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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신재림-166화 (166/468)

제 56장. 소림검성(少林劍星). -01

“지금부터는 제가 맡겠습니다, 방주님.”

“혼자서는 무리네. 같이…….”

“다른 분들이 위험합니다.”

“아!”

반호진의 말에 개왕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남궁호를 살린다고 그가 빠졌으나 남아 있는 이들에게 쏟아지는 부하가 더 심해졌을 건 자명했다.

가뜩이나 겨우겨우 균형을 맞추는 중이었기에 개왕은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전황이 어떤지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남궁 대협도 부탁합니다.”

“……괜찮겠나?”

“해보는 데까지는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개왕의 눈빛이 침중해졌다.

말과 달리 반호진의 표정에서 크게 긴장한 기색은 보이지 않아서였다.

오히려 호승심이 옅게 드러난 얼굴에 개왕은 의아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개왕은 궁금증을 풀 수 없었다.

상황이 점차 악화되었기에 움직여야만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일기와 팽만철, 일우가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기에 개왕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반호진을 한 차례 보고는 남궁호를 데리고 뒤로 물러났다.

“이제야 나오는군.”

“기다렸다는 말투인데?”

“인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반말을 하는 반호진의 모습에 인경보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런 후기지수는 처음이어서였다.

“서로 죽여야 하는 사이에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잖아? 안 그래?”

“그것도 그렇군. 근데 이건 생각 안 해 봤나? 죽음도 고통스러운 죽음이 있고, 고통이 없는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설마 그걸 모를까.”

“정말 날 이길 자신이 있나 보군.”

“당신은 생사결을 앞두고 죽을 생각부터 하는 모양이야.”

반호진은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

대화 또한 일종의 기세 싸움이었다.

의외로 말싸움은 심리적인 부분에 끼치는 영향이 컸다.

물론 그게 아니더라도 먼저 숙이고 들어가는 건 반호진의 성격에 어울리지 않기도 했고.

“신룡의 입심이 대단하다고 하더니. 그 소문이 사실이었던 모양이야.”

“지쳤나?”

“후후후!”

말 섞기 귀찮다는 듯이 반문하는 반호진의 모습에 인경보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러나 웃는 얼굴과 달리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오죽했으면 대전사들이 전투 중에 몸을 떨 정도였다.

그런데 반호진은 달랐다.

‘흐음?’

인경보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기도가 뿜어져 나왔으나 반호진은 긴장하지 않았다.

전생에서는 천하사패 중 한 자리를 차지했던 인물이 눈앞의 인경보였다.

북해빙궁주와 같은 반열에 있는 무인이 인경보였기에 이 정도 수준은 오히려 당연했다.

아니, 오히려 살짝 부족한 감이 들었다.

‘구 년 전이라서 그런가?’

분명 인경보의 무위는 대단한 수준이었다.

천하제일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법왕과 검왕도 한 수 접어 줄 정도의 실력자였다.

하지만 전생에서 직접 겨루어 봤던 북해빙궁주와 비교하면 조금 부족했다.

반호진은 어쩌면 그 이유가 시간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경지가 정체되어 있는 경우도 있듯이 아직 인경보의 수준이 덜 성장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반호진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그렇다면, 해 볼 만해.’

반호진은 무의식적으로 천하사패의 수준을 전생 때 기준으로 잡았다.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기에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한데 그건 최악의 가정이었고 시기가 다른 만큼 인경보의 수준 역시 달랐다.

그렇기에 반호진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의 자신감, 언제까지 갈지 궁금하군.”

쌔애애액!

반호진이 상념에 잠긴 사이 인경보가 참격을 뿌렸다.

그를 대막의 지배자로 만들어 준 철혈마도식(鐵血魔刀式)을 펼친 것이었다.

이윽고 도신에서 뿜어져 나온 거대한 도강이 반호진을 쪼개 버릴 기세로 쇄도했다.

바로 남궁호를 단칼에 날려 버린 그 참격이었다.

뻐어엉!

천하의 염왕도 날려 버린 참격을 반호진은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피할 생각이 없다는 듯이 마주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놀랍게도 무승부였다.

반호진의 일검에 날아오던 인경보의 도강이 중화되듯 흩어졌다.

스스슥!

그러나 놀라기는 일렀다.

도강을 흩어 버리기 무섭게 반호진이 달려들어서였다.

눈 깜짝 할 사이에 간격을 좁힌 반호진은 검을 찔러 넣었다.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찌르기였으나 그걸 본 인경보의 두 눈은 크게 떠졌다.

단순하지만 검에 담긴 묘리가 무시 못 할 수준임을 알아차려서였다.

절대 후기지수 따위가 펼칠 수 없는 현묘한 검의 경지에 인경보의 표정이 달라졌다.

까아앙!

물론 놀랐다고 해서 순순히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아주 조금 감탄했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듯 반호진의 찌르기를 도신으로 튕겨 낸 인경보는 그대로 다시 한번 참격을 뿌렸다.

방어와 공격이 동시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쌔애애액!

소름 끼치는 파공음과 함께 인경보의 도강이 번뜩였다.

한줄기 벼락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목을 향해 날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피할 수도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피해도 의미가 없었다.

꽈아앙!

강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고수에게 거리는 의미가 없었다.

길이를 얼마든지 늘이고 줄일 수 있어서였다.

더욱이 인경보 정도의 고수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반호진은 물러나지 않고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호오.”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반탄력에 인경보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보통이 아닐 거라고 예상하기는 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라서였다.

남궁호조차 단 일격을 막지 못했는데 반호진은 어렵지 않게 받아 내자 인경보가 살짝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반호진의 나이에 이 정도 경지에 오른다는 건 말이 안 되어서였다.

그러나 감탄은 잠시뿐이었다.

이룩한 경지는 놀랍지만 죽여야 하는 건 달라지지 않았기에 인경보는 팔의 힘으로 반호진을 밀어내고는 재차 도를 내질렀다.

쌔애애액!

역시나 지금까지 보여 주었던 공격과 똑같은 참격이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거리가 적당히 벌어지기 무섭게 인경보는 난사하듯 연달아 참격을 뿌렸다.

쩌어억! 쩌적!

그 결과 반호진이 서 있던 자리는 깊게 갈라졌다.

인경보의 도강이 대지가 찢어진 것이었다.

‘할 만한데?’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참격을 회피하고 있었으나 반호진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처음 느꼈던 대로 막막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서였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라면 전생처럼 동귀어진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반호진은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지금 웃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그런데 그게 인경보의 신경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가뜩이나 위력적이었던 참격이 더욱 빠르고 강맹해지며 정교해졌다.

하지만 전력을 다하지 않은 건 반호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웅웅웅!

인경보가 익힌 철혈마도식은 분명 절세무공이었다.

또한 인경보의 재능 역시 대막일패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건 반호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작 서른의 나이로 초월경에 오르며 천하사패 중 한 명인 북해빙궁주를 상대했던 게 반호진이었다.

꽈아아앙!

그걸 증명하듯 반호진은 슬쩍슬쩍 회피하던 걸 멈추고 정면으로 받아쳤다.

그러자 무지막지한 후폭풍이 사방을 덮쳤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지축이 뒤흔들렸던 것이다.

“어어어?!”

“뭐, 뭐야?!”

단순히 검과 도가 부딪친 것뿐인데 땅이 흔들리는 광경에 장로급들이 당황했다.

허공답보를 펼칠 수 있는 대전사들이나 천하십대고수와 달리 그들은 지면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였다.

꽝! 꽝! 꽝! 꽝!

연이어 일어나는 지진에 고수들이라 불리는 이들조차 중심을 못 잡는 것과 달리 반호진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인경보가 뿌리는 참격을 그대로 받아쳤던 것이다.

거패도에 가까울 정도로 인경보의 도는 컸으나 반호진의 기세는 조금도 꿀리지 않았다.

패도적인 인경보의 도격을 흔들림 없이 받아 냈던 것이다.

퍼퍼퍼펑!

심지어 광풍처럼 휘몰아치는 여파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놀랍게도 대막의 절대자인 인경보를 상대로 한 치도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게 인경보는 내심 놀라웠다.

대전사라 할지라도 쉬이 받아 내지 못하는 참격을 계속 받아 내서였다.

“흐읍!”

그래서 인경보는 궁금했다.

반호진이 어디까지 받아 낼 수 있을지가 말이다.

웅웅웅!

지금까지의 공격이 단순히 진기를 가득 실은 도강이었다면 이번은 달랐다.

단순히 도강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일격이 인경보의 손에서 펼쳐졌다.

“흥!”

쩌어어엉!

하지만 반호진은 그조차도 받아 냈다.

알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인경보가 이룬 무공의 극의가 담긴 일격을 반호진도 똑같은 방식으로 뿌려 냈다.

“허!”

그걸 충돌하는 순간 느낄 수 있었기에 인경보가 경악했다.

스물한 살의 반호진이 자신과 비등한 무경을 이루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인경보가 순간적으로 멈칫한 틈을 반호진은 놓치지 않았다.

쌔애액! 쌔애애액!

좀 전까지는 인경보가 주로 공격을 주도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제부터는 반호진이 주도권을 잡겠다는 듯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검격을 뿌렸다.

달마삼검의 일 초식과 이 초식을 연거푸 펼쳤다.

콰콰콰쾅!

그로 인해 인경보의 주변에서 폭발과 굉음이 연달아 터졌다.

지면이고 허공이고 할 거 없이 반호진의 검격이 모든 걸 베어 버리고 터트려 버려서였다.

“흡!”

호신강기조차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위력에 인경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팔다리 하나가 날아갈 거라는 걸 잘 알아서였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자신이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뻐어어엉!

놀라운 실력인 건 맞지만 그래도 경험에서 오는 차이는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경험은 세월과 함께 축적되기에 인경보는 거칠게 참격을 뿌리며 반호진의 검세를 갈랐다.

우선은 빼앗긴 주도권을 다시 가져올 생각이었다.

꽈아앙!

그러나 반호진은 그의 의도를 역으로 이용했다.

당연히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말도 안 되는 완급 조절을 보여 주며 인경보가 도를 휘두르는 찰나의 순간에 검을 찔러 넣었다.

아주 미세한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든 것이었다.

“큽!”

절묘하게 명치를 노리고서 파고드는 반호진의 일검에 인경보가 움찔거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직선적인 찌르기였으나 인경보의 눈에는 보였다.

검극이 언제라도,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반호진의 마음에 따라 목과 미간은 물론이고 단전으로도 갈 수 있는 일검이었기에 인경보는 모든 경우의수를 감안하며 도를 휘둘렀다.

쩌어어엉!

어떤 방향으로 올지 알 수 없다면 주체가 되는 검 자체를 밀어 버리면 될 일이었다.

거기에 인경보는 하나를 더 추가했다.

반호진보다 그가 우위에 있는 점을 십분 활용했다.

웅웅웅!

인경보의 주위에 열댓 개의 강환이 생성되었다.

상대적으로 그가 유리할 수밖에 없는 공력을 십분 활용한 것이었다.

게다가 인경보가 생성한 강환은 단순히 막대한 진기를 품고 있기만 한 게 아니었다.

쉬이이익!

하나하나를 전부 인경보가 확실하게 조종할 수 있었다.

이기어도처럼 강환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기에 인경보는 도와 함께 반호진을 몰아붙였다.

퍼퍼퍼펑!

저돌적인 참격에 이어 강환들이 쉴 새 없이 쇄도하자 반호진의 주위에서 연신 폭발이 일어났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반호진의 몸에 적중된 건 아직까지 없었다.

허공답보를 펼치며 피해 내서였다.

그러나 위태로운 건 사실이었다.

인경보의 강환은 계속 추격하기도 했지만 폭발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았기에 반호진으로서는 쉬지 않고 이동해야만 했다.

“후후!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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