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184화 (184/468)

제 62장. 진실을 외면한 대가. -01

당우혁이 남궁호를 두둔했다.

만약 그가 반호진이었다면 절대 저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을 봐줄 시간에 차라리 개인 수련을 하는 게 이득이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반호진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굳이?’

반호진은 더 이상 증명해야 하는 무인도, 후기지수도 아니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중원무림을 대표하는 절대고수가 바로 반호진이었다.

물론 철혈마황과 싸우는 걸 직접 보지는 못했으나 염왕 남궁호와 개왕이 말한 걸 들었기에 당우혁은 순순히 인정했다.

팽만철이라면 의심이 생기겠지만 두 사람이 인정했다면 당우혁도 믿었다.

“표정이 왜 시간 낭비 하냐고 묻는 것 같구먼.”

“자네는 아니라고 생각하나?”

“저 아이의 실력을 생각하면, 낭비 맞지. 시간 낭비, 재능 낭비. 근데 저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흐음.”

남궁호의 말에 당우혁이 턱을 쓰다듬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어서였다.

그가 만나 본 반호진은 결코 멍청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저렇게 판을 벌인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였다.

“그나저나 딸내미를 정말 잘 키웠군. 오라비들보다 훨씬 나은데?”

“화영이가 아들로 태어났었어야 했는데…….”

천룡이라 불리는 남궁광과 비교해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는 팽화영의 수준에 남궁호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여자들 중에서는 독보적이고, 남자들과 비교해도 최상위권이었다.

그게 남궁호는 놀라웠다.

하지만 팽만철은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확실히 비교가 되긴 하는군. 둘 다 나쁘진 않지만.”

“딱 나쁘지 않은 수준이지. 도왕의 아들이라고 하기에는.”

당우혁과 남궁호가 냉정하게 말했다.

굳이 위로해 줄 필요가 없었을뿐더러 사실이어서였다.

동시에 팽만철의 심정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후우!”

“장녀를 검룡과 맺어 주려고 한다며?”

“맞아.”

“가능하겠어?”

“안 될 건 뭐야?”

이미 팽화영으로 인해 기분이 상당히 가라앉은 상태였기에 팽만철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나 남궁호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팽만철의 성격이 대단하다고 하나 그도 보통 성격은 아니었다.

“안 될 게 없긴 한데, 경쟁자들을 제치기에는 좀 부족하지 않나 싶어서. 한창 떠오르는 신성이잖나.”

“그러니까 충분하지. 본가와 선우세가의 차이도 생각해야지.”

“둘째는 호진이를 노리고?”

“맞아.”

“둘째도 가시밭길로 보내는 거 같은데.”

남궁호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팽화영도 힘들 거라는 듯한 표정과 눈빛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에 팽만철뿐만 아니라 당우혁도 발끈했다.

“지금의 표정, 조금 거슬리는데. 이미 다 잡은 물고기처럼 말하는군.”

“그렇게 될 테니까.”

남궁호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비록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지만 그는 자신했다.

결국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될 거라고 말이다.

“그 자신감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한데. 내가 보기에는 우리 둘째보다도 힘들어 보이는데.”

그런 남궁호를 향해 팽만철이 이죽거렸다.

암만 봐도 허세로밖에는 보이지 않아서였다.

동시에 저 자신감의 근원이 궁금하기까지 했다.

“남궁세가. 이 네 글자로 설명은 충분하지 않나.”

“오늘따라 거슬리는 말이 너무 많이 나오는데.”

마치 남궁세가가 천하제일가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 모습에 당우혁의 눈썹이 잔뜩 찌푸려졌다.

하지만 당우혁이 불편한 신색을 드러냈음에도 남궁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남궁세가면 뭐 해? 얼굴 반반한 것 말고는 없는데. 그나마 그것도 서린이에게 밀리는구만.”

“그렇지.”

“반면에 우리 화영이는 무인으로서 실력도 뛰어나지. 저 녀석의 짝으로는 아주 딱이지.”

“무공 밖에는 비빌 게 없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잘 가다가 결국 자기 딸내미 자랑으로 가는 팽만철의 헛소리에 당우혁이 피식 웃었다.

남자에게 있어 반려자의 무공은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아서였다.

“무인에게 있어 그게 가장 중요하지!”

“틀렸네. 무인이기 전에 남자라는 걸 간과하면 안 돼.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는 백이면 백 미녀일세.”

“우리 화영이도 어디 가서 꿀리는 외모는 아니야!”

“그러나 서린에 비할 바는 아니지.”

“끄응!”

무림삼봉 중 독봉이 바로 당서린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중 한 명이 당서린이었기에 팽만철은 차마 반박하지 못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하나 남궁호는 그조차도 낼 수 없었다.

미모로는 당서린에, 무공으로는 팽화영에게 밀려서였다.

“그런데 우리끼리 이런 대화를 하는 게 의미가 있나? 결국 결정권은 반호진에게 있는데. 우리들끼리 아무리 치고받고 싸워도 선택은 반호진이 하는 거니까.”

“그래서 두 손 놓고 있겠다고?”

씁쓸하게 말을 꺼내는 당우혁을 보며 팽만철이 히죽 웃었다.

사천당가가 빠져 주면 자신은 좋다는 듯이 말이다.

“그럴 리가. 누구 좋으라고.”

“쳇! 좋다 말았군.”

“안 되는 승부에 너무 목을 매는 것 같은데.”

“패는 뒤집어 봐야 아는 거야. 까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는 법.”

“이미 나와 있는 것 같은데.”

도발에는 도발로 응수한다는 듯이 당우혁이 씨익 웃었다.

일단 외모에서는 누가 뭐래도 당서린이 앞서 있어서였다.

그러나 팽만철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흥! 두고 보자고.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

“뭐, 꿈은 모두 공평하게 꿀 수 있는 것이니.”

“아직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어!”

팽만철이 콧김을 내뿜었다.

미모에서 밀리는 건 사실이나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남녀사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라서였다.

또 외모가 전부는 아니었다.

“맞네. 앞서 있는 건 사실이지만 결정된 건 전혀 없지.”

“이번에는 마음이 맞는군.”

“경쟁자이기는 하지만 말이지. 응?”

당우혁을 견제하기 위해 팽만철의 편을 들었던 남궁호가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대화는 두 사람과 하면서도 시선은 공터에 두고 있었는데 그곳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다가가고 있었다.

완벽한 능공허도(凌空虛道)의 수준은 아니었으나 거의 날 듯이 이동하는 움직임은 상당히 유려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능공허도가 아니라 다가가는 인물이었다.

“왜 그래? 어?”

뒤늦게 팽만철도 보았는지 퉁방울만 한 눈이 더욱 커졌다.

그 역시 전혀 생각지 못한 인물이어서였다.

“이거 일이 날 것 같은데.”

“그러게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처음에는 놀랐으나 남궁호는 이내 혀를 찼다.

그의 눈에는 결과가 뻔히 보여서였다.

그리고 그건 팽만철과 당우혁도 마찬가지였다.

“자기 무덤 자기가 판다는데 뭐 어쩌겠나. 우리는 지켜볼 수밖에.”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바로 싸움구경이지. 흐흐흐!”

남궁호와 마찬가지로 당우혁은 혀를 차기만 했다.

말릴 생각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팽만철은 아예 제대로 구경하겠다는 듯이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잘됐군. 안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팽만철의 옆에 남궁호가 앉았다.

반대쪽에는 당우혁이 묘한 미소를 머금고서 자리를 잡았다.

“잠시 멈추죠.”

“네?”

“예?”

두 번째 무한 대련 훈련을 하고 있던 반호진이 멈춰 섰다.

그의 기감에 누군가 다가오는 게 느껴져서였다.

하지만 후기지수들은 느낄 수 없었기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비무에 과도하게 집중한 이들은 반호진의 말을 듣지 못했다가 주변이 조용해지자 얼떨떨한 얼굴로 중지하며 두리번거렸다.

“방문자가 있는 것 같아서요.”

휘이익!

반호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갈한 백의무복을 입은 장년인이 공터에 내려섰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정말 상상도 못 한 인물이 반호진의 앞에 나타나서였다.

“어어?!”

“장문인이 왜 여기에?”

“근데 표정이 심상치 않은데?”

“사이가 안 좋나?”

누가 보더라도 딱딱한 표정으로 방만춘이 등장하자 후기지수들이 속닥거렸다.

그러나 그게 다 들렸음에도 방만춘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반호진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안녕하십니까, 장문인.”

“나를 아느냐?”

“만난 적은 없지만, 위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존경심이 전혀 보이지 않는구나.”

“예의에 어긋나지 않았으면 된 거 아닙니까?”

갑작스럽게 들어오는 시비조에도 반호진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번 생에서는 첫 만남이지만 지난 생에서는 만난 적이 있어서였다.

원래 이런 성격이라는 걸 알기에 당황할 것도 없었다.

“허! 듣던 대로 오만방자하구나.”

“오만하다는 말은 몇 번 들었습니다만 방자하단 말은 처음이네요.”

“네 소문이 자자하더구나.”

“그런 것 같더군요.”

방만춘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겸손하기는커녕 거만하기 짝이 없어서였다.

보통은 빈말이라도 아니라고 부정할 텐데 반호진은 그런 모습이 일절 없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로 대답하자 방만춘의 입매가 비틀어졌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야.”

“나쁠 것도 없지 않습니까.”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후기지수들이 슬금슬금 물러났다.

괜히 근처에 있다가 불똥이 튈 수도 있어서였다.

반호진이 떠오르는 신흥강자라지만 방만춘은 삼십 년 전부터 무명을 알리기 시작했던 무인이었다.

거기다 구대문파 중 한 곳인 공동파의 수장이 방만춘이었다.

“방장께서 그리 가르쳤더냐?”

“제가 장문인께 굽실거려야 합니까?”

담현을 걸고넘어지는 방만춘의 말에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방만춘의 속내가 너무 훤히 보여서였다.

그런데 그건 반호진만의 생각이 아닌지 다들 표정이 불안했다.

“내가 언제 굽실거려야 한다고 말했더냐? 방자하다고 말했지.”

“제가 꼭 장문인의 기준에 맞춰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강호의 선배에게 지켜야 할 예의가 있는 법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만. 제 어디가 잘못된 겁니까?”

방만춘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이렇게 정면으로 들이박으니 할 말이 애매해져서였다.

지금 상황에서는 무슨 말을 해도 꼬투리를 잡으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기에 방만춘이 반호진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의 강렬한 안광에 기죽을 반호진이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하시죠. 이미 다들 알고 있는데.”

“무엇을 말이더냐?”

“이곳에 온 이유. 저를 찾아온 목적 말입니다. 제 무공을 시험해 보려고 온 거 아닙니까?”

방만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묘하게 말투가 거슬려서였다.

일부러 반말과 존대를 섞어서 말하는 듯한 느낌에 방만춘은 심기가 불편해졌다.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면 갈 길 가시면 됩니다. 이곳에는 공동파의 제자도 없으니까요.”

반호진이 몸을 옆으로 틀었다.

언제든지 방만춘이 지나갈 수 있도록 비켜 준 것이었다.

그러나 반호진이 몸을 비틀었음에도 방만춘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렇게나 버르장머리가 없을 줄이야.”

방만춘이 입매를 비틀었다.

두 눈에는 노기를 담은 채로 말이다.

언뜻 보면 반호진이 무례를 범해 화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반호진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 억지를 부리는 것이었다.

그걸 반호진도 알고 일행들도 알았다.

스윽.

보다 못한 선우방이 불만 어린 표정으로 막 입을 열려고 할 때 반호진이 손을 들어 올렸다.

뒤에 있어 보이지도 않을 텐데 귀신같이 선우방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말린 것이었다.

“그렇게 판을 깔고 싶다면, 어울려 드리지요. 다만 그 대가는 치르셔야 할 겁니다. 그것도 값이 꽤 비싼 대가를 말이지요.”

“어른에 대한 공경도 없고.”

“원하신다면 망나니가 되어 드리지요.”

스르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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