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신재림-172화 (172/468)

제 58장. 이쪽 방면의 전문가. -01

사마의성의 두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반호진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느껴져서였다.

기대감을 절로 불러일으키는 반호진의 음성에 사마의성이 눈을 빛냈다.

“이런 일은 전문가에게 맡겨야지.”

“전문가요?”

“응. 우리에게는 하오문과 금가장이 있잖아.”

“아!”

“인맥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니까.”

반호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제아무리 사기꾼이 똑똑하고 준비를 잘했다고 해도 이 세상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기 마련이었다.

특히 하오문은 뒷조사에 특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마의성의 얼굴이 밝아졌다.

하오문의 역량을 생각하면 빠르고 정확하게, 거기에 은밀하게 알아낼 터였다.

“형님께서 괜히 하오문에 빚을 지는 건 아닐까요?”

기쁜 기색도 잠시, 사마의성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괜히 반호진에게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였다.

모두가 관련된 일이라면 모를까 이번 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었기에 사마의성은 선뜻 부탁하기가 힘들었다.

“반대야. 하오문이 내게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라. 또 내가 돈이 없는 건 아니니까. 나 돈 많아. 쓸 데가 없어서 이자가 계속 붙고 있는 중이고.”

“그래도 죄송해서요.”

“너도 내 동생이다. 동생의 어려움을 봤는데 형인 내가 가만히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아? 반대로 네가 내 상황이었으면 가만히 지켜봤을 거야?”

“무조건 도와주죠.”

“그거랑 똑같아. 내가 능력이 없다면 모르겠으나, 쓸 수 있는 패가 있잖아? 그럼 사용해야지. 그렇다고 어려운 일도 아닌데. 하오문에게 이런 일은 아주 쉬워. 무림고수의 뒷조사를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사실 여부만 확인해 달라는 거니까. 그러니 이 문제는 나한테 맡겨.”

“감사합니다.”

더 이상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기에 사마의성은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그 모습에 반호진은 손사래를 쳤다.

“됐다. 우리 사이에 무슨. 낯간지럽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욱더 표현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고 들었어요.”

“누구한테?”

“방이 형한테서요.”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어쨌든 이 문제는 나한테 맡겨. 최대한 빨리 알아볼 테니까.”

말은 안 했어도 속앓이를 꽤나 했을 것이기에 반호진은 일부러 호언장담했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그리고 하오문이라면, 난희주의 능력이라면 정말 제대로 알아낼 것이었다.

반호진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네. 형님만 믿고 기다릴게요.”

“너는 진짜 혈족일 경우에 대해서나 생각하고 있어. 사기꾼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까. 가능성은 열어 둬야지.”

“기대했다가 괜히 실망만 하는 건 아닐까 걱정돼요.”

“긍정적으로 생각해. 적어도 사마라는 성이 다시 강호에 거론되기 시작했잖아? 이번은 아니지만 다음에는 진짜 후손이 찾아올 수도 있어. 이번에 가려지면 허튼 마음을 먹은 녀석들도 덜 찾아올 테고. 막말로 네가 잃을 건 기대감밖에 없잖아?”

“그렇긴 하죠.”

사마의성이 주억거렸다.

정신적으로는 타격을 입을지 모르나 실질적으로 사마의성이 손해 보는 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는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자고.”

“네!”

“난 이만 간다. 너도 얼른 자.”

“편안히 주무세요.”

“오냐.”

깔끔하게 할 말만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반호진의 모습에 사마의성이 옅게 웃었다.

이제 스물한 살인데 행동과 말투를 보면 어르신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뒷짐을 지고서 방을 나서는 반호진을 사마의성은 웃는 얼굴로 배웅했다.

***

쏴아아아.

강서성 포양호 인근의 이름 없는 야산의 계곡에 반호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그의 뒤로 서조운, 선우방, 모용척, 정이륭, 사마의성이 따르고 있었는데 다들 주변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탐색했다.

“인적이 없기는 하네요.”

“사냥꾼들이나 약초꾼들의 흔적도 없어요.”

작다고는 볼 수 없는 폭포였으나 그렇다고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크다거나 경치가 아름다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폭포가 지금 일행들 앞에 보이는 폭포였다.

“철두철미함은 도둑에게 있어 기본이니까.”

주변을 탐색하듯 살펴보는 일행들을 보며 반호진이 피식 웃었다.

다들 쓸데없이 너무 진지한 것 같아서였다.

“너무 긴장 안 하는 거 아냐?”

“형님은 그래도 되시죠. 막말로 호신강기 일으키고 걸어가면 되는데.”

무사태평한 모습으로 서 있는 반호진을 향해 선우방이 투덜거렸다.

자신들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어서였다.

하지만 서조운은 반호진을 이해한다는 듯이 두둔했다.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네.”

“우리에게는 전문가가 있잖아.”

서조운의 핀잔 아닌 핀잔에 선우방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반호진이 눈짓으로 사마의성을 가리켰다.

자신의 무공을 믿고 있기도 하지만 그것 말고도 믿을 구석은 하나 더 있었다.

“하하. 근데 저도 기관진식을 직접 경험해 보는 건 처음인데요.”

“공부는 오래 했잖아. 이참에 경험 쌓는다고 생각하면 되지. 설마 도흉보다 실력이 부족할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니에요. 다만 너무 기대하지는 말아 달라는 거죠. 처음이라 저도 실수할 수가 있으니까요.”

사마의성의 표정이 일변했다.

아무리 기관진식의 경험이 일천하다고 하나 제갈세가와 천하제일을 다투었던 사마세가의 적통이 자신이었다.

제갈세가에서 만든 기관진식이라면 모를까 일개 도둑이 만든 거라면 파훼할 자신이 있었다.

“실수는 두려워하지 마. 그건 내가 막아 줄 수 있으니까. 너는 자신 있게만 해.”

“네!”

“자, 그럼 들어가자고.”

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폭포로 인해 계곡 주변에는 자욱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시야를 은근히 차단했으나 일행들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반호진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기에 앞장서서 등평도수를 펼쳤다.

퐁. 퐁. 퐁.

반호진의 신형이 느릿하게 물 위를 걸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일행들이 따랐다.

허공답보는 불가능하지만 등평도수 정도는 사마의성을 제외하면 모두가 가능했다.

“자, 내 팔을 잡아.”

“내 팔도.”

전음은 가능하지만 등평도수같이 수준 높은 경공술은 무리였기에 사마의성은 서조운과 정이륭의 팔을 한쪽씩 붙잡고서 이동했다.

두 사람이 사마의성을 들어서 이동한 것이었다.

쏴아아아.

이윽고 반호진을 시작으로 일행들이 시원스럽게 쏟아지는 폭포수를 가르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법한 동혈이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잔머리가 대단하네요. 어떻게 이런 곳에다가 은거지를 만들 생각을 했지.”

“그러니까 팔흉 중 한 명이 된 거겠지. 무림공적이 되려면 실력도 실력이지만 오래 살아남아야 하니까. 흔적을 지우기도 용이하고, 식량을 구하기도 편하니까.”

동혈 자체가 습기와 이끼로 인해 미끌미끌했으나 일행들의 발걸음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모용척은 구경하면서 걸어 들어갔다.

잠시 후 좁은 통로를 벗어나자 제법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앞장설게요.”

“그래.”

딱 봐도 인위적인 티가 나는 동굴의 모습에 사마의성이 두 눈을 빛내며 나섰다.

여기부터가 시작인 듯싶어서였다.

동시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공부와 연구는 꾸준히 하고, 작은 규모는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지만 다른 이가 설치한 기관진식을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사마의성은 적당한 긴장과 기대를 하며 주위를 샅샅이 살펴봤다.

“이왕이면 횃불이 하나 있는 게 낫겠지?”

“없는 것보다는 낫지.”

“그래서 내가 챙겨 왔지. 친구 좋다는 게 이런 거 아니겠어?”

서조운이 등에 메고 있던 봇짐을 풀었다.

그러자 곤봉 크기의 막대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에 무명천을 칭칭 감고서 서조운은 극양지기를 이용해 쉽게 불을 붙였다.

“고마워.”

빛 한 점 없던 동굴이 일순 밝아졌다.

다른 이들이야 어둠에 크게 구애를 받지 않지만 사마의성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사마의성이 웃으며 고마움을 표했다.

“좌백호 우청룡인 거 보이지? 잘해야 한다.”

“너무 부담을 주는 거 아냐?”

“그만큼 기대한다는 거야.”

서조운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눈짓으로 옆에 있는 반호진을 가리켰다.

자연스럽게 친구의 긴장을 풀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처음인 걸 감안해 줘야 해.”

“물론이지. 그 정도 이해심은 있지.”

“있어서 고맙네.”

“흐흐흐! 얼른 해 봐.”

서조운이 눈을 빛냈다.

그 역시 기관진식을 보는 건 처음이었기에 얼굴 가득 호기심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생에서 질리도록 겪어 본 반호진만 유일하게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그럼 시작합니다.”

환기 구멍이 있는지 느릿하게 일렁이는 횃불과 함께 사마의성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사람이 오고 가기 편하게 깎아 놓은 듯한 동굴이었으나 사마의성은 한 걸음 한 걸음을 신중하게 내디뎠다.

특히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보이면 손으로 만져 보거나 미리 챙겨 온 작대기로 찔러 봤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의 돌들을 이용해 수상하다 싶은 곳들을 툭툭 건드렸다.

슈우욱!

반 각 정도 걸어갔을 때 바닥에서 녹이 슬대로 슨 쇠꼬챙이가 솟구쳤다.

사마의성이 바닥 한 곳을 건드리기 무섭게 말이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양쪽 벽에서 쇠꼬챙이가 나오는 건 예사였고, 천장에서는 독이 묻은 비수가 떨어져 내렸다.

그뿐만 아니라 화살은 심심찮게 날아왔다.

“우와.”

“이게 다 저절로 작동한단 말이지.”

“혼자서 이걸 다 만든 거면 도흉의 수준도 아주 낮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것도 연이어 기관이 작동했으나 일행들의 몸에 적중한 건 단 하나도 없었다.

속도는 조금 느릴지라도 사마의성이 차근차근 파훼해 나간 덕분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붙는지 이동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관리하는 것도 일이겠는데요?”

“회수하는 것도. 다시 제자리에 넣고 위장도 다시 해야 하잖아.”

반호진과 서조운의 뒤를 따르던 모용척과 선우방이 남의 집 잔치를 구경하듯 입을 열었다.

선두에는 사마의성이, 그 뒤에는 반호진이 있기에 둘 다 긴장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동굴이 통째로 무너지지 않는 한 위험한 상황은 절대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은근히 손이 많이 가네요.”

“그래도 만들어 놓으면 든든하기는 하겠는데?”

선우방이 턱을 쓰다듬었다.

간단하지만 그럼에도 위협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금이야 전문가인 사마의성과 절대고수라 할 수 있는 반호진이 있기에 안전한 거지, 만약에 평범한 무인들이었다면 삼도천을 건너도 진즉에 건넜을 터였다.

냉정하게 말해 일류무사들도 방심하면 충분히 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형도 저랑 같은 생각이군요?”

“너나 나나 가문을 이어야 하니까. 다만 문제는 주기적으로 관리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건데.”

“그거야 잘 가르치면 될 일이죠. 다행인 건 저희는 시도는 해 볼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긴 하지.”

모용척과 선우방의 시선이 사마의성에게로 향했다.

설치하고 배치하는 건 힘들겠지만 이미 만들어진 걸 관리하는 것 정도는 사마의성이 가르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니면 전문적으로 인력을 양성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었고.

“거의 다 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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