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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195화 (195/468)

제 65장.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02

하오문도들이 하나같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는 것과 달리 서조운은 멀쩡했다.

때마침 대련도 끝났기에 서조운은 반호진의 품에 반쯤 안겨 있던 하오문도를 들쳐 업고서 공터의 한쪽 구석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하오문도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따앙! 땅!

처음 시작했을 때와 달리 들려오는 금속음에는 힘이 없었다.

전부 다 지친 것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다들 지친 기색이 완연한데도 기절한 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두 눈에는 초점이 없고, 몸도 흐느적거리면서도 하오문도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무한 대련 훈련을 이어 나갔다.

쿵! 쿠웅!

하지만 그것도 오래 가지 않았다.

한 명을 시작으로 여기저기에서 허물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더는 대련을 하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었다.

“옮겨.”

“넵!”

반호진은 그런 이들의 상태를 빠르게 확인했다.

대충 보는 것 같지만 판단은 확실했다.

그걸 서조운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귀신같이 잔꾀를 부리는 건지, 아니면 정말 지쳐서 쓰러진 건지 꿰뚫어 봤기에 서조운은 군말 없이 쓰러진 하오문도들을 옮겼다.

‘나도 더 열심히 해야 해.’

정신을 잃으면서도 손에서 병장기를 놓지 않는 하오문도들의 모습에 서조운은 마음을 다잡았다.

조금은 해이해질 뻔했던 마음가짐이 시체처럼 기절한 하오문도들을 보자 바짝 조여졌다.

한데 그건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인 듯 표정이 서조운과 똑같았다.

“치료는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빨리 빨리 움직여!”

일행들이 기절한 하오문도들을 옮기자 미리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의원들이 우르르 달려와서는 상태를 살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난희주가 부른 의원들이었다.

하오문 소속이거나 혹은 끈이 닿아 있는 의원들이었기에 일행들이 바닥에 바르게 눕히기 무섭게 진맥을 시작했다.

“우리는 이어서 해야지?”

“당연하지.”

“물론입니다!”

“시작하시죠!”

하오문도들을 다 옮기기 무섭게 반호진이 씨익 웃었다.

지친 건 하오문도들이고 그를 비롯해서 일행들은 아직 힘이 남아 있었기에 반호진은 무한 대련 훈련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자 하나둘 정신을 차린 하오문도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새삼 반호진 일행들의 실력을 알 수 있어서였다.

“……미쳤네.”

그 모습에 놀란 건 이 층에서 지켜보던 난희주도 마찬가지였다.

호위무사인 백설도 무한 대련 훈련에 참여했기에 그녀는 오랜만에 혼자 있었는데 다시 비무를 시작하는 반호진 일행을 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새삼 하오문도들과의 격차를 느낄 수 있어서였다.

특히 그녀에게 충격을 준 건 역시 사마의성이었다.

“오빠의 간택을 받은 인재란 말이지.”

사실 난희주는 내심 사마의성을 만만하게 생각했었다.

두뇌적인 부분이 워낙에 뛰어나기에 상대적으로 신체적인 역량은 부족하다 여겼다.

근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결과는 달랐다.

하오문도들 중 누구도 비비지 못했다.

“만약 우리에게 왔더라면…….”

쓸데없는 가정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난희주는 상상해 봤다.

사마의성이 하오문 소속이라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사마의성을 넘어 서조운, 정이륭에게까지 이어졌다.

“후우.”

하지만 상상은 말 그대로 상상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난희주는 이내 깊은 한숨을 토해 내며 머리를 저었다.

이렇게 상상한다고 한들 세 사람이 하오문 소속이 될 가능성은 전무했다.

반호진이 하오문에 들어오지 않는 한 말이다.

“진짜 대단하단 말이지.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 걸까?”

난희주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지금껏 천재는 많았다.

반호진도 대단하다고 하나 무림의 역사를 짚어 보면 그 이상 가는 천재들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반호진처럼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수준까지 빠르게 성장시키는 인물은 없었다.

“보통 천재는 범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던데.”

사람들은 흔히들 말했다.

범재는 절대 천재를 이해할 수 없다고.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그런데 반호진은 그 궤에서 아주 많이 벗어나 있었다.

“가만히 지켜봐도 되지만, 궁금하단 말이지.”

난희주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은 반호진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무한 대련 훈련은 사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훈련법이었다.

하지만 장담컨대 누구도 반호진처럼 할 수 없었다.

개개인의 한계를 알아보는 안목이 없다면 냉정하게 말해 따라 해도 절반의 효과밖에는 보지 못할 터였다.

난희주는 그걸 장담할 수 있었다.

반호진처럼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반호진과 똑같은 역량을 가진 이가 있어야만 했다.

“근데 물어본다고 대답해 줄 위인이 아니니.”

어쩌면 말해 주어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엇비슷한 경지라면 모를까 반호진과의 격차는 어마어마하니까.

그래서 난희주는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 내고는 하나둘 정신을 차리는 하오문도들을 바라봤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던 모습이 떠오르자 입가에 미소가 절로 맺혔다.

“이번에는 달라질 수 있어.”

언제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던 세력이 하오문이었다.

그랬기에 역대 하오문주들은 모두 하나같이 강한 하오문을 꿈꿨다.

중원무림을 제패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였다.

최하계층 출신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기에 모두가 생각하는 건 같았다.

“이번에야말로.”

그 꿈은 언제나 꿈이자 목표로 끝났었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난희주뿐만 아니라 그녀의 사부인 하오문주도 같은 생각이었다.

지금까지는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왠지 다를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스윽.

그리고 그 이유는 두 사람 다 같았다.

예전에는 없던 인물이, 그것도 천하를 들었다가 놨다가를 할 수 있는 인물이 하오문에 호의적이었기에 난희주와 하오문주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저 문도들이지.”

반호진에게 향했던 시선이 다시 백 명의 하오문도들에게로 향했다.

아직은 젊다기보다 어리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백 명이지만 그렇기에 난희주는 저 하오문도들이 하오문의 미래라고 생각했다.

저 백 명이 얼마나, 어디까지 성장하느냐에 따라 하오문의 위상과 미래가 달라질 터였다.

“나도 더욱더 노력할 거고.”

난희주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리고는 몸을 돌렸다.

사위가 어둡기는 하나 아직 잠자리에 들기에는 이른 시간에 하오문주가 별채를 찾았다.

정확하게는 반호진의 처소를 방문했던 것이다.

수신호위와 함께 도착하기 무섭게 하오문주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배분으로 따지자면 반호진이 한참 아래이지만 강호는 강자존의 세계였기에 하오문주는 자신의 행동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똑똑똑.

마지막으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한 후 하오문주는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그녀가 도착한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시지요, 문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반 공자님.”

“이쪽으로 앉으시죠.”

“예.”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자리를 권하는 모습에 하오문주는 빙그레 웃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와는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음에도 반호진의 태도는 똑같았다.

그게 하오문주는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별거 아닌 무명에도 거들먹거리는 이들이 대다수인데 반호진은 나이가 젊었음에도 그런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말이지.’

하오문주의 나이쯤 되면 원치 않더라도 온갖 군상들을 다 보게 되었다.

괜히 관상을 배우지 않았음에도 사람을 잘 보는 게 아니었다.

“조금 웃기긴 하네요. 문주님이 주인인데 제가 주인인 것처럼 문주님을 맞이하는 게요.”

“머무시는 동안은 반 공자님의 집이라고 생각하시고 머물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미 그렇게 아이들에게 말해 놓기도 했고요. 혹 불편하신 게 있으신가요? 꼭 반 공자님이 아니더라도 다른 분들이요.”

반호진이 따라 주는 차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으며 하오문주가 물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최대한 신경 쓰라고 지시를 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혹시 몰랐다.

나름 신경 쓴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쪽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기에 하오문주는 반호진의 표정을 빠르게 살폈다.

“전혀 없습니다. 일행들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편하게 지내도 되나 싶을 정도입니다. 굳이 별채까지 내어주실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저희는 아무 곳에서나 잘 자거든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부족한걸요. 저희가 받은 것에 비하면.”

“받았다기보다는 서로 상부상조했다고 생각합니다.”

손사래까지 치는 하오문주를 보며 반호진은 옅게 웃었다.

자신이 막 퍼 준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서로에게 필요한 걸 주고받았을 뿐이었다.

“그리 생각해 주시면 저희야 감사하지요. 그보다 식사는 입맛에 맞으신가요?”

“너무 융숭해서 부담스러울 정도입니다. 척이 정도만이 아무렇지 않아 한다고나 할까요.”

“호호호.”

말로만 들었을 뿐인데도 하오문주는 모용척 특유의 표정이 상상되었다.

몇 번 만나지 않았음에도 워낙에 성격이 독특해서 그런지 인상이 깊게 남아 있었다.

“보고받으셨겠지만 하오문도들은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 안 해요. 반 공자님께서 어련히 잘해 주실 걸 알고 있으니까요. 희주도 있고요. 저는 반 공자님을 뵈러 온 거라.”

“저를 말씀이십니까?”

“네. 개인적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요. 아이들을 봐주시는 것도 당연히 감사하지만 반 공자님 덕분에 큰 화를 피했으니까요.”

“아.”

반호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아차려서였다.

“원래는 진즉에 찾아뵀어야 했는데 숭산에 워낙 쟁쟁하신 분들이 많이 모여 계셔서 선뜻 가기가 힘들더라고요. 은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괜히 눈치를 보게 된다고나 할까요.”

“이해합니다.”

“만약 반 공자님께서 조언을 해 주시지 않았다면,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제가 이렇게 편안하게 지내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 부분에 대해서 감사하단 말씀을 직접 드리고 싶었어요.”

“꼭 문주님을 위해서라기보다는 백도무림을 위해서 한 말이기도 했습니다. 솔직하게 하오문과 싸우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금가장도 마찬가지고. 다행히 좋은 쪽으로 결정을 내려 주셔서 저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는 하오문주를 향해 이번에는 반호진이 손사래를 쳤다.

꼭 하오문을 위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서로에게 이득이 될 거라 판단했기에 한 말이었다.

또한 하오문주 역시 이것저것 다 재 본 다음에 결정을 내렸을 터였다.

즉 반호진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른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금가장 역시 마찬가지였고.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신경 써 주신 건 사실이니까요. 또 오랜만에 반 공자님을 뵙고 싶기도 했고요. 아, 반 대협이라고 불러 드릴까요?”

“호칭은 어떤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편하신 걸로 하시면 됩니다.”

반호진이 옅게 웃었다.

하오문주가 단순히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자 찾아온 게 아님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이곳에 있는 하오문도들의 성장도 직접 보고 싶었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자신과의 관계였다.

예전에는 단순히 후기지수들 중에서 최고였다면 지금은 무림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거물이 되었기에 하오문주로서는 더욱 돈독한 관계를 만들고 싶을 것이었다.

‘그게 나쁜 건 아니니까.’

사람에게는 각자의 생존방식이 있는 법이었다.

또한 처세술이라는 좋은 말도 있었고.

그렇다고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었기에 이 정도는 반호진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럼 원래 하던 대로 반 공자님이라고 하겠습니다. 반 대협이라는 호칭은 이상하게 거리감이 느껴져서요.”

“편하신 대로 하시죠.”

“아, 혹시 서장에 대한 정보를 들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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