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2장. 연합 대 연합. -02
사마의성의 시선이 반호진과 같은 곳으로 향했다.
구천문과는 달리 포달랍궁은 상당히 신중하게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소림사와 개방이 있었다.
사마의성은 그중 가장 앞에서 싸우는 법무를 바라봤다.
“걱정되시죠?”
“대사형이라면 잘하실 거다.”
“그런데 신기하네요. 분명 똑같이 부처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이들인데.”
“혈승과 소림사의 승려를 같이 보면 안 되지. 현재 포달랍궁을 지배하는 종파는 엄밀히 말해 순수하게 불법을 공부하는 이들이 아니다. 타락한 이들이지.”
반호진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아무리 종파가 다르다고 하나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지금 중원무림을 침공한 이들은 절대 승려라고 볼 수 없었다.
어느 승려도 여인을 탐하거나 살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지 않았다.
“말이라는 게 참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뜻이 진짜 많이 달라지더라고요.”
“맞아. 근데 무서운 건 미친놈이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거지.”
반호진의 시선이 피처럼 붉은색 가사를 입고 있는 여덟 명에게로 향했다.
그가 말한 힘 가진 미치광이들이 바로 저 여덟 명이었다.
‘서장칠성과 포달랍궁주.’
포달랍궁주에 가려져 있지만 서장칠성이라 불리는 일곱 명의 혈승들도 무시무시한 고수들이었다.
구파일방의 수장들과 비슷한 실력자들인 만큼 결코 만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었다.
‘전생만큼은 아닌 듯하지만 문제는 포달랍궁주인가.’
반호진의 시선이 지난 생에서 봤을 때보다 살짝 젊어 보이는 노승에게로 향했다.
외양은 육십 대 초반 정도로 보였는데 반호진이 알기로 실제 나이는 아흔이 훌쩍 넘었다.
막대한 내공으로 노화를 억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육체적으로도 아직 정정하다는 걸 뜻했다.
‘수준은 비슷해. 거기에 구 년이나 젊어졌단 말이지.’
거리가 상당하기에 제아무리 반호진이라도 포달랍궁주의 경지를 간파하기란 쉽지 않았다.
더욱이 그와 마찬가지로 포달랍궁주 역시 자신의 기도를 갈무리해 두고 있기에 지금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었다.
스윽.
그때 허공에서 포달랍궁주와 시선이 마주쳤다.
반호진과 마찬가지로 때마침 포달랍궁주 역시 그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피하지 않는 눈빛에서 반호진은 많은 걸 알 수 있었다.
‘나에 대해서 알고 있단 말이지.’
보일 듯 말 듯한 희미한 미소였으나 반호진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그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그걸 보고도 반호진은 긴장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백도무림에 대해 조사를 했다면 그에 대해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
‘역시 쉽지가 않아.’
철혈마황을 잡았을 때부터 반호진도 예상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한 가닥 기대도 동시에 했었다.
절대고수의 자존심이 어떤 건지 너무나 잘 알아서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기대를 접어야 할 듯했다.
‘다른 분들이 잡아 주길 기대할 수밖에.’
시선이 마주친 순간 반호진은 느낄 수 있었다.
적어도 지금은 구천문주보다 포달랍궁주가 더 강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반호진은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아직은 둘을 동시에 상대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다행스러운 건 구천문주와 포달랍궁주가 젊어진 만큼 이쪽 역시 젊어졌다는 거지.’
여전히 시선을 마주한 채로 반호진이 씨익 웃었다.
미래는 바뀌었고, 그 방향은 그가 유도한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불리한 건 사실이지만 절망적인 건 아니었기에 반호진은 웃을 수 있었다.
한편 제갈문곡 역시 상반된 포달랍궁과 구천문의 행보에 골치 아파 하는 중이었다.
극과 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행보에 제갈문곡은 머리가 복잡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두 세력의 의중을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어서였다.
게다가 제갈문곡이 신경 써야 하는 건 두 세력의 의중만이 아니었다.
‘공동파가 합류했음에도 확실히 밀리는군.’
천하십대고수급이 아니라고 하나 그래도 방만춘 역시 구대문파의 수장이었다.
무림십왕에 견줄 만한 고수는 아니라고 하나 중원무림에서 오십 명을 꼽으면 그 안에 반드시 들어가는 무인이 방만춘이었다.
그러나 공동파의 수장인 방만춘의 합류에도 전황은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전히 구천문의 맹공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전선이 출렁거렸다.
‘명왕까지 가세했는데도 부족하단 말이지.’
제갈문곡의 날카로운 시선이 상일기와 선우세가, 모용세가에 닿았다.
어제 구천문도들의 자살 공격으로 인해 아군이 입은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에 큰 피해를 입은 것이었다.
특히 중독으로 인해 남궁호와 팽만철, 일우를 비롯해서 장문인들이 당한 게 컸다.
‘포달랍궁이 적극적이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동귀어진도 마다하지 않는 구천문과 달리 포달랍궁은 간을 보는 느낌이었다.
문주와 천좌들이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구천문과는 다르게 포달랍궁은 칠성과 포달랍궁주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만약 포달랍궁의 핵심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저 여덟 명이 본격적으로 전장에 참전했다면 상황이 지금보다는 더 안 좋았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지금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데.’
구천문의 파상공세가 대단하다고 하나 냉정하게 말해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더욱이 이쪽에는 아직 최강의 패 하나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걸 제갈문곡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반 공자만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면…….’
제갈문곡이 쓴웃음을 지었다.
후기지수이지만 반호진은 그가 감히 다룰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나이도, 배분도 그보다 한참이나 아래였으나 강호는 강자존의 세계였다.
천하십대고수급이라 할 수 있는 무인이 반호진이었기에 제아무리 그라도 부탁은 할 수 있어도 명령은 할 수 없었다.
이미 한 차례 까이기도 했고.
더구나 반호진은 실력과 위상뿐만 아니라 명분도 가지고 있었다.
‘섬서무림을 구하고 철혈성주를 잡았으니. 거기에 팔흉도 처치했고.’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스스로 나서서 철혈마황을 쓰러뜨리고 철혈성을 몰아내었기에 그 누구도 감히 반호진에게 이래라저래라할 수 없었다.
담현이라면 그게 가능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럴 마음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막내제자의 결정에 맡기겠다고 했기에 제갈문곡으로서는 애가 타더라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만약 구천문주를 잡았다면 전황이 많이 바뀌었을 텐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제갈문곡은 아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반호진의 마음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둘을 동시에 상대할 수 없다면 시기를 기다리는 게 맞았다.
적어도 그가 본 반호진은 결코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었다.
‘아쉬운 마음은 잠시 접어 두고,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초반의 충격과 달리 지금은 어찌어찌 구천문을 막아 내고 있었다.
다들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제갈문곡은 마음을 다잡았다.
모두가 목숨을 걸고서 싸우고 있는 만큼 그도 전력을 다해야 했다.
‘우선은 구천문부터.’
독이라는 까다로운 무기를 지니고 있었으나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판단할 때 포달랍궁보다는 구천문이 상대적으로 나았다.
그리고 까다로운 상대를 먼저 치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다.
특히나 제갈문곡과 같은 책사들은 변수가 일어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독은 그 변수를 일으킬 수 있는 무기 중 하나였기에 제갈문곡의 두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꽈아아앙!
한데 그 순간 지금까지는 들을 수 없었던 굉음이 제갈문곡의 귓전을 때렸다.
동시에 그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한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어마어마한 기운이 그가 있는 곳까지 흘러온 것이었다.
“으음!”
그걸 느끼자마자 제갈문곡의 고개는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더불어 침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다.
굉음과 폭발을 일으킨 이들을 향해 달려가는 인영들을 믿어서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서장칠성이 대단하다고 하나 그에 못지않은 무인들이 중원무림에도 있었다.
그렇기에 제갈문곡은 그들을 믿었다.
달리 서장칠성이라고도 불리는 포달랍궁의 일곱 별들을 향해 담현이 몸을 날렸다.
그의 신분을 생각하면 포달랍궁주 정도는 되어야 격이 맞는다고 사람들이 여기겠지만 당사자인 담현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그의 신분도, 무명도, 자존심도 아니었다.
담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중원을 수호하는 일이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소림사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림의 태산북두여서가 아니었다.
오로지 중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 대의와 다른 것들은 결코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었다.
“흘흘흘! 어찌 혼자 가십니까, 방장. 소림의 옆에는 본방이 함께할 거라고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방주님.”
“저 치들이야 천하십대고수네, 장문인이네 하지만 나는 다릅니다. 빌어먹는 거지에게 자존심은 없지요.”
개왕이 나란히 이동하며 씨익 웃었다.
지난번에 했던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듯이 개왕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방주님.”
“흘흘! 우리 사이에 감사하단 말은 너무 낯간지럽습니다. 그리고 저는 소림사에 빚이 있습니다. 정확하게는 방장의 제자에게 말이지요.”
“빚요?”
제아무리 포달랍궁의 혈승들이 포악하다고 하나 천하십대고수인 법왕과 개왕의 앞을 가로막을 정도로 간 큰 혈승들은 없었다.
막고 싶어도 담현과 개왕에게서 흘러나오는 기도에 압도당해 움직일 수 없기도 했고.
하지만 담현은 포달랍궁도들보다 개왕의 말에 집중했다.
“섬서무림에서 빚을 졌습니다. 검성에게 말이지요. 물론 저만 그런 건 아니지만요.”
“아.”
“또 증명하고 싶기도 하고 말이지요. 아직 제가 정정하다는 사실을요. 곧 검성을 비롯해서 다음 세대에 밀리겠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주역으로 활약하고 싶습니다. 흘흘흘!”
“그 마음은 저와 같군요.”
“방장께서요?”
말과 달리 본인을 희생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던 개왕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다른 이도 아니고 담현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라서였다.
“어른들의 일은 어른들이 해결해야 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듣자하니 포달랍궁주의 나이가 꽤 많다고 들었습니다.”
“거의 백에 가깝다고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 또래로 보이지만 말이지요.”
“그러니 더더욱 저희가 해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흘흘! 맞습니다. 노인은 노인이 상대해야 하는 법이지요. 검성에게 맞으면 자존심이 엄청 상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 광경도 재미있기는 하겠습니다만.”
개왕이 키득거렸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어서였다.
그런데 그건 담현도 마찬가지였다.
반호진이라면 나이에 상관없이 적이라면 일단 두들겨 팰 게 분명했다.
“방장을 따르라!”
“우리도 간다!”
거기에 소림사와 개방의 제자들이 뒤따르자 전선이 찢어졌다.
갈라놓는 걸 넘어 두 사람이서 맹렬하게 찢어발겼던 것이다.
“빈도만 빼놓으시면 섭섭합니다.”
한 차례 같이 움직였던 운상이 소림사와 개방 제자들의 뒤에서 나타났다.
그런 그의 뒤로는 무당파의 장로들과 일대제자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장문인께서는 자신 있습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혼자서 힘들다면 동료와 합치면 되고요.”
“흘흘흘!”
개왕이 환하게 웃었다.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한 대답이어서였다.
물론 모든 이들이 운상과 같이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강요하지는 않았다.
무릇 모든 결정에는 책임이 따르고, 각자가 선택한 결정에 책임을 지면 되는 법이었다.
그리고 개왕은 그 결정이 얼마 가지 않아 번복될 거라고 생각했다.
‘예상보다 훨씬 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