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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212화 (212/468)

제 71장. 나만의 방식으로. -01

차라리 똑같은 크기였다면 폭발의 범위를 상정할 수 있어 피하기가 쉬웠을 터였다.

하지만 크기가 각각 달랐기에 독액이 퍼지는 범위를 상정하기가 어려웠다.

게다가 암기를 넉넉히 챙기기는 했으나 종류를 다양하게 준비했기에 쓸 수 있는 암기가 한정되어 있었다.

“쏴라!”

그때 망연자실한 사천당가 무인들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퍼퍼퍼펑!

등 뒤에서 날아온 수백 개의 화살은 정확하게 독액이 담긴 주머니들을 격추시켰다.

단 하나의 낭비도 없이 허공에서 폭발시켰던 것이다.

“우리도 날려!”

제갈문곡의 대응으로 위기를 넘긴 당우혁이 포효하듯 소리쳤다.

그러자 사천당가의 무인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독을 준비한 건 구천문만이 아니라는 듯이 본가에서 직접 가져온 온갖 독가루들을 흩뿌렸다.

바람결에 실어 구천문에 날려 보냈던 것이다.

“커헉!”

“그르륵!”

풍향이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반격용으로는 충분했다.

오늘을 위해 특별히 제조한 독인 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독인들도 중독을 피하지 못하고 입에서 검은 피를 토해 냈다.

“여전히 하는 짓거리가 비열하구나. 하긴, 타고난 기질이 어디 갈꼬.”

독가루를 살포한 사천당가의 무인들이 뒤로 물러나자 이번에는 나이 지긋한 장로들이 나섰다.

허공에서 독탄을 터트렸기에 지면 역시 독액으로 젖어 있는 상태였다.

이 상태로는 일반 무인들이 제대로 싸울 수 없기에 사천당가의 장로들이 전면으로 나섰다.

동시에 전장을 두루 살피던 제갈문곡이 지시를 내렸다.

사천당가의 장로들이 시간을 벌어 주는 사이 독액이 뿌려진 땅을 흙으로 덮어 버릴 계획이었다.

“어딜!”

“공격해라!”

그걸 한눈에 알아차린 구천문도들이 달려들었으나 장로들의 손짓과 발짓에 녹아내리거나 튕겨 나갔다.

거기에 사천당가의 무사들도 가세했다.

아무래도 독에 내성이 있는 만큼 장로들과 함께 시간을 벌 계획이었다.

쉬이익!

그뿐만 아니라 일정 수준 이상의 무인들도 하나둘 합류했다.

사천당가 혼자서는 구천문 전체를 감당하기가 힘들다는 걸 알아서였다.

스스슥!

그리고 다른 무인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모든 지역이 독액에 오염된 게 아니었기에 좌우로 크게 돌아서 구천문을 공격했다.

“이번에는 절대 안 놓친다. 반드시 끝을 볼 것이야.”

퍼퍼퍼펑!

장로들에 이어 당우혁이 출격했다.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흩뿌리며 전장을 가로지르자 주변에 있던 구천문도들의 몸이 폭발했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무형지기에 육신이 버텨 내질 못하는 것이었다.

“결판을 내고 싶은 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쿠웅!

구천문도들이 일제히 뒤로 물러날 때 하나의 인영이 당우혁의 앞에 내려섰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면서 말이다.

그러나 당우혁은 앞을 가로막은 이에게 일절 시선을 주지 않았다.

마치 너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고작해야 말석 주제에 어찌 감히 가주님의 앞을 가로막느냐!”

“네놈은…….”

커다란 호통과 함께 당우혁을 지키듯이 내려선 장년인의 모습에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갑작스러운 등장 때문이 아니라 말석이라는 두 글자 때문이었다.

“네놈의 상대는 나다.”

“먼저 뒈지고 싶은 모양이구나.”

“글쎄.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이지!”

콰아앙!

사천당가의 대장로가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했기에 독기를 줄기줄기 내뿜으며 맹공을 퍼부었다.

저벅저벅.

그사이 당우혁은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대장로가 만들어 준 길을 따라 구천문주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판단이 빠르네요. 역시 대단하세요. 두 개의 전장을 모두 살피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너였어도 저렇게 했을 거라는 말이지?”

“예. 공간은 아주 중요해요. 형님처럼 허공답보를 펼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면 무조건 땅을 디뎌야 하니까요. 아마 서서히 영역을 좁혀 나가는 게 목적이었을 거예요. 자연스럽게 밀집된 상황을 만든 다음에 강력한 한 방으로 치명타를 날리는 거죠. 그러니 초기에 진압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처음에는 불필요한 짓이라고 여기겠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어요.”

사마의성의 말에 조용히 듣고 있던 일행들이 눈을 크게 떴다.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해서였다.

단순히 독주머니를 피하고 요격하는 것만 생각했지 공간과 영역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기에 다들 마른침을 삼켰다.

“근데 생각보다 숫자가 많네. 개방이 파악한 것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도요. 그렇지만 승부는 수뇌부의 싸움에서 결판이 날 거예요. 숫자의 힘은 분명 대단하지만 절대고수에게 있어 숫자는 무의미하니까요.”

꽈앙! 꽈과과광!

반호진 일행이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도 전장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구천문주를 제외하면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천좌(天座)들을 상대로 사천당가의 장로들과 점창파, 청성파, 아미파가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남궁세가, 하북팽가, 화산파까지 가세하자 전선이 단숨에 밀렸다.

예전에는 사천당가와 점창파만 신경 쓰면 됐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확실히 소수정예 전술이 통하네.”

“독은 분명 까다롭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고수에게는 잘 통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준비도 완벽에 가깝게 해 두었고요.”

괜히 초반에 당우혁을 비롯해서 장문인급들이 나선 게 아니었다.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지금의 판을 만들기 위해 나선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아직은 무리인가.”

“많이 부족한가요?”

하나둘 자리를 일행들과 달리 반호진과 함께 전장을 살펴보던 사마의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분명 같은 곳을 보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사마의성의 눈에는 당우혁과 구천문주의 대결이 잘 보이지 않았다.

두 눈에 아무리 힘을 줘도 희끗한 움직임만 겨우 보였다.

그래서 사마의성으로서는 반호진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많이는 아니고, 한 반 수 정도? 근데 저 정도 고수들에게 반 수의 차이는 천양지차나 마찬가지라서. 당장은 좁히기 힘든 격차지. 그래도 쉽게 밀릴 정도의 차이는 아니야.”

“대결이 오래 걸리겠네요.”

“다른 쪽도 마찬가지야. 그나마 남궁 대협, 팽 대협, 일우 도장 정도만이 확실하게 압도하고 있지 다른 이들은 비등비등해.”

“엄청나긴 하네요. 구천문의 아홉 천좌들이 대단하다고 말은 들었는데 구대문파의 장문인들과 비슷한 실력이라니.”

“철혈성이 좋은 약이 되었지.”

살짝 질린 표정의 사마의성과 달리 반호진은 담담했다.

같은 곳을 보고 있음에도 생각하는 게 완전히 달랐던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면 반호진이 생각하기에 충분히 선전하고 있었다.

스윽.

구천문 쪽을 일별한 반호진이 고개를 돌렸다.

포달랍궁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퍼퍼퍼펑!

포달랍궁 쪽 상황 역시 구천문과 비슷하면서 살짝 달랐다.

구천문이 수뇌부의 싸움으로 인해서 평문도들이 섣불리 전장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과 달리 포달랍궁의 전투는 그야말로 난전이었다.

전선이 유지되고 있기는 하나 말 그대로 유지만 되고 있었다.

혼돈이라는 두 글자가 절로 떠오를 정도로 곳곳에서 혈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구천문에 아홉 명의 천좌들이 있다면 포달랍궁에는 칠성(七聖)이 있지.’

반호진의 시선이 전장을 가로질러 포달랍궁 진영 가장 깊숙한 곳에 서 있는 여덟 명에게로 향했다.

포달랍궁주를 보필하듯 서 있는 일곱 명이 바로 칠성이었는데 이들의 실력은 구천문의 천좌들과 비교해도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순수한 무위는 칠성이 위였다.

“같이 죽자!”

“크하하하!”

순간 반호진의 귓가로 섬뜩한 광소가 들려왔다.

동시에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꽈앙! 꽈과과광!

한두 번이 아닌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폭발에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뒤흔들렸다.

더불어 익숙한 이의 신음 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왔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폭발 속에서 일우의 신음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이 새끼들이!”

거기에 팽만철의 노성이 허공을 갈랐다.

극도로 분노한 듯한 목소리와 함께 거대한 도강이 솟아났다.

팽만철이 혼원벽력도를 극성으로 펼친 것이었다.

꽝! 꽈콰쾅!

하지만 폭발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요란하게 이어졌다.

“혀, 형님!”

“나도 보고 있다.”

폭발로 인해 먼지구름이 짙게 일어나며 시야를 차단했으나 반호진에게는 상관없었다.

아무리 짙은 먼지구름도 그의 시야를 가릴 수는 없어서였다.

그렇기에 반호진의 눈에는 보였다.

창백해진 안색으로 주춤주춤 물러나는 남궁호와 일우, 팽만철의 모습이 말이다.

‘독에 당했군.’

안색만 보고도 반호진은 세 사람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또한 어떻게 당했는지도 말이다.

‘천좌들이 틈을 만들어 주었겠지.’

독이 무서운 건 단 한 방울만으로도 중독이 되고, 혈수로 녹아내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구천문은 바로 그 점을 노렸다.

평소였다면 제아무리 독인들이 동귀어진을 한다고 해도 당할 세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천좌들이 아주 작은 틈을 만들어 준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미래가 또 바뀌었어.’

반호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살 공격은 지난 생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전술이었기에 반호진도 당혹스러웠다.

“컥!”

“우욱!”

하지만 상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무림십왕의 세 사람이야 중독이 되었음에도 어찌어찌 버티고 있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특히 점창파와 청성파, 아미파의 장문인은 초월경의 벽을 넘지 못했기에 시커멓게 변한 얼굴로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위태롭게 뒷걸음질 쳤다.

“이제 그만 죽어라!”

“좀 뒈져!”

독에 당하기 전만 하더라도 팽팽하게 천좌들과 싸웠던 세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반호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그 순간 허리춤에 있던 소천검이 저절로 뽑혀져 나왔다.

그러더니 이내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갔다.

“저도 가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별말씀을.”

소천검이 허공을 가른 순간 상일기도 움직였다.

반호진과 마찬가지로 현재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걸 파악해서였다.

특히 청성파와 아미파, 점창파 장문인의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상일기는 우선적으로 세 사람부터 데려오기로 결정했다.

쌔애애액!

상일기가 극성으로 경신술을 펼쳤으나 반호진의 소천검보다 빠르진 못했다.

그리고 그건 아미파의 장문인을 몰아붙이던 육천좌(六天座)도 마찬가지였다.

“큭!”

구천문에서 여섯 번째로 강한 이가 그였으나 하늘 위에서 벼락처럼 떨어져 내리는 이기어검에는 그도 별수 없었다.

워낙에 갑작스럽기도 했고, 빨랐기에 육천좌는 제대로 피해내지 못했다.

“어떤 놈이……!”

오른쪽 팔뚝을 베고 지나간 검에 육천좌가 노성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의 팔에 상처를 낸 검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어느새 오천좌에게 쇄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콰아아앙!

육천좌보다 한 단계 높은 서열임을 증명하듯 오천좌는 반호진의 이기어검을 막아 냈다.

독강으로 호신강기를 일으켜 완벽하게 방어해 냈던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청성파 장문인을 놓치고 말았다.

“이익!”

그걸 깨달은 순간 오천좌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다 잡은 먹잇감을 두 눈 훤히 뜨고 놓쳐서였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반호진은 둘에 이어 점창파 장문인과 팽만철, 남궁호, 일우도 빼냈다.

“도대체 어떤 새끼야!”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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