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174화 (174/468)

제 59장. 신흥거물. -01

“근데 이걸 다 밖으로 꺼내려면 고생 좀 하겠는데.”

정신을 차린 선우방이 살짝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장관이기는 하나 이 많은 걸 막상 옮길 생각을 하자 막막했던 것이다.

“그래서 안 할 거야?”

“당연히 해야지. 몸살이 나더라도 해야지. 그래도 혼자 하는 건 아니니까. 다만 문제는 운송인데.”

“안 그래도 청림표국에 연락을 넣어 뒀어. 신호를 보내면 바로 올 거야.”

“역시 철두철미하네.”

“한두 번 작업한 거 아니잖아?”

반호진이 씨익 웃었다.

하다 보면 는다고 그가 딱 그 꼴이었다.

처음에는 어수룩하고 어설펐지만 지금은 달랐다.

“청림표국이면 소림사 산하에 있는 표국이죠?”

“맞아. 속가제자들이 모여서 시작한 게 시초였지.”

“그럼 믿을 수 있죠.”

“나름 중원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표국이기도 하고.”

“대단한 거죠. 중원에 표국이 얼마나 많은데요.”

서조운이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소림사 산하인 만큼 믿을 수 있어서였다.

금가장과 하오문도 있었지만 그래도 신용적인 부분에서는 청림표국이 훨씬 나았다.

“일단 가장 믿을 수 있으니까. 대신 밖으로 우리가 날라야 해. 계곡까지 오는 시간도 있으니까.”

“다행이네요. 그래도 오전에 도착해서. 오후 늦게 도착했으면 밤새 해야 했을 텐데.”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이 서조운이 몸을 떨었다.

어둡다고 해서 보이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로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짐을 날라야 했기에 어두운 것보다는 밝은 게 훨씬 좋았다.

“밤을 새워서라도 해야지. 여기서 얻은 것들을 공평하게 육 등분할 거니까.”

“어…….”

“그건 좀…….”

처음 듣는 것도 아니건만 다들 반호진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여기에 다 같이 오기는 했으나 도흉을 잡은 건 반호진이었다.

그래서 다들 똑같이 나누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모두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네에?!”

“뭘 그렇게 놀라? 우리가 늘 이렇게 해 왔다는 거 너도 들었잖아?”

“듣긴 들었는데, 공평하게 나누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솔직히 저희들은 숟가락만 얹은 거나 다름없으니까요.”

사마의성의 말에 반호진을 제외한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함께 오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똑같이 나누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였다.

물론 그들도 철혈성과의 전쟁에서 나름 활약을 하긴 했었다.

그러나 이 정도 재화를 공평하게 나눠 받을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왜들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네. 전쟁을 나 혼자 치렀나? 모두가 자기가 맡은 곳에서 제 몫을 다했기에 나는 무사히 전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왜 이곳에서의 인건비는 생각 안 해? 이거 나르는 것도 일이야. 의성이는 기관진식을 파훼하기도 했고. 다 분배받을 자격이 있어.”

“어…….”

“그러니까 군말 없이 받아. 처음도 아닌데 왜들 그래? 의성이야 처음이니 이렇게 나올 수 있다 치더라도. 너희들은 아니잖아?”

“우리도 염치가 있으니까 그렇지.”

“똑같이 고생했으면 똑같이 나누는 게 맞아.”

가장 연장자이기에 대표로 입을 열었던 선우방이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말을 해도 반호진이 뜻을 거두지 않을 것임을 느껴서였다.

대신 선우방은 절충안을 제시했다.

“그럼 넌 가만히 있어. 우리가 나눌 테니까. 밖으로 빼내는 것까지 같이하면 우리는 못 받는다.”

“좋은 생각 같아요!”

“묘안입니다.”

선우방의 절충안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서조운과 모용척이 곧바로 대답했다.

정확하게는 다른 여지를 두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반호진이 거절할까 봐 둘은 선수를 쳤다.

“뭐, 밖에서 지킬 사람도 필요하기는 하니까. 외진 곳이기는 해도 또 막상 사람이 아예 못 찾아올 곳은 아니니.”

“청림표국의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게 신호도 계속 보내야 하잖아요. 그러니 형님이 적임자입니다!”

“일부러 그쪽으로 몰아가는 것 같은데.”

반호진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서조운을 쳐다봤다.

네 속내가 다 보인다는 듯이 말이다.

그 눈빛에 서조운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일단 움직이자. 해지기 전에는 끝내야지. 산에서는 해도 금방 지잖아.”

이대로 대화를 마무리 짓겠다는 듯이 선우방이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앞장서서 챙겨 온 보자기를 풀어 금괴들부터 담았다.

일정한 규격을 가지고 있는 만큼 쌓고, 이동하기에 용이했기에 선우방은 금괴를 선택했다.

“근데 침실은 안 열어 봐요?”

“노괴 침실은 봐서 뭐 하게?”

“그것도 그러네요.”

“정 그러면 내가 살펴보고 있을게.”

아직까지 닫혀 있는 중앙의 석문을 향해 반호진이 움직였다.

일행들이 물건들을 나르는 사이 그가 살펴볼 생각이었다.

침실이기에 딱히 특별한 건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온 김에 살펴봐서 나쁠 건 없었다.

“잠시만요. 혹시 모르니까 제가 먼저 살펴볼게요. 가끔 다 같이 죽자는 식으로 자폭장치를 설치해 두는 경우가 있어서요.”

“헉!”

사마의성의 말에 반호진을 제외한 모두가 퍼뜩 놀랐다.

만약 여기서 동굴이 무너진다면 생사를 장담할 수가 없어서였다.

제법 깊이 들어온 만큼 진짜 자폭장치가 있다면 전원 생매장이었다.

“확실히 그런 경우가 있긴 하지. 빼앗길 바에는 다 같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도흉 역시 그걸 바랄지도 모르고.”

“무공서고에 아무런 장치가 없던 게 좀 찝찝하기도 하고요.”

“독은 약했지.”

“맞아요.”

사마의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부러 어설픈 함정을 설치해서 마지막으로 방심을 유도한 것일 수도 있기에 확인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

“좋아. 들어가 보자고.”

“네.”

“우리는 나르고 있을게.”

침실은 두 사람에 맡기고 선우방은 서조운, 정이륭, 모용척을 이끌고 금고로 향했다.

양이 엄청난 만큼 부지런히 날라야 했다.

“역시 있었어요.”

“어쩐지 순순히 말해 준다 싶었어.”

사마의성과 함께 침실에 들어간 반호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혹시나 했던 게 역시나여서였다.

“바로 파괴할게요.”

“그래도 안 무너져?”

“네. 어려운 건 아니에요. 복잡한 장치였으면 좀 고생했을 텐데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에요. 제가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부탁해.”

남의 기관진식을 파훼하는 건 처음인데도 사마의성은 의외로 능수능란하게 작업했다.

긴장하기는 했어도 손놀림에 망설임이 없는 모습에 반호진은 자기도 모르게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새삼 마군사가 합류했음을 느낄 수 있어서였다.

지금도 대단하지만 경험이 좀 더 쌓이면 사마의성은 더욱 엄청나질 것이었다.

“다했어요! 이제 터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고생했어. 그럼 우리도 움직이자.”

“네!”

이마에 맺힌 구슬땀을 소매로 닦아 내며 사마의성이 환하게 웃었다.

자기 몫을 다해서 그런지 개운한 표정이었다.

***

모두가 잠자리에 들 시각에 서조운은 사마의성의 방문 앞에 섰다.

따로 얘기 좀 나누자는 친구의 말에 방문한 것이었다.

똑똑똑.

“들어와.”

“말하기도 전에 먼저 말하냐?”

“이 시간에 올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까.”

“형님께서 불쑥 찾아올 때도 있잖아?”

“그때는 일부러 기척을 내 주셔서 알 수 있어. 앉아.”

사마의성이 싱긋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그러고는 미리 데워 둔 차를 따랐다.

서조운이야 내공으로 차를 데울 수 있지만 사마의성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기에 정성 들여 달여야 했다.

“흐음. 좋네. 근데 왜 똑같은 찻잎인데 내가 달인 차랑 네가 달인 차랑 맛이 다르지?”

“괜히 다도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거든. 정성도 정성이지만 미세한 온도 차이, 우려내는 시간 등등의 감각이 필요해. 이건 알려 준다고 해서 따라할 수 있는 게 아니지.”

“나도 감각에는 일가견이 있는데.”

“너만의 방식을 찾으면 돼. 나도 하다 보니까 이 정도 수준까지 올라온 거라. 따로 조언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제일 짜증 나는 말이지. 하다 보니까 이 경지까지 올라왔다.”

서조운이 키득거렸다.

어느 분야든 재능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아서였다.

막말로 재능으로 웬만한 후기지수들을 찜 쪄 먹은 게 바로 자신이었다.

그렇기에 서조운은 친구의 말에 순순히 수긍했다.

“너는 모를 수가 없지. 너 자체가 재능의 화신인데.”

“대신에 죽을 뻔했잖아. 나 형님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사경을 헤매고 있었을 거야. 열여덟 살이니 길어야 일 년 반에서 이 년이었겠지.”

“천운이기는 하지.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사실 난 지금도 이곳에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

“나도 그래.”

서조운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금이야 사마의성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지만 처음에는 아니었다.

심지어 반호진은 사마의성에 대해서 따로 알아보지도 않았다.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이 초면에 의심도 하지 않고 사마의성을 받아들였다.

그게 서조운은 아직도 신기했다.

반호진의 성격상 말이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깐깐한 성격을 지닌 게 형님인데 말이지.’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이었다.

또 자기만의 명확한 기준이 있다는 걸 서조운은 알고 있었기에 굳이 캐묻지 않았다.

그가 물어본다고 해서 반호진이 순순히 대답해 줄 거라는 보장도 없었고.

“너도?”

“응. 우리 형님 성격 너도 이제는 알잖아?”

“말이 안 되기는 하지. 나도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잖아. 잘못 들은 줄 알고. 지금이야 내가 좀 알려졌지만 처음 이곳을 찾아왔을 때는 진짜 무명소졸이었는데. 거기다 내가 사기꾼인지, 아닌지 구별도 안 갔잖아.”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잘됐잖아? 어쩌면 형님께서는 미래를 내다보신 걸지도 몰라.”

“좀 그런 게 있기는 한 거 같아. 범인들은 보지 못하는 걸 혼자 보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마의성이 턱을 쓰다듬었다.

소림사 역사상 최고의 천재라 불리는 만큼 반호진은 똑똑했다.

그런데 반호진은 단순히 똑똑한 걸 넘어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진 듯했다.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맞아. 나도 가끔 소름이 돋을 때가 있어. 그런데 이 시간에 갑자기 왜 보자고 한 거야?”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나한테만 물어볼 게 있는 모양이구만.”

서조운이 눈썹을 과장되게 꿈틀거렸다.

친구의 속내가 훤히 보인다는 듯이 말이다.

그 모습에 사마의성인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맞아. 눈치는 빠르다니까.”

“내가 한 눈치 하기는 하지.”

“쓸데없는 곳에서만.”

“뭐야?!”

“너는 잘 모르는 것 같지만.”

사마의성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더는 말해 주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게 서조운의 심기를 건드렸다.

“그런 말을 하려면 증거부터 대고 말을 해. 그래야 신빙성이 있지.”

“모르는데 내가 말한다고 알아들을까?”

“지금 싸우자는 거지?”

“그건 아니고. 본론으로 돌아가서, 네 생각이 궁금해서 보자고 했어. 너는 서가장으로 돌아갈 생각이야, 아니면 끝까지 형님을 따를 생각이야?”

“흐음?”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어서일까.

서조운은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미묘한 눈으로 사마의성을 바라봤다.

“별다른 뜻은 없어. 그냥 개인적으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이륭 형과 너는 상황이 다르니까.”

“그걸 네가 왜 궁금해하는데?”

서조운이 반문했다.

굳이 사마의성이 이걸 물을 필요가 있나 싶어서였다.

“네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 같아서.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어. 그래서 네 생각이 알고 싶었을 뿐이야. 네가 확실하게 갈 길을 정해야 나도 계획을 수립할 수 있으니까.”

“계획? 무슨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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