만으로도 힘겹게 버티고 있는데 여기에 북해빙궁이 가세하면 중원무림으로서는 더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저놈을 어떻게든 잡아야겠군.”

당우혁은 빠르게 상황파악을 했다.

어째서 반호진이 이곳으로 왔는지를 말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반호진의 말은 그의 예상에서 크게 벗어났다.

“당가주님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부탁이라?”

“예. 당가주님께서는 다른 분들을 지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혼자 상대하겠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당우혁은 물론이고 구천문주도 놀랐다.

설마하니 반호진이 혼자 싸우겠다고 할 줄은 몰라서였다.

실력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지만 그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힘을 합치는 게 훨씬 유리했다.

그 사실을 반호진이 모르지 않을 텐데도 이런 부탁을 하자 당우혁은 당황스러웠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반대로 구천문주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지금의 발언은 달리 말하면 그를 만만하게 본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여서였다.

“자신 있나?”

“없다면 오지 않았습니다.”

“알겠네. 자네가 원한다면야. 그리고 이게 효율적인 건 맞으니까.”

“감사합니다.”

“하지만 한 말에 책임은 져야 할 거야.”

뒤늦게 당 대협이 아니라 당가주라 부른 이유를 깨달은 당우혁이 피식 웃으며 물러났다.

그렇지만 순순히 물러나지는 않았다.

협박 아닌 협박을 하며 당우혁은 남궁호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남궁호와의 사이가 친밀해서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싸우고 있어서였다.

“그럼 시작해 볼까.”

당우혁이 움직인 것을 확인한 반호진이 시선을 옮겼다.

무시무시한 살기를 뿌려 대는 구천문주를 바라봤던 것이다.

그리고 구천문주 역시 반호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스으윽!

그뿐만 아니라 반호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구천문주 역시 초월경의 고수이기에 자연스럽게 허공답보를 펼치며 반호진에게 쇄도했다.

쌔애애액!

그러나 반호진은 구천문주의 접근을 허락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살벌한 기세로 날아오는 구천문주를 향해 검을 쏘아 보냈다.

터어어엉!

반호진을 떠받치고 있던 소천검이 한줄기 벼락처럼 구천문주에게 작렬했다.

쇄도하는 구천문주를 그대로 받아 버렸던 것이다.

그로 인해 구천문주가 멈칫거렸다.

워낙에 검에 실린 힘이 강력했기에 제아무리 구천문주라도 속도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익!”

그게 자존심을 건드렸는지 구천문주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더불어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당우혁을 상대할 때는 표정에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달랐다.

전광석화처럼 쇄도하는 반호진의 이기어검에 구천문주는 이를 악물고서 독강을 극성으로 일으켰다.

호신강기를 일으켜 몸을 보호함과 동시에 반호진을 향해 독강을 뿌렸다.

퍼퍼펑!

하지만 안타깝게도 반호진에게 닿는 건 없었다.

거리가 꽤나 떨어져 있기도 했거니와 반호진이 무형강기로 독강이 접근하는 걸 원천봉쇄했다.

거기에 바람도 등졌다.

천독환을 먹고 천독불침지체가 되었다고 하나 구천문주의 독공은 만독불침지체도 녹여 버릴 정도로 가공할 수준이었기에 반호진은 애초에 독공이 파고들 여지를 아예 두지 않았다.

씨이이잉! 씨이잉!

거기다 반호진은 단순히 이기어검만 펼치지 않았다.

이기어검만으로는 구천문주를 잡을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기에 반호진은 권강과 지강을 가리지 않고 퍼부었다.

“으아아아!”

끊임없이 이어지는 파상공세에 호신강기 안에 있던 구천문주가 괴성을 질렀다.

얄미울 정도로 근접전을 회피해서였다.

더욱이 그의 공격은 단 하나도 닿지 않는 것에 비해 자신은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기만 하고 있다는 게 구천문주를 더욱 분노케 했다.

콰콰콰쾅!

그러나 아무리 울부짖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독공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는 만큼 반호진은 한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구천문주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도 말이다.

게다가 당우혁과의 싸움으로 공력과 체력이 상당히 소모된 상태였기에 구천문주의 전신에는 어느새 상처가 하나둘 늘어 가고 있었다.

‘빨리 끝낸다.’

이대로 시간을 끌어 장기전으로 간다면 더욱 확실하게 승부를 굳힐 수 있었다.

하지만 반호진은 그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포달랍궁주가 당장이라도 움직일 수 있거니와 구천문주가 죽는다고 해서 전쟁이 끝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계속 싸워야 했기에 여력을 최대한 남겨 두어야 했다.

‘이미 충분히 가능하기도 하고.’

쉬지 않고 맹공을 퍼붓던 반호진이 자세를 바로 했다.

그러고는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마치 손을 검처럼 말이다.

“네놈을 찢어 죽일 것이야!”

파상공세가 멈추자 구천문주가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 나왔다.

창졸간에 생긴 틈을 놓치지 않고 반호진을 향해 짓쳐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로 구천문주가 포효하며 쇄도했다.

스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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