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218화 (218/468)

제 72장. 연합 대 연합. -03

개왕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애초부터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걸 개왕도 알고 있었다.

정보력에 한해서는 중원무림에서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 개방이고 그곳의 주인이 개왕이었다.

그렇기에 포달랍궁의 전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직접 본 포달랍궁주의 무위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대단했다.

‘방장도, 운상 진인도 알고 있겠지.’

개왕이라 불린다고 하나 그의 무경은 냉정하게 말해 담현과 운상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

나이만 좀 더 많을 뿐이었다.

그러니 그가 본 걸 두 사람이 보지 못했을 리 없었다.

‘다른 녀석들은 직접 겪어 보면 알게 될 테고.’

안목이 없으면 몸이 고생하는 법이었다.

그건 고수가 되어서도 달라지지 않았다.

콰아아앙!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

어느새 코앞까지 가까워진 서장칠성을 마주 보며 개왕은 단전의 진기를 가득 끌어올렸다.

간 보기 따위는 없다는 듯이 죽일 수 있을 때 서장칠성을 죽이겠다는 기세로 말이다.

뻐어엉!

그리고 그건 담현도 마찬가지였다.

개왕이 반호진에게 개인적으로 마음의 빚이 있다면 그는 사부로서 제자에게 못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또한 앞으로 오랜 시간을 살아갈 반호진에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반호진이 그토록 부르짖는 평화롭고 한가한 일상으로 가득한 세상을 말이다.

‘적어도 제자의 발목을 붙잡지는 말아야지.’

담현의 전신에서 금광이 솟구쳤다.

그 역시 개왕과 마찬가지로 초반부터 전력을 다하는 것이었다.

지금껏 소극적이었던 포달랍궁이 본격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광경을 보며 반호진은 미간을 좁혔다.

서장칠성이 나섰음에도 포달랍궁주는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어서였다.

그 이유를 반호진은 알고 있었기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서장칠성으로 충분하다는 생각하는 거겠지.’

반호진은 포달랍궁주의 속을 꿰뚫어 봤다.

포달랍궁이 그에 대해 상세히 조사했을 테지만 반호진은 지난 생에서 포달랍궁과 수도 없이 싸워 본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포달랍궁은 물론이고 서장칠성, 포달랍궁주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의중을 파악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틀린 생각이 아니기도 하고.’

서장을 빛내는 일곱 명의 성인(聖人)이라 불리는 이들답게 서장칠성 한 명 한 명의 무위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수장급이었다.

그걸 지금 이 순간에도 증명하고 있었고.

하지만 수장급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비슷한 실력인 건 아니었다.

막말로 같은 신분이라고 해서 위상마저 같지 않듯이 서장칠성의 무위는 고하가 확실했다.

콰앙! 쾅!

그중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가 일성(一聖)이었는데 그런 그를 담현이 압도했다.

포달랍궁주를 제외하면 누구도 자신의 상대가 아니라는 듯이 담현은 시종일관 일성을 밀어붙였다.

본신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각오가 남달랐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의지가, 투지가 담현의 뒷모습에서 절절하게 느껴졌다.

“왠지 평소와는 많이 다르신 거 같아요. 화가 나신 건 아닌 것 같은데.”

“마음가짐이 달라져서 그래. 대자대비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으셨거든. 지금은 투계승이라고 보면 돼.”

“아!”

옆에 있던 사마의성이 탄성을 터트렸다.

투계승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려서였다.

“중원의 평화를 위해서라면 소림사의 제자들은 언제라도 투계승, 살계승이 될 각오가 되어 있거든. 더욱이 지금의 포달랍궁은 더 이상 부처를 모시는 불제자라고 보기 힘들기도 하고.”

담현이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반호진은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담현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싸우고 있는지 말이다.

중원무림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담현은 반호진을 위해서 싸우고 있었다.

더 이상 그에게 짐을 짊어지게 만들지 않겠다고 말이다.

“끄아아악!”

“도, 독……!”

“비겁하다!”

거기에 제갈문곡이 시기적절하게 병력을 운용했다.

흠잡을 게 없는 조율을 보여 주며 전선을 움직이고, 유지했다.

구천문에게서 얻은 독도 적절하게 활용했기에 포달랍궁의 기세가 한차례 꺾였다.

다른 이도 아니고 백도무림의 수장들을 독살할 용도로 가져온 독이니만큼 위력은 확실했다.

“당장은 저보다 위예요.”

“그럴 수밖에. 살아온 세월은 둘째 치고 경험이 얼마나 차이 나는데. 그렇지만 너도 잘하고 있어. 지금 이 순간에도 성장하고 있으니까.”

같은 책사이기에 사마의성은 제갈문곡의 역량을 누구보다 잘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는데 반호진이 어깨를 토닥였다.

이제 막 시작한 사마의성과 제갈문곡을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더구나 제갈문곡은 현재 연륜과 능력이 여물대로 여문 상태였다.

“최대한 빨리 따라잡을 거예요. 나이를 생각하면 제가 훨씬 일찍 전쟁 경험을 쌓았으니까요.”

“이 정도 규모의 전쟁은 네가 훨씬 빠르지.”

“저는 최대한 빨리 천하십대고수가 되겠습니다, 형님.”

반호진을 보좌하고 있는 건 사마의성만이 아니었다.

반대편에 자리를 잡고 있던 서조운이 슬쩍 입을 열었다.

자신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 말에 반호진은 피식 웃었다.

“일단 이십 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이십 년이라니요! 십 년! 반드시 십 년 안에 이뤄 보겠습니다! 어쩌면 오늘 빈자리가 날 수도 있을 것 같고…….”

“재수 없는 소리는 하지 말고.”

“흐흐! 네!”

도중에 말을 자르는 반호진을 향해 서조운이 개구지게 웃었다.

그러나 눈빛은 표정과 달랐다.

빈자리를 차지하는 건 서조운의 성격에 맞지 않았다.

서조운은 오로지 실력으로 당당하게 천하십대고수의 한 자리를 차지할 계획이었다.

‘모두의 인정을 받으면서 말이지.’

서조운의 시선이 옆에 있는 반호진에게로 향했다.

천하십대고수가 아님에도 천하십대고수와 같은 반열의 무인으로 인정받는 이가 반호진이었다.

실력은 충분하나 빈자리가 없기에 왕이 아니라 검성이 되었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나이 때문에 검성이 되었다는 걸.

‘나도 형님처럼 오로지 실력으로 당당히 인정받겠어! 스물한 살에는 힘들겠지만…….’

서조운이 마른침을 삼켰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스물하나에 천하십대고수가 되는 건 힘들 것 같아서였다.

선례가 있기에 불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지만 반호진이 해냈다고 해서 모두가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차이를 서조운은 잘 알고 있었다.

“음?”

“무슨 일이지?”

그때 한쪽이 웅성거렸다.

곤륜파를 비롯해서 청해성과 감숙성의 무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는데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음에도 서조운은 물론이고 반호진과 사마의성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사달이 나도 크게 난 것 같은 분위기에 반호진이 귀를 기울였다가 깜짝 놀랐다.

익숙한 네 글자에 반호진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혀, 형님!”

하지만 가장 놀란 건 누가 뭐래도 사마의성과 서조운, 정이륭이었다.

만에 하나라고 했던 가정이 너무나 절묘한 순간에 딱 들어맞아서였다.

그래서 세 사람은 네 글자가 들려옴과 동시에 반호진을 쳐다봤다.

“역시 이렇게 되나.”

“형님께서는 역시 예상하셨던 거죠? 이렇게 되리라는 걸요!”

“내가 신이냐? 다 알게. 만약 내가 다 알고 있었다면 어떻게든 전쟁을 막으려 했겠지.”

북해빙궁이 남하하고 있다는 말에 서조운이 소리를 크게 질렀다.

그 정도로 놀란 것이었다.

특히 서조운은 반호진과 함께 북해에 직접 가기까지 했기에 충격이 더욱 컸다.

“하고 싶어도 혼자서는 힘들다는 걸 알기에 미리 대비하신 거 아니에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쓸데없이 예리한 서조운의 말에 반호진이 속으로 놀랐다.

그러나 겉으로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너무 허황되기는 하죠?”

“당연하지.”

서조운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스스로도 말하고도 현실성이 없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그러는 사이 동요는 무서운 속도로 번져 갔다.

곤륜파를 시작으로 일어난 동요가 빠르게 진영 전체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이거 좋지 않은데요.”

“일부러 노린 걸 거야. 지금쯤 알려지도록. 아니면 개방이 알아낼 거라 계산했거나.”

사마의성은 순식간에 번져 나가는 동요에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곤륜파나 청해성에 터를 둔 문파들이 흔들리는 걸 탓할 수는 없었다.

반대 입장이었어도 사마의성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이 위험한데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쉬울 리 없었다.

“구천문이 적극적인 게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어요. 북해빙궁을 믿고서 저돌적으로 달려든 거예요. 기회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

“문제는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거지.”

반호진의 눈빛이 무거워졌다.

예상을 하긴 했었다.

일부러 슬쩍 북해빙궁에 대해 흘리기도 했었고.

그러나 대비를 한다고 해서 미래가 바뀌는 건 아니었다.

“으음!”

침착한 반호진과 달리 사마의성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짙게 서려 있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가장 차분한 성격의 사마의성조차 당황하는 것이었다.

서조운과 정이륭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공격해! 더 밀어붙여!”

모두가 동요할 때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다.

바로 제갈문곡이었다.

북해빙궁의 소식을 들었을 텐데도 제갈문곡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빠르게 결단을 내렸다.

“좋은 선택이야.”

그걸 본 반호진은 눈을 빛냈다.

제갈문곡의 선택이 최선임을 깨달아서였다.

“저건 무리수 아닐까요? 가뜩이나 포달랍궁 쪽 전선이 흔들리는데.”

“그 동요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정신없이 몰아붙여야 해. 그리고 세 곳의 세력이 뭉치는 것보다는 지금 승부를 내야 하는 게 맞고.”

“아!”

사마의성의 두 눈이 커졌다.

어떤 의미인지 이제야 깨달은 것이었다.

동시에 제갈문곡의 임기응변에 감탄했다.

이 짧은 사이에 제갈문곡은 거기까지 생각한 것이었다.

더불어 반호진도 마찬가지였다.

제갈문곡의 행동을 보자마자 반호진은 그의 의도를 간파했다.

“정황이 바뀌었어. 구천문과 포달랍궁이 오히려 수비적으로 나설 거야. 북해빙궁이 합류할 때까지. 아니, 어쩌면 북해빙궁과 합류하기 위해 북진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여기서 결판을 내야 해. 둘 다 잡을 수 없다면 하나라도.”

“그래서 제갈 대협께서는 구천문을 선택한 것이군요. 독은 변수를 일으킬 수 있는 무기이니 더더욱 미리 제거하는 게 유리하니까요.”

“맞아. 냉정하게 따져서 포달랍궁보다는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하니까.”

달라진 눈빛만큼이나 반호진의 표정도 일변했다.

북해빙궁이 참전한 이상 그도 더 이상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철혈성이 원래 미래와 달리 멸문했다고 하나 천하사패 중 세 곳이 힘을 합치면 파괴력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당장 두 곳만 힘을 합쳤음에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데 여기에 북해빙궁이 가세한다면 중원무림으로서는 더더욱 힘들 수밖에 없었다.

“저희가 나설 때로군요.”

“준비는 항상 되어 있었습니다.”

심각한 상황을 인지한 서조운과 정이륭도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북해빙궁의 전력은 잘 몰라도 산술적으로 두 개와 세 개는 엄연히 다른 만큼 두 사람 다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았다.

그래서 언제라도 뛰쳐나갈 수 있도록 준비했다.

“너희 두 사람이 할 일은 따로 있어. 의성이도 마찬가지고.”

“하명하십시오!”

“이 순간에도 농담이 나오냐?”

잔뜩 긴장해도 모자랄 판에 장난을 치는 서조운의 모습에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그런데 그게 정이륭과 사마의성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

분명 심각한 상황인 건 맞지만 너무 긴장해도 좋지 않았다.

그 적당함을 서조운이 만들어 주었다.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