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7장. 제대로 해야지. -01
상관보의 동공이 크게 확대되었다.
동시에 좌우로 격렬하게 흔들렸다.
아직 복귀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미 와 있다고 하자 놀란 것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썩 달가워하지 않는 듯합니다.”
“그, 그럴 리가요. 아닙니다, 방장.”
상관보는 황급히 표정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반응은 전부 다 담현이 본 상태였다.
누가 봐도 다행이라는 반응이 아니었기에 담현은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당연히, 당연히 반 소협에게도 찾아갈 생각입니다. 먼저 방장께 사과를 드린 다음에요. 그런데…….”
“빈승의 말을 잊으신 모양입니다. 아니면 일부러 못 들은 척하시는 겁니까? 가주께서 사과할 대상은 제가 아닙니다. 만약 있다 하더라도 우선순위가 잘못되었고요.”
담현이 상관보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자기 의도대로 대화를 끌고 가려는 게 너무 눈에 보여서였다.
물론 상관보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담현에게는 그조차도 괘씸해 보였다.
“저도 그걸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방장께 먼저 찾아오기도 해서 사과를 드리는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싶었고요. 혹 이런 제 생각으로 인해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첨언하자면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아마 반 소협이 돌아온 사실을 알았다면 같이 보자고 서신을 미리 보냈을 것입니다.”
상관보는 납작 엎드렸다.
모든 상황이 자신과 상관세가에게 불리함을 알고 있어서였다.
증거는 없지만 정황으로 충분히 의심이 가능하기에 상관보는 어쭙잖게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인정할 건 적당히 인정하며 몸을 낮췄다.
지금은 폭풍우를 피해야 할 때였다.
자칫 잘못하면 가문이 사라질 수도 있기에 상관보는 절박했다.
“그럼 다녀오시지요.”
“예?”
“빈승은 호진이 다음에 받도록 하겠습니다.”
“저기…….”
눈곱만큼의 여지도 두지 않겠다는 담현의 단호한 어조에 상관보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고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운을 띄웠다.
다른 곳이라면 모르겠으나 이곳은 소림사였다.
대자대비한 부처의 뜻을 따르는 곳이기에 상관보는 거기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다.
“말씀하시지요.”
“이런 말하기가 정말 염치없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사람 한 명 살려 준다고 생각하시고 같이 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방장께서 가장 잘 아시겠지만, 그래도 반 소협은 아직 젊은 나이이지 않습니까?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설 수도 있기에 저는 걱정이 됩니다.”
“그 또한 가주께서 감당해야 하는 몫 아닙니까?”
“바, 방장.”
단칼에 거절하는 담현의 대답에 상관보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설마하니 담현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라서였다.
아무리 자신이 실수를 했다고 하지만 이렇게 매정하게 나올 줄은 몰랐기에 상관보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아, 그리고 가주께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소가주는 어떻게 할 겁니까?”
“무슨 말씀이신지요?”
“호진이에게 혼자 찾아갈 겁니까? 빈승이 알기로는 이 모든 사태의 시작은 소가주 때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원하시면 데려가겠습니다. 그러니 방장께서도 같이…….”
“다녀오시지요.”
담현은 다시 한번 딱 잘라 말했다.
처음의 결정을 바꿀 생각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 확고한 모습에 상관보의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변했다.
이번 대답에서 번복은 없다는 걸 느낄 수 있어서였다.
“……알겠습니다.”
외통수에 빠졌다는 걸 느끼며 상관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든 빠르게 상황을 종결시키려고 했는데 모든 게 어그러졌다.
반호진이 예상보다 일찍 숭산에 돌아온 것으로 말이다.
그게 상관보는 너무나 짜증 났다.
‘일부러 최대한 비밀스럽게 이동했건만.’
혹시나 하오문이 알게 될까 봐 상관보는 본가를 떠날 때 최대한 은밀하게 이동했다.
반호진이 하오문과의 관계가 상당히 깊다는 걸 잘 알아서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담현과 둘이서 담판을 지으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병신 같은 놈이 일만 제대로 처리했어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울분이 치솟았다.
단위가 의뢰만 제대로 수행했어도 여기까지 올 일은 없었다.
또 단위에게 맡긴 일은 상관적에게만 좋은 게 아니었다.
반호진에게 묻힌 사룡에게도 좋은 일이었는데 그 대의를 모른 척하는 다른 명문세가들의 모습이 상관보는 고까웠다.
‘잘됐으면 옳다구나 하고 좋아했을 놈들이.’
가슴은 뜨겁고 머리는 활활 불탈 것 같았으나 상관보는 가까스로 평정심을 유도했다.
지금은 최대한 불쌍한 모습을 보여야 했다.
담현의 동정심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도록 말이다.
“빈승은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최대한, 늦지 않게, 다녀오겠습니다.”
고저 없는 담현과 달리 상관보는 말하는 중간중간에 깊은 한숨을 넣었다.
자식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했다는 자책 가득한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의도는 실패했다.
상관보가 어떤 표정을 짓든, 어떤 말을 하든 담현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끼이익.
그 모습에 속으로는 실망했으나 상관보는 그걸 얼굴에 티 내지는 않았다.
그저 시종일관 똑같은 모습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방장실을 나섰다.
반호진은 느닷없이 찾아온 두 부자를 보며 피식 웃었다.
대놓고 어이없다는 듯이 실소를 흘렸던 것이다.
하지만 반호진의 냉대에도 두 부자는 감히 따지지 못했다.
“일단 앉으시죠.”
“……고맙네.”
상관적은 대답을 하며 반호진의 표정을 빠르게 살폈다.
무작정 찾아왔음에도 의외로 반호진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노발대발하며 대뜸 검을 뽑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오히려 듣던 대로 만사에 무심한 모습에 상관보는 내심 안도했다.
“왜 찾아오셨습니까?”
그러나 앉자마자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는 반호진의 모습에 당황했다.
심지어 반호진은 차도 따라 주지 않았다.
찾아왔으니 만나기는 해 주겠으나 손님 대접은 해 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걸 상관적 역시 알아차렸는지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허허허. 성격이 급하다는 말이 있던데. 그 말이 사실인가 보구려.”
“맞습니다. 제가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걸 아주 혐오해서요.”
“흠흠! 우리가 왜 찾아왔는지는 자네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네. 방장께서 전언을 보냈을 수도 있고.”
“그런 건 없었습니다.”
짧게 대답하며 반호진이 상관적을 지그시 바라봤다.
상관보라면 모를까 상관적이 함께 올 줄은 몰랐기에 반호진은 내심 놀란 상태였다.
상관적은 전혀 모르겠지만 반호진은 그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때문에 반호진은 지금의 상황이 흥미로웠다.
“방장께서 배려해 주셨구먼.”
상관보가 슬쩍 반호진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첫 단추는 잘 꿴 것 같았으나 아직 안심하기에는 일렀다.
젊다는 건 혈기왕성하다는 뜻이었고, 그건 곧 언제든지 상황이 급변할 수 있다는 말과도 같았다.
더욱이 심기불편한 기색을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아들이 함께하고 있었기에 상관보는 조마조마했다.
‘스물한 살이면 젊다기보다는 어리지. 잘하면 쉽게 꼬인 실타래를 풀 수 있을 수도 있겠는데.’
반호진이 대단하다는 건 상관보도 잘 알았다.
천하에 위명이 쟁쟁한데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한 짓이 있기에 누구보다 반호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게 상관세가였다.
그래서 걱정이 많았는데 막상 대면하니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이 녀석은 내가 단위와 주고받은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상관보의 머릿속에 간사한 꾀가 떠올랐다.
만약 그가 단위와 주고받은 내용을 반호진이 알고 있다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었다.
지금처럼 은근히 압박하는 게 아니라 대놓고 쳐들어오거나 죄를 물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건 반호진이나 소림사 측이 명백한 증거나 증언을 가지지 못했다는 걸 뜻했다.
“배려라기보다는 절 믿으신 겁니다. 제가 어떻게 할지 알고 계시니까요. 근데 어째 말이 길어지시는군요.”
“어?”
“저에게 사죄하러 온 거 아닙니까? 소가주와 함께.”
시리다 못해 싸늘한 목소리가 상관보, 상관적 부자의 가슴에 꽂혔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꽂아 버리는 듯한 한마디에 상관보가 어색하게 웃었다.
단 한마디에 분위기가 확 바뀐 듯했기에 상관보는 그걸 환기시키고자 했다.
“맞네. 너무 늦었지만 우리도 사정이 있었다네. 오해로 벌어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우리도 정말 예상치 못했거든. 안 그러느냐?”
“……맞습니다.”
옆에 앉은 아들의 팔뚝을 상관적이 팔꿈치로 툭툭 건드렸다.
그러자 개미 목소리만 한 목소리로 상관적이 대답했다.
“오해라.”
“그 오해를 풀고자 자네를 찾아왔다네.”
“사과가 아니라 오해를 풀기 위해서요?”
“흠흠! 사과도 할 생각이네. 처음의 의도야 어떻든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실수한 게 맞으니까 말일세.”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반문하는 반호진의 모습에 상관보가 슬쩍 말을 정정했다.
그러고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자고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지 않던가.
상관적은 능글맞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 확실하게 말하건대 자네가 알고 있는 건 오해일세. 우리는 절대 단위에게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없네. 그저 과거에 인연이 조금 있었고, 그것 때문에 본가를 찾아와서 만났을 뿐이네. 그러다가 우연히 자네 이야기가 나왔고, 단위도 자네의 무명에 호기심이 생겨 소림사를 방문한 것이네. 절대 자네를 망가뜨려 달라거나 살인 청부를 하지 않았네! 이건 내가 맹세할 수 있네! 앞서 방장께도 이렇게 말했고 말일세!”
처음에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던 상관보가 뒤로 갈수록 점점 목소리를 높였다.
자신과 상관세가는 결백하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서 은근히 ‘우리’라는 단어를 반복했다.
잘못과 실수가 상관적에게 특정되지 않도록 은연중에 방해하는 것이었다.
‘재미있네.’
그걸 반호진은 놓치지 않았다.
거기에 은근슬쩍 담현도 묶어서 얘기하자 반호진이 비릿하게 웃었다.
동시에 사람은 참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서로에게 쌓인 오해를 푸는 게 어떻겠나? 이 자리를 빌어서 말일세. 이왕이면 방장실로 가도 좋고.”
상관보가 반호진의 눈치를 살폈다.
점점 더 짙어져 가는 비릿한 미소에 가슴속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서 그는 반호진이 폭발하기 전에 자리를 이동하고 싶었다.
반호진이 함부로 날뛸 수 없는 자리로 말이다.
“끝까지 오해라고 우기시는군요. 그 오해에 사람이 죽을 뻔했습니다. 죽지 않았으니 괜찮다고요? 그럼 저도 똑같이 해도 되겠군요.”
“하하하하! 무슨 말을 그렇게 살벌하게 하나? 우리가 싸우러 온 것도 아니고 이렇게 사과하러 직접 오지 않았나? 나와 적이가 말일세.”
날 선 반호진의 말에 상관보가 과장되게 웃었다.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대화가 격렬해지는 걸 상관보는 절대 원치 않았다.
“그러니까 한 가지만 확실하게 하시죠. 사과하러 온 건지, 아니면 오해를 풀러 온 건지.”
“으음!”
양자택일을 하라는 말에 상관보가 침음을 흘렸다.
그리고 상관적의 얼굴은 더 이상 굳어지기 힘들 정도로 경직되었다.
부친이 나섰음에도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아서였다.
강호의 배분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반호진의 태도에 상관적은 속에서 서서히 분기가 일기 시작했다.
“가주께서는 제가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괴왕을 잡은 게 접니다.”
부르르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