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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188화 (188/468)

제 63장 무당검왕(武當劍王). -02

의외로 알고 있던 걸 새롭게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머리로 알고 있었던 걸 가슴으로 느낀다고나 할까.

깨달음이라고 해서 꼭 대단하거나 엄청난 것들만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사소한 것들이 크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기에 반호진은 세 사람에게도 좋은 시간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약속한 거네?”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입으로 두말한 적은 없습니다.”

“좋군. 근데 자네는 혹시 술 좋아하나?”

“마셔 본 적은 있으나 즐기지는 않습니다.”

“흠흠! 그럼 단둘이 술 한잔 어떤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던 당우혁이 은근슬쩍 술자리를 제안했다.

이 좋은 분위기를 이용해 따로 약속을 잡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자 남궁호는 물론이고 팽만철과 제갈문곡이 당우혁을 노려봤다.

이렇게 얌체처럼 선수를 칠 줄은 몰랐기에 셋 다 눈빛이 아주 사나웠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이럴 줄 알고 말한 거네. 애초에 까일 걸 알고 물은 거지. 그래도 일단 운은 띄워 놓았으니 괜찮지 않나?”

“허!”

“배신자가 말은 번지르르하군.”

당우혁이 능글맞은 얼굴로 모두를 위해서 나섰다고 말했으나 그 말을 순순히 믿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하나같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당우혁을 쏘아봤다.

하지만 세 사람의 냉랭한 시선에도 당우혁은 기죽지 않았다.

“원래 미인은 용기 있는 자가 차지하는 법이지. 지금과 같은 경우는 인재겠지만.”

“슬슬 시작하시죠.”

대부분이 몸을 푼 듯했기에 반호진이 입을 열었다.

가만 놔두다가는 입씨름이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아서였다.

잠시 후 공터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천하십대고수 중 무려 세 명이 무한 대련 훈련에 참여한다고 하자 다들 기뻐했던 것이다.

까가가강! 터엉!

함성도 잠시, 이내 곳곳에서 금속음과 기합성이 들려왔다.

본격적으로 훈련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반호진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사람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만큼 부상 위험도도 높았고, 무리해서 대련을 이어 가는 경우도 있었기에 그걸 말려 줄 사람이 필요했다.

“흠.”

거기에 처음 합류한 세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했기에 반호진은 팔짱을 끼고서 지켜봤다.

마음속으로는 세 사람 중 누가 가장 먼저 지칠지 생각하면서 말이다.

서조운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이미 대부분의 후기지수들과 무인은 지쳐서 뻗은 상태였다.

하지만 서조운은 아직 여력이 있었다.

스스로의 한계를 알고 있어서였다.

‘더구나 이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서조운의 두 눈이 세 사람에게 향했다.

갑자기 추가된 인원이었으나 그를 비롯해서 누구 하나 싫어하는 이는 없었다.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세 사람과 감히 대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걸 모두가 알아서였다.

그리고 서서히 지치기 시작하는 세 사람을 보자 서조운은 내심 재미있었다.

‘공력은 몰라도 체력은 우리가 나을 수도 있어!’

무공의 경지는 아무리 후기지수들 중에서 손꼽히는 서조운이라고 해도 셋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었다.

서조운이 태어나기 전부터 무림에 이름을 날린 게 세 명이었다.

그러나 체력적인 부분만 따지자면 서조운은 자신 있었다.

일단 나이가 젊기도 하거니와 육체적으로 극한까지 가 본 경험은 그가 더 많다고 생각해서였다.

‘저분들이 언제 체력의 한계를 겪어 봤겠어. 적어도 최근은 아닐 거야.’

자신의 한계를 아는 건 아주 중요했다.

스스로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본인의 한계를 알거나 직접 느낀 이들은 드물었다.

벽을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 바로 이 과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계까지 간 이들은 반의반도 안 돼.’

서조운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처음 시작했던 열의와 달리, 이 훈련의 목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이들이 없는 것 같아서였다.

만약 알고 있는데도 저런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었고.

그런데 서조운이 보기에 모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반호진의 성격상 알고도 모른 체하고 있다면 가만히 넘어가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의지가 박약한 것이었다.

분명히 더 할 수 있음에도 스스로 포기한 것이니까.

‘의성이는 이걸로 옥석을 가릴 수도 있다고 했었지. 근데 보니까 틀린 말은 아니네.’

경지가 높다고 해서 의지력도 강한 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서조운은 오늘 새삼 느꼈다.

그가 보기에도 아직 여력이 있는데 그 힘듦을 버티지 못하고 포기하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한계를 넘으려면 그 한계까지 가야 하는데 말이다.

‘이 좋은 기회를.’

그걸 볼 때마다 서조운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초를 제대로 다지지 못하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너무나 잘 알아서였다.

재능이 있다면 당장은 빠르게 치고 나가지만 나중에는 그게 발목을 붙잡았다.

기초공사가 부실하면 건물을 높게 올리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뭐, 말해 줘도 모르겠지.’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래도 가시적인 성장은 없을 거라고 서조운은 장담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 정도에 만족할 수도 있고.

그리고 서조운은 다른 이들을 걱정할 정도로 오지랖이 넓지 않았다.

자신과 반호진, 좀 더 더하면 일행들만 이득을 챙기면 그만이었다.

‘일단 평판은 확실히 좋아지겠네.’

반호진을 바라보는 눈빛과 대하는 태도가 단 하루 만에 완전히 달라졌음을 서조운은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선뜻 다가가기 힘든 건 마찬가지였으나 그래도 반호진의 성격이 알려진 것처럼 거만하거나 오만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게 되었다.

단지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살갑지 않을 뿐이었다.

‘뭐, 그런 걸 신경 쓸 형님이 아니지만.’

서조운이 피식 웃었다.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음에도 딱히 신경 쓰지 않을 게 분명해서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예 관심이 없을 터였다.

‘나도 정신 바짝 차려야지.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으니까. 빨리 형님과 나란히 설 정도로 강해져야 해.’

서조운의 눈빛이 달라졌다.

다른 일행들은 모르나 그는 알고 있었다.

반호진이 예전부터 새외무림의 침공을 경계하고 있었음을 말이다.

직접 북해까지 갔었기에 서조운은 시간을 허투루 보낼 생각이 없었다.

또 남자로서의 야망도 있었다.

반호진처럼 천하에 이름을 알리고 절대고수로서 우뚝 서고 싶다는 야망이 말이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났으니 이름 정도는 천하에 남겨야지!’

서조운이 검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남궁호를 향해 당당하게 다가갔다.

천하십대고수 중 한 명이자 남궁세가의 가주였으나 반호진보다는 약했기에 크게 긴장되지는 않았다.

벌써 이번이 세 번째이기도 했고.

“오게.”

“예.”

지쳤음에도 정중하게 검을 든 채로 반장을 한 서조운이 달려들었다.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반호진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정도로 반달을 느리게 스쳐 지나가는 구름은 아름다웠다.

멈춰 있지 않아 더욱 생동감이 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보는 이의 마음을 평온하게 해 주는 광경에 반호진은 옅게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반 공자도 나와 같은 생각인 것 같구려.”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나와 있어야 했는데.”

“아니오. 빈도가 잠이 없어 조금 일찍 나온 것뿐이니.”

“편히 말씀하시지요. 저보다 한참 선배이신데.”

“빈도는 이게 더 편하다오. 허허허.”

반호진의 말에도 선풍도골의 노인, 운상은 고개를 저었다.

나이와 배분을 떠나 반호진은 한 명의 무인으로서 충분히 존중받을 만하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래도…….”

“정말 괜찮소이다. 사실 빈도 역시 한 명의 무인으로서 반 공자를 존경한다오. 반 공자의 나이에 그만한 경지를 이루는 게 보통 일은 아니지 않소.”

무당파의 장문인이자 검왕(劍王)이라 불리는 무인답지 않게 운상은 소탈한 미소를 지었다.

어제 만났던 방만춘과는 품격 자체가 달랐다.

그 사실을 새삼 느끼며 반호진이 머쓱하게 웃었다.

“존경이라니요.”

“반 공자는 충분히 존경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소이다. 경지도 경지이지만 중원무림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지 않았소이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반호진의 대답에 운상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실상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어서였다.

그간의 행적이 말해 주기에 운상은 그저 빙긋 웃었다.

“갑작스러운 청임에도 허락해 주어서 감사하오.”

“아닙니다. 저 역시 개인적으로 장문인을 한 번 뵙고 싶었습니다.”

“빈도를 말이오?”

“중원제일의 검호이시지 않습니까.”

“허허허. 그렇지 않소이다.”

진심이 담겨 있어서일까.

운상이 그답지 않게 당황했다.

하지만 반호진은 진심이었다.

적어도 그가 아는 한 중원에서 운상보다 검술이 뛰어난 무인은 없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과찬이오. 세상에는 빈도보다 뛰어난 실력자가 많소이다. 당장 반 공자도 그렇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운상은 반호진을 처음 보는 순간 느꼈다.

절대 자신의 아래가 아니라고 말이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건 빈도 또한 마찬가지라오. 세인들은 검왕이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과분하다고 생각한다오.”

“저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만. 가장 냉정한 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지 않습니까.”

반호진이 싱긋 웃었다.

지난 생에서도 운상을 좋아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겸손함 때문이었다.

일파의 장문인이라기보다는 천상 도인 같은 풍모라고나 할까.

그런데도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던 건 압도적인 실력을 가지고 있어서였다.

“그렇게 따지면 세인들이 반 공자를 과소평가하는 듯하오.”

“저의 경우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드니까요. 시간이 차차 해결해 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비무를 할 걸 그랬소이다.”

“저는 지금이 좋습니다. 운치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오직 운상 진인께만 집중할 수 있고요.”

운상이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듣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어서였다.

다른 이들의 말에 선입견을 가진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기에 운상은 역시 사람은 직접 만나 봐야 한다는 명언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좋게 말해 주어 감사하구려.”

“별말씀을요. 그럼 시작할까요?”

“좋소이다.”

스르릉.

귀가 맑아지는 듯한 마찰음과 함께 반호진과 운상의 검이 달빛을 받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주변의 공기가 달라졌다.

자연스럽게 둘의 기도가 달라져서였다.

일부러 기세를 일으킨 게 아니라 검을 붙잡자 자연스레 흘러나온 것이었다.

‘역시 검왕.’

잔잔하지만 언제라도 태풍이 될 것 같은 운상의 기도를 느끼며 반호진이 옅게 웃었다.

과연 검왕이라는 별호가 떠오를 정도의 존재감을 풍기고 있어서였다.

남궁호도 대단한 검객이지만 아직 눈앞에 있는 운상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걸 반호진은 새삼 느꼈다.

‘철혈성주와 엇비슷한 수준이야.’

전생에서도 천하사패의 패주들과 싸울 때 크게 밀리지 않던 무위를 보여 주던 게 바로 운상이었다.

다만 그때는 나이가 너무 많은 상태였기에 결과적으로는 패배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지난 생보다 구 년이나 젊어서 그런지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활력이 달랐다.

‘지금의 비무가 좋은 계기가 된다면…….’

반호진이 눈을 반짝였다.

이번 비무를 계기로 운상이 벽을 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그런 일이 생각한 대로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중요한 건 가능성이었다.

이미 미래가 바뀐 만큼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스윽.

‘더해서 나도 더 강해지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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