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장. 소림검성(少林劍星). -02
그 모습에 인경보가 기고만장한 표정을 지었다.
냉정하게 말해 기술적인 부분은 그보다 반호진이 뛰어났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말이다.
대신 인경보는 자신에게 유리한 것들을 십분 활용했다.
“확실히 공력적인 부분에서는 내가 밀려. 근데, 그렇다고 방법이 없어서 피하기만 한 건 아냐.”
눈부신 경신술로 허공을 넘나들며 이동하던 반호진이 씨익 웃었다.
반격할 수가 없어서 회피한 게 아니었다.
그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천하사패의 일좌를 차지한 철혈마황의 현재 실력이 말이다.
우우우웅!
그 사실을 증명하듯 반호진의 주변에서도 강환들이 생성되었다.
칠흑처럼 검은빛인 인경보의 강환들과 대비되는 황금빛 강환들이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강환들은 정확히 인경보가 만들어 낸 강환들과 숫자가 같았다.
“네놈도 할 수 있다고?”
그 광경에 인경보의 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보고도 믿기지가 않아서였다.
고작해야 이십일 년을 살아온 반호진이 쌓을 수 있는 공력은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강환들과 똑같은 개수를 만들어 내자 인경보는 믿을 수 없었다.
꽈과과광!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인경보와 마찬가지로 반호진은 강환들을 완벽하게 조종해서 그의 강환들을 상쇄시켰다.
그가 놀란 사이 강환들을 소멸시켰던 것이다.
동시에 반호진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쩌어어엉!
벼락처럼 쇄도한 반호진의 검이 인경보의 도를 때렸다.
그러고는 폭풍처럼 몰아붙였다.
자신을 밀어붙이던 강환들이 사라졌기에 가장 자신 있는 방식으로 싸움을 이끌어 갔다.
“큭!”
그 결과 인경보가 속절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한순간의 틈을 타 맹렬하게 파상공세를 펼치자 수세에 몰린 것이었다.
퍼퍼퍼펑!
그리고 인경보가 착각한 게 있었다.
경험은 반호진도 꿀리지 않았다.
오히려 강자와의 경험만 따지자면 인경보보다 반호진이 더 많았다.
거기다 직접 죽어 보기까지 했기에 경험으로는 감히 인경보가 비벼 볼 수준이 아니었다.
‘이대로 끝낸다.’
당황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난 인경보가 막기 급급한 모습을 보이자 반호진은 더욱 몰아붙였다.
기회가 왔다면 놓치지 않고 꽉 물어야 했다.
아직 천하사패라 불리던 시절의 실력이 아니었기에, 또 지금 놓치면 나중에는 더욱 강해져서 돌아올 게 분명하기에 반호진은 절대 물러날 틈을 주지 않았다.
하나 그렇다고 서두르지 않았다.
조급함은 흥분을 부르고, 흥분은 실수를 부르는 법이었다.
실수를 유도하면 모를까 자신이 실수를 해서는 안 되기에 반호진은 정교하고 세밀하게 인경보를 옥죄었다.
“차하합!”
그걸 인경보도 느낀 모양인지 진기를 가일층 끌어올렸다.
전신에서 무지막지한 기운을 뿜어내며 반호진을 밀어내려고 했다.
본능적으로 이대로 몰리다간 위험하다는 걸 느낀 듯했다.
그러나 너무 서두른 게 실수였다.
스극!
순간적으로 도가 흔들렸다.
힘을 너무 과하게 주다 보니까 실수가 나온 것이었다.
반호진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실수가 나온 그 찰나에 손목을 비틀어 인경보의 오른팔에 상처를 입혔다.
푸하악!
검기도 아닌 검강에 살이 베이며 피분수가 솟구쳤다.
하지만 문제는 상처도, 피도 아니었다.
오른팔 기맥에 손상을 입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진기를 다루는 데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했다.
터터터텅!
가뜩이나 초식의 정교함과 세밀함에서 밀렸던 게 인경보였다.
거기다 이제는 힘도 제대로 실을 수 없게 되자 인경보는 말 그대로 반호진의 검격에 두들겨 맞았다.
시간이 갈수록 몸에 상처가 늘어나며 뒷걸음질 쳤다.
천하의 철혈성주가, 대막에서 철혈마황이라 불리는 이가 속수무책으로 밀려나는 광경에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입을 떡 벌렸다.
“큭!”
그러나 인경보는 그걸 느낄 새가 없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반호진의 공격을 막아 내는 데 정신이 없어서였다.
게다가 얄미울 정도로 반호진은 그의 오른팔을 노렸다.
상처입은 부위를 집중적으로 공략했던 것이다.
스극! 슥!
그로 인해 상처가 점점 더 늘어났다.
교활하게도 오른팔을 노리는 허초를 뿌리며 왼팔에도 상처를 입혔다.
하지만 인경보는 어떻게든 버텼다.
버티고 버티다 보면 한 번 정도는 반전의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해서였다.
꽈아앙!
그러나 문제는 반호진이 그런 인경보의 속내도 꿰뚫어 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보통의 후기지수라면 이런 상황에 득의양양해서 방심하겠지만 반호진은 아니었다.
숱한 사선과 전장을 경험한 노련한 무인이 반호진이었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아예 그런 틈을 주지 않았다.
“크으윽!”
인경보가 본인의 강점인 막대한 공력을 이용해 움직임을 압박하려 했으나 반호진은 똑같은 방법으로 그 압박감을 상쇄했다.
전체적인 내공의 양은 밀릴지 몰라도 한순간의 출력은 인경보에게 꿀리지 않았다.
미리 수도 없이 연습했었고 말이다.
그 결과 인경보는 또다시 빈틈을 내보였다.
푹!
창졸간에 드러난 빈틈을 반호진은 역시나 놓치지 않았다.
인경보의 왼쪽 어깨에 검을 찔러 넣었던 것이다.
원래 노렸던 곳은 심장이었으나 썩어도 준치라고 인경보는 찰나의 순간 몸을 틀어 심장만은 피했다.
“끄읍!”
하지만 위기가 끝난 건 아니었다.
즉사는 피했을지 몰라도 상황은 여전히 안 좋았다.
왼쪽 어깨를 관통한 검을 통해 반호진의 진기가 체내를 헤집어 놓아서였다.
덥석!
거기에 반호진은 왼손을 뻗어 인경보의 오른쪽 어깨를 붙잡고는 그대로 분질러 버렸다.
아예 검을 휘두르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 상태에서 반호진은 검을 그었다.
오른쪽 어깨를 붙잡은 상태로 상반신과 머리를 분리했다.
“성주님!”
“으아아악!”
반호진은 어중간하게 제압하지 않았다.
인경보씩이나 되는 무인은 두 팔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해도 얼마든지 싸울 수 있었다.
굳이 도나 손을 쓰지 않아도 무형지기로 반격하는 게 가능했기에 반호진은 대화 대신 죽이는 걸 택했다.
그러자 철혈성의 전사들이 괴성을 질러 댔다.
인경보의 죽음에 경악한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반호진에게 복수하겠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그중 선두는 역시나 대전사들이었다.
“어딜!”
“더 이상은 못 간다!”
그러나 여섯 명의 대전사들은 반호진에게 갈 수 없었다.
그들이 움직이자 팽만철과 개왕, 상일기, 일우가 막아서서였다.
“비켜라!”
“꺼져라, 좀!”
이성을 잃고서 달려드는 대전사들의 공세는 저돌적이었다.
상처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는 듯이 방어를 도외시하고 달려들었다.
한데 그 덕분에 막아 내는 건 오히려 쉬웠다.
인경보의 시체가 있는 곳으로만 가려고 했기에 한 방향만 막으면 되어서였다.
“알아서 와 준다면 나야 고맙지.”
게다가 그들에게는 반호진이 있었다.
인경보를 상대하느라 내공 소모가 극심했으나 그렇다고 여력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전쟁을 위해서라도 팽만철과 개왕, 일우는 필요했다.
뻐어어엉!
인경보가 펼쳤던 공격과 유사한 참격이 대전사들에게 뿌려졌다.
알고도 막기 힘든 일검이었다.
그래서인지 대전사들은 반호진의 단 일검에 전부 다 밀려났다.
여섯 명 전부 가까스로 막은 것이었다.
쑤아아앙!
그런 대전사들을 향해 반호진이 재차 참격을 뿌렸다.
별다른 기교 없이, 막을 테면 막아 보라는 참격이었는데 그게 다섯 번 정도 이어지자 대전사들의 병장기들이 모조리 박살 났다.
“쿨럭!”
“커허헉!”
더불어 몇몇은 극심한 내상에 피를 토했다.
도망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 낸 대가를 치른 것이었다.
“마지막은 내가 장식해 주마!”
“흥!”
시뻘건 피를 토해 내는 대전사들을 팽만철과 일우가 마무리 지었다.
특히 일우는 자신의 왼팔을 베어 냈던 이에게 똑같은 고통을 주었다.
당한 걸 그대로 갚아 주었던 것이다.
“공격해라!”
“모조리 쓸어버려!”
“복수의 시간이다!”
인경보에 이어 대전사들이 무너지자 성중경을 비롯하여 각 파의 수장들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동안 꾹꾹 눌러 놓았던 울분을 토해 낸 것이었다.
전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비적으로 싸워야만 했었는데 이제는 달랐다.
철혈성의 수뇌부가 전멸했기에 더 이상 참고, 받아 내기만 할 필요가 없었다.
“우아아아!”
“죽여! 전부 다 죽여 버려!”
첫 전투 때 죽은 형제, 친구, 동료들을 떠올리며 백도무림의 무인들이 일제히 뛰쳐나갔다.
그리고 사마의성도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지금 상황에서는 따로 전술이 필요 없었다.
이미 승기는 이쪽에 넘어왔기에 복수의 시간을 누리기만 하면 되었다.
“튀, 튀어!”
“퇴각하라!”
철혈성주에 이어 대전사들도 전멸하자 잠시 얼이 나갔던 전사들은 이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개죽음밖에 없기에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간부들이 퇴각을 명령했다.
복수는 능력이 있을 때나 가능했기에 간부들은 현실을 직시했다.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라 물러날 때였기에 그나마 남아 있던 수뇌부는 퇴각을 명령하며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
“놓치지 마라!”
“한 놈이라도 더 죽여!”
물론 그 꼴을 가만히 지켜볼 백도무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계속 당하기만 했기에 무인들은 독기 가득한 얼굴로 철혈성의 전사들을 추격했다.
소리친 대로 한 명이라도 더 죽이겠다는 듯이 말이다.
마치 광인처럼 광기에 찬 눈빛과 기세에 반호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일행들에게 다가왔다.
“고생하셨어요, 형님!”
“이번에는 진짜 고생했지. 가급적이면 나서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오자마자 반겨 주는 사마의성과 일행들을 향해 반호진이 지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싸움에서 이기긴 했으나 반호진은 그 어느 때보다 지친 상태였다.
살짝 무리해서 내상을 입은 상태이기도 했고.
그 정도로 인경보는 강했다.
“근데 진짜 대단하셨어요. 저는 보는 내내 소름이 돋았어요!”
“저도요.”
“난 무섭더라.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일 줄은.”
차분한 사마의성과 달리 서조운, 모용척은 극도로 흥분해 있었다.
아직도 반호진의 무위가 생생하다는 듯이 말이다.
반면에 상대적으로 차분한 선우방은 감탄 반, 경악 반의 시선으로 반호진을 바라봤다.
친구지만 지금은 너무 멀리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도 할 수 있으니 너도 할 수 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네.”
“포기하려고?”
“그럴 수는 없지.”
선우방이 씨익 웃었다.
막막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친구기에 더욱 악착같이 노력할 생각이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근데 선우세가나 모용세가는 안 움직이나?”
“우리까지 움직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도망치는 적들을 공격하는 건 너무 없어 보여서요. 괜히 약자를 괴롭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보는 선우방과 모용척의 말을 들으며 반호진은 피식 웃었다.
두 사람답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럼 우리는 이만 숙영지로 돌아가자. 뒤는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네!”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기뻐할 법도 한데 반호진에게서는 그런 기색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와 똑같이 무덤덤한 얼굴로 숙영지를 향해 걸어가자 일행들도 피식 웃으며 뒤따랐다.
곳곳에서 술판이 벌어졌다.
철혈성과의 승리를 축하하는 것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피해가 상당했지만 모두가 지금 이 순간만은 그 사실을 잊었다.
슬퍼하는 건 충분히 했기에 지금은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한 잔 받으시지요, 서가장주님.”
“아, 감사합니다.”
섬서성에서 화산파와 종남파를 제외하면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예가장의 장주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술을 따라 주었다.
그런데 서이경의 주변에는 예가장주만 있는 게 아니었다.
섬서성과 산서성에서 내로라하는 무문의 수장들이 우르르 모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