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198화 (198/468)

제 66장.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02

반호진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아무런 정보도 없는데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좋지 않아서였다.

가능성은 말 그대로 가능성일 뿐이었다.

어쩌면 반대로 전생의 수준과 비슷한데 육체는 구 년이나 젊은 상태일 수도 있었다.

‘이건 최악인데.’

상상도 하기 싫지만 이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지난 생에서 반호진이 싸울 때 북해빙궁주의 나이는 일흔이 넘었었다.

그런데도 겉으로 보기에는 오십 대 중후반으로 보였다.

한데 거기에 십 년 가까이 젊은 상태이니 체력적으로나 신체적으로는 전생보다 확실히 나을 터였다.

‘거기에 포달랍궁주에 대해서는 아는 게 너무 적어. 마주친 적도 없고.’

구천문주는 사천당가주가 직접 싸웠었기에 어느 정도는 밝혀져 있었다.

그러나 포달랍궁주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기에 반호진으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만하고 싶어도 자만할 수 없기도 했고.

‘더 강해져야 해.’

철혈마황을 잡고서 무명이 중원무림을 진동시키고 있었으나 반호진은 거기에 취하지 않았다.

소림검성이라는 별호에도 무덤덤했다.

아무리 사람들이 칭송하고 경외를 보여도 전쟁에서 패배하고 죽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반호진은 주변과 세인들의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고 수련에 집중할 수 있었다.

‘최소 북해빙궁주를 잡을 정도까지.’

양패구상하기는 했으나 그때는 운이 좋았었다.

북해빙궁주가 방심하기도 했거니와 차륜전으로 인해 힘이 많이 빠진 상태였다.

반호진 역시 북해빙궁주에게까지 가는 길이 험난하기는 했으나 칠십 대와 삼십 대의 회복 속도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여러 가지 변수가 좋게 작용해 동귀어진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철혈마황을 잡은 순간부터 절대 방심하지 않겠지.’

지난 생에서 반호진은 뜬금없이 등장한 강자였다.

소림사 내에서만 생활했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고, 천하사패가 중원을 침략해 와서야 무림에 이름이 알려졌다.

검신이라는 별호를 얻기는 했으나 천하사패의 패주들이 반호진의 실력에 반신반의하던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히 신성을 넘어 무위를 강호에 증명했기에 전생처럼 나이가 어리다고 방심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방심을 유도하는 것도 한 가지 전략이지만 운에 기대하는 것보다는 실력을 키우는 게 훨씬 낫지. 가장 확실하기도 하고.’

행운을 기대하는 건 반호진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복기하고 또 복기했다.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아야 개선할 수 있어서였다.

그러면서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했다.

‘경지라는 게 단순히 수련한다고 해서 높아지지는 않지. 노력은 누구나 하니까. 그렇다면 남는 건 내공인가.’

반호진은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생각했다.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경지라는 게 원하고 바란다고 해서 높아지지 않았다.

특히나 현재 그와 같이 초월경에 오른 이들은 더더욱.

깨달음을 얻지 않는 한 벽을 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또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우우우웅.

두 눈을 감고 있는 반호진을 중심으로 주변이 출렁거렸다.

대자연의 기가 반호진의 공력에 반응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반호진의 전신모공이 활짝 열렸다.

단순히 코로 호흡해서 축기하는 게 아니라 전신모공을 이용해서 대자연의 기를 빨아들이는 것이었다.

‘내공이 많아서 나쁠 건 없지. 지금까지는 양보다는 질을 중요시했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축적해 놓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니까.’

통제하지 못하는 공력은 결국 독이 될 뿐이었다.

괜히 영약을 조심히 먹어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물론 반호진은 그렇게 될 수준을 넘어섰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조심했었다.

과거로 돌아오면서 새로운 몸에 적응도 해야 했고, 확실하게 육신을 제어한다는 확신이 들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충분히 자신이 있었고,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깨달음에만 매달릴 수는 없기에 반호진은 본격적으로 축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쩌면 이러다가 깨달음이 찾아올지도 모르는 거고.’

반호진의 뇌리에 북해빙궁주의 신위가 떠올랐다.

혼자서 수백 명의 무인들을 압도하던 광경을.

그 무지막지한 존재감을 떠올리자 반호진의 입가가 씰룩였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처음 북해빙궁주를 봤을 때 반호진이 느낀 감정은 충격과 공포였다.

저런 무인이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감정을 자신이 북해빙궁주에게 주고 싶었다.

중원무림에 이와 같은 존재가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미래를 바꾸겠어.’

무슨 이유로 자신을 과거로 보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디에 물어볼 수도 없는 문제였고.

그래서 반호진은 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만 생각하기로 말이다.

후우우웅!

마음의 결정을 내려서인지 반호진을 중심으로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반호진의 의지에 따라 대자연의 기가 움직이는 것이었다.

***

또르륵.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기울어 가는 시각에 담현은 홀로 방장실에 남아 차를 따랐다.

평소라면 업무를 마무리 짓고 거처로 돌아갔겠으나 오늘은 달랐다.

약속이 하나 있었기에 담현은 느긋하게 손님을 기다렸다.

똑똑똑똑.

듣기만 해도 조심스러워하는 게 느껴졌다.

규칙적인 박자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차의 맛과 향을 음미하던 담현이 시선을 돌렸다.

“들어오시지요.”

“예.”

살짝 긴장한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중년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확 잘생긴 외모는 아니지만 젊었을 적에는 여자가 꽤나 꼬였을 것 같은 중년인이 경직된 얼굴로 들어와서는 담현을 향해 합장했다.

그 모습에 담현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합장을 했다.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자리를 권하는 담현의 손짓에 중년인이 냉큼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빠르게 담현의 표정을 살폈다.

무작정 약속을 잡았음에도 의외로 담현의 표정에는 당황하거나 불편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담현을 자주 본 건 아니지만 평소와 딱히 다르지 않는 모습에 중년인은 속을 알 수가 없었다.

“한 잔 받으시지요.”

“감사히 마시겠습니다.”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담현의 모습에 중년인은 안 그래도 입이 바짝 말라 가던 차였다.

그래서 중년인은 미지근한 차를 받자마자 반을 들이켰다.

“차는 많습니다. 편히 드시지요.”

중년인이 어째서 차를 벌컥벌컥 들이켜는지 알기에 담현은 담담한 목소리로 차호를 밀었다.

언제든지 본인이 따라서 마실 수 있도록 말이다.

“으음. 방장께서는 제가 무슨 이유로 방문했는지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글쎄요.”

담현의 대답에 중년인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담담하지만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싸늘함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너, 너무 늦었다는 사실을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핑계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시기가 너무 안 좋았습니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사방에서 일어나기도 했고요.”

“그건 말 그대로 변명일 뿐입니다, 상관세가주.”

“진심컨대 변명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이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서입니다. 또한 방장께서도 아시겠지만 상황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상관세가의 주인인 상관보가 쉴 새 없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해서든 실수로 몰아가며 설득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 상관보의 말에도 담현의 표정은 시종일관 똑같았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상관없다는 듯이 차분하게 차를 들이켰다.

“저에게는 상관세가주의 체면을 더 중시했다는 뜻으로밖에 들리지 않습니다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저도 개인적으로 알아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와중에 철혈성의 침공이 시작되었고,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때문에 저로서는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관보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졌다.

처음에는 눈치를 살피더니 상황이 여의치 않자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진 것이었다.

동시에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상황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안 좋은 것 같아서였다.

“그 결과가 지금의 자리입니까?”

“마, 맞습니다. 저희가 너무나 경솔한 짓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과를 드리고자 제가 직접 왔습니다.”

“사과라.”

상관보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였다.

무림십대세가 중 한 곳인 상관세가의 주인이 그였으나 지금 앞에 앉아 있는 이는 강호에서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사의 당대 방장이었다.

더구나 이번 일은 그의 실수가 명백하기에 고개를 숙이는 것에 대해 굴욕적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죄송합니다!”

“괴왕을 보낸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까?”

“그, 그렇습니다. 하지만 맹세컨대 절대 몹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제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는 단지 가벼운 훈계를 부탁했을 뿐입니다! 괴왕 역시 개인적으로 반 소협의 무위를 궁금해했기에 이해관계가 맞은 것이었고요! 그 이상으로 주고받은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소림사에서의 일은 괴왕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입니다!”

상관보가 피를 토할 듯이 시뻘게진 얼굴로 말했다.

자신은 진심으로 결백하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억울하다는 상관보의 모습과 달리 담현의 눈빛은 싸늘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제자인 반호진과 관련된 일이기에 담현은 서늘한 눈빛으로 상관보를 응시했다.

“증명할 수 있으십니까? 둘이서 주고받은 문서라거나.”

“애석하게도 증거는 없습니다. 대화만 한 차례 나누고 떠났던지라. 그 정도로 본가와 괴왕과의 관계는 그리 깊지 않습니다.”

짐짓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던 상관보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조금이라도 상관세가와의 연관성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단위와 엮여 봤자 좋을 게 없기에 상관보는 일부러 이 부분을 강조했다.

“괴왕이 죽은 걸 알고 그리 말하는 거 아닙니까?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맹세코 저는 모두 있었던 내용만 지금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눈곱만큼도 내용을 더하거나 빼지 않았습니다!”

담현의 말에 상관보가 펄쩍 뛰었다.

자신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이다.

한데 그러한 상관보의 모습에도 담현은 실소를 흘렸다.

“상관세가주. 우리 솔직해집시다. 몰릴 대로 몰려서, 더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고 여겼기에 빈승을 찾아온 것 아닙니까.”

“그,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이 소림사나 방장께 편한 시기라고 생각해서 방문한 것입니다.”

정곡을 찔렸지만 상관보는 무조건 잡아뗐다.

여기서 인정하는 순간 모든 게 끝나서였다.

그리고 증거가 없는 건 담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약 증거가 있거나 단위가 그와의 대화를 실토했다면 이렇게 떠보지 않았을 터였다.

진즉에 소림사의 힘을 이용해, 혹은 담현이나 반호진이 직접 상관세가로 쳐들어 왔을 것이다.

그렇기에 상관보는 안면근육을 최대한 조작했다.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왜 호진이가 아니라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예?”

“가주께서 사죄해야 하는 사람은 빈승이 아니라 호진이 아닙니까? 안 그렇습니까?”

“……!”

상관보는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하나 당혹감은 창졸간에 사라졌다.

순식간에 신색을 회복한 상관보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주는 자신의 체면만 생각하고 있구려. 빈승에게 중재를 부탁하면서.”

“아닙니다! 반 소협에게도 찾아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현재 숭산에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방장께 사죄를 드린 후 따로 반 소협을 만날 계획이었습니다. 이걸 처음에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저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호진이는 어제 돌아왔습니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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