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194화 (194/468)

제 65장.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01

반항은커녕 경종도 울리지 못하고서 죽어야 한다는 게 사내는 너무나 억울했다.

애초에 반호진을 본 순간부터 저항은 생각지도 않았다.

천하십대고수급이라 할 수 있는 반호진과 맞서 싸우는 게 얼마나 허황된 일인지 본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어서였다.

그래서 경종만 한 번 흔들고 곧장 도망칠 생각이었는데 그것조차도 하지 못하자 사내는 자괴감에 몸을 떨었다.

털썩!

하지만 그러한 생각도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이윽고 사내의 동공에서 초점이 사라지며 몸이 허물어졌다.

휘이익!

반호진은 그런 사내의 시신을 무심히 스쳐 지나갔다.

허공답보를 펼치며 성벽처럼 높게 만들어진 목책을 넘어갔다.

“누구냐!”

“침입자다! 침입자가……!”

경계태세가 얼마나 개판인지를 느끼며 안쪽으로 조금 걸어갔을 때 드디어 산적들이 반호진을 발견했다.

외부에서 침입자가 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지 둘 다 깜짝 놀랐다.

그러나 놀람은 잠시뿐이었고 이내 흉흉한 기세를 터트리며 노성을 터트렸다.

한데 그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종이 울려 퍼졌다.

“뭐야?”

“아직 보고도 하지 않았는데?”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경종 소리에 둘 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였다.

그런데 그게 패착이었다.

잠시 반호진에게 관심을 거둔 대가는 무거웠다.

푹! 푹!

이번에도 반호진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산적들의 병기를 이용해 목숨을 끊어 버렸다.

채주도 아니고 한낱 잔챙이 따위와 일일이 어울려 줄 정도로 반호진은 자애롭지 못했다.

“이제는 다들 적응한 모양이네.”

여기저기에서 메뚜기처럼 펄떡 뛰고 있는 산적들을 보며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하다 보면 는다는 말처럼 처음 산채를 공격했을 때와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능수능란해졌던 것이다.

거기다 손발도 맞아 갔기에 산적들로서는 더더욱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일 터였다.

“형님! 인질들은 모두 구출했습니다!”

“그래.”

“여인들과 아이들인데 난 소저가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럼 정리해.”

거리가 멀었음에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서조운의 목소리에 반호진도 짧게 지시를 내렸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지시할 것도 없었다.

일행들과 하오문도들이 알아서 했기에 반호진은 그냥 유유자적하게 걸어가기만 하면 됐다.

“끄아아악!”

“사, 살려 주세요!”

“저는 죄가 없습니다! 저도 붙잡혀 왔다가 억지로 산적질을 한 것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곳곳에서 비명 소리와 신음 소리가 난무했다.

하지만 반호진의 주변만은 고요했다.

도망치는 이들이 대부분이긴 해도 간혹 칼을 뽑아 들고 달려드는 산적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반호진은 예외였다.

“눈치는 빨라 가지고.”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도주를 택하는 산적들의 모습에 실소가 절로 나왔던 것이다.

물론 도망친다고 해서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전부 다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푹. 푸푸푸푹!

굳이 손을 쓸 것도 없이 자신이 들고 있는 무기에 의해 산적들이 목이나 가슴이 꿰뚫린 채로 죽었다.

이기어검의 기예였으나 내공 소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리고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가끔씩은 펼쳐 줄 필요가 있었다.

이거라도 안 하면 너무 심심하기도 했고.

“아, 악마……!”

“지독한 새끼!”

“회, 회개할 기회를……!”

손속에 눈곱만큼의 사정도 주지 않는 반호진과 일행들의 모습에 산적들이 울부짖었다.

아무리 자신들이 기습 공격을 했다고 하나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절대고수라면 그에 어울릴 만한 아량도 갖춰야 하는데 반호진은 그렇지가 않았기에 다들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며 소리쳤다.

하지만 반호진은 그런 산적들의 모습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네놈들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 왜냐하면 불평불만은 사람만이 하는 행동이거든. 근데 네놈들은 인간이 아니잖아?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이지.”

“컥!”

겉모습이 사람과 같다고 해서 모두가 똑같은 건 아니었다.

그중에는 인간 이하, 혹은 짐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 존재했다.

여기 있는 산적들처럼 말이다.

“얌전히 죽어라, 쓰레기들아!”

“네놈들은 사라지는 게 도와주는 거야!”

생김새도 다르고, 위치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건만 하는 짓는 빼다 박은 것처럼 똑같았다.

특히나 어린아이들을 괴롭히고 부려 먹는 것에 서조운과 모용척이 크게 분노했다.

어른들에게도 힘든 일을 아이들에게 시켜서였다.

몇몇은 장난삼아 고문한 흔적도 있었기에 둘은 정말 인정사정없이 산적들을 도륙했다.

“슬슬 끝나 가네.”

예전에는 동귀어진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달려드는 산적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눈이 마주치면 하나같이 귀신이라도 본 얼굴로 도망치기만 했기에 반호진은 한가했다.

괜히 한가하게 돌아다니는 게 아니었다.

더욱이 이제는 직접 지시하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제 할 일을 했기에 반호진은 느긋하게 움직여도 됐다.

“이렇게 쓸어버려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나타나겠지만 말이지.”

“그건 이제 후대의 몫으로 남겨 둬야지.”

“뭐야? 그 말은. 완전 애늙은이 같았어. 너 이제 스물한 살이다.”

“이만큼 했으면 은원의 고리는 충분히 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다가온 선우방을 쳐다보지도 않고서 반호진이 대답했다.

복수에 끝이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이 정도면 개인적으로 모자라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또 모르지. 정신 나간 것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하니까. 근데 이 정도면 본보기로는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고 생각해.”

“꼭 내가 아니더라도 애들이 처리할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마찬가지야. 협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못 본 척 지나갈 수는 없을 것 같아.”

이번에 산채들을 털면서 선우방은 새삼 알 수 있었다.

약자들의 삶이 얼마나 처참한지, 또한 무림이라는 세계와 범인들이 사는 세계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음을 말이다.

“협객이 별거인가. 옳은 일을 지나치지 않고 하면 그게 협객이지.”

“어쩌면 진짜 협객은 자기가 협객이라고 말하지 않는 이일지도 모르겠어.”

“그럴 수도 있고.”

선우방과 대화하는 사이 어느새 채주의 거처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이미 사마의방이 도착했는지 목조건물 밖에는 온갖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스스슥!

이런 작업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이 하오문도들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또한 쌓이는 물건들은 확실하게 분류가 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반호진은 흐뭇하게 바라봤다.

어느 정도 일을 마무리 지은 반호진은 한적한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산적들을 정리했으니 이제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차합!”

“흡!”

별채 앞의 널찍한 마당에서 힘찬 기합성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바로 하오문에서 고르고 고른 인재 백 명이 대련을 하면서 내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안에는 반호진 일행들도 있었다.

“으윽!”

패배했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닌 상대를 계속 바꿔 가며 하는 무한 대련 훈련에 하오문도들 입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왔다.

명문세가와 대문파의 후기지수들도 힘들어한다는 말을 들었었기에 다들 마음을 단단히 먹었었다.

그 대단한 이들도 힘겨워한 만큼 자신들은 더 힘들고 괴로울 게 분명해서였다.

하지만 실제로 겪은 무한 대련 훈련은 악명 이상이었다.

“우웨엑!”

“쿨럭! 케헥!”

육체는 물론이거니와 정신적인 부분까지 극한으로 몰아붙였기에 여기저기에서 토악질을 하거나 구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몇몇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리가 풀려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고도 반호진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일어나십시오.”

“으윽! 예!”

“더 할 수 있습니다.”

처음의 각오는 시작한 지 한식경 만에 희미해졌지만 그럼에도 하오문도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들을 위해서 하오문주와 난희주가 직접 부탁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였다.

또 받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님을 알기에 하오문도들은 이를 악물고서 몸을 일으켰다.

“컥!”

“크헥!”

물론 몸은 마음만큼 따라 주지 않았다.

초반과 달리 하오문도들의 움직임은 시간이 갈수록 둔해지고 느려졌다.

다들 빠르게 지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반면에 반호진을 비롯해서 일행들은 쌩쌩했다.

‘사마 공자조차 저 정도라고?’

‘최약체 아니었나?’

심지어 사마의성조차 얼굴에 땀이 좀 맺혔을 뿐 다른 일행들과 큰 차이 없는 모습에 하오문도들은 입을 다물지 못 했다.

그들도 거저 이 자리에 온 게 아닌 만큼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최소한 사마의성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 보자 결과는 전혀 달랐다.

쿵! 쿵! 쿵!

오히려 하오문도들이 먼저 지쳐서 나가떨어졌다.

그게 하오문도들은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더 이상 무리라고 생각하면 포기하면 됩니다.”

“아닙니다아!”

“더, 더 할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 고꾸라져 있는 하오문도들을 향해 반호진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힘들면 편히 쉬라는 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을 넙죽 받아들이는 이는 없었다.

반호진이 그만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면 더 해야 한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어서였다.

“끄으응!”

“흐읍!”

정말 무리라고 생각한다면 반호진이 그만하라고 말한다는 걸 하오문도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남녀를 불문하고 하오문도들은 이를 악물었다.

반호진이 보기에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다면 분명 할 수 있었다.

또한 하오문도들은 개인적으로 보고, 느끼고 싶었다.

자신의 한계를 말이다.

스스로의 한계를 알아야만, 직시해야만 그걸 넘을 수 있기에 하오문도들은 당장이라도 땅바닥에 눕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몸을 일으켰다.

“시작하죠.”

“예에!”

대답하는 것조차 힘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하오문도들은 억지로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쓰러지더라도 모든 걸 토해 내고 쓰러질 생각이었다.

지쳐서 기절한다고 죽는 건 아니었기에 하오문도들은 각자의 상대를 향해 달려들었다.

‘확실히 깡이 있어.’

계속 해서 달려드는 하오문도들을 보며 반호진은 속으로 웃었다.

하오문에서 고르고 고른 인재들이라고 하나 그는 물론이고 일행들과 비교해도 턱없이 부족한 실력을 지닌 게 여기 있는 백 명이었다.

또래라고 해도 지닌바 실력이나 재능은 감히 비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오문도들은 좌절하고 포기하기보다는 도전했다.

그게 반호진은 마음에 들었다.

근성 있게 달려드는 게 말이다.

재능이 없다면 독기나 깡이라도 있어야 했다.

털썩!

물론 끈기와 근성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재능을 뛰어넘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적어도 가능성은 만들 수 있었다.

노력해 봤자 안 될 거라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면 거기서 끝이었다.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조, 좀 더 할…….”

“더 이상은 무립니다.”

쓰러졌던 십 대 후반의 하오문도가 박도를 역수로 잡고 몸을 일으켰다.

두 눈은 진즉에 풀렸고, 두 다리는 물론 두 팔도 안쓰러울 정도로 부들부들 떨렸다.

그런데도 하오문도는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몇 번이나 쓰러졌음에도 다시 일이서려는 하오문도를 반호진이 붙잡았다.

“더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더하면 몸을 혹사시키는 겁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해 주는 것도 수련입니다.”

반호진은 고개를 저었다.

눈앞에 있는 하오문도는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그것도 처음으로 자신의 한계를 확인했기에 이 이상은 무리였다.

오늘은 본인의 한계를 마주한 것만으로도 목표를 충분히 달성했기에 반호진은 몰래 수혈을 짚었다.

“제가 데리고 가겠습니다.”

“부탁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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