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장. 근성이란. -03
체구가 크건 작건, 상대가 이름을 날리던 후기지수든 무명소졸이든 결과는 똑같았다.
어느 누구도 반호진의 일검을 받아 내지 못했다.
심지어 반호진은 왼손과 양발은 쓰지도 않았다.
권장지각에 일가견이 있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는데 반호진은 정말 오른손에 든 검만 사용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채가장의…….”
“인사는 안 해도 됩니다. 혹시 시간을 벌 생각이라면 버리시길 바랍니다.”
“절대 아닙니다!”
“인사는 합장이나 반장이면 됩니다.”
“예옙!”
단호한 반호진의 한마디에 청년이 바짝 얼어붙었다.
나이는 비슷할지 모르나 무림에서의 위치는 천양지차였기에 청년은 기합이 단단히 들어간 목소리로 대답했다.
까앙!
그리고 결과는 단 일수였다.
반호진의 일검을 청년은 받아 내지 못했다.
한데 그럼에도 청년의 얼굴은 밝았다.
그에게 있어 하늘에 있는 존재나 마찬가지인 반호진과 짧게나마 손속을 겨룰 수 있어서였다.
“가, 감사합니다!”
“또 보죠.”
“예!”
단 일격에 바닥을 볼썽사납게 나뒹굴었음에도 청년의 얼굴은 밝았다.
그러나 기뻐하던 그 기색은 얼마 가지 못했다.
쉴 틈 없이 계속 이어지는 비무에 점차 혼이 빠져나갔다.
“우웩! 웨애액!”
“쿨럭!”
그뿐만 아니라 곳곳에 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에 먹은 걸 죄다 보여 주었던 것이다.
“일어나시죠.”
“포기하시는 겁니까?”
하지만 선우방을 비롯해서 일행들은 구토한다고 봐주지 않았다.
반호진을 닮았는지 무표정한 얼굴로 후기지수들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헛구역질하는 시간도 봐주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더, 더는 못 하겠습니다…….”
“저도, 포기하겠습니다…….”
그 결과 곳곳에서 포기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반 시진까지는 좀 버티나 싶더니 한 명이 포기하자 우르르 포기했다.
마치 누군가 물꼬를 터 주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이다.
“헉헉헉!”
“끄으으읍!”
반면에 기를 쓰고 버티는 이들도 존재했다.
이미 체력이 바닥임에도 정신력으로 버텼다.
정신이 희미해져 감에도 이를 악물며 대련을 이어 갔던 것이다.
머리가 아닌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모습에 먼저 포기했던 이들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미쳤다.”
“진심 대단하다.”
“반 대협뿐만 아니라 전부 다 멀쩡하네.”
“이 짓을 매번 해 왔단 말이지…….”
먼저 포기했던 이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반호진 일행은 처음과 딱히 달라지지가 않아서였다.
반호진이야 내공을 못 쓰는 제한이 있다 하더라도 소림검성이라 불릴 정도의 검객이기에 사실 크게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운 좋게 반호진에게 간택을 받아서 빠르게 성장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도 노력했다는 걸 이번 기회에 후기지수들은 알 수 있었다.
“……내가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될 줄이야.”
“오늘부터 제대로 해야겠어.”
감탄 이후에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스스로의 체력이 겨우 이것밖에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름 열심히 노력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여기 있는 모두가 그 정도 노력은 하고 있었다.
“사룡들은 그나마 좀 버티네.”
“근데 다 죽상이야.”
반호진 일행이 워낙에 압도적이라서 그렇지 과거 사룡이라 불리던 후기지수들의 실력도 대단했다.
넷 다 지쳐 보이기는 해도 어찌어찌 대련을 계속 이어 나가고 있었다.
“흐으읍!”
“끄으으응!”
그리고 금호연의 호위대도 위태로워 보이기는 해도 나름 잘 따라오고 있었다.
현재까지 단 한 명도 포기하지 않고 악과 깡으로 버티는 모습에 금호연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게 어떤 기회인지 본인들이 잘 알기에 죽기 살기로 하는 것이었다.
“팽 소저가 확실히 눈에 띄기는 하네요.”
“어, 여자분들 중에서는 제일 안 지치신 것 같습니다.”
남자들도 우수수 떨어지는 마당에 아직도 대련을 이어 가고 있는 팽화영을 보며 사마의성이 입을 열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독봉과 매봉이 버티고 있기는 하나 말 그대로 겨우겨우 버티는 중이었다.
그러나 팽화영은 달랐다.
지친 기색은 보이지만 그렇다고 금방 쓰러질 것 같지는 않았다.
“형님께서 인정하신 여도객답네요.”
“호오. 반 대협께서 말입니까?”
“예. 구룡과 견주어도 될 도객이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형들과 대련해도 크게 밀리지 않고요.”
사마의성의 말에 금호연이 깜짝 놀랐다.
그 정도일 줄은 몰라서였다.
더구나 평범한 후기지수도 아니고 반호진이 직접 한 말이었기에 금호연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눈빛으로 팽화영을 쳐다봤다.
‘아름답다.’
호위대에 집중하느라 사실 금호연은 다른 이들은 잘 살펴보지 않았다.
상인이기에 후기지수처럼 잘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럴 바에는 호위대에 집중하는 게 맞았기에 반호진 일행을 제외하면 호위대의 대련만 지켜보고 있었는데 사마의성의 말에 팽화영을 보고는 두 눈을 번쩍 떴다.
호리호리한 체격과는 어울리지 않는 거패도를 들고 있었음에도 팽화영의 움직임은 춤사위처럼 아름다운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단하죠?”
“……예. 그리고 아름답네요.”
“몇 번 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체력 분배도 잘하네요.”
팽화영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금호연의 모습에 사마의성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단단히 빠져든 것 같아서였다.
근데 사마의성이 보기에도 팽화영의 움직임은 아름다웠다.
또한 독봉과 매봉과 비교하면 간결하고 효율적이었다.
“허억!”
“더 이상은 못 하겠다…….”
얼굴에 땀이 한가득이기는 해도 처음과 비교해서 속도나 반응하는 게 별 차이가 없는 팽화영과 달리 매봉과 독봉은 포기했다.
이 이상은 더 할 수가 없어서였다.
쿵!
거기에 사룡들도 합세했다.
이를 악물고 버텼으나 결국 바닥에 주저앉으며 사룡들도 포기한 이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서 있을 힘조차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들을 꼴사납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도 똑같이 기어 왔기에 모두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어 오는 사룡들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말이다.
“괜히 용의 칭호를 얻은 게 아니라는 건가.”
“대단하긴 대단하네.”
“한 명도 포기 안 했어.”
“이 짓을 얼마나 했으면…….”
처음에만 인사를 했을 뿐 몇 바퀴가 돌자 이제는 그런 시간도 없었다.
그저 기계처럼 상대를 바꿔 가며 대련을 이어 나갔는데 처음의 팔 할 가까이가 포기했음에도 반호진 일행 중 포기한 사람은 없었다.
조금 지쳐 보이기는 했으나 여전히 움직임이 가벼웠다.
그중 압권인 건 역시나 반호진이었다.
터어엉!
시원스러운 타격음과 함께 반호진의 일검을 받아 낸 후기지수가 뒷걸음질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검끼리의 충돌을 통해 전달되는 힘을 버티지 못하고 넘어진 것이었다.
그런 상대를 향해 반호진은 반장을 하고는 새로운 상대를 찾아 이동했는데 놀라운 건 얼굴 어디에도 땀이 보이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꿀꺽!
누구보다도 많은 이를 상대한 게 반호진이었다.
워낙에 빨리 결판이 나다 보니 그만큼 많은 이들을 상대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도 반호진은 처음의 모습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여기 앉아 있는 이들의 전신이 땀범벅인 것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걸 본 후기지수들이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새삼 반호진과의 격차를 느낄 수 있어서였다.
꾸욱!
동시에 스스로를 자책했다.
자신이 얼마나 안일하게 수련했음을 반호진 일행을 보고서 느낄 수 있어서였다.
심지어 팽화영보다도 체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에 용의 칭호를 가지고 있는 후기지수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움켜쥐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 이번에도 영광이었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죠.”
“예!”
지칠 대로 지쳤음에도 정신력으로 아직까지 버티고 있는 금호연의 호위대주에게서 몸을 돌리며 반호진은 새로 얻은 검을 만지작거렸다.
확실히 혼자서 검무를 추는 것보다 이렇게 연속적으로 대련을 하니 길이 빠르게 드는 느낌이었다.
손에 잡히는 감각도 훨씬 좋았고.
원래 쓰던 검과 최대한 흡사하게 만들었다고 하나 새 검은 새 검이었다.
‘나쁘지 않아.’
예상보다 빠르게 길이 들어 가는 느낌에 반호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러나 다음 상대는 기겁했다.
반호진의 미소가 상대에게는 사신의 미소처럼 다가와서였다.
이미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으나 이상하게도 반호진의 미소는 선명하게 뇌리에 박혔다.
후우웅!
처음에 아무것도 못 하고 일격을 당해서 그런지 이제는 말도 없이 먼저 공격해 들어왔다.
하지만 반호진은 오히려 이게 좋았다.
아무것도 보여 주지 못하고 당하는 것보다는 무엇이든지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였다.
그게 발악일지라도 반호진은 후기지수들이 근성을 보여 주었으면 했다.
퍼어억!
비록 그 결과가 앞전과 똑같이 내동댕이 당하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 훈련의 목적은 대련에 있지 않았다.
물론 체력과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으나 반호진이 바라는 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다.
바로 집중력과 힘의 분배였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이 훈련의 목적이었다.
또한 무작정 힘을 쏟아붓는 게 아닌, 적당히 분배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반호진은 이 훈련을 만들었다.
흔히 말하는 하루, 혹은 사흘 동안 계속해서 싸울 수 있도록 말이다.
“진짜 다섯 명만 남았네.”
“매일 이런 수련을 했으니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팽화영을 끝으로 모두가 포기하자 무한 대련 훈련이 끝을 맺었다.
반호진 일행들을 제외한 모두가 같은 표정을 지은 상태로 말이다.
“이제 첫 번째 훈련이 끝났을 뿐입니다. 반 시진 정도 쉬면서 개인 정비하고 두 번째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헉!”
이제 겨우 한 번 끝났다는 말에 후기지수들이 대경실색했다.
상상조차 못 한 말에 모두 깜짝 놀란 것이었다.
하지만 반호진을 비롯해서 일행들과 팽화영의 표정은 담담했다.
“못 하겠다 싶은 분들은 떠나시면 됩니다.”
“으음!”
그런 후기지수들을 향해 반호진은 말을 하며 팔을 들었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반호진의 말에도 후기지수들은 눈치만 볼 뿐 떠나는 이는 없었다.
진짜 힘들지만 이 훈련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였다.
“한 번 죽지, 두 번 죽나!”
“저들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 있어.”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어야지!”
고민하던 이들이 이를 악물었다.
너무 힘들었지만 어떻게 보면 기회였다.
반호진을 비롯해서 현재 떠오르는 신성들과 계속해서 비무를 할 수 있는 기회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물러나면 겁쟁이밖에 안 되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이들도 있었다.
“저희는 전원 참석하겠습니다!”
반대로 열렬히 찬성하는 이들도 있었다.
바로 금가장의 호위무사들이었다.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기에 호위대원들은 다들 광기 어린 눈으로 반호진을 바라봤다.
“허어. 저런 방법이 있었네.”
“단순무식하긴 한데, 효과는 확실하겠군.”
“원래 단순한 게 최고야.”
반호진의 거처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세 명의 중년인이 모여서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셋 다 눈이 반짝거렸다.
한눈에 저 훈련의 목적을 알아차려서였다.
“쉬는 시간도 주지 않으니 애들로서는 미칠 맛이겠어.”
“저 녀석도 은근히 악질이라니까.”
팽만철이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러나 남궁호는 팽만철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악질이라니. 어떤 고수가 저렇게 시간을 내주겠는가?”
“나도 같은 생각이야. 저러기가 쉽지 않지. 더욱이 저 아이 입장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