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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197화 (197/468)

제 66장.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01

말이 좋아 후실이고 후처이지 첩이 되는 것도 고민해 보라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하오문주는 슬쩍 화제를 돌렸다.

난희주가 그 문제에 깊게 파고들지 않았으면 해서였다.

그렇게 되길 바라는 게 아니라 그저 그런 방법도 있다고 말한 것이었기에 하오문주는 자연스럽게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오빠가 꽤 공평한 성격이라 그런 일에는 티를 잘 안 내요. 칭찬에도 인색한 사람이라.”

“그건 어쩔 수 없지. 본인이 그만한 경지에 올랐는데 웬만한 이가 눈에 차겠어? 그렇다고 거만하거나 상대방을 언짢게 하지는 않잖아. 그 나이에는 그것도 대단한 거야. 정파의 후기지수들, 예전에 사룡들은 어땠니?”

“가관이었죠. 별것도 아닌 실력으로.”

난희주가 자기도 모르게 코웃음을 쳤다.

그때는 그게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당장 이 건물에 머물고 있는 이들만 해도 사룡 정도는 가볍게 씹어먹었다.

“별것도 아닌 실력은 아니지. 솔직히 말해서 대단하기는 하지. 그때는 비교대상이 없을 정도로 뛰어났으니까. 다만 용중용이 등장해서 그렇지. 천외천이라고나 할까. 근데 나는 더 놀라운 게 실력도 실력이지만 주변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거야. 그건 완전히 궤가 다른 거거든. 본인이 강해지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주변 사람들까지 성장시키는 건 완전 다른 문제야. 보통은 개인 수련 시간도 부족하다고 하는데 반 공자님은 개인 시간까지 쪼개서 일행들을 봐주는 거니까.”

“그러면서도 여유가 가득하죠. 오죽했으면 소림사에서 게을러졌다는 소문이 돌았겠어요.”

“겉모습만 보면 그럴 수 있지. 그렇지만 중요한 건 결국 결과이니까. 공동파 장문인이 개쪽을 당한 건 이미 소문이 파다해.”

하오문주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방만춘이 반호진에게 도전장을 내민 건지 말이다.

철혈마황을 쓰러뜨렸을 때 이미 모든 걸 증명했는데 왜 그걸 믿지 않는지 진심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것도 그저 그런 문파도 아니라 구대문파 중 한 곳인 공동파의 수장이 말이다.

“자업자득이죠.”

“도망치듯 숭산을 내려갔다고 하나, 분명 또 마주칠 텐데. 강호가 넓은 듯하면서도 은근히 좁거든. 특히나 구파일방끼리는.”

“그렇죠.”

“좀 아쉽네. 우리가 고르고 고른 만큼 그래도 반 공자님의 눈에 들 만한 인재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하오문주가 술을 들이켜며 입맛을 다셨다.

그런 그녀의 빈 잔에 난희주가 익숙하게 술을 따랐다.

과일도 하나 집어 주면서.

“이제 시작했는걸요. 앞으로 주의 깊게 두고 봐야죠. 저도 그렇지만 다들 젊다기보다는 어린 편이기도 하고요. 근데 저는 문도들을 보면서 본문의 미래가 밝다고 느꼈어요. 진짜 악과 깡으로 달려들더라고요.”

“나도 내일 봐야겠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은 직접 보고 가야지. 인사도 하고.”

“다들 좋아할 거예요.”

“싫어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네.”

하오문주가 싱긋 웃었다.

자신이야 문도들이 편하다지만 하오문도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어서였다.

“좋아할 거예요. 자신들을 보기 위해 직접 와 주신 거잖아요. 부담스러워할 수는 있어도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싫어하는 거나 부담스러워하는 거나 비슷할 거 같은데.”

“엄연히 다르죠.”

“그랬으면 좋겠네. 그리고 너무 부담을 갖지 않아 줬으면 좋겠어.”

난희주가 따라 준 술을 한 모금 들이켜며 하오문주가 말했다.

진심이 가득 담겨 있는 목소리로 말이다.

고르고 골랐다는 말은 달리 말하면 그만큼 백 명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걸 뜻했다.

그걸 백 명 역시 알고 있을 것이기에 어쩌면 모두 과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을지도 몰랐다.

“제가 계속 신경 쓸게요. 매일 유심히 보고 있기도 하고요. 설이도 엄청 열심히 해요. 이렇게 열심히 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요.”

“설이도 무인이니까. 반 공자님의 일행들을 보며 느끼는 것도 있을 테고. 또래잖아. 신분이 다르다고 하나 그래도 자극을 안 받을 수도 없지.”

“가끔 보면 너무 무리하는 것 같기도 해요.”

“반 공자님이 귀신같이 잡아 주신다며? 한계인지 혹사인지의 구분을.”

“맞아요. 정말 귀신같이 더 할 수 있으면 계속 몰아붙이더라고요. 이번에는 괜찮습니다. 좀 더 할 수 있습니다.”

난희주가 정색하며 목소리를 내리 깔았다.

무한 대련 훈련 할 때의 반호진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푸흐흐흐! 설마 반 공자님 따라 한 거야?”

“네. 진짜 이렇게 말해요. 사람이 감정기복이 거의 없어요. 흥분도 안 하고, 화도 안 내고. 웃는 것도 못 봤네?”

말하다가 스스로도 어이가 없는지 난희주가 헛웃음을 흘렸다.

냉소나 조소, 콧방귀는 몇 번 본 거 같은데 진짜 웃음은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평소에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지. 그 정도 경지인데 웬만한 일에 평정심이 흔들리겠니? 당연한 거야.”

“그래도 스물한 살이잖아요. 감정이 한창 충만할 시기인데. 사람이 좀 틈도 보이고, 실수도 해야 인간미가 있는 법인데.”

“반 공자님 정도면 인간미가 없어도 돼. 오히려 완벽하니까 더 탐이 나는 거야. 내가 직접 망가뜨리고 싶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정확하게는 나만 망가뜨리고 싶은 거지.”

하오문주가 싱긋 웃었다.

그런데 그 미소가 난희주에게는 이상하게도 음험하게 다가왔다.

겉으로만 보면 말간 미소였는데 말이다.

“망가뜨리고 싶다는 느낌이라. 잘 모르겠어요.”

“넌 아직 어리니까. 이런 남자, 저런 남자 다 겪어 보면 알게 된단다. 남자들은 다 똑같다고 하는데, 글쎄. 내 생각은 좀 달라. 다 똑같으면 대충 잡아서 결혼하지 이 남자 저 남자 고르지는 않겠지?”

“그게 맞는 것 같아요. 하물며 쌍둥이도 다른데 어떻게 다 똑같겠어요.”

“내 말이. 어느 정도 조건이 부합되면 그때서야 비슷비슷하다고 말하는 거지. 그나저나 무한 대련 훈련을 우리끼리 하기는 힘들겠지?”

“오빠 정도의 실력자가 있다면 가능하죠. 무경은 힘들더라도 안목이 비슷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까지는 비슷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설사 있다고 해도 자기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반발이 있을 테고요.”

정론이라 할 수 있는 난희주의 말에 하오문주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쉬웠지만 방법이 없었다.

만약 누구나 할 수 있었다면 이미 곳곳에서 다 따라 했을 터였다.

“곧 떠나신다고 했지?”

“예. 볼일은 다 봤으니까요. 이번 강호행에서 얻은 것들을 다 정리하면 숭산으로 돌아간다고 들었어요.”

“그때까지 잘 배우도록 해야겠다. 초반에 길만 잘 잡아 둬도 나중에 정말 큰 도움이 되니까.”

“다들 의욕이 넘쳐서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의원들도 항시 대기 중이고요.”

아쉽지만 현재 하오문주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러니 현재의 상황에서 챙길 수 있는 건 최대한 챙겨야 했다.

“의원들을 대기시키는 것도 반 공자님 생각이라며?”

“네. 다치지 않는 것도 수련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면서요.”

“맞아.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거지. 진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냈을까.”

“제가 보건대 나중에 자기 가문을 세우면 잘 키울 것 같아요.”

“언젠가는 그럴 것 같아. 천하의 소림사가 작게 느껴질 정도이니.”

하오문주는 뒷말을 삼켰다.

괜히 제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마음은 내심 바라고 있었다.

‘꿈은 클수록 좋으니까. 또 혹시 모르잖아?’

많은 이들이 노리고 있었으나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반호진도 누굴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은 이상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잠든 시각.

제일 늦게 자는 사마의성조차 잠이 든 시간에 반호진은 홀로 참선 중이었다.

침상 위에서 가부좌를 틀고서 반호진은 지금까지 겪어 왔던 싸움들을 복기했다.

‘대단했었지.’

최근에 했던 비무이자 가장 수준 높았던 대결은 누가 뭐래도 검왕 운상 진인이었다.

무당파의 장문인이자 천하십대고수 중에서 검으로는 최강자라 할 수 있는 이인 만큼 운상의 검은 강력하고 위협적이었다.

아직 덜 여문 철혈마황보다 훨씬 더 까다로울 정도로 말이다.

또한 반호진의 검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추구했다.

‘부드러움과 조화. 그리고 태극.’

운상의 검은 무당파 무리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 정도로 무당파 무공의 모든 걸 담고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운상의 검술이 대단한 건 당연했다.

그렇지 않다면 검왕이라는 칭호가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반호진은 운상의 태극혜검이 아닌 그의 순수한 검술에 집중했다.

어떤 식으로 검식을 쌓아 왔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와는 완전히 달라.’

반호진은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검을 수련했다.

자신이 잘하는 걸 더욱 잘하도록 방향을 잡은 것이었다.

반면에 운상은 비슷하지만 달랐다.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

근데 그 길이 무당파의 무공과 너무나 잘 맞았기에 검왕이 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궁합이 잘 맞은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운상의 사부가 제자를 잘 찾은 것이었고.

‘누구의 길이 맞고, 틀렸다가 아니라 각자의 길이 존재하는 거지. 그러나 참고는 할 수 있지.’

초월경에 오른 이상 자신이 걸어온 길이 틀린 건 절대 아니었다.

애초에 틀린 길이었다면, 잘못된 길이었다면 일정 수준 이상 오를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제 와서 다른 길을 걸어가려는 건 퇴보하겠다는 말 밖에는 되지 않았다.

하나 다른 이의 길을 보고 참고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운상 진인은 방이와 비슷해.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우직하게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노력하는 성격이야.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지 않듯이 무공도 마찬가지였다.

똑같은 무공을 익혔는데도 완전히 다른 초식을 펼치기도 했다.

무공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느냐에 따라 초식과 투로가 달라지는 것이었다.

‘나의 검.’

운상이 보여 주었던 태극혜검을 곱씹던 반호진은 이내 자기 자신으로 돌아왔다.

감탄을 그만두고 스스로의 무공을 처음부터 되짚어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소림사 무공 중 가장 난해하다는 악명답게 달마삼검은 정해진 틀이 없었다.

무공서에도 무론과 구결만 적혀 있을 뿐 그림이나 주석은 일체 없어 오로지 스스로 보고 깨쳐야만 하는 무공이 달마삼검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한계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에 따라 변화가 무궁무진하니까.’

정형화된 틀이 익숙한 사람에게는 입문조차 힘든 게 달마삼검이었다.

그런데 반호진에게는 달랐다.

처음에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어리둥절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달마삼검 안에 담긴 무한한 자유에 반호진은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아직 부족해.’

달마삼검은 무당파의 태극혜검, 남궁세가의 제왕검형과 비교해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절대검공이었다.

능히 천하제일검공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 수준으로는 북해빙궁주를 확실하게 쓰러뜨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쉽게 지거나 죽지는 않겠으나 그렇다고 이길 거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철혈성주처럼 북해빙궁주도 전생과 같은 수준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건 너무 긍정적인 추측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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