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177화 (177/468)

제 59장. 신흥거물. -04

팽만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에서 불편한 기색이 잔뜩 담겨 있는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부상한 반호진을 달갑지 않아 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담현을 바라보는 이들도 꽤 있었다.

“허어. 인정하기 싫은 이들이 꽤 있는가 보오?”

일부러 낸 헛기침 소리에 팽만철이 히죽 웃으며 좌중을 둘러봤다.

그런데 헛기침을 한 이들을 바라보는 그의 두 눈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았다.

“인정하기 힘든 분들은 일우 장문인께 직접 물어보면 될 것 같소만.”

담현과 대화할 때와는 전혀 다른 어조로 남궁호가 입을 열었다.

석연치 않은 게 있다면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말이다.

“흠흠! 일우 장문인.”

“말하시오.”

“신룡이 정녕 그렇게 강하오? 소문으로는 혼자서 철혈마황을 쓰러뜨렸다고 하는데. 혹시 다른 분께서 힘을 빼놓은 후에 마지막에 나선 것 아니오?”

처음부터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던 공동파 장문인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봤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다들 망설이고 있는 듯하기에 대표로 물은 것이었다.

원래 궁금한 게 있으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했고.

“장문인은 검성이라는 별호를 인정하기 싫은가 보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앉아 있던 일우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신룡이라 부르는지 그는 이유를 알고 있어서였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었다.

공동파 장문인의 저의를 말이다.

“커험! 나이가 이제 겨우 스물한 살이라고 들었소. 그런 후기지수에게 검성이라는 별호는 아직 너무 이르지 않소? 불혹이 넘은 검객조차도 쉽사리 얻지 못하는 게 검성이라는 칭호인데.”

“그래서 부럽소이까?”

일우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속내가 훤히 보이는데 너무 돌려 말하는 것 같아서였다.

“부럽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오!”

“너무도 부럽다는 말을 애써 포장하는 것처럼 들리는데.”

격하게 부정하는 공동파 장문인을 보며 일우가 비릿하게 중얼거렸다.

그가 오만하기는 해도 인정할 건 인정하는 성격이었다.

애초에 오만하다는 것도 과할 정도로 솔직한 성격 때문에 얻은 것이기도 했고.

“말이 심하시오!”

“그럼 반 공자에게 직접 물어보시구려. 나보다는 당사자에게 직접 묻는 게 정확하지 않겠소이까. 아, 물론 거기에 이 한마디를 꼭 붙이시오. 네놈에게 붙은 검성이라는 칭호가 너무 탐이 난다고. 그러니 나에게 양보하라고.”

“장문인!”

“왼팔을 잃었다고 내가 만만해 보이기는 하는 모양이오. 예전에는 이처럼 내게 큰소리를 내지 못했던 거 같은데.”

“으음!”

공동파 장문인의 안색이 일변했다.

마지막 말과 함께 일우에게서 서릿발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와서였다.

전에 봤을 때보다 더욱 예리해진 듯한 기세에 공동파 장문인은 자기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보기에 좀 그렇소이다, 장문인. 아무리 질투가 나도 그렇지 이런 자리에서 그렇게 속마음을 드러내서야.”

“나이라. 저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만. 무인에게 있어 나이가 중요할까요. 결국 무인은 스스로를 증명하는 자인데. 중요한 건 실력이지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만약에 반 공자가 무례를 저질렀다면 모를까, 제가 아는 반 공자는 까탈스럽기는 해도 오만방자하지는 않은데 말이지요.”

팽만철과 남궁호가 일우를 거들었다.

확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철혈성과 함께 싸운 전우였다.

더욱이 반호진과 관련된 일이었기에 세 사람의 생각은 같았다.

“나 역시 세 분과 같은 생각이외다. 더구나 별호라는 건 스스로 달고 싶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소이까. 사람들이 불러 주고, 붙여 주는 게 별호인데 검성이라는 칭호가 문제가 있나 싶소이다. 만약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면, 그걸 증명하면 되지 않소이까? 탐이 난다면 실력으로 가져오면 될 일이고.”

개왕의 시선이 공동파 장문인을 비롯해서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들을 차례대로 훑었다.

숭산까지 왔으니 이참에 도전해 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 말에 냉큼 나서는 이는 없었다.

일우에 팽만철, 남궁호, 개왕이 반호진을 두둔하는 것처럼 말하자 세간에 퍼진 소문이 진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만약 그게 진짜라면, 네 사람이 협공한 뒤에 반호진이 나선 게 아니라 처음부터 반호진이 나서서 철혈마황을 쓰러뜨린 거라면 여기 있는 누구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심지어 말을 꺼냈던 공동파 장문인은 천하십대고수에 속한 것도 아니었다.

천하십대고수급이라 남들이 치켜세워 주긴 하나, 비견될 정도라고 해서 그게 실력이 비슷하다는 걸 뜻하지는 않았다.

스윽.

그걸 본인들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았기에 개왕의 시선을 마주하는 이들은 없었다.

동시에 시선을 피한 이들은 궁금했다.

살벌한 기세를 내뿜는 일우조차도 어쩌지 못한 철혈마황을 반호진이 잡았다는 사실이 말이다.

“흥.”

하나같이 개왕의 시선을 피하는 모습에 팽만철이 콧방귀를 뀌었다.

능력도 없는 주제에 욕심만 덕지덕지 묻어 있는 것 같아서였다.

정작 철혈성이 침공했을 때는 이런저런 핑계만 대며 합류하지 않았었기에 팽만철은 눈곱만큼도 동정하지 않았다.

“방장께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소이다.”

“편히 말씀하시지요.”

담현도 적은 나이는 아니었으나 개왕은 그보다 나이가 훨씬 더 많았다.

그렇기에 담현은 공손하게 대답했다.

“방장께서는 알고 계셨소이까?”

“호진이의 실력에 대해서 말씀이십니까?”

“그렇소이다.”

개왕의 질문에 모두의 시선이 담현에게 집중되었다.

반호진의 실력도 놀라웠지만 한편으로는 개왕과 똑같은 궁금증이 일었다.

사부인 담현이 반호진의 무경에 대해서 알고 있나 하는 궁금증 말이다.

“사부인 제가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허어.”

“대단합니다. 비결이 혹시 있을까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는 담현에게 남궁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알 수만 있다면 알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이 질문에 담현이 딱히 해 줄 말은 없었다.

“죄송하지만 비결이라고 할 게 없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잘하던 제자인지라. 게다가 검을 익히기도 했고요. 전체적인 무론에 대해서는 알려 주었지만 혼자 독학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독학으로 저 정도라.”

“달마삼검이 그 정도로 대단한 무공이었나.”

여기저기에서 숙덕거리는 게 들려왔다.

자기 딴에는 작게 중얼거린다고 생각하겠지만 담현의 귀에는 다 들렸다.

“비법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설사 있다고 해도 말해 주실까.”

얼굴 가득 아쉬운 표정의 팽만철과 달리 물었던 남궁호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반대 입장이었어도 순순히 말해 주지는 않을 것 같아서였다.

“대제자가 좀 불편해할 것 같습니다.”

“법무도 알고 있습니다. 둘의 사이도 예전과 다름이 없고요.”

공동파 장문인이 짐짓 걱정된다는 투로 한마디를 내뱉었으나 담현은 인자하게 웃었다.

그 모습에 공동파 장문인이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방장께서는 든든하실 것 같습니다. 반 공자 같은 제자가 있으니. 제 자식도 얼른 자리를 잡아야 할 텐데.”

“천룡도 뛰어나다고 생각합니다.”

“못나지는 않았지만, 워낙 대단한 동갑내기가 있어 빛이 바래는 느낌입니다.”

“자네만 그런 게 아냐. 내 자식들도 마찬가지야. 다른 가주들도 똑같을 테고.”

씁쓸한 얼굴의 남궁호를 보며 팽만철이 입을 열었다.

지금 남궁호가 느끼는 심정을 그 역시 똑같이 느끼고 있어서였다.

동시에 후기지수들 전부가 반호진을 보며 좌절할 터였다.

그들에게 있어 너무나 큰 벽처럼 느껴질 테니까.

“자자, 반 공자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합시다. 그 얘기를 하려고 모인 게 아니니.”

자식들과 제자들 생각에 분위기가 한없이 침체되자 당우혁이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들의 심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대화가 한쪽으로 치우쳐진 것 같아서였다.

동시에 입안이 썼다.

경쟁자가 줄기는커녕 더 늘어난 것 같아서였다.

‘그때 확 낚아챘어야 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당우혁은 아까웠다.

본가에 왔을 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너무나 아쉬웠다.

그런데 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아무리 잡아채려고 해도 반호진이 순순히 잡히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만약에 낚아채는 게 쉬웠다면 남궁세가나 하북팽가가 지금처럼 한숨만 쉬고 있지는 않을 터였다.

‘아깝구나, 아까워.’

물론 그렇다고 해도 아쉬운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탐이 났다.

예전에도 사천당가에 품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 마음이 더욱 커졌다.

그러나 문제는 그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닐뿐더러 반호진이 순순히 잡혀 줄 리가 없다는 점이었다.

“원래 약속을 하고 모인 건 아니지 않습니까?”

“난 그냥 왔는데.”

“팽가주야 뭐.”

아무 생각 없다는 듯이 말하는 팽만철을 보며 남궁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데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모습을 보였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다들 그러려니 했다.

아니, 오히려 제때 와 줘서 고마워했다.

“다들 같은 생각으로 이곳에 모였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철혈성은 물리쳤지만, 아직 구천문이 남아 있습니다.”

“구천문은 사천당가가 맡기로 한 거 아니었습니까?”

원래부터 밉상이었지만 오늘따라 더욱 밉상스럽게 보이는 공동파 장문인을 보며 당우혁이 미간을 좁혔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참 말을 생각 없이 하는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그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닌지 몇몇 이들이 똑같이 눈살을 찌푸렸다.

“본가가 맡기로 약속한 적은 없습니다만.”

“타 문파가 끼어드는 걸 싫어하지 않습니까?”

“그런 적 없습니다. 그저 본가와 얽혔기에 주도적으로 나선 것뿐입니다.”

“흐음. 그럼 도움을 청하는 것이구려.”

“그렇습니다.”

당우혁은 순순히 인정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으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예상과 달리 구천문의 전력은 막강했고, 사천당가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벅찼다.

그렇기에 당우혁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본파는 언제라도 사천당가를 도울 의향이 있습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꺼림칙한 기색의 공동파 장문인과 달리 청성파와 아미파는 선뜻 도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천당가와 마찬가지로 사천성에 터를 잡고 있기도 하거니와 구천문의 침공이 위협적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천하의 사천당가를 독으로 몰아붙인 곳이니만큼 후대를 위해서라도 물리칠 수 있을 때 물리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두 문파 다 사천당가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기도 했고.

“감사합니다.”

“저는 거기에 의견을 좀 더 추가하고 싶습니다.”

“말씀하시지요, 제갈세가주.”

선뜻 도우겠다는 청성파와 아미파 장문인을 향해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당우혁이 제갈문곡을 바라봤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제갈세가의 주인이 제갈문곡이었기에 당우혁은 그의 의견을 들을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물리치기는 했으나 철혈성처럼 또 다른 새외의 세력이 중원을 침공해 올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참에 그에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갈세가주의 말은 혹시 무림맹을 염두에 두고 계신 것이오?”

“그렇습니다, 개방주님.”

괜히 연륜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닌 듯 개왕은 단숨에 제갈문곡의 저의를 파악했다.

그러자 좌중이 술렁거렸다.

무림맹이라는 단어가 그만큼 무거워서였다.

“허어. 무림맹이라.”

“구천문 때문에 무림맹을 발족한다라.”

놀람과 동시에 각기 다른 반응들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찬성하는 이들도 있지만 달갑지 않아 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었다.

“지금 당장 무림맹을 발족시켜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만약의 사태가 닥칠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갈세가주께서는 구천문 말고도 다른 곳이 침공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맞습니다. 이미 철혈성이 야욕을 드러내지 않았습니까. 다른 곳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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